7 세계관/의문점

7allegna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7월 6일 (일) 01: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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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글을 읽고 들 수 있는 의문점에 대해 정리 하는 글.
상황을 더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글 이며, 현실을 조작 하기 위한 내용이 아니다. [1]

의문점


1. 왜 이렇게까지 잔인한 분위기의 세계관 인가?
설정을 읽다 보면, 7 세계관이 굉장히 잔혹한 분위기 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전혀 잔인 하지 않다.
수많은 숫자와 예시로 표현 한다고 해도, 글을 통해서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 하기는 어렵다.
만약 생명체들이 생활의 문제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다면,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해 가혹한 분위기를 권유 할 수 밖에 없다.

2. 왜 모두가 잘될 수는 없는가?
모두가 잘될 수 없는 것을 넘어, 이렇게 지내면 모두가 실패 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행실의 문제를 넘어서, 아름다움 이야말로 서열 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동등 하면서 예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이다.
동등 하면서 다르게 예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름다움 에는 엄청난 위계 서열이 존재한다. [2]
애초에 서열 1위와 2위는 종 부터가 다르다.
1위와 2위는 종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99위는 고려 대상 조차 아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아름다움 으로 격차를 매긴다면, 서열 1위 만이 존재하고 나머지는 없어질 수 밖에 없다. [3]

3. 이 글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 하는가?
어떤 감흥도 없을 것으로 예상 한다.
7 세계관에서 언급된 것과 실제 세상의 세태는 매우 다른 것 처럼 여겨지기 때문 이다.
누구도 사악 해보이지 않으며, 심적 영역 이라는 용어가 왜 등장 했는지 알 수 없고,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표현 되었다는 것 이다.
또한 마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에, 형이상학적 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마음 이라는 분야는 절대로 모호하지 않다. 그래서 심적 영역 이라는 공간이 있는 것 이다.
이를 모호하게 여긴다는 것은, 시간적 시점과 상관 없이 7 세계관을 알게 되었을 때와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의 인상이 같다는 것을 의미 한다.
7 세계관은 상위 세계의 원리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이미 지금도 통용 되는 기초적인 지식 이다.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 하지는 않은 것 이다.
생활은 기본적인 일과에 지나지 않으며, 선하게 행동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 이다.

4. 신은 존재 하는가?
신 이라는 용어는, 유아 시기의 단어에 속한다.
사실 지금까지 정신체 들이 신을 찾아왔던 이유는, 자신이 신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다.
과거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었으며, 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는 흥미롭지 않은 배경 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가지 신비한 것 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자신 밖에 모르던 정신체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자신이 신이 되었다고 망상하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존재 했다면 적극적으로 인간을 고문 했을 것이며, 이렇게 평화로운 척 살 수 조차 없다. [4]

5. 그렇다면 그럴듯한 집단에서 활동하면 되는가?
집단은 일종의 숭배 사회 이다.
명령에 의해 행동하는 것도 문제가 되거니와, 숭배는 추상적인 행동 이므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그래서 희생을 통해 공헌의 정도를 비교 할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또한 집단이 있다는 것은 지도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러나 높은 존재가 있는 세상은 망할 수 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도자 에게 의존하기 때문 이다.
7 세계관 에서는 인간, 사회, 집단, 지위, 군락(건축), 공생을 모두 부정 한다. [5]
이것은 작품 내에서 극도의 혼돈 상태인 아나키 세계가 이상적인 세상으로 묘사 되는 이유 이다.

6. 7 세계관에서 언급 되는 자연 이란?
7 세계관 에서의 자연은 주연이 아닌 상태, 즉 엑스트라의 역할을 일컫는다.
존재하게 되었을 때 부터 자연 이었던 이는 없다. 구성 요소 로서 정해지는 역할이 아니며, 생활 방식에 가깝다.
이들이 행동력이 없는 이유는, 자신이 바라는 세상이 될 때 까지 수면 상태에 있기 때문 이다.
가혹한 세상 에서는 존재감이 없을수록, 손해를 겪을 일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이다.
7 세계관 에서의 자연은 가짜 환경을 뜻하며, 가만히 있으면서도 온갖 영향력을 끼치며 세상을 파괴하는 이들 이다.

7. 심적 영역에 있었지만,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 인가?
나중에 생각 해보면 알 것 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평범해 보이지만, 이렇게 지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모든 이가 같은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 만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분열체와 다른 사람도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지구 상의 모든 정신체가 자신이 잘 살기를 바라기에, 결론적으로는 자신의 몫이 거의 돌아오지 않는다.
불행한 일을 하루에도 몇번 씩 겪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8. 왜 진화를 하면 안되는가?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받아 들이고 체념 하는 것이 좋다.
진화를 하게 되면, 오히려 태생적 한계를 거스를 수 없게 된다.
심적 영역 에서의 삶에 집착하지 말고, 몇 백년이 걸리든 몇 천년 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든…
발전 하지 말고, 지금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오히려 지금 보다도 더 평범 해질 필요가 있다.

9. 왜 판타지는 실현 될 수 없는가?
살생의 문제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종의 차이로 인한 문제 이다.
종이 낮은 생물은 종이 높은 생물을 목격 하기만 해도 쇼크사 한다.
쉽고 편히 최후를 맞이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큰 고통을 겪는다 한들 원혼이 생성 되어야 하는데, 종의 차이로 인한 죽음 에는 원혼이 생성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 이다.
이것은 이들이 체념 하여 순식간에 소멸 되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심지어는 분열체 조차, 집단 쇼크 증상을 일으키며 한순간에 돌연사 했다는 것 이다.
7 세계관은 지금까지 마음의 문제를 해결 해야 한다고 강조 해왔다. 그러나 종의 차이는 어떤 마음가짐 으로도 극복 할 수 없다.
아무리 진화를 한다고 해도,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종의 격차는 절대적 이다.

10. 7 세계관이 지향하는 미적 가치관 이란 무엇 인가?
7 세계관이 추구하는 미감은 추함 이다.
7 세계관은 극도로 추한 환경을 심미적으로 여긴다. 더 추할 수록 더 이상적 이라는 것 이다.
사실 이상적 미감에 아름다움 이란 것은 없다.
심미는 심적 영역 상의 개념 이며, 상위 세계의 미감은 추한 것에 더 가깝다. 추함 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 이다.
그래서 극적으로 잔혹하고 추한 세상 일수록 상위 세계가 아닌지 의심 해봐야 할 정도 이다. 무난한 세상은 무난하게 파괴되기 때문 이다.
추함과 선함을 동시에 추구 하므로 가끔 혼동 할 수 있지만, 추함과 추악함은 같지 않다.
7 세계관은 아름다움과 연관성이 없기에 세상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11. 이렇게 장단점을 나열 하다보면, 단점이 없는 존재가 있겠는가?
의외로 기준이 까다롭지는 않다.
이 글에서 주로 다뤄지는 문제점은 대체로 여유로움 에서 비롯 된다.
예를 들어, 자연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주위를 방관 한다.
자연은 무생물 이지만, 이러한 정신적 공허 상태를 사악 하다고 일컫는다.
반대로, 육체적으로 매우 고통 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말을 할 수도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이러한 경우를 정신적으로 순수한 상태 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선한 행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 극도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악 하지 않다.
그러나 여유로운 상황에서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은 악 하다는 것을 뜻 한다.

12. 인간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체의 태생적 한계는 매우 명확하다. 이들에게 어떤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다.
글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단순히 외모 또는 지능이 부족 하다는 뜻의 한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들과 일일이 대립 해서는, 어떤 결론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7 세계관은 절망적인 상황 임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격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무리 부정적으로 설명 한다고 한들, 파괴된 세상의 의지 보다는 덜 잔인할 것 이다. 그래서 되도록 부정적으로 설명하는 것 이다. [6]

13. 이 글을 읽고 절대 해서는 행동이 있다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글을 지능적으로 해석하는 일 이다.
글을 지능적으로 해석 하는 이들은 글의 내용을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한다.
지식을 얻은 후, 편법을 쓰는 것 이다.
이들은 잔머리를 써서 문제 상황 자체를 회피 했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편법은 살생 만큼 이나 큰 잘못 이다. 이것은 단순히 영악 하다는 말 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 이다.
왜 이제 와서 이 세상이 지옥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이들은 편법을 써서 모두를 속인다.
사회 시스템을 속이려 들고 세상 전체를 속이고 싶어 하기에,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편법을 쓰면 미래를 예측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사막에서 사는 것 보다도 더 최악의 결과를 맞이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 한다.

14. 왜 이런 글을 적게 되었는가?
7 세계관 에서는 지금 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의 모습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곳은 심적 영역 이라는 것 이다.
모두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처럼 균일한 외골격을 지니고 있으며, 삶을 살면서 실수하는 일이 없고,
부정적인 일 이라고는 재화의 문제 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편리함을 위한 장치는 많으며, 고통을 겪을 일 자체가 없고,
인터넷은 발전하여 계속해서 심미적 요소가 나오고 있지만, 심미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 인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7 세계관은 이것이 결코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며, 이러한 일의 근본에는 마음의 문제가 있다고 설명 한다.
세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은 사악함의 문제 라는 것 이다.
정신체는 이것이 자신의 문제 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이상적인 세계 에서는 모든 문제가 알아서 해결 될 것 이라는 자신감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다.

15.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 나는가?
알 수 없다. 그리고 예상 할 수 없다.
이미 지금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 할 수 없기 때문 이다. [7]
그러나 노력 한다면, 고통의 정도를 경감 할 수는 있다. [8]

풀리지 않은 의문


이해 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의문점이 있다.
풀리지 않은 의문은 이것 이다.
원래 정신체는 어떠한 방법을 사용 해서든, 심적 영역과 보이지 않는 눈의 세계에 진입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들이 그곳에 있는가?
이것은 세계관 내 에서도 서술되어 있지 않으며, 전해 듣는 것 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내용 이다.
그래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정보를 얻을 수 조차 없다…
그렇게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1. 어떤 삶을 살든 본인의 선택 이며, 이미 개입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체적인 환경을 갖추었기에, 7 세계관은 무엇도 강요 할 수 없다.
  2. 그래서 인간과 동물 보다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종의 격차가 더 크다. 데포르메가 같기에 비교 기준이 같기 때문 이다. 인외는 골격과 외형 등 인간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에, 얼마나 격차가 큰지 명확히 비교 하기가 어렵다.
  3. 이것이 인간의 얼굴을 갖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 이다. 얼굴이 있으면 아름다워 지는 것에 집착하게 되며, 경쟁 대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 이다. 또한 인간적 행동을 하게 되므로, 결국 세상을 파괴하게 된다. 만약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얼굴이 있다는 것 만으로 생물적 심미성을 가늠해 행동 하므로 타락 할 수 밖에 없다.
  4. 만약 어떤 존재를 숭배해서 타인에게 귀속 되면, 자연의 섭리는 반항과 반역 행동을 검증하기 시작 한다. 그래서 원래도 어려웠던 일이 더 어렵게 진행 된다. 만약 높은 존재가 있다고 해도 상대방이 명령을 내리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하며, 상대방이 명령한 일 이외의 다른 일 까지 함께 처리하여 완전히 귀속 된 것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5. 7 세계관이 이러한 요소를 부정 하는 이유는, 인간이 존재할 때 세계관 보다도 사회의 분위기가 우선으로 여겨지기 때문 이다. 또한 건축과 자연물을 본래의 용도 와는 상관 없이 도피처 처럼 여기므로, 환경적 이점 자체를 부정 하는 것이다.
  6.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지만, 모든 세상과 자연 법칙이 정신체에게 명백한 적의를 지니고 있다. 높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와도 같은 어떤 흐름이 있기 때문 이다.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을 넘어서, 존재와 영혼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배제하려 한다는 것 이다. 심지어는 이것이 적의 인지, 또는 본연의 상태 인지 조차 알 수 없다.
  7. 완전한 해결 방안은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어떤 순리적 흐름이 자연과 세계가 기여한 바가 없음을 확정한 것과 다름 없다. 도움이 되었다고 하기 어렵고 심미적 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세태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상황을 활용 했다는 것 이다. 생태를 유지하고 보존한 환경과 세계가 있다고 해도 이들이 발전할 희망을 헤아리지 않으며, 결국에는 동류로 취급 되었고 구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 한다. 또한 인생은 자신 만의 개인적인 일 이다. 지금 까지의 삶이 세상에 대한 기여가 목적 이었을 리가 없다. 본인의 삶을 사는 것으로 뭔가를 기대 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다.
  8. 그럼에도 선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절대로 겉으로 보이는 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심적 영역에 있던 것들이 점차 없어지고 있으며, 여러 세상이 어딘가로 없어졌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심각한 상황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