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역대 선거 (제3세계관): 두 판 사이의 차이

221번째 줄: 221번째 줄:
! style="width:19%; background:#f5f5f5; color:#005ba6" | 후보
! style="width:19%; background:#f5f5f5; color:#005ba6" | 후보
! style="background: white" | '''장면'''
! style="background: white" | '''장면'''
! style="background: white" | '''유진산'''
! style="background: white" | '''유진오'''
|-
|-
! style="background-color:#F5F5F5;color:#005aa6 "| 정당
! style="background-color:#F5F5F5;color:#005aa6 "| 정당
237번째 줄: 237번째 줄:
|}
|}
장면 대통령이 주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 개발 5개년'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던 때라 장면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다.  
장면 대통령이 주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 개발 5개년'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던 때라 장면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다.  
== 제10대 대통령 선거 ==
{| class="wikitable" style="border:2px solid #005ba6; float:middle; max-width:500px"
! colspan="4" style="width:500px; background:#005aa6; color:#fff" | {{글씨 크기|14|제10대 대통령 선거}}
|-
! colspan="4" style="background:#005ba6; color:#fff" | 선거 결과
|-
! style="width:19%; background:#f5f5f5; color:#005ba6" | 후보
! style="background: white" | '''김영삼'''
! style="background: white" | '''이철승'''
|-
! style="background-color:#F5F5F5;color:#005aa6 "| 정당
! style="background: white" | 민주당
! style="background: white" | 신민당
|-
! style="background-color:#F5F5F5;color:#005aa6 "| 득표율
! style="background: white" | 48.71%
! style="background: white" | 42.95%
|-
! colspan="10"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 #005aa6; color:white;" | 당선인
|-
! colspan="10"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 #000080; color:white;" | {{color|white|민주당}}<br />{{글씨 크기|15|'''김영삼'''}}
|-
|}
'''40대 기수론이 본격적으로 부각받기 시작한 선거.''' 본래 민주당에서는 유진오 후보가 대권에 재도전 할 예정이였으나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유진산이 당권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유진산은 당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고,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영삼에게 밀려 당권을 잃었다.
한편, 신민당 내부에서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여기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바로 이철승과 김대중이였다.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이철승이 승리하면서 이철승이 신민당 후보로 추대된다.
이렇게 김영삼 VS 이철승이라는 40대 후보들의 대결은 김영삼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 제11대 대통령 선거 ==
{| class="wikitable" style="border:2px solid #005ba6; float:middle; max-width:500px"
! colspan="4" style="width:500px; background:#005aa6; color:#fff" | {{글씨 크기|14|제11대 대통령 선거}}
|-
! colspan="4" style="background:#005ba6; color:#fff" | 선거 결과
|-
! style="width:19%; background:#f5f5f5; color:#005ba6" | 후보
! style="background: white" | '''김영삼'''
! style="background: white" | '''김대중'''
! style="background: white" | '''이민우'''
|-
! style="background-color:#F5F5F5;color:#005aa6 "| 정당
! style="background: white" | 민주당
! style="background: white" | 평화민주당
! style="background: white" | 신민당
|-
! style="background-color:#F5F5F5;color:#005aa6 "| 득표율
! style="background: white" | 46.28%
! style="background: white" | 40.35%
! style="background: white" | 11.27%
|-
! colspan="10"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 #005aa6; color:white;" | 당선인
|-
! colspan="10"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 #000080; color:white;" | {{color|white|민주당}}<br />{{글씨 크기|15|'''김영삼'''}}
|-
|}
이철승과 김대중은 신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 자리를 두고 서로 견제하는 관계였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이철승이 신민당-민주당 중도통합론을 제시하자 신민당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왔고, 결국 김대중은 김대중계, 반이철승계 인물들을 모아 신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호남 지역에만 머물러있는 지지도 탓에 김대중 후보는 낙선하고 만다.
한편, 주요 인물들이 다 빠져나간 신민당은 이민우 총재를 후보로 선출했고 11%대의 지지율을 얻어 낙선했다.


{{분류:제3세계관}}
{{분류:제3세계관}}

2024년 2월 4일 (일) 01:01 판

제1대 대통령 선거

제1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이승만 조봉암
정당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무소속
득표율 71.43% 28.57%
당선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이승만

제2대 대통령 선거

제2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이승만 조봉암
정당 자유당 진보당
득표율 77.23% 16.83%
당선인
자유당
이승만

제3대 대통령 선거

제3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이승만 전진한
정당 자유당 노농당
득표율 72.44% 19.82%
당선인
자유당
이승만

제4대 대통령 선거

제4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이승만 조병옥 전진한
정당 자유당 민주당 민족사회당
득표율 42.55% 39.27% 10.05%
당선인
자유당
이승만

자유당 분열의 시작. 본래 이승만은 3선을 끝으로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 하기로 입장을 밝혔으나, 이를 번복하고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한다. 이에 반발한 비당권파 인사들은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민주당의 조병옥 후보는 기존의 강성보수적 입장에서 중도보수적 방향으로 선회해 중도층들의 민심을 공략하였다.

한편 기존의 제1야당 역할을 맡던 진보-혁신계열의 정당은 민주당의 등장으로 인해 힘을 잃고 제2야당 포지션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실 진보-혁신 계열의 정당은 반공주의가 만연하던 당시 시대상의 한계로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반이승만 성향의 지지자들의 견제 용도로 비판적 지지를 받는 입장이였는데, 민주당의 등장으로 반이승만 성향의 지지자들이 빠져나가게 된것. 그래도 전진한 후보가 10%를 겨우 넘기며 체면치레는 했다.

결과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4선을 하는데 성공하지만, 고작 3%의 아슬아슬한 득표차를 내게 되면서 자유당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제5대 대통령 선거

제5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이기붕
정당 자유당
득표율 93.28%
당선인
자유당
이기붕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중 사망하게 되면서, 이기붕 자유당 총재가 간접선거를 통해 제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제6대 대통령 선거

제6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조병옥 이기붕
정당 민주당 자유당
득표율 47.65% 45.23%
당선인
민주당
조병옥

첫 정권교체.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자유당 이기붕 후보를 누르고 47.65%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루게 된다. 이로서 20년 동안 지속된 이승만 정권은 끝이 나게 되었다.

하지만 조병옥 후보와 이기붕 후보와의 표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는데, 이는 20년 동안 지속된 이승만 대통령의 우상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기붕 후보는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적은 표차이로 낙선하면서 어느정도 선방하였고, 차기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선거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양아들인 이강석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하였고, 구심점을 잃은 자유당은 그대로 해산하였다.

한편, 진보-혁신계열 후보인 통일민중당의 서민호 후보는 5%대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민주당에게 지지세를 빼앗겼음을 증명했다.

제7대 대통령 선거

제7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조병옥 장택상
정당 민주당 재건자유당
득표율 59.37% 40.63%
당선인
민주당
조병옥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구)자유당계 인사들은 재건자유당을 창당한다. 재건자유당을 장택상을 후보로 내세워 과거 이승만 정부 시절의 향수를 일으켜 지지를 얻으려고 했으나, 과거 자유당에 비해 위상이 매우 낮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꽤 큰 표차로 낙선하게 된다.

제8대 대통령 선거

제8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장면 윤보선
정당 신민당 민주당
득표율 48.76% 45.94%
당선인
신민당
장면

민주당 분열의 시작. 조병옥의 대통령 당선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져 당권 다툼을 하렸는데, 조병옥 대통령은 계속해서 신파 계옐의 인물들을 무시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구파와 신파의 갈등이 심화된것은 민주당의 후보 선출과정으로, 조병옥 대통령은 3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단독적으로 윤보선 서울시장을 민주당 후보로 추대한다. 이에 신파 정치인들은 격렬하게 반발하였으며, 결국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민당을 창당하게 되면서 민주당은 정권 교체 10년만에 두 갈래로 분열되고 만다.

신민당은 장면 전 총리를 후보로 선출하였는데, 장면 후보는 '경제 개발 5개년'을 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것이 호응을 얻어 민주당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에 성공한다.

제9대 대통령 선거

제9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장면 유진오
정당 신민당 민주당
득표율 51.03% 46.74%
당선인
신민당
장면

장면 대통령이 주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 개발 5개년'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던 때라 장면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다.

제10대 대통령 선거

제10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김영삼 이철승
정당 민주당 신민당
득표율 48.71% 42.95%
당선인
민주당
김영삼

40대 기수론이 본격적으로 부각받기 시작한 선거. 본래 민주당에서는 유진오 후보가 대권에 재도전 할 예정이였으나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유진산이 당권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유진산은 당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고,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영삼에게 밀려 당권을 잃었다.

한편, 신민당 내부에서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여기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바로 이철승과 김대중이였다.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이철승이 승리하면서 이철승이 신민당 후보로 추대된다.

이렇게 김영삼 VS 이철승이라는 40대 후보들의 대결은 김영삼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제11대 대통령 선거

제11대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후보 김영삼 김대중 이민우
정당 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당
득표율 46.28% 40.35% 11.27%
당선인
민주당
김영삼

이철승과 김대중은 신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 자리를 두고 서로 견제하는 관계였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이철승이 신민당-민주당 중도통합론을 제시하자 신민당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왔고, 결국 김대중은 김대중계, 반이철승계 인물들을 모아 신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호남 지역에만 머물러있는 지지도 탓에 김대중 후보는 낙선하고 만다.

한편, 주요 인물들이 다 빠져나간 신민당은 이민우 총재를 후보로 선출했고 11%대의 지지율을 얻어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