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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른 2세'''(<small>[[안타룩스어]]:Béarn II</small>)는 [[안타룩스 제1 제정]]의 [[안타룩스의 역대 황제|황제]]였다. 본명은 '''베아른 샤를 로베르 드 알데고뉴'''(<small>[[안타룩스어]]:Béarn Charles Robertiens De Aldegogne</small>)이며, [[안타룩스 항성계]](<small>[[안타룩스어]]:Antalux System</small>)의 초기 개척자였던 [[안타룩스 연맹]] 중 하나인 [[알데고뉴 가문]](<small>[[안타룩스어]]:House of Aldegogne</small>) 출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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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기간 동안에 [[안타룩스]]의 정세가 안정화 궤도에 접어들게 되면서, 왕정 주도의 과도 체제는 종식을 선언하였으며, 이윽고 국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총괄하는 [[안타룩스의 역대 수상|수상]](<small>[[인류 통합어]]:Prime Minister</small>) 중심의 [[의원내각제]]가 확립하게 되었다. 또한, 무분별했던 안타룩스 왕위 계승에 대해서 [[안타룩스 연맹]](<small>[[인류 통합어]]:Antaruxius Confederacy</small>)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은 가문에서만 왕위 후보자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신스 사회주의]](<small>[[인류 통합어]]:Synth-Socialism</small>)를 지지하면서 [[인류-신스 문명]](<small>[[인류 통합어]]:Human-Synth Civilisation</small>)으로의 초석을 다졌다.<ref>[[신스 자치의회]]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자'(<small>[[신스어]]:Memoris-Kinde</small>)라는 이름으로서 추앙하게 되었다.</ref>
 
==초기 생애==
아버지였던 [[베아른 1세]](<small>[[인류 통합어]]:Béarn I</small>)가 재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E.K 248년에 급사하게 됨에 따라 유복자가 되었던 그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위를 잇게 된 [[니콜라스 1세]](<small>[[인류 통합어]]:Nicolas I</small>)로서 왕위 계승에 대한 권리를 공인받은 뒤에 확고한 후임자로서 [[루도비쿠스 공]](<small>[[인류 통합어]]:Prince de Ludovicus</small>)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니콜라스 1세]]에 전폭적인 지지 아래 [[팔레 알페라츠]](<small>[[인류 통합어]]:Palais Alpheratz</small>)에서 제왕학을 교육받으면서 군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니콜라스 1세]] 재위 시기에 안타룩스 사회는 [[개척자 연합]](<small>[[인류 통합어]]:United Settlers</small>)과의 갈등을 빚고 있었으며, [[태양계 연맹]](<small>[[인류 통합어]]:Federation of Solar System, FSS</small>)과는 항성계 실질 통치권을 두고서 대립하는 시점이었다. 내부에서는 고도화된 인공지능 체계인 [[신스]](<small>[[인류 통합어]]:Synth</small>)에 대한 시민권 부여를 두고 내부적 분열을 겪기 시작했다. 이것은 안타룩스 왕정에 대한 반발로도 이어지면서, [[신스-사회주의자]]들과 [[해체주의자]](<small>[[인류 통합어]]:Deconstructivist</small>)<ref>[[아나키즘]]과는 다른 방식으로서, 이들은 '완전한 사회의 몰락'이라는 극단적 사상 아래에서 무력 행위를 정당화하였다.</ref>들이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그는 [[인류 순수주의]](<small>[[인류 통합어]]:Human-Purism</small>)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서 많은 이들을 곤란하게 하기도 했지만,<ref>당시 그는 어떠한 인공지능 체계와도 교류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으며, [[팔레 알페라츠]] 내 한 발자국도 [[드로이드]](<small>[[인류 통합어]]:Droid</small>)와 [[신스]]가 발을 들이는 것을 거부했다.</ref> [[신스 통합청]]에서 일을 수행하게 되면서 점차 [[신스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을 표감하기 시작했다.<ref>그가 부임했던 당시의 신스 통합청은 단순히 [[신스]]를 비롯한 인공지능 지성체에 대한 관리를 도맡는 것이 아닌, 시민권 관리 및 항성계 교류 관할에 대한 폭넓은 역할을 부여받은 곳이었다. 이 역시 [[니콜라스 1세]]가 그를 성장시키기 위한 의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 이를 통해 급격한 사상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 통합과 안정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데 몰두하게 된 그는, [[신스-사회주의]]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던 [[니콜라스 1세]]에 승인을 얻어 [[신스 자치의회]](<small>[[인류 통합어]]:Synth Self-government assembly</small>)의 설립을 통해 신스가 [[안타룩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참여를 촉진시킴으로서 인공지능 지성체를 포함하여 [[신스-사회주의자]]들과 [[신노동공산주의자]](<small>[[인류 통합어]]:Neo-Syndicalismist</small>)<ref>이들은 [[인류-신스 문명]] 혹은 [[기계 제국]]이 인류 노동 사회의 근절과 기계 공산사회로서의 이행에 대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ref>들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왕위 승계와 연방 대립==
E.K 275년, [[니콜라스 1세]]가 서거함에 따라 확고한 왕위 계승을 인정받은 그가 새로운 안타룩스 사회를 이끄는 군주로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먼저 타락한 귀족 사회에 대한 청산을 위하여 비정기적으로 개회하던 [[귀족원]](<small>[[인류 통합어]]:House of Lords</small)의 해산시킬 것을 명령했으며, 이에 반발하는 귀족 가문들을 엄벌하기 시작했으며, 국왕과 민중을 주도로 진행된 이 사건은 [[네오앙시앵 레짐]](<small>[[인류 통합어]]:Neo-Ancien Régime</small>)으로 불리던 [[안타룩스]] 사회에 만연했던 절대 귀족 체제의 혁파를 의미하였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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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0일 (화) 19:40 판


※ 본 문서는 안타룩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 세계관: 메이사/알헤나 | 문서 제작자: 리반


베아른 2세 (Béarn II)

지위 정보
이름 베아른 2세 (Béarn II)
대관식 우주력 275년 12월 4일
즉위식 우주력 276년 2월 13일
재위 E.K 275년 7월 11일~289년 5월 23일
(13년 10개월)
전임자  니콜라스 1세 (Nicolas I)
후임자  아마데오 2세 (Amadeo II)
수상  - 마크 드 사르텡
(Mac De Sartaing, 277~281)
- 안토니오 마타렐라
(Antonio Mattarella, 281~289)
신상 정보
출생일  우주력 245년 6월 27일
출생지  안타룩스 팔레 알페라츠
사망일  우주력 289년 5월 23일
사망지  안타룩스 에리다느뢰 왕립 성당
가문  알데고뉴 가문

베아른 2세(인류 통합어:Béarn II)는 안타룩스 제1 왕정국왕이었다. 본명은 베아른 샤를 로베르 드 알데고뉴(인류 통합어:Béarn Charles Robertiens De Aldegogne)이며, 안타룩스 항성계(인류 통합어:Antalux System)의 초기 안타룩스 항성계를 개척하던 세력, 안타룩스 연맹 중 하나인 알데고뉴 가문(인류 통합어:House of Aldegogne) 출신이었다.[1]

재위 기간 동안에 안타룩스의 정세가 안정화 궤도에 접어들게 되면서, 왕정 주도의 과도 체제는 종식을 선언하였으며, 이윽고 국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총괄하는 수상(인류 통합어:Prime Minister) 중심의 의원내각제가 확립하게 되었다. 또한, 무분별했던 안타룩스 왕위 계승에 대해서 안타룩스 연맹(인류 통합어:Antaruxius Confederacy)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은 가문에서만 왕위 후보자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신스 사회주의(인류 통합어:Synth-Socialism)를 지지하면서 인류-신스 문명(인류 통합어:Human-Synth Civilisation)으로의 초석을 다졌다.[2]

초기 생애

아버지였던 베아른 1세(인류 통합어:Béarn I)가 재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E.K 248년에 급사하게 됨에 따라 유복자가 되었던 그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위를 잇게 된 니콜라스 1세(인류 통합어:Nicolas I)로서 왕위 계승에 대한 권리를 공인받은 뒤에 확고한 후임자로서 루도비쿠스 공(인류 통합어:Prince de Ludovicus)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니콜라스 1세에 전폭적인 지지 아래 팔레 알페라츠(인류 통합어:Palais Alpheratz)에서 제왕학을 교육받으면서 군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니콜라스 1세 재위 시기에 안타룩스 사회는 개척자 연합(인류 통합어:United Settlers)과의 갈등을 빚고 있었으며, 태양계 연맹(인류 통합어:Federation of Solar System, FSS)과는 항성계 실질 통치권을 두고서 대립하는 시점이었다. 내부에서는 고도화된 인공지능 체계인 신스(인류 통합어:Synth)에 대한 시민권 부여를 두고 내부적 분열을 겪기 시작했다. 이것은 안타룩스 왕정에 대한 반발로도 이어지면서, 신스-사회주의자들과 해체주의자(인류 통합어:Deconstructivist)[3]들이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그는 인류 순수주의(인류 통합어:Human-Purism)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서 많은 이들을 곤란하게 하기도 했지만,[4] 신스 통합청에서 일을 수행하게 되면서 점차 신스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을 표감하기 시작했다.[5] 이를 통해 급격한 사상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 통합과 안정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데 몰두하게 된 그는, 신스-사회주의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던 니콜라스 1세에 승인을 얻어 신스 자치의회(인류 통합어:Synth Self-government assembly)의 설립을 통해 신스가 안타룩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참여를 촉진시킴으로서 인공지능 지성체를 포함하여 신스-사회주의자들과 신노동공산주의자(인류 통합어:Neo-Syndicalismist)[6]들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왕위 승계와 연방 대립

E.K 275년, 니콜라스 1세가 서거함에 따라 확고한 왕위 계승을 인정받은 그가 새로운 안타룩스 사회를 이끄는 군주로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먼저 타락한 귀족 사회에 대한 청산을 위하여 비정기적으로 개회하던 귀족원(인류 통합어:House of Lords</small)의 해산시킬 것을 명령했으며, 이에 반발하는 귀족 가문들을 엄벌하기 시작했으며, 국왕과 민중을 주도로 진행된 이 사건은 네오앙시앵 레짐(인류 통합어:Neo-Ancien Régime)으로 불리던 안타룩스 사회에 만연했던 절대 귀족 체제의 혁파를 의미하였다.

각주

  1. 본래 알데고뉴 가문안타룩스 연맹에 속했던 가문이 아니었으나, 안타룩스 내 인공지능 사회에 크게 공헌했던 제1대 루도비쿠스 공 베아른이 민중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오르게 됨에 따라, 알데고뉴 가문은 연맹의 실질적인 구성 세력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2. 신스 자치의회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자'(신스어:Memoris-Kinde)라는 이름으로서 추앙하게 되었다.
  3. 아나키즘과는 다른 방식으로서, 이들은 '완전한 사회의 몰락'이라는 극단적 사상 아래에서 무력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4. 당시 그는 어떠한 인공지능 체계와도 교류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으며, 팔레 알페라츠 내 한 발자국도 드로이드(인류 통합어:Droid)와 신스가 발을 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5. 그가 부임했던 당시의 신스 통합청은 단순히 신스를 비롯한 인공지능 지성체에 대한 관리를 도맡는 것이 아닌, 시민권 관리 및 항성계 교류 관할에 대한 폭넓은 역할을 부여받은 곳이었다. 이 역시 니콜라스 1세가 그를 성장시키기 위한 의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이들은 인류-신스 문명 혹은 기계 제국이 인류 노동 사회의 근절과 기계 공산사회로서의 이행에 대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