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틀:그랑파트리}} <div style="background:#002654;border:2px solid #f0de71;padding:10px;margin:20px auto;box-shadow:2px 2px 10px 1px #002654;color:#fff;text-shadow: 0px 0px 2px #002654"> {| style="margin:0px; width:100%; text-align:center;" |- !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line-height:230%" | <onlyinclude>{{#SWITCH: {{랜덤|8}} |0 =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내란으로 치닫는다면 그것은 프랑스에 커다란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br>- 나폴레옹 1세 |1 = "정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승리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br>-페르디낭 포슈 |2 = "내가 희망하는 독일의 미래는 한 때 로마 제국이 그랬듯 긴밀하게 통합되고 강력하며 권위를 가지는 것이다. " <br>- 빌헬름 2세 |3 = "오늘날의 중대한 문제는 연설이나 다수결로 해결되지 않고 오직 철과 피로 해결될 것입니다!" <br>- 오토 폰 비스마르크 |4 =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한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br>- 나폴레옹 1세 |5 = "진정한 혁명가는 그 과정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br>-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6 = "온 유럽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다. 우리 생전에 다시 켜지는 일은 없겠지." <br>- 에드워드 그레이 |7 = "주님이시여, 러시아를 구하시고 평화를 가져다주소서!" <br>- 니콜라이 2세 |8 =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br>- 허버트 조지 웰스 #default=전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내란으로 치닫는다면 그것은 프랑스에 커다란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 </onlyinclude> |}</div> <div style="background:#002654;border:2px solid #f0de71;padding:10px;margin:20px auto;box-shadow:2px 2px 10px 1px #002654;color:#fff;text-shadow: 0px 0px 2px #00265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margin-right:auto; " |- | width="100%" style="background:#002654;line-height:20px;font-size:25px;border:none;color:#fff;" |'''<big>개요</big>''' |- |} {{구분선}} [[파일:그파이미지6.png]] {{구분선}} <big><big><big>'''그랑파트리'''</big></big></big>는 만약에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승리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대체역사 세계관이다.<br/>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 제국이 결국 <big><big>'''대전쟁'''</big></big>으로 몰락하고, 유럽의 질서가 재건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br/>언뜻 보면 프랑스를 찬양하는 세계관 같겠지만 사실은 '''바니타스<ref><big>라틴어로 '공허'를 뜻하며 삶의 덧없음과 결국은 죽는다는 의미를 담기도 한다.</big></ref>'''적인 세계관이다. 세계관 이름은 프랑스어 <big>'''Grande Patrie'''</big>에서 유래되었으며 해석하면 <big>'''위대한 조국'''</big>을 의미한다. </div> <div style="background:#002654;border:2px solid #f0de71;padding:10px;margin:20px auto;box-shadow:2px 2px 10px 1px #002654;color:#fff;text-shadow: 0px 0px 2px #00265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margin-right:auto; " |- | width="100%" style="background:#002654;line-height:20px;font-size:25px;border:none;color:#fff;" |'''<big>세계관</big>''' |- |} {{구분선}}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width:100%;margin-left:auto;margin-right:auto;border: 2px solid #000;background:#446ba3" |- style="color:#000000;" |} {| class="wikitable" style="border:2px solid #dcdcdc; border-left:6px solid #06041A;" | |- [[파일:그파5.png]] |- |} {| class="wikitable" style="border:2px solid #dcdcdc; border-left:6px solid #f0de71;" | |- | style="margin:5em;background-color:#f2f2f2;color:#000;padding:12px;padding-left:15px;padding-bottom;padding-right:60px; " |1870년, 독일 통일의 야망이 꺾이며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는 아름답고도 위태로운 시대가 찾아왔습니다.<br><br>20세기가 되자 아름다운 꽃은 시들고 위태로운 나뭇가지만이 남았습니다. 프랑스 제국의 부흥은 유럽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다시금 피어오르는 프로이센의 통일 야망은 프랑스와의 충돌이 불가피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 유럽이 아슬아슬한 정세 속에서 전쟁의 문턱 앞에 서있습니다.<br><br>'''그리고 1914년, 사라예보에서 총성으로, <big>그 문턱을 넘었습니다.'''</big> |- |} </div> <div style="background:#002654;border:2px solid #f0de71;padding:10px;margin:20px auto;box-shadow:2px 2px 10px 1px #002654;color:#fff;text-shadow: 0px 0px 2px #00265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margin-right:auto; " |- | width="100%" style="background:#002654;line-height:20px;font-size:25px;border:none;color:#fff;" |'''<big>분기점</big>''' |- |} {{구분선}} [[파일:그파이미지5.png]] {{구분선}} <big><big>{{center|'''"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승리하다! "'''}}</big></big> <br> 1866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제국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은 시작된지 7주만에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승리하며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끝났다. 오스트리아의 패배는 프랑스 제국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는 독일의 통합을 저지하던 프랑스의 전통적인 외교 정책이 무너질 위기가 코 앞에 왔기 때문이다. 1867년, 전쟁장관이었던 아돌프닐 원수는 군사개혁의을 위해 <big>'''닐 법안'''</big>을 제출하였다. 국민위병의 확장, 교리의 현대화 등이 담긴 닐 법안은 의회에서 간신히 통과하며 프랑스는 대대적인 군사 개혁을 시작한다. 1870년, '''엠스 전보 사건'''으로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프로이센군은 이전에 계획한대로 국경을 넘어 알자스-로렌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big>'''스당 전투'''</big>에서 나폴레옹 3세가 직접 이끄는 군대와 격돌하였고, 프로이센군은 이 전투에서 괴멸 당하면서 공세를 멈추게 된다. 스당에서의 승리 이후, 프랑스군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겨울이 되자 라인 강을 넘어 프로이센으로 진격하였다. 1871년, <big>'''코블렌츠 전투'''</big>에서 프리드리히 왕태자(훗날 프리드리히 3세)가 포로가 되면서 프로이센군의 사기는 바닥이 났다. 결국 프로이센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프랑스에 항복한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수상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만 했고, 델브뤽 외무장관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는 2월부터 종전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였고, 최종적으로 5월에 <big>'''스트라스부르 조약'''</big>을 체결하며 전쟁은 프랑스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div> <div style="background:#002654;border:2px solid #f0de71;padding:10px;margin:20px auto;box-shadow:2px 2px 10px 1px #002654;color:#fff;text-shadow: 0px 0px 2px #00265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margin-right:auto; " |- | width="100%" style="background:#002654;line-height:20px;font-size:25px;border:none;color:#fff;" |'''<big>타임라인</big>''' |- |} {{구분선}} [[파일:그파이미지7.png]] {{구분선}} 자세한 내용은 '[[그랑파트리/타임라인|{{color|#fff|'''그랑파트리/타임라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div> <div style="background:#002654;border:2px solid #f0de71;padding:10px;margin:20px auto;box-shadow:2px 2px 10px 1px #002654;color:#fff;text-shadow: 0px 0px 2px #00265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margin-right:auto; " |- | width="100%" style="background:#002654;line-height:20px;font-size:25px;border:none;color:#fff;" |'''<big>국가</big>''' |- |} {{구분선}} [[파일:그파이미지9.png]] {{구분선}} 자세한 내용은 '[[그랑파트리/국가|{{color|#fff|'''그랑파트리/국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div>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Center (원본 보기) 틀:Color (원본 보기) 틀:구분선 (원본 보기) 틀:그랑파트리 (원본 보기) 그랑파트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