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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llang|ko|大韓國}})은 1872년, [[조선]](朝鮮) 제26대 왕 [[고종]](高宗)이 '''조선국왕'''(朝鮮國王)의 칭호를 폐지한 후, '''대군주'''(大君主)를 칭하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국'''으로 개칭하면서 세워진 국가이다. 1871년, [[신미통상조약]](辛未通商條約)을 체결한 이후 [[전제군주정]](專制君主政)에 입각한 근대 국가 수립 운동을 표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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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청일전쟁]](淸日戰爭)으로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条約)을 체결함에 따라 [[청나라|청]]은 대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폐기한 후 [[국권수호조약]](國權修好條約)을 체결하여 동아시아 삼국간의 대등한 관계를 수립한 후, 이듬해의 고종은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통해 [[대한제국 (LB)|제정]]선언하게 되었다.
1274년, [[여몽구주정벌]](麗蒙九州征伐) 이후 [[한반도]]와 [[구주]]를 다스리기 시작한 [[고려]] 왕조는 이후 [[원나라]](元國)[[부마국]](駙馬國)으로 전락하면서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공민왕]](恭愍王)의 개혁 실패와 내우외환에 이어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을 기점으로 고려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이성계가 [[공양왕]](恭讓王)을 폐위시키면서 조선이 성립되었다.

2019년 1월 10일 (목) 09:46 기준 최신판

대한국
大韓國, 1873~1895
Great Korean Kingdom
이명 대한왕국 / 대조선국
大韓王國 / 大朝鮮國

국기

국장
역사 정보
신미개혁 실시 1871년 10월 13일
광무유신 실시 1872년 8월 29일
대한국제 반포 1873년 6월 27일
국권수호조약 체결 1894년 3월 18일
제정 선언 1895년 4월 11일
주요 정보
정부 형태 형식적 입헌군주정
국왕[1] 고종(1871~1895)
입법/사법 중추원[2]/대심원[3]
인구 약 18,745,000 명
통화 양(兩) → 원(圓)
세부 정보
  1. 고려국왕(高麗國王) 혹은 대군주(大君主)라고 불렸다.
  2. 中樞院, 중추부(中樞府)로 불리기도 했다.
  3. 大審院, 평심원(平審院)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전 국가 조선 조선
이후 국가 대한제국 (LB) 대한제국 (LB)

대한국(한국어: 大韓國)은 성리학(性理學)과 실학(實學)에 기반하여 통치한 한반도(韓半島)와 구주(九州)의 왕조로서, 고려(高麗) 말 신진 사대부(新進士大夫)의 지지를 등에 업어 무관 이성계(李成桂)가 건국하였고, 고종(高宗)이 선포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계승되었다.

1274년, 여몽구주정벌(麗蒙九州征伐) 이후 한반도구주를 다스리기 시작한 고려 왕조는 이후 원나라(元國)의 부마국(駙馬國)으로 전락하면서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공민왕(恭愍王)의 개혁 실패와 내우외환에 이어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을 기점으로 고려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이성계가 공양왕(恭讓王)을 폐위시키면서 조선이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