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오국 (갓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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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신오국의 전반기의 요약은 '''관동령 북조의 재림'''으로 요약 가능하다. 물론 그 기간은 관동령 북조의 기간보다는 확실히 짧았지만 기간안에 신오는 '''[[일제감정기|당할수 있는 모든것을 착취당한다.]]''' 당시 신오는 1908년부터 시작된 북부 가뭄으로 상당히 피페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그 상태에서의 관동의 수탈은 농민들에게 악영향을 주었다. 이때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이 당시는 전쟁 하나를 수십년을 끌어버린 [[지나-관동전쟁]]의 시작직후 였다. 당시 관동에서도 급격한 공업화로 인한 농지가 줄어가고 있었고, 신오국에 대한 착취가 없을수가 없던 상황이였다. 하지만 관동에게 두번째 수모의 시작과 착취는 신오 독립 운동에 불을 붙이게 되었고, 이는 1915년, [[6.13 축복 만세운동]]으로 터져나온다.<ref>여담으로 [[6.13 축복 만세운동]]은 당시 지나령 관동지역의 [[12월 운동]]으로 번지게 된다.</ref> 이후 충격받은 관동국은 이 사건으로 마나세 미네유키 총독에서 이츠이 토메요시로 교체되고 어느정도 완화된 정책이 시행된다. 하지만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였고, 1916년 1월 2일, 지나의 탄젠시<ref>현실의 우한</ref>에서 세에기켄 고쿠센샤를 중심으로한 신오국민의회가 수립되고, 1931년에는 기타 독립단체들을 통합시켜 세에기켄 고쿠센샤를 총리로 하는 신오민정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그리고, 관동국의 희대의 벙크, 하나전쟁이 터지고, 지나와의 양면전선을 유지하는데 실패한 관동국덕분에(?) 독립의 때가 다가오게 된다...
현대 신오국의 전반기의 요약은 '''관동령 북조의 재림'''으로 요약 가능하다. 물론 그 기간은 관동령 북조의 기간보다는 확실히 짧았지만 기간안에 신오는 '''[[일제감정기|당할수 있는 모든것을 착취당한다.]]''' 당시 신오는 1908년부터 시작된 북부 가뭄으로 상당히 피페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그 상태에서의 관동의 수탈은 농민들에게 악영향을 주었다. 이때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이 당시는 전쟁 하나를 수십년을 끌어버린 [[지나-관동전쟁]]의 시작직후 였다. 당시 관동에서도 급격한 공업화로 인한 농지가 줄어가고 있었고, 신오국에 대한 착취가 없을수가 없던 상황이였다. 하지만 관동에게 두번째 수모의 시작과 착취는 신오 독립 운동에 불을 붙이게 되었고, 이는 1915년, [[6.13 축복 만세운동]]으로 터져나온다.<ref>여담으로 [[6.13 축복 만세운동]]은 당시 지나령 관동지역의 [[12월 운동]]으로 번지게 된다.</ref> 이후 충격받은 관동국은 이 사건으로 마나세 미네유키 총독에서 이츠이 토메요시로 교체되고 어느정도 완화된 정책이 시행된다. 하지만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였고, 1916년 1월 2일, 지나의 탄젠시<ref>현실의 우한</ref>에서 세에기켄 고쿠센샤를 중심으로한 신오국민의회가 수립되고, 1931년에는 기타 독립단체들을 통합시켜 세에기켄 고쿠센샤를 총리로 하는 신오민정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그리고, 관동국의 희대의 벙크, 하나전쟁이 터지고, 지나와의 양면전선을 유지하는데 실패한 관동국덕분에(?) 독립의 때가 다가오게 된다...
===중반기===
===중반기===
올게 왔다. '''독립이 왔다.''' 관동국이 1944년 6월 29일 공식적으로 항복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4년 8월 12일 공식적으로 관동령 신오총독부가 신오국에서 철수하고 재신오하나군정청이 신오국에 설립된다. 당시에는 나자미스트 연합 공화국, 지금의 안나르 공화국은 신오국 분할통치를 제안하였지만, 공산주의의 물결을 우려한 하나국의 반대로 무산되며 신오국은 하나국 단독으로 신탁통치를 하게된다. 하지만 우여 곡절도 많았는데, 당시 하마무토 타다노부 신오임정 총리는 신탁통치 결사반대 결의안을 발표했고, 사회주의 임시정부이자 하나군정청 수립 전 치안을 담당하던 신오인민공화국 정부또한 하나국의 신탁통치에 반대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타다노부가 신탁통치 찬성으로 전향하면서 유혈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고 끝나게 된다. 참고로 이때 신오국의 현대사를 바꾸는 일이 터지게 되는데, 자세한건 [[신동일보 공화국 입장 오보사건]] 참조. 아무튼 공산주의자들의 일부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신탁통치가 1946년 5월 9일 공식 종료 되었고, 5월 25일 신오 초대 총선에서 신오임정의 후신인 자유당이 승리함에 따라서 신오국이 공식적으로 건국된다.
초대 총리에는 하마무토 타다노부가 선출되었고 총리의 김기인 5년동안 무난한 국정능력을 보여주며 극초반 나라의 상승세를 무난하게 이끄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1951년 7월 임기만료와 동시에 질병으로 정계를 떠난뒤 1957년 편안하게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다음 총리인 타케지 리유키 집권 이후 나라가 후진국 패시브인 나락으로 빨려들어간다.
====잃어버린 5년====
====잃어버린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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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축복1990.jpg|섬네일|330px|잃어버린 5년당시의 축복시의 모습]]

2022년 1월 7일 (금) 17:40 판

シンオウ国
신오국ㅣSinnoh Nation
국기 국장
世の中を変える平和
(세상을 바꾸는 평화)
상징
국가 신오의 노래 [1]
국화
해당화
위치
역사
[ 펼치기 · 접기 ]
  • 신오수반국 수립 1902년 12월 31일
  • 관동제국에 합병 1910년 5월 1일
  • 광복 1944년 9월 8일
  • 재신오하나군정청 수립 1944년 11월 7일
  • 신오국 수립 1946년 4월 19일
  • 제1차 헌법 공포 1946년 6월 1일
  • 정부수립 1946년 6월 3일
  • 제2차 헌법 공포 1968년 11월 4일
  • 제3차 헌법 공포 1982년 3월 29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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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축복중앙시
최대 도시
축복중앙시
면적
83,424.84km
접경국
관동연합국, 안나르공화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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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8,834,129명
민족 구성
온신족 92.1% 선단족 4.2% 관동인 2.4% 기타 1.3%
출산율
2.23명
평균 수명
90.82세
기대 수명
97.44세
공용어
선단어
지역어
선단어
공용 문자
오정동맹글
종교
국교
없음
분포
군대
신오국 반립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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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성
1개 특별시, 9개 자치도
자치도로
4개 구[1][2] , 32개 자치시, 2개 특별지구[3]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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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다당제
민주주의 지수
201개국 중 18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원수 (챔피언)
코우키 루카스
정부
요인
총리대신
사쿠라이 토모
제1의원 의장
카리노 나마에
제2의원 의장
스테키나 우데
중앙법원장
카카나이 세에메에진
통합선거위원회위원장
리카이 코오카
여당
민권정민당
신임과 보완
민주중심신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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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
GDP
(PPP)
전체 GDP
$4012억 2861만
1인당 GDP
$41,211
GDP
(명목)
전체 GDP
$3868억 1204만
1인당 GDP
$39,239
외환 보유고
$5,730천억 (세계 39위)2021년
신용 등급
무디스 Aa+
S&P AA
Fitch AA-
화폐
공식 화폐
신오국 환
ISO 4217
SOH, Hw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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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코우키
시간대
UTC+9 (관동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 펼치기 · 접기 ]
UN 가입
1947년
ccTLD
.So
국가 코드
316, SO, SIO
전화 코드
+15

개요

신오국(シンオウ国, Sinnoh(SO), Sinnoh Nation(SN))은 동아시아의 오정열도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상징

국호

신오국의 제3차 헌법에 따라서 공식적인 국명은 シンオウ国(신오국)이다. 해당 수정헌법의 공포는 1982년 3월 29일이였으나 제1차 헌법 제정 이후로도 국명을 シンオウ国이라고 명시하였기때문에 シンオウ国이라는 국명을 사용한 기간은 39년이 아닌 제1차 헌법 반포일인 1946년 6월 1일이 되므로 2021년 기준 75년이 된다. 약칭은 シンオウ(신오)를 약칭으로 쓰고있으나 국가에 따라서는 オウ国(오국) 또는 シン国(신국)을 양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영문 및 약칭 및 통칭으로는 Sinnoh를 사용중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외교&국가적 행사에서는 Sinnoh Nation(SN)이라는 국명을 사용한다. 국가코드로는 SO, SIO이 사용된다. 과거 하나군정 당시에는 HNS(HaNaSinnoh)라는 국가코드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신오국 수립 직후 SO와 SIO로 변경되었다.

국기

シンオウ旗
지위 공식 국기
제정시기 및 근거법령 대신오국 <제국기본법> (1891년 4월 2일)
신오공화국 <공화국 국기에 대한 법률> (1900년 3월 29일)
신오수반국 <공화국 법률 이향에 관한 법률> (1903년 12월 12일)
신오민정임시정부 <1호 의제> (1931년 2월 1일)
신오국 <신오국기법> (1946년 6월 4일)
근거법령 신오국기법
제작자 세에기켄 쿠코센샤 (1850년 ~ 1932년)
후쿠오카 류야 (1923년 ~ 1990년)

검은색과 푸른색 사이의 색깔인 바탕은 우주를 나타냄으로서 신오국의 무한한 상승을 나타내며 중앙의 하얀색과 적색의 별은 우주만큼 넓은 세상에서도 중심을 지키며 밝게 빛나는 신오국을 상징함과 동시에 흔들리지 않는 국민의 열정을 상징한다.

국가

シンオウの歌
지위 공식 국가
제정시기 및 근거법령 신오민정임시정부 <1호 의제> (1931년 2월 1일)
신오국 <신오국가법> (1946년 6월 4일)
근거법령 신오국가법
제작자 알수없음 (1907년 제작으로 추정)

해당 국가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기는하지만 제작자를 확실하게 알수없는 것 에다가, 작곡가가 관동국의 인물인것으로 추정되어 정계에서는 매우 자주 국가 변경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가-리그 분리와 함께 국가의 상징적 부분에서 논란이 가장 큰 문제.

슬로건

  • 人を人らしく、ここは シンオウ国 (1992~2019)
  • 世の中を変える平和 (1989~2000)

역사

고대

신오국 국가의 시작은 기원전 84년[4] 에 탄생한것으로 추정되는 북해왕국이다. 북해왕국은 현재의 오정열도 중 두개의 열도와 안나르공화국의 동부 일부를 차지 했을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북해왕국의 건국 신화를 알려주자면, 초대국왕으로 추정, 또는 예상되는 사아나이토 아이사츠(サーナイト挨拶)는 포켓몬과 인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그 포켓몬은 현재의 가디안, 당시 기준 사아나이토로 추정된다. 일부학자들 이 자료를 근거로 과거부터 포켓몬과의 교제를 가능하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증거부족으로 인하여 사아나이토 아이사츠라는 인물이 실존하는것은 확실하지만, 포켓몬과의 교제를 통하여 태어난 왕일 가능성은 적다는것이 정설이다.

아무튼 다시 돌아오자면 이후 북해왕국은 200년대 중반까지 번성하나 극도의 쇄국정책과 비교류, 그리고 북쪽의 국가의 한계상 농사의 부실로 인하여 반란이 발생하였고 결국 387년으로 추정되는 즈음에 멸망한다.

이후 북해왕국의 지역에는 북조국이 들어섰고 북조국은 과거를 본받고 쇄국을 풀면서 남쪽으로는 관동, 북동쪽으로는 지금의 안나르족 일부와 교류하며 세를 넓힌다. 하지만 이후 관동국의 통일 이후의 오정열도 통일전쟁을 막아내지 못하며 502년 멸망한다. 이후 신오는 무려 1000년간 관동령 북조로 추락하며 신오국의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레치를 그어버리고, 이는 지금까지 신오인과 관동인의 사이에 벽을 세우는 계기의 시작이 된다.

중세

관동령 북조가 된 신오국은 통일된 오정열도의 관동국 내에서도 천민급으로 대우를 받아야만 하였고, 아예 포켓몬을 전투용 및 애완용으로 키우는것이 금지되는 등의 차별을 무려 500년이나 받아야 했다. 하지만 500년이라는 시간이 짧은것도 아니고, 결국 1034년 경 관동의 개혁왕이라고 불렸던 안조의 개혁정책으로 신오인에 대한 차별이 일부 사라졌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찬밥취급 받았고, 그것이 관동 본토인과 기타 신오를 제외한 모든 오정열도의 백성들에게 각인되었기에 결국 1531년 북조의 강철섬에서 반란이 발생, 그것이 선단과 현재의 축복시에 까지 퍼지며 북조 전체로 퍼졌고, 관동의 지배에 지친 일부 오정열도에서도 반란이 일어나며 결국 관동이 북조의 독립을 인정하며 관동 북부의 일부까지 가지고 나가서 결국 1535년, 독립전쟁 4년만에 독립을 인정받고 대신오제국을 건국하게 된다. 하지만 신오의 중세시기를 굳이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신오국은 중세시대를 관동에게 먹힌채로 버렸다고도 말할수있을것이다.

근대

신오공화국 시절 대통령궁의 모습

신오국이 근대에 들어오자 역대동안 차별받았던 흔적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가장먼저 당시 신오국에는 기초적인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제국독립전쟁으로 땅이 피폐해졌던것이 이유인것은 당연하것이고, 가장 중요한것은 관동이 독립때까지 신오국의 인프라를 전혀 책임지지 않았던것이 매우 컸다. 당시 대신오제국의 초대황제였던 태석제는 신하들과의 대화에서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 고통스럽다"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결국 이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대신오제국에 분열의 바람을 일으키게된다.

1668년, 선단부의 부관이였던 야스쿠치 아마리가 군사를 일으키면서 신오국의 4국시대가 시작된다. 선단부의 부관이였던 야스쿠치는 "중앙정부의 선단차별과 탄압에 민심은 제국을 떠났다"라는 연설을 통해 독립을 선포한뒤 귀족공화국인 대선단국을 선포했고, 뒤를 이어서 현재의 부영도지역에서 강암국이 탄생한다. 그 이후 19일 후 녹산도와 정산부 일부를 차지한 평동대국이 개국한다. 이로서 제국은 4개로 분열되게된다. 하지만 대선단국을 제외하면 굉장히 급하게 독립을 한 성격인지라 조금씩 제국군에 진압되기 시작하고, 1705년에는 평동대국이 항복하였으며, 1706년에는 강암국이 항복하게 된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로 탄생한 대선단국이니 만큼 안밀려 골머리를 앓기 시작되었으나, 선단국의 포켓몬들이 갑자기 원인모를 질병에 걸려 죽어가며 선단국은 갑자기 중요한 이동수단과 식량, 그리고 보좌관을 잃게 되었고 이를 안 중앙정부의 강력한 공격으로 끝내 멸망하게된다. 그때가 1710년이였다. 이 내전으로 신오국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며, 관동지방의 일부영토가 이탈하여 제국에서 대신오국으로 국명을 바꾸는 등, 이를 되돌리는것에는 수십년이 걸렸으나, 그래도 어느정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게 된다.

1812년, 대신오국은 귀족회의를 통하여 황제세습제에서 황제투표제로 정치체제를 변경한다. 이것에 반발한 연종은 귀족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대신오국은 2차 4국시대의 직전까지 가게되고, 실제로 강철섬의 군수였던 아타노 이게코와 선단부의 타와사키 이니치로가 반란을 모의하였으나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국 반종이 황제투표제안에 도장을 찍으며 신오내전위기가 마무리된다. 이후 대신오국은 평화의 시기를 보냈으나, 대신오제국의 성립 이후 남쪽의 야만인이라고 여겼던 관동과 강제협약을 맺으며 개항하게 된다. 여담으로 당시 황제였던 장조는 포켓몬을 동원한 전쟁[5]을 하더라도 개항하면 안된다고 억지를 부리다가 관동군의 최신식 무기와 오성열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포켓몬을 보고 전쟁을 포기했다고 한다. 결국 개항에 서명한 황제였으나, 일부 보수파귀족들과 백성들이 당연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1899년, 대신오국이 멸망하고 신오공화국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신오공화국은 대통령중심제 국가로 스타트를 끊는다. 이렇게 출발한 신오공화국이였으니, 당연히 다음대통령은 이를 수습할 수 있는 대통령이야 했다. 일단 일단 초대 대통령에는 귀족 중 포켓몬 배틀 1순위이자 대신오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외무대신을 역임한 세에기켄 코쿠센샤가 임명된다. 그가 취임직후 가장먼저 펼친정책은 바로 치안안정화였다. 그는 경제를 발전시키기보단 치안안정화를 1순위로 여겼고, 이때 나온말이 바로 “경찰보다 비버니가 무서운나라에는 희망이 없다”이다. 그렇게 치안안정화 정책으로 본격적인 개혁에 박차를 걸던 찰나, 축복광역시에서 그의 경찰권력 강화에 불만을 품던 육군장관 겸 추후 관동령 신호에서 신오리그담당장관에 임명되는 테에기쇼 오코오부였다. 쿠데타 직후 코쿠센샤는 협박에 못이겨 하야하며 대통령궁을 떠났고, 초대 부통령이자 외무대신이였던 지카이테키나 사칸 역시 오코오부에게 정권을 넘기며 퇴임한다. 하지만 안그래도 반외세 신오공화국이 띠껍기 그지없었던 관동은 신오민족주의를 내세운 오코오부가 집권하자 역쿠데타를 계획, 성공하며 신오수반국이 세워지게 된다. 또한 이 수반국은 세계최초 리그와 정치체제를 일체시킨 사례가 되게 된다. 아무튼 수반국 수립직후 관동은 내심 사칸이 수반을 맞길 기대했으나 코쿠센샤의 배틀실력이 떡실신하며 코쿠센샤가 집권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코쿠센샤 수반정권은 국민 역할 강화와 당시로는 어마어마하게 파격적이였던 여성참정권 보장까지 추진한다. 하지만 관동국이 이를 나둘리 없었고 결국 취임 7년만에 수반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신오는 관동에 흡수되어 관동령 신오가 된다.

현대

신오국의 현대역사는 굴곡의 역사, 그 자체였다.

전반기

현대 신오국의 전반기의 요약은 관동령 북조의 재림으로 요약 가능하다. 물론 그 기간은 관동령 북조의 기간보다는 확실히 짧았지만 기간안에 신오는 당할수 있는 모든것을 착취당한다. 당시 신오는 1908년부터 시작된 북부 가뭄으로 상당히 피페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그 상태에서의 관동의 수탈은 농민들에게 악영향을 주었다. 이때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이 당시는 전쟁 하나를 수십년을 끌어버린 지나-관동전쟁의 시작직후 였다. 당시 관동에서도 급격한 공업화로 인한 농지가 줄어가고 있었고, 신오국에 대한 착취가 없을수가 없던 상황이였다. 하지만 관동에게 두번째 수모의 시작과 착취는 신오 독립 운동에 불을 붙이게 되었고, 이는 1915년, 6.13 축복 만세운동으로 터져나온다.[6] 이후 충격받은 관동국은 이 사건으로 마나세 미네유키 총독에서 이츠이 토메요시로 교체되고 어느정도 완화된 정책이 시행된다. 하지만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였고, 1916년 1월 2일, 지나의 탄젠시[7]에서 세에기켄 고쿠센샤를 중심으로한 신오국민의회가 수립되고, 1931년에는 기타 독립단체들을 통합시켜 세에기켄 고쿠센샤를 총리로 하는 신오민정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그리고, 관동국의 희대의 벙크, 하나전쟁이 터지고, 지나와의 양면전선을 유지하는데 실패한 관동국덕분에(?) 독립의 때가 다가오게 된다...

중반기

올게 왔다. 독립이 왔다. 관동국이 1944년 6월 29일 공식적으로 항복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4년 8월 12일 공식적으로 관동령 신오총독부가 신오국에서 철수하고 재신오하나군정청이 신오국에 설립된다. 당시에는 나자미스트 연합 공화국, 지금의 안나르 공화국은 신오국 분할통치를 제안하였지만, 공산주의의 물결을 우려한 하나국의 반대로 무산되며 신오국은 하나국 단독으로 신탁통치를 하게된다. 하지만 우여 곡절도 많았는데, 당시 하마무토 타다노부 신오임정 총리는 신탁통치 결사반대 결의안을 발표했고, 사회주의 임시정부이자 하나군정청 수립 전 치안을 담당하던 신오인민공화국 정부또한 하나국의 신탁통치에 반대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타다노부가 신탁통치 찬성으로 전향하면서 유혈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고 끝나게 된다. 참고로 이때 신오국의 현대사를 바꾸는 일이 터지게 되는데, 자세한건 신동일보 공화국 입장 오보사건 참조. 아무튼 공산주의자들의 일부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신탁통치가 1946년 5월 9일 공식 종료 되었고, 5월 25일 신오 초대 총선에서 신오임정의 후신인 자유당이 승리함에 따라서 신오국이 공식적으로 건국된다.

초대 총리에는 하마무토 타다노부가 선출되었고 총리의 김기인 5년동안 무난한 국정능력을 보여주며 극초반 나라의 상승세를 무난하게 이끄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1951년 7월 임기만료와 동시에 질병으로 정계를 떠난뒤 1957년 편안하게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다음 총리인 타케지 리유키 집권 이후 나라가 후진국 패시브인 나락으로 빨려들어간다.

잃어버린 5년

잃어버린 5년당시의 축복시의 모습

현재

자연환경

인문환경

행정구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대중매체에서

관련문서

  1. 전체구 축복특별시 소속
  2. 렌고구, 세호쿠구, 도난구, 세에기켄구
  3. 강철득별지구, 챔피언특별지구
  4. 여기서 하나 알려주자면, 여기서 기원전이란 아르세우스의 탄생을 기준으로 세는것이다.
  5. 당시 아시아쪽에서는 포켓몬을 동원한 전쟁을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니까 비상식적이고 개취급 받더라도 그건 못하겠다는 정도로 개항반대여론이 강했다는것이다.
  6. 여담으로 6.13 축복 만세운동은 당시 지나령 관동지역의 12월 운동으로 번지게 된다.
  7. 현실의 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