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그눔(, Regnum)신교를 믿는 유일한 국가로 레그눔 섬에 위치해있다. 레그눔에는 신교의 여러파벌이 함께 연합하여 생존해 있으며, 주로 마교도 국가들의 상선을 약탈하여 그들의 군대를 키우는 중이다.

레그눔 신성 연합 왕국

Kingdom of United Holy of Regnum
국기 국장
수도 상타리움
정치
공용어 신교어
렉스 레그눔 15세
역사
수보르디노 왕조의 건국 416년
 • 건국 558년
 • 레그눔 1세 즉위 581년
 • 레그눔 2세 즉위 598년
 • 레그눔 3세 즉위 634년
 • 레그눔 4세 즉위 651년
 • 레그눔 5세 즉위 674년
 • 레그눔 6세 즉위 697년
 • 레그눔 7세 즉위 711년
 • 레그눔 8세 즉위 737년
 • 레그눔 9세 즉위 741년
인구
901년 어림 4,370,000명
경제
통화 레눔

역사

레그눔의 발견

PR.555년, 상타리움 레그눔의 탐험대는 레그눔 섬을 발견한다. 상타리움 레그눔은 당시 시누스 왕국의 속국이였던 수보르디노 왕조의 탐험가였고, 자연스럽게 레그눔 섬수보르디노 왕조의 영토가 된다. 허나 수보르디노 왕조는 속국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레그눔 섬의 발견을 시누스 왕국에게 알리지 않았다.

국가의 이주

레그눔 섬이 발견되고 개척자가 상타리움을 개척하고 건설한다. 이후 수보르디노 왕조메리디아누스에 재건중이던 바치카누스 성당레그눔 섬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PR.572년에 상타리움바치카누스가 설립된다.

PR.558년에는 수보르디노 왕조의 국왕을 제외하고 모든 왕실구성원들이 레그눔 섬으로 이주하여 상타리움을 개척하는데 동참하였다. 결국 PR.574년에는 상타리움 궁이 완공되었다.

600년대

PR.581년, 수보르디노 왕조트란스미 국왕이 서거한다. 그후 수보르디노 팔마 왕자레그눔의 초대 렉스, 레그눔 1세로 즉위한다. 그러나 그는 PR.598년, 서거하여 17년간 통치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인 수보르디노 라미 왕자레그눔 2세로 즉위하였고, PR.613년에 완공된 서쪽 도시의 이름을 팔마로 명한다. PR.617년, 레그눔 2세레그눔 섬을 발견한 탐험가, 상타리움 레그눔을 귀족으로 임명하고 상타리움 가문을 귀족가문으로 선언한다. 상타리움 가문의 수장은 상타리움 레그눔의 손자인 상타리움 네포스 후작이 된다.

레그눔 2세는 634년에 서거하고, 레그눔 3세가 즉위한다. 레그눔 3세는 PR.638년, 디아스 교디누스 교를 모두 국교로 인정한다. 이에 디아스 교디누스 교의 반발이 있었으나, 레그눔 3세는 반대파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반발을 누그러뜨린다. 이후 PR.645년에는 디아스 교디누스 교에게 기사단을 설립할 권리를 수여한다. 이에 PR.647년, 디아스 교는 중장기병이 중심인 데이타스 기사단을 창설하고, PR.649년, 디누스 교는 경기병이 중심인 테오타스 기사단을 창설한다.

PR.651년, 레그눔 3세가 독살당한다. 이후 즉위한 레그눔 4세는 암살범을 찾기위해 많은 귀족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암살범은 찾지 못하였고, 수 많고 죄없는 귀족들만 피해를 받는다. 이후 레그눔 4세는 이 사건을 만회하기 위해 동부에 레그눔 2세의 이름을 붙인 라미를 건설한다. 그리고 PR.671년에는 북부에 처형되었던 상타리움 가문상타리움 베르베네 백작의 이름을 딴 베르베네를 건설을 개시한다. 하지만 PR.674년, 그가 죽자 도시 건설은 잠시 주춤한다.

PR.674년, 레그눔 5세가 즉위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귀족들의 권력이 강했고, 때문에 레그눔 5세의 세력은 무척이나 약했다. 또한 PR.681년에는 디아스 교가 정치에 간섭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PR.684년에 베르베네가 완공된다.

PR.697년, 레그눔 6세가 즉위한다. 레그눔 6세레그눔 5세와 마찬가지로 권력이 약했고, 몸도 약했다. 결국 PR.711년, 서거한다.

700년대

PR.711년, 레그눔 7세가 즉위한다. 그는 디누스 교테오타스 기사단의 기사단장과 결혼동맹을 맺은 상타리움 가문을 이용하여 궁에서 귀족들과 디아스 교를 몰아낸다. 이후 그는 PR.717년, 군대를 이용하여 권력을 지니고 있던 상타리움 가문디아스 교를 궁에서 몰아낸다. PR.723년, 레그눔 7세는 해군을 창설하고 해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후 PR.731년, 레그눔 7세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해군의 라트로 가문은 권력을 잡기 시작한다.

PR.737년, 레그눔 8세가 즉위하였다. 그가 즉위할때에는 라트로 가문과 해군파들의 권력이 강해져서 왕권은 무척이나 악화되었었다. 이에 레그눔 8세는 개혁을 하나도 하지 못한체 PR.741년에 의문사 당한다.

레그눔 8세가 사망한뒤 라트로 가문프로스크립티오 황태자를 추방하고, 포스투무스 왕자레그눔 9세로 즉위시킨다. 레그눔 9세도 해군파의 힘에 짓눌려 사치와 향략만 쫒았고, 때문에 해군파는 렉스의 방해없이 여러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를 본 레그눔 9세의 황태자, 데둑티오 황태자는 왕궁을 나와 힘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이후 해군파는 라트룸 가문의 화력파와 벨로치타스 가문의 기동파로 나뉘어져 분열이 이루어졌다.

PR.766년, 레그눔 9세가 서거한다. 그러나 화력파와 기동파는 누구를 렉스로 세울지에 대해 의견다툼이 발생하였고, 결국 궁내에서는 전쟁이 벌어진다. 그러자 데둑티오 전 황태자를 따르는 데쿠스 가문의 군대는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내분은 멈추지 않았고, 내전의 양상으로 흘러간다. PR.768년, 데둑티오 전 황태자상타리움 전체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였고, 이윽고 레그눔 10세로 즉위한다. 그러자 화력파와 기동파들도 자신들의 왕을 세운다. 이후 내전은 고착화되었고, 레그눔 10세는 PR.780년, 전사한다.

레그눔 10세가 전사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력파와 기동파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으나, 이들은 서로 싸우느라 힘을 뺐고, 레그눔 11세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자 속절없이 무너진다. 결국 PR.781년, 15년간의 내전은 해군이 궁에서 쫒겨나면서 끝이 나게된다. 이후 레그눔 11세라트로 가문라트로 린테르공작작위를 박탈하고 자작작위로 강등시킨다. 또한 데쿠스 가문데쿠스 레포노에게 공작의 작위와 상타리움 주변의 영지를 수여한다. 이후 레그눔 11세는 내전의 피해와 해군의 부정부패에 의한 피해를 복구하는데 투자했다.

800년대

PR.811년, 레그눔 12세가 즉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