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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7|'''당태종을 물리친 고구려의 후손 대한국 태왕이 태후께 삼가 묻습니다. 무탈하십니까?<br>退唐太宗高麗之孫大韓太王敬問太后無恙'''|1868년 새해 [[문조]]가 서태후에게 보낸 서신 첫문장<ref>흉노의 묵돌 선우가 한문제에게 보낸 서신을 차용한 것이다. 문조 황제는 고구려, 묵돌의 서신 차용 같은 중국 입장에서는 몹시 화날만한 요소를 서신에 넣어 패배한 서태후를 조롱하였다.</ref>}} | {{인용문7|'''당태종을 물리친 고구려의 후손 대한국 태왕이 태후께 삼가 묻습니다. 무탈하십니까?<br>退唐太宗高麗之孫大韓太王敬問太后無恙'''|1868년 새해 [[문조]]가 서태후에게 보낸 서신 첫문장<ref>흉노의 묵돌 선우가 한문제에게 보낸 서신을 차용한 것이다. 문조 황제는 고구려, 묵돌의 서신 차용 같은 중국 입장에서는 몹시 화날만한 요소를 서신에 넣어 패배한 서태후를 조롱하였다.</ref>}} | ||
'''청나라가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안그래도 오랑캐라 깔보던 서구 국가들에게 패배를 거듭하던 청나라즌 분위기를 환기하려 일으킨 전쟁의 패배 이후로 절망적 분위기에 빠져들었으며 뚜렷한 멸망기로 접어든다. |
2022년 10월 13일 (목) 02:13 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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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전투 鴨綠江戰鬪 Battle of Yalu-Riv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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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1867년 | |||||
장소 | |||||
단동, 의주, 압록강 하구 하중도 일대 | |||||
교전 세력 | |||||
대한국 | |||||
지휘관 | |||||
문조 | 동치제 서태후 | ||||
병력 | |||||
9만여명 | 6만 3천여명 | ||||
피해 규모 | |||||
5만여명 사상 | |||||
결과 | |||||
청나라의 패배 | |||||
영향 | |||||
양무운동 중단 한국의 남만주 일대 진출 교두보 마련 한국의 대유럽 독자외교 개시 |
개요
배경
전개
결과 및 영향
당태종을 물리친 고구려의 후손 대한국 태왕이 태후께 삼가 묻습니다. 무탈하십니까? 退唐太宗高麗之孫大韓太王敬問太后無恙 |
1868년 새해 문조가 서태후에게 보낸 서신 첫문장[1] |
청나라가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안그래도 오랑캐라 깔보던 서구 국가들에게 패배를 거듭하던 청나라즌 분위기를 환기하려 일으킨 전쟁의 패배 이후로 절망적 분위기에 빠져들었으며 뚜렷한 멸망기로 접어든다.
- ↑ 흉노의 묵돌 선우가 한문제에게 보낸 서신을 차용한 것이다. 문조 황제는 고구려, 묵돌의 서신 차용 같은 중국 입장에서는 몹시 화날만한 요소를 서신에 넣어 패배한 서태후를 조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