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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는 해머를 젖히어 방아쇠를 당긴다. |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는 해머를 젖히어 방아쇠를 당긴다. | ||
아. | 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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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기에 필요하다면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실행해야 합니다." | "군인이기에 필요하다면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실행해야 합니다." | ||
"훌륭해. 기회를 준 보람이 있군" | |||
총통은 흐뭇하다는 듯 웃고, 그녀가 약간의 안심을 하자마자 중년은 팔소매를 걷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반동을 억누르는 힘줄에서는 금방이라도 붉은 피가 튀어나올 듯 날 서 있었다. 한 발이 아니다. 무려 연신 여섯 번 총을 쏴 그 총성은 온 벽에 부딪혀 그녀의 귀를 묵직하게 때렸다. | |||
탄피 6개가 떨어지는 순간마다 솟아올랐던 피는 가깝게는 의자 아래부터 중년의 하얀 셔츠까지 선혈이 뻗어나갔다. 그녀는 먹먹해진 청각보다 빨간색으로 가득한 시각이 더 아려왔다. | |||
"복무신조를 말해보게." | |||
"우리는, 하나의 눈으로 세상을 향하는, 올곧은 천개의 창이다." | |||
복무신조의 의의. 그건 복종이었다. 소리의 미세한 떨림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힘겹게 말했다. 총통은 그 앞에서 권총을 바닥에 내던지고 핏자국을 밟으며 걸상에 걸터앉았다. | |||
"참모장.. 참모장이면, 그래 5등 병사" | |||
"예. 각하" | |||
"질문을 다시 바꾸겠네. 전쟁은 정당한가?" | |||
"정전(正戰)을 논하신다면, 경우에 따라 옳다고 생각합니다." | |||
"자네 말마따나 경우에 따라 다르다면, 살인도 마찬가지군 그래. 정당한 살인 말이야" | |||
그녀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복면을 쓴 남자를 쏴죽인 게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괘변론자로 유명한 그의 말장난 때문에 수없이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생각한다면, 이곳은 끔찍한 지옥과 다르지 않아보였다. | |||
"나는, 정당한 전쟁이 없다고 생각하네. 모든 이야기는 궤변이야. 나도 알고 있네. 개인이 개인을 살해할 정당성도 없는데, 하물며 사회가 사회를 파괴할 명분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터무니 없어. 오히려 해결은 대화밖에 없지. 자네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전쟁은 기필코 일어나네. 왜?" | |||
총통은 자리에서 일어난다.<BR> | |||
"뭐때문이라 생각하나?" | |||
그녀는 차마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 |||
"각하. 이해하기 경외로운 혜안이십니다." | |||
"미안하군. 내가 이상한 말을 많이 하는 편이지. 난 모든 싸움이 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네. 정당하느니.. 정당하지 않느니. 그런 건 현실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어.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은 명분 하에 일어났고, 그게 힘의 논리지. 내가 방금 게임에서 이긴 것 처럼. 단지 총알을 가진 내가 이겼을 뿐이네. 총알이 없는 상태에선 누구도 죽지 않았을 테지. 그러나 그렇다고 가진 자를 욕할 순 없지 않나? 그런 걸 이해해줄 만큼 세상은 균형적이지 않네." | |||
"내게 그런걸 잘 이해시켜준 학자들에게 크게 감탄했고 말이야. 지금은 비록 이렇게 널부러져 계시지만 말이지." | |||
총통은 선혈이 흐르는 시체를 툭툭치고, 그녀의 앞에 서서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 |||
"그럼에도 심금을 울리는 지론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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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7일 (화) 12:20 판
A
그로우휠 1편 | ||
◀ | 라이프니츠 | ▶ |
“총통각하. 들어가겠습니다.” 긴장이 역력한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한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섬세하게 치장된 문고리를 밀고 들어가자 순간 쏟아진 빛에 눈을 찡그린다. 이내 연회장처럼 트인 공간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벽면과 정면의 거대한 창문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방이다. 오직 걸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두 사람만 오롯이 있을 뿐이다.
아.
"말하게"
"아. 각하 죄송합니다. 보고가 늦었습니다. 전 중앙전선 4군단 참..." "굳이 계급은 필요없네. 어차피 내 아래가 아닌가. 그래서?"
"중앙전선 전선 상황과 지표, 보급 현황을 보고드리려 방문했습니다." 총통이 손을 까딱하자, 그녀는 직접 서류를 건네주었다. 그는 내용물을 꺼내고 내용을 훑어보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몸을 벌벌 떠는 남자의 건너편에 앉아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열세란 얘긴가?" "공세를 유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군" 총통은 무언가 깊게 생각하다 그녀에게 물었다. "전쟁이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나?" "그건..." "그러니까?" "국가와 개인과도 같아서.. 사회에서의 경쟁처럼 국가도 경쟁으로 비교우위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은 합리적인 일인가?" 이번에는 뜸들이지 않고 서둘러 대답한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최대의 이익을 산출한다면.. 가장 가시적이고 효과적인 형태의 정치입니다." "그럼 살인은? 살인은 합리적인가?" 그녀는 자연스레 총통이 쥐고 있는 총에 눈이 갔다. 살인이라니. 설마 싶었다. 애시당초 사회와 개인은 다르지 않나? "군인이기에 필요하다면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실행해야 합니다." "훌륭해. 기회를 준 보람이 있군" 총통은 흐뭇하다는 듯 웃고, 그녀가 약간의 안심을 하자마자 중년은 팔소매를 걷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반동을 억누르는 힘줄에서는 금방이라도 붉은 피가 튀어나올 듯 날 서 있었다. 한 발이 아니다. 무려 연신 여섯 번 총을 쏴 그 총성은 온 벽에 부딪혀 그녀의 귀를 묵직하게 때렸다. 탄피 6개가 떨어지는 순간마다 솟아올랐던 피는 가깝게는 의자 아래부터 중년의 하얀 셔츠까지 선혈이 뻗어나갔다. 그녀는 먹먹해진 청각보다 빨간색으로 가득한 시각이 더 아려왔다. "복무신조를 말해보게." "우리는, 하나의 눈으로 세상을 향하는, 올곧은 천개의 창이다." 복무신조의 의의. 그건 복종이었다. 소리의 미세한 떨림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힘겹게 말했다. 총통은 그 앞에서 권총을 바닥에 내던지고 핏자국을 밟으며 걸상에 걸터앉았다. "참모장.. 참모장이면, 그래 5등 병사" "예. 각하" "질문을 다시 바꾸겠네. 전쟁은 정당한가?" "정전(正戰)을 논하신다면, 경우에 따라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말마따나 경우에 따라 다르다면, 살인도 마찬가지군 그래. 정당한 살인 말이야" 그녀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복면을 쓴 남자를 쏴죽인 게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괘변론자로 유명한 그의 말장난 때문에 수없이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생각한다면, 이곳은 끔찍한 지옥과 다르지 않아보였다. "나는, 정당한 전쟁이 없다고 생각하네. 모든 이야기는 궤변이야. 나도 알고 있네. 개인이 개인을 살해할 정당성도 없는데, 하물며 사회가 사회를 파괴할 명분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터무니 없어. 오히려 해결은 대화밖에 없지. 자네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전쟁은 기필코 일어나네. 왜?" 총통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차마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각하. 이해하기 경외로운 혜안이십니다." "미안하군. 내가 이상한 말을 많이 하는 편이지. 난 모든 싸움이 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네. 정당하느니.. 정당하지 않느니. 그런 건 현실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어.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은 명분 하에 일어났고, 그게 힘의 논리지. 내가 방금 게임에서 이긴 것 처럼. 단지 총알을 가진 내가 이겼을 뿐이네. 총알이 없는 상태에선 누구도 죽지 않았을 테지. 그러나 그렇다고 가진 자를 욕할 순 없지 않나? 그런 걸 이해해줄 만큼 세상은 균형적이지 않네." "내게 그런걸 잘 이해시켜준 학자들에게 크게 감탄했고 말이야. 지금은 비록 이렇게 널부러져 계시지만 말이지." 총통은 선혈이 흐르는 시체를 툭툭치고, 그녀의 앞에 서서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심금을 울리는 지론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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