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애학파

리반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10월 19일 (목) 10:52 판 (→‎의의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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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애학파(중국어: 模愛學派)는 해영국 시기에 활동했던 문학 사조을 말한다. 일반적인 활동 시기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로 보고 있다.

개요와 특징

모애학파의 시작은 조선의 학자였던 김만중에서 비롯되었다. 김만중의 문학에 크게 영향을 받은 해성국의 선비들은 김만중의 문학적 특징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설들을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모애학파의 활동 시점이 되었다.

모애학파의 속한 작품 대다수는 작가의 상상과 함께 작품의 배경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왜곡하여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지는 공통 의식을 가지는 형태가 많았다.

모애학파에서 비롯된 소설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 전지적 작가시점을 바탕으로 소수의 남성과 다수의 여성을 통한 삶의 애환과 사랑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 정치 혹은 실제 사회상의 묘사가 극도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나, 이에 반비례하듯 이러한 내용을 고도의 풍자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풍자는 작품의 주요 복선이나 주제 의식으로 발현된다.
  • 위 특징과 함께 대부분의 묘사는 해학적이고 현학적인 모습을 보인다. 모애학파의 공통된 주제 의식을 알 수 있는 부분.
  • 남성과 여성의 성적 행위나 연애에 관한 부분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이러한 표현을 주로 여성의 인물이 주도하였다. 남성 인물의 대다수는 당하는 등 수동적인 성격을 보인다.

이러한 모애학파는 국문학관에 영향을 주어 문학계의 국문주의(國文主義)가 성립되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위와 같은 문학적 특징으로 전근대 라이트노벨의 비조(鼻祖) 혹은 해성적 라이트노벨의 시작점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역사

김만중의 영정.

조선의 유학자 김만중은 기시환국으로 인하여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고 만다. 그는 유배지에서 《사씨남정기》를 집필하게 되었고, 사씨남정기는 구운몽과 함께 해성국의 유학자들에게 전해지게 되었으며, 이에따라 유학자들 간의 문학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1]

이러한 활발한 교류를 통해 여럿 유학자들 사이에서 문학 작품이 집필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하나의 문학 사조로서 커지는 결과를 내놓게 되었다. 모애학파는 단숨에 해성국에서 가장 큰 문학 사조가 되었으며, 이들의 작품은 당시 사회에서 크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심지어 당시 군황이었던 세홍 군황(世弘 君皇)도 이들의 작품을 수십번 독파했을 정도였다고.

그러나, 이들의 몰락은 서서히 진행되었다. 국내에서 실용주의를 주창하는 실학파(實學波)가 조정을 장악하면서, 유학자들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게 되었고 이러한 실학파들이 향촌과 지방까지 장악하게 되자, 유학자들의 세력은 갈수록 약화되었고, 결국 18세기 중반을 전후로 이들의 활동이 자취를 감추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의의와 영향

모애학파는 당대에 가장 큰 문학 사조로서 초기 민족 문학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기존의 고전 한문 문학을 부정하고 국문학을 높이 평가하면서 국문학관을 성립하는데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모애학파의 후신으로 볼 수 있는 화국학파(和國學派)의 성립에도 영향을 주었다.[2]

몽자류 소설과 한글 소설 장르의 성립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모애학파 작품의 갈래 대부분은 몽자류 소설 및 영웅 소설로서 구분되고 있다. 한편, 인물의 감정과 특징을 섬세히 묘사하는 묘인적(描人的) 성격을 본격적으로 갖추는데도 한 몫했다.

한마디로 국문학 성립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

  1. 이전까지 해성국의 선비들은 과거제를 통해 중앙 정계로 진출하는 것보다 지방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외에 정계에 진출했던 이들도 이러한 교류의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일종의 학파(學派)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2. 이 부분에서 김만중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다. 김만중 역시 조선의 국문학관을 처음으로 성립한 인물로서, 순우리말의 비중이 컸던 정철의 속미인곡을 좌해진문장(左海眞文章,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으로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