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라

에르난드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2월 17일 (금) 02:11 판 (오탈자, 비문 수정)
레이라

레이라는 오셸 대동굴의 뱀파이어 로드이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여인이다.

레이라의 탄생과 성장

레이라는 아르논도 대륙의 서남쪽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태생적으로 두 눈이 없었으며 당연히 전맹이었다. 그녀는 여섯 살 즈음 부모에게서 버려졌고, 제국 서남쪽에 있는 지타 사막에 수은을 사러 가던 새 수인들에게 거두어져 양육되었다.

새 수인들은 레이라에게 한 쌍의 연남색 의안을 선물했다. 레이라는 비록 보이진 않지만 스스로에게도 드디어 눈이 생겼다며 기뻐했고 새 수인들을 참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분들이라고 언급하며, 그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새 수인들에게서 새 수인들이 믿는 고대 토테미즘 신앙을 신봉하게 되었으며, 새 수인들에게서 전해져 오는 기술들과 비전 마법을 여럿 익히는 데 성공하였다. 레이라는 성인이 된 다음 새 수인들의 마을을 떠났고, 아르논도 대륙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새 수인들에게서 배운 노래 실력을 뽐내며 버스킹을 하였고, 버스킹을 통해 얻은 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어느 날 루포카 고원 근방의 절벽 지대를 지나다 발을 헛디뎌 절벽 밑으로 굴러떨어졌고, 몇백 미터를 내내 떨어지며 이제는 정말 자기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라는 어느 순간 자신이 더는 떨어지지 않은 채 하늘에 체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달았다. 그 때 레이라는 여태껏 들어 본 목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는 스스로를 모든 새들의 조상이라고 소개하였으며, 편하게 자신을 조상님이라고 부르라고 시켰다. 레이라는 '저는 일단 인간이니까 당신은 제 조상님은 아니겠네요'라고 말하면서도 옛날 새 수인들의 신앙에서 신봉했던 대상이 그 목소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결국 레이라는 새들의 조상에게 가호를 받는 화신이 된다.[1]

레이라의 과업과 시련

새들의 조상은 레이라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제안의 내용은 이러했다. 자신이 내리는 과업을 완수하면 레이라에게 아주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천리안을 선물하겠다는 것이었다. 레이라는 평생을 살아 오면서 내내 두 눈을 가지고 싶어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과업을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새들의 조상은 먼저 레이라에게 자신의 마력을 빌려주겠다고 말했으며, 레이라에게 오셸 대동굴로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새들의 조상은 오셸 대동굴에 서식하는 야생 박쥐 만 마리의 심장을 섭취하라고 레이라에게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됐다. 레이라는 주저하면서도 결국 제안을 승낙했다. 그녀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소리를 이용하는 마법과 새들의 조상에게서 얻은 축복을 최대한 활용하게 되었고, 더 예리한 후각을 후천척으로 학습한다.

야생 박쥐 만 마리를 잡은 레이라는 다음 과업을 전해 듣는다. 이번에는 뱀파이어의 심장 백 개를 섭취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레이라는 이때 명령을 주저한다. 박쥐는 그래도 인격이 없는 동물이었는데 뱀파이어는 한 명 한 명이 인격이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뱀파이어들은 강력하기 때문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조상은 레이라에게 하기 싫으면 포기하라고 말했고, 레이라는 결국 오셸 대동굴 내의 뱀파이어들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그들 여럿을 레이라 혼자 제압한다는 건 아무리 레이라가 강한 축복을 받아도 말이 잘 안 되는 얘기였기 때문에, 레이라는 뱀파이어들을 하루에 한 명씩 암살하기로 하는 계획을 세웠다.

뱀파이어 100명의 심장을 먹어치운 레이라는 조상에게서 마지막 명령을 받는다. 조상은 레이라에게 뱀파이어 로드의 심장 하나를 먹어치우라고 했다. 레이라는 그것만큼은 시도하다가 자신이 먼저 죽게 될 것이라며 조상에게 못 한다고 거절했지만 여태껏 해 온 일들을 무로 돌릴 수 없었기에 결국 명을 받들고 오셸 대동굴의 뱀파이어들을 이끄는 뱀파이어 로드의 성에 잠입한다.

하지만 뱀파이어 로드는 레이라의 존재를 이미 진작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일부러 그녀가 자신의 백성을 죽이고 다니는 것을 막지 않았다. 레이라는 오셸 대동굴의 뱀파이어 로드를 상대로 열 합을 견뎌 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

뱀파이어 로드는 레이라의 어깨를 강하게 깨물었다. 레이라를 후천적인 뱀파이어로 감염시켜 그녀를 뱀파이어 로드의 정실부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레이라는 뱀파이어로 완전히 변하기 전 로드가 방심한 사이에 손을 뻗어 로드의 심장을 뽑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대로 레이라는 로드의 심장을 이빨로 씹어넘겼고, 심장을 물어뜯긴 로드는 결국 사망에 이른다. 이후 뱀파이어 로드를 죽인 뱀파이어는 후대 로드가 된다는 오셸 대동굴 뱀파이어들의 전승을 따라, 레이라는 뱀파이어들의 로드가 된다.

군주가 된 이후의 행적

하지만 동시에 새들의 조상은 레이라를 뱀파이어로 변했다는 이유로 보상을 주지 않고 매몰차게 버린다.

버림받은 레이라는 내가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 가며 역겨운 박쥐와 더러운 뱀파이어들의 심장을 씹어 삼켰냐며 전에 없이 분노했고 오셸 대동굴의 박쥐들을 시켜 밤마다 아르논도 대륙의 새들을 습격하여 잡아먹으라고 명령하였다. 결국 양계장 등지에서 박쥐들의 습격을 받은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레이라 때문에 간접적으로 사업을 말아먹게 된 양계장 점주들을 중심으로 박쥐 타도를 위해 양계장 길드가 이 때 결성되었으며, 그들은 용병들을 고용해 박쥐들의 발원지가 오셸 대동굴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그들은 뱀파이어 로드 레이라가 범인이라는 진실에 도달했으며 그녀를 죽이기 위해 용병들을 오셸 대동굴에 보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레이라는 웬 사람들이 오셸 대동굴 깊은 곳까지 찾아와 자신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고, 상황을 들어 보기 위해 오히려 오셸 대동굴 심층부에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용병들을 구출하여 정식으로 자신의 성에 초청한다.

레이라는 자신의 기행으로 인해 많은 양계장 점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점을 용병들로부터 전해 듣게 되고, 본심은 선한 사람이었던 레이라는 양계장 사업을 방해할 생각이 아니었다며 매우 미안해한다. 그리고는 양계장 길드에게 향후 10년간 일정량의 구아노를 제공하겠다고 하며, 그렇게 레이라와 양계장 길드의 갈등은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2]

한편 용병들은 레이라에 대한 이야기를 아르논도 대륙 전역에 전했다. 오셸 대동굴 깊은 곳에는 뱀파이어들의 여왕이 사는데, 그 여왕은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뱀파이어들이 가지고 있는 새빨갛고 살벌한 눈 대신 연남색 유리로 이루어진 두 눈을 가지고 있는데, 맹인이기는 하지만 뱀파이어 로드답게 평범한 뱀파이어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 또한 전해졌다.

오셸 대동굴의 뱀파이어들은 이전까지 사람들을 해치는 사악한 존재로 기억되어 왔지만 레이라가 집권한 이후 오셸의 뱀파이어들은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하게 되었고 인간들의 문화 또한 레이라의 주도 하에 많은 부분 유입되었다.

레이라는 새들에 대한 원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애초에 새 수인들이 자신이 어렸을 적 자신을 키워 주고 길러 줬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결국 레이라는 지난 원한들 모두를 훌훌 다 털어버렸고, 인간으로 태어나 새 수인들에게 길러졌으며 지금은 뱀파이어들의 왕이 된 운명이 다 다이내믹한 자신의 팔자겠거니 하고 납득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성을 방문한 한 예술가에게 레이라는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나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말이다. 내가 만들고 싶지만 당신이 보다시피 내가 눈이 안 보이니까 대충 내 설명 듣고 예쁘게 조각상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레이라는 왼쪽에는 새의 날개, 오른쪽에는 박쥐의 날개를 달고 있는 인간의 형상을 조각하라고 요청했고 조각가는 그대로 멋지게 조각상을 완성해냈다. 이후 그 조각상의 형상은 뱀파이어 로드 레이라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굳어진다.

한편 로드 레이라는 가끔 인간 시절에 아르논도 대륙 곳곳을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버스킹을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인간 가희들을 많이 초청하고 요즘은 어떤 노래가 유행인지 알려 달라며 조르기도 한다. 물론 본인도 가희들에게 연습한 노래들을 들려 준다. 아직도 새 수인들에게서 배운 노래 실력이 죽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름난 가희들도 레이라의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고 진심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3] 이렇듯 여전히 음악에 아직도 열정을 가지고 있던 레이라는 세계의 음악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로드 레이라가 집권한 이후에도 스베즈노 출신 엘프 잔당들은 오셸 대동굴 내에서 인간을 습격하는 일이 잦았다. 로드 레이라로서는 인간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마당에 엘프들이 인간을 습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전까지는 오셸 대동굴 안에서 엘프들이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않고 묵인해 주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놓아둘 수만은 없었다. 때문에 레이라는 먼저 엘프들을 찾아가 정중히 인간들을 공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물론 레이라가 그렇게 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엘프들은 고려해 보겠다고만 말하고 다음번에 오셸 대동굴로 들어오는 어린 인간 아이를 죽이려고 했다. 레이라는 늦기 전에 인간 아이를 구해내는 데 성공하고 엘프들에게 자신의 부탁을 무시하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엘프들은 다음번에는 확실히 안 그러겠다고 말하며 레이라는 마지막 기회라고 살벌한 눈빛을 빛내며 경고한다.

그러나 엘프들은 기어코 인간을 기습하여 죽이는 일을 벌였고 레이라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엘프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자신에게 덤벼 오는 엘프 두 명을 본보기로 순식간에 찢어버린다. 이후 엘프들은 더 이상 오셸 대동굴에서 살지 못하게 되었음을 자각하고 몇천 년간 틀어박혀 있던 오셸 대동굴을 떠나 반제국 비밀단체에 가입한다.

레이라의 업적

로드 레이라는 자신이 예전에 새 수인들로부터 배웠으며, 지금까지도 차마 잊지 못하던 떠돌이 가수의 생활에 대한 미련을 결국 놓을 수 없었다. 레이라는 결국 젊고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오셸 뱀파이어, 스피아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스피아는 이전에도 노래를 잘 부른다는 이유로 레이라에게 특별히 더 애정을 받은 뱀파이어였고 레이라는 기꺼이 새 수인들에게 전수받은 보컬 노하우를 그대로 스피아에게 알려 주었다. 일종의 보컬 트레이닝인 셈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레이라가 자신의 노래가 듣고 싶으신 건가 싶어 기쁜 마음으로 로드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레이라는 스피아가 여태껏 봤던 다른 어떤 때보다 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레이라는 스피아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은 아무래도 예전에 인간이었을 적 노래를 부르며 세상을 유랑했던 날을 잊지 못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레이라는 오셸 뱀파이어들의 로드였고, 대동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몸이었다.

스피아는 레이라가 다음에 내뱉은 말에 한껏 움츠러들고 말았다. '요즘 바깥 세상이 예전보다 더 복잡한 정치 상황 때문에 많이 혼란스럽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음악을 아직도 사랑하고, 음악을 하며 세상을 떠돌고 싶은데 나는 그럴 수 없는 몸이다.' '그러니까 스피아가 나 대신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작곡한 노래들을 불러 달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셸 대동굴의 깊은 곳에 노래를 사랑했던 뱀파이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 달라.' '그리고 정치라는 이름의 폭력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네 노래로 조금이나마 위로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레이라가 내뱉은 말들은 참 어려운 부탁이었다.

스피아는 레이라의 부탁을 받고 오셸 대동굴을 나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했다.

스피아가 가수로써 쌓아올린 인기는 아르논도 대륙 전역에 퍼졌다. 그리고 스피아는 아르논도의 별이라는 별명을 자신의 팬들로부터 부여받게 된다. 오셸 뱀파이어라는 스피아의 종족 특성 때문에 주로 별들이 빛나는 밤에 가수 활동을 했던 것이 이 별명이 생기는 데 큰 일조를 하였다. 스피아는 처음에는 인기를 얻는 데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피아가 고생한 만큼 그녀의 추종자도 늘어났다. 스피아는 레이라에게 항상 충성했으며 고향이었던 오셸 대동굴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스피아의 명성을 동경하고 그녀처럼 성공한 가수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어디론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오셸 대동굴이었다. 스피아는 가수 생활 도중 로드 레이라로부터 직접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말을 했고, 레이라는 노래를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자신이 직접 노래 부르는 법을 지도해주겠다고 스피아를 통해 말한 바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스피아의 말만을 믿고 7대 오지라는 악명으로도 유명한 오셸 대동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레이라는 예상 외로 크게 당황한다. 물론 자신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 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또한 레이라는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은 교류를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녀는 뱀파이어 로드였고, 오셸 대동굴을 다스리느라 휴일이 아닌 날에는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로드 레이라는 그녀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그저 매몰차게 내쳐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레이라는 자신이 예전에 길러졌던 새 수인들의 마을에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물론 그녀의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보좌관이 그녀가 말하는 바를 대필해준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혹시 당신들의 기록 속에 연남색 의안을 낀 인간을 길러 줬다는 이야기가 있는지, 자신의 이름 레이라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연을 맺었던 때로부터 시간이 백 년은 지난 것 같긴 하지만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지를 정중히 물어보는 편지였다.

레이라를 길러 준 새 수인들은 수명을 다했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새 수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새 수인들은 부탁이 무엇인지를 묻는 편지를 레이라에게 보냈으며, 레이라는 새 수인들의 노래 실력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가수 지망생들의 보컬 트레이닝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물론 보수는 원하는 방식으로 지급하겠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새 수인들 몇 명은 그 길로 뱀파이어 로드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오셸 대동굴로 향한다. 그들은 종족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 예비 가수들을 엄하게 가르쳤고, 레이라와도 음악적 교류를 꾸준히 이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셸 대동굴에는 레이라에게 익숙한 사람 한 명과 생판 처음 만나는 사람들 두 명이 찾아온다. 그 사람들은 다름아닌 일자회의 입하대성 엘프 나탈리와 입추대성 인간 지젤이었다.

레이라는 나탈리의 이름을 듣자마자 살기를 뿜는다. 그리고는 말한다. 내 말을 세 번이나 무시하고, 내가 다스리는 동굴에서 뻔뻔스럽게 살인을 한 것도 모자라, 내게 대적하려고 했던 열세 명의 엘프들을 내가 어떻게 잊겠냐는 말이었다. 그 중에서도 입이 특히나도 더 더러웠던 나탈리라는 엘프를 내가 잊어버렸을 것 같냐고 말하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결국 오랜만에 나탈리레이라는 다시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매우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나탈리는 레이라에게 먼저 말했다. 우선 자신이 오셸에서 오랜 기간 머물던 때 오셸을 방문했던 인간들에게 무자비한 폭력과 테러를 가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것이었다.

로드 레이라는 사죄하는 나탈리에게 일침하였다. 사과는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며, 나를 제외하고는 네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나는 네 사과를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탈리는 실례를 끼쳐 미안하다고 하고 그대로 오셸을 벗어났다. 그리고 쭈그린 채로 동굴 벽을 바라보며, 평소의 살갑고 밝던 모습과는 다르게, 죄책감을 못 이긴 나머지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로 펑펑 울었다.

레이라는 나탈리라는 변수를 제외한다면 일자회라는 단체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박애주의에 입각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다니고, 번듯한 일까지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선해 주는 그들을 레이라가 싫어할 리 없었다. 지젤과 레이라는 그곳에서 즉석으로 친선 관계를 맺었다.

레이라와 스피아 등등 오셸 출신 음악가들의 노래들은 히사브노 대륙의 마공학 축음기에 고스란히 담겼고, 일자회는 세리온을 비롯한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 오셸의 음악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 대가로 오셸 측에서는 비용을 받지 않고 자선 콘서트를 다니거나, 오셸 대동굴 내에 일자회의 사회복지관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허가해 주었다.

오셸 내 복지관 건설에 대해서 로드 레이라는 지젤에게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오셸 대동굴은 불빛이 없으면 매우 어두운 곳이며,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일반적인 복지관이 들어서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로드 레이라 자신처럼 아예 전맹인 시각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생활 시설, 이를테면 맹학교 같은 시설을 개설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자신이 직접 사용해 보고 검수할 테니 검수 문제는 신경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덤이었다.

지젤은 레이라의 의견을 수용했고, 그렇게 오셸 대동굴 내부에는 일자회 소속 시각장애인 생활 시설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레이라는 시각장애인 생활 시설 이용자들과 맹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기도 했으며, 장기적으로는 시각장애인들이 학습 끝에 숙련자가 되고 나중에 오셸로 노래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보컬 선생님으로 성장하는 선순환이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음악적으로 훈련된 인재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선생이 되어줄 사람도 더 많아졌다는 이야기가 되었으며, 음악 선생들은 일자회로부터 전해들은 타 대륙의 음악 스타일도 스펀지처럼 흡수해 가기 시작했다.

이런 문화 융합의 결과물로 새로운 음악 장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새 수인, 오셸 뱀파이어, 그리고 종족 불문 시각장애인들까지 다양한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음악 선생들은 아이돌, 뮤지컬 배우, 합창단 등등 새로운 형태의 '스타' 들을 오셸 대동굴의 깊은 곳에서 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탈리와의 관계

나탈리와 레이라는 악연으로 얽혀 있다. 이것은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이다. 레이라가 나탈리와 그녀의 엘프 동료들을 오셸에서 내쫓은 다음, 나탈리는 동료들과 떨어져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간들과 레이라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먹어 왔다. 그러나 나탈리는 몇천 년이라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동굴에 있다가 밖으로 나간 다음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빛에 노출된 이후 시신경에 큰 손상을 입는다. 물론 나탈리는 엘프였고 회복 마법을 통해 바로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 시신경의 파괴를 막았다. 하지만 마법의 부작용과 시신경 쇼크의 여파로 인해 일 주일 동안은 실명 상태에 걸려 있어야 했다. 세상을 볼 수 없게 된 나탈리는 막막해하며 앞으로 일 주일은 쫄쫄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아무것도 못 보게 된 사이에 자신이 험한 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여러모로 더 불안함만이 커졌다. 그런 나탈리를 구해 주고 보살펴 준 존재들이 바로 지나가던 인간들이었다. 나탈리는 당시 아무것도 못 봤기 때문에 자신을 구한 존재들이 자신과 같은 엘프들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들에게서 인간들의 향이 어렴풋이 나긴 했지만, 인간이 자신에게 그리도 친절할 수 있다는 건 애초에 머릿속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이 회복되고 난 다음 나탈리는 진실을 깨닫고 큰 딜레마에 빠졌다. 그들은 자신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리도 혐오했던 인간이었다.

그들을 그냥 살려보내야 할지 아니면 스베즈노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할지를 한참 고민하던 나탈리는, 이내 자신이 생명의 은인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를 깨닫고 크게 절망하여 엄청난 자기혐오에 빠지고 만다.

자신들의 가족과 고향을 부순 존재들은 이미 몇천 년 전에 죽고 없는데 나는 왜 이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나 잔인한 짓을 하려고 했는지 스스로를 무척이나 책망했다.

그때부터 나탈리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욕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도 않았다. 선한 엘프 의사 나탈리는 그때부터 다시 태어났다. 그녀는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히사브노 대륙까지 건너가게 된 것이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나탈리는 항상 엘프들 때문에 피해를 보았던 인간들에게 사죄하고 싶어했다. 오셸 대동굴에서 뱀파이어 로드 레이라에게 폐를 끼친 것 또한 언젠가는 직접 찾아가서 꼭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자회 일이 바쁘기도 하고 아르논도 대륙이 너무 멀기도 해서, 그리고 레이라를 다시 만나기가 부끄러워서 그 일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일자회의 어느 휴일이었다.

나탈리는 일자회의 또 다른 창시자이자 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지젤로부터 어떤 소식을 하나 듣게 된다. 자신이 아르논도 대륙 동부 지방에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그 근처에 있는 오셸 대동굴이 아르논도 대륙의 음악 성지가 되어가고 있으며, 자신은 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인사인 만큼 문화 교류를 위해서라도 오셸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지젤은 나탈리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고, 나탈리는 결국 동행을 결정했다.

두 사람이 오셸에 방문한 것은 그런 맥락이었다.

  1. 새들의 조상은 26신과는 관련이 없는 독자적인 신격이며 멀리 히사브노 대륙에 기거하고 있다.
  2. 박쥐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체결한 구아노 거래 조약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평소보다 열심히 배변 활동을 해야 했다.
  3. 레이라는 가끔 그냥 오셸 대동굴 밖으로 나가서 순회 공연 한 번 거하게 때린 다음에 오셸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일단은 본인이 뱀파이어 로드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면 안 됐고, 그래서 그게 좀 아쉽다는 듯 가끔 입을 삐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