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제국의 기원
395년 제위 분할과 476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폐위 이래 로마인들에게 제국(Basileia)이라 불리우는 로마 제국 (동방)은 3세기의 위기 이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도입한 사두정치(Tetrarchy)에서 기원한다. 이 통치 체제는 제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누어 각각을 통치하는 방식이었다. 구체적으로, 2명의 정제(아우구스투스)가 각각 1명의 부제를 두어 총 4명이 제국을 공동으로 다스리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 특히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이르러 사두정치는 폐지되었다. 대신 후임 황제들은 왕조 확립을 통한 세습 체제로 통치 정책을 전환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미 수차례의 약탈과 점진적인 쇠퇴로 행정 기능을 하기 어려운 로마를 대신해 서기 330년, 마르마라 해의 도시 비잔티온에 자신이 친히 계획한 도시, 새 로마(Nova Roma)를 세우고 그 곳으로 로마 제국의 수도를 이동시켰다.[1] 새 로마의 별칭은, 수도를 천도하고 새 로마를 세운 콘스탄티누스의 이름에서 따와 콘스탄티노폴리스(그리스어로는 콘스탄티누폴리스)이다. 이후 로마 제국은 찬탈과 단절, 양위 등의 원인을 포함하는 왕조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누스 1세가 확립한 제위 세습의 전통을 이어갔다.
테오도시우스 왕조와 유스티니아누스 시대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의 사망 이후에 로마 제위는 그의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가 양분하였다. 동서분할 이후 동방의 첫 황제는 바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장남이었던 아르카디우스(Flavius Arcadius Augustus)이다. 아르카디우스가 다스린 동방의 제국은 그리스와 발칸 반도, 아나톨리아, 레반트와 이집트, 동지중해 제도로써 이루어졌으며 이 강역은 이라클리오스 황제와 그 후 사반세기 가량 제국이 이슬람 칼리프국에 의해 시리아 이남 팔레스타인, 이집트, 튀니스 등에서 패퇴당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4~5세기에 이르러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에 비해 더 강건하고 효율적으로 유지되었다. 동방은 서방에 비해 풍부한 자원과 융성한 경제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북부 국경을 자주 약탈해 오는 유목국가들에 공물을 주어 침입을 방지했다. 아르카디우스의 장남으로 제위에 오른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콘스탄티누폴리스 도시 교외에 성벽을 3중으로 요새화하고 더 강해진 성벽을 구축하였는데 이를 테오도시우스 성벽 또는 방벽이라고 부른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이후 단 한번도 무너진 적이 없어[2] 콘스탄티누폴리스는 난공불락의 도시로 불린다.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제국의 영토는 동방으로 축소되었다. 이에 제논 황제는 동고트 국왕 테오도리크와 교섭하여 서방 영토에 대한 명목상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491년, 노련한 행정가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로마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즉위했고 그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시작했으나 미완으로 남았던 화폐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를 통해 제국의 재정을 크게 개선하여, 그의 사후 제국의 국고는 약 32만 파운드에 달했다. 이렇게 축적된 부는 후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서방 재정복 사업을 위한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 되었다.
(작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