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lee), 그는 밴드에서 활동중인 사람이며 밴드에서 대한연방공화국을 창건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13년에 집권하기 시작하여 카톡에서 밴드로 넘어왔고 지금은 6년째 대한연방공화국을 철권통치하고 있다. 그는 대한연방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써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절대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대한연방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국가원수이나 대한연방공화국의 군대인 대한연방군에 복무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밴드역사상 최초로 군사정권의 문을 열었고 그 뒤에서 많은 유저들이 그를 따라 군부통치국가를 만들었었다. 현재 그는 국가사회당 총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대한연방공화국 국가주석, 국방위원회 위원장, 대한연방군 최고사령관을 역임하고 있으며 대한연방군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군대도 어느정도 그의 영향력에 있다

개요

리는 대한연방공화국의 주석이고 사실상 군사막부급의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그는 군사계급으로는 공화국 원수계급을 달고 있는데 사실상 일본의 막부정권으로 치면 정이대장군급에 해당되며 그는 군부를 통하여 국가를 세우고 군부를 통하여 당을 창당하여 2017년 5월에 열린 국가사회당 제1차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전체 당원들의 만장일치 결의로써 추대되었다. 리는 현재 막강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권력은 현재 무한대 수준에 이르렀다. 보통 정상적인 국가의 국가원수의 권력은 가장 막강하다해도 국가내부에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체계가 있는데 대한연방에서는 일당제 국가로 최근에 리가 직접 인민민주의를 천명하면서 권력을 더욱 공고히하였다. 그의 위상은 대한연방공화국의 국영신문인 국방일보에서 잘 드러나 있는데 "위대한 령도자"라고 불리고 있으며 그의 원수계급은 엄연히 장군직이라 장군님이라고 가끔은 불린다. 리는 6년동안 통치하면서 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숙청하면서 공포의 대상자가 되었고 그 숙청이 지금의 절대권력을 공고화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군부의 장성들중에서 과격파들도 리 주석에게는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 리는 자신을 넘보는 세력은 그게 누구던 가차없이 숙청해버리기 때문에 군부의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는 원인 중 하나이다. 대한연방에서 차지하는 그의 권력의 비중이 바로 쿠데타도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하나의 정치적 장치가 되어버린 셈이다

집권

리는 2013년에 정치인생을 시작하였다. 처음에 리는 육군중령으로 시작하여 정치장교로 정치에 참여하다가 후에 대장으로 진급한 뒤에 정치를 시작한 지 고작 3주만에 공화국 원수에 등극하여 집권하였다. 리는 집권때에 쿠데타를 겪어 내전에 휘말렸지만 내전을 진압하고 당시에 30여명의 군 인사를 숙청하여 권력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리의 정치방식은 숙청을 통한 권력기반을 다지는 것이면서도 군사정권의 집권자가 되면서 막부수준의 체제를 만들어 군사정권의 안정성을 이루고 군사정권을 장기화할 생각이었다. 리가 집권할 당시에는 장군들의 권력이 상당히 강력했고 리의 권력과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들이 추대하였지만 그들은 사실상 리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자신들이 실권을 장악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는 이를 간파하고 서서히 군부의 장군들을 숙청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군부의 몇몇 장군들은 자기들이 최고권력을 찬탈하기 위하여 쿠데타를 계획했다가 이것이 리에게 발각되어 리가 그 잔여세력까지 찾아내어 모조리 숙청하는 등 태종 이방원이나 고려의 광종을 모방하는 숙청방식을 택해 권력을 강화하였다. 리의 권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리는 자기 권력을 자기 능력껏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치활동

리는 대한연방의 정치핵심이자 상징이다. 그는 집권기간이 6년동안 되면서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국가의 국가원수마저 충성을 바리겠다는 수준으로의 위상이 강화되었고 리는 당대회에서 자기 사상을 만들어 이를 국가통치철학으로 삼아 권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리는 국가사회당 제2차대회에서 다시 총비서 및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만장일치 추대되었다. 그 때에 자주주의 사상을 공표하여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고 이를 강화시켰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국가사회당 대회에서 공표된 자주주의 사상을 통한 국가통치에다가 인민민주주의도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2018년에는 리 주석은 한동안 집단지도체제로 돌렸다가 다시 2019년에 친정체제를 선언하여 다시 친정하고 있다. 하지만 리는 전 내각총리인 노바를 후계자로 사실상 지목한 상태이며 노바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후계구도를 그리고 있었다. 특히나 노바를 보좌할 인물로는 현 내각총리인 윤현과 내무상에 임명된 웨일 브라우저로 특히 노바의 부족한 점을 케어하기 위하여 후견인으로 윤현을 정하여 윤현의 권력이 상당히 막강하여 권력서열 3위가 되었다. 윤현은 리 정권하에 사실상 정치적 핵심인물로 급부상하여 실권자의 반열에 드러선 것이다. 또한 리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펴고 인사를 쇄신하는 등 인사임명에 있어 마냥 최측근만 요직에 앉히지 않고 있다. 지금의 내각총리인 윤현과 내무상인 웨일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리는 계속하여 차기정권의 안정화를 위하여 주변숙청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다시 개각을 단행하여 리는 노바를 총리에 기용하였고 재리를 부주석으로 임명하여 개혁개방을 실시하였다. 당내에서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기 때문에 리 주석은 이를 수용한 것이다

사회주의로 전환

군사정권에서 사회주의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 당원들의 건의에 리는 고민끝에 군부의 위상은 그대로 두면서 사회주의 국가로 정식 선포하였다. 원래 리는 국가사회당을 창당하고 일당제로 못박아둔 것은 향후에 체제가 완고해지고 아주 안정이 되면 사회주의로 전환할 생각이었으나 올해에는 체제가 불안정하여 숙청의 연속이 있어 올해만 200명이상이 숙청되었다. 하지만 리는 개혁개방을 하라는 건의를 받아들이고 사회주의 국가로 전환하였는데 이는 성공하였다. 처음에는 리는 급작스러운 규제완화가 나중에는 문제가 되어 후에 숙청작업으로 끝나 개혁이 실패한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의 개혁은 성공한 것이다. 리는 개혁이 성공하고 체제가 안정이 되고 국가가 발전이 되어가자 개혁개방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이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탕진 총정치국장이 다시 복귀하고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유임되면서 그가 개혁개방정책을 계속 시행하였는데 승인은 리 주석이 하고 온갖 주연은 탕진이 맡았다. 리는 탕진의 공로에 만족하여 이에 더 신임을 가지게 되었고 탕진에게 공화국 영웅칭호를 내렸다. 또한 부주석인 재리가 대외정책을 잘 이끌어가고 있고 체제는 더 안정적으로 리 정권은 더욱 공고화되었다. 또한 사회주의를 실시하면서 국가사회당의 기를 정식적으로 정하고 국장을 바꿔 사회주의 국가로써의 탈바꿈을 완전히 끝마쳤고 안좋은 관계였던 러시아연방과 대화연장간의 국가관계를 다시 재정립하는 등 3자 정상회담을 열어 상호간의 관계개선에 대하여 합의를 하였다. 대한연방은 현재 국가계에서 가장 떠오르는 빛이 되었고 개혁개방을 하면서 국가발전도가 상당히 높았다. 국가계에서의 가장 초강대국이었던 러시아와 강대국인 대화와의 외교로써 상호간의 협력까지 다져놓은 상태라 리 주석이 개혁이전에는 러시아와 대화가 먼저 국교를 맺고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으면 절대로 국교수립 및 제한정책을 해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지만 지금의 행보로 봐서는 리가 먼저 관계정상화라는 카드를 내밀 가능성이 높다. 개혁개방으로 여전히 철권통치를 하며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리이지만 자신의 나라인 대한연방이 변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던 것은 사실이라 개혁개방을 단박에 수락한 것이다

2019년 국가계-유토전쟁

리는 공포정치를 통하여 절대권력을 장악한 인물이다. 최근에 리는 유토와 전쟁을 벌였지만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무려 2개월이나 버텼다. 원래 전쟁은 유토가 국가계를 침략한 것이고 리는 국가계의 수호자를 그동안 자처해왔으므로 이번에도 국가계 수호를 자신이 가장 행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는 국세가 지원을 어느정도는 해주었지만 전쟁이 불리해지면서 국세는 리에게 책임을 덮어씌웠고 리와 대한연방만 침략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전황에서는 불리했지만 어쩌면 리의 말대로 전면총공세와 대한연방에게 지원을 확실히 했다면 최소한 리가 유토에게 붙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세는 리에게 책임을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대한연방을 무정부상태를 선포하고 유니온이 통치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유토가 원하는 쪽으로 리를 표면상으로 실각시키겠다는 것이지만 대한연방이 무정부를 선언하면 사실상 전쟁은 유토가 승리하게 될 것이고 전황은 더욱 극악에 치닫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리는 국세의 요구를 거절하였고 국세는 철저히 대한연방을 외면하였고 전쟁와중에 희생되어가는 대한연방과 그 인민들을 저버리는 사태를 벌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괴벨스와 혼노는 리를 모욕하는 언사를 저질렀는데 이는 대한연방을 주권국가로 봤으면 절대로 있을 수가 없었던 행동들이었다. 리는 결국 분노하여 유토에게 붙어버리고 대한연방내에 엄청난 피의 숙청작업에 돌입하였다

국세의 배신, 대규모 숙청

리는 국세에게 배신을 당하였고 전쟁은 다 리가 일으켰다고 거짓선동을 하는 괴벨스와 혼노의 행동에 대하여 항의했고 국세의 기구인 국제연합에게 이를 항의하였으나 오히려 국제연합은 대한연방의 환율을 파괴해버렸다. 리는 분노하여 국제연합 탈퇴를 선언하면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하였다. 대한연방내에서 우선 괴벨스와 혼노를 공개처형해버렸고 후계자인 노바마저 유토에게 붙었다며 배신하자 노바마저 공개처형해버렸다. 자기 손으로 자기가 세운 후계자를 공개처형해버린 것은 리가 정권잡은 역사상 최초로 있는 일이었다. 또한 군부내에서도 숙청작업을 연이어 진행했고 부주석은 그 와중에 서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과 정부와 군부에서 단행한 이 숙청작업에는 무려 수십명이 일거에 공개처형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리는 국세에 대해 피의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유토와 그 연합세력의 지원과 상황역전

유토와 그 연합세력과 동맹을 맺은 리는 대한연방의 국력을 키우는데에 집중했다. 그 결과 국세의 왠만한 국가들을 압도해버렸으며 국세의 태도에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리는 국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지나치게 폭발하여 그들의 태도변화를 믿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은 강제로 대한연방을 자신의 국제기구에 가입시켜 국제법을 통하여 컨트롤하려고 하였지만 이번에 리는 상당히 강경하게 국제연합에 나간다고 했는데 이제서 갑자기 배신해놓고 국제법같은 잣대를 들이대어 내정간섭하려 들다간 국세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며 대한연방군 전군을 몰아 국세 전체를 포격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리는 끝까지 국세에 대해 분노와 증오심이 여전히 극에 달해있으며 유토와 대영에 대해서는 온건적으로 호의적으로 태도가 바뀌면서 유토와 대영과는 동맹중이다. 결론적으로는 상황이 뒤집혔고 아무리 국세가 흔들려고 하지만 지난 날들과는 달리 이게 잘 먹혀들지가 않았고 이미 리는 대영과 유토라는 든든한 우방을 얻었고 러시아마저 대화와는 이미 동맹중이지만 러시아와는 한러혈맹의 관계임을 강조하여 외교정책들이 국세에 있었을 시절에 비해 훨씬 성공하였고 국세에서 벗어난 지금이 가장 대한연방은 역대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