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도 제도 내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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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착 초기 ==
== 정착 초기 ==
1603년 자바섬 북부 반탄에 첫 네덜란드 무역거점이 설립된 이후, 1611년 바타비아에 잇달아 건설되었다. 동인도회사 본사는 1610
1603년 자바섬 북부 반탄에 첫 네덜란드 무역거점이 설립된 이후, 1611년 바타비아에 잇달아 건설되었다. 동인도회사 본사는 1610
동인도 회사는 1610년부터 1619년까지 암본섬에 위치하였다. 암본섬이 향신료 생산 지역 중앙에 위치했지만, 아시아 무역로와 아프리카부터 일본에 이르는 다른 동인도 회사의 활동과 거리가 멀었다. 이에 본부를 이전하기 위해 군도의 서쪽에 위치할 장소를 물색하였다. 말라카 해협은 전략적인 가치는 높았으나 포르투갈의 존재는 위협이 되었고 반텐은 강력한 현지 왕국의 통제와 중국 및 영국 무역업자들의 경쟁으로 인해 어려웠다.
1604년, 말루쿠로 가는 두 번째 영국 동인도 회사 항해와 1611년과 1617년 사이에 군도를 가로지르는 교역소의 설립은 네덜란드의 동인도 무역 독점에 대한 야망이 위협 받게되면서 향신료에 대한 영국-네덜란드 간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향신료 무역에 대한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의 외교적 합의와 협력은 네덜란드 정부에 대한 음모로 인해 10명의 영국인들이 고문당하고 살해된 암보이나 대학살로 끝이 났고, 이후 영국인들은 동인도 제도에서 활동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2021년 1월 29일 (금) 11:55 기준 최신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네덜란드어: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는 네덜란드에서 인도, 동남아시아 지역으로의 경제적 진출을 위해 여러 무역회사를 통합하여 1602년 3월 20일에 설립된 칙허 회사로서, 현재 문서는 동인도 제도 내에서의 이야기를 다룬다.

배경

1596년 누산타라 탐험에서 선원 절반과 배를 잃었지만 네덜란드로 귀환하면서 가져온 향신료의 이익은 동인도 제도 개척에 대한 열망을 불러왔다. 동인도 향신료 무역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경쟁국이 네덜란드의 이익을 가져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는 각종 무역회사들을 합병하여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로 통합하였다. 1602년 네덜란드로부터 아시아의 향신료 무역에서 전쟁수행, 조약협상, 식민 정착지 건설, 화폐 주조 , 죄수에 대한 판결권과 처형권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정착 초기

1603년 자바섬 북부 반탄에 첫 네덜란드 무역거점이 설립된 이후, 1611년 바타비아에 잇달아 건설되었다. 동인도회사 본사는 1610

동인도 회사는 1610년부터 1619년까지 암본섬에 위치하였다. 암본섬이 향신료 생산 지역 중앙에 위치했지만, 아시아 무역로와 아프리카부터 일본에 이르는 다른 동인도 회사의 활동과 거리가 멀었다. 이에 본부를 이전하기 위해 군도의 서쪽에 위치할 장소를 물색하였다. 말라카 해협은 전략적인 가치는 높았으나 포르투갈의 존재는 위협이 되었고 반텐은 강력한 현지 왕국의 통제와 중국 및 영국 무역업자들의 경쟁으로 인해 어려웠다.

1604년, 말루쿠로 가는 두 번째 영국 동인도 회사 항해와 1611년과 1617년 사이에 군도를 가로지르는 교역소의 설립은 네덜란드의 동인도 무역 독점에 대한 야망이 위협 받게되면서 향신료에 대한 영국-네덜란드 간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향신료 무역에 대한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의 외교적 합의와 협력은 네덜란드 정부에 대한 음모로 인해 10명의 영국인들이 고문당하고 살해된 암보이나 대학살로 끝이 났고, 이후 영국인들은 동인도 제도에서 활동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