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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6" style="font-size: 13pt; color: #fff; background: #000;" | <big>량전수<br>梁真肅</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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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5일 (화) 11:05 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만국 초대 영도인
대만국 초대 총통
대만국 2대 국무총리
량전수
梁真肅
한국식 독음 양진숙
직업 정치가, 행정가
출생 1893년 8월 19일
대한국 대만성 대북
사망 1950년 12월 9일 (57세)
대한국 대한성 제주도
학력 국립대만대학 법학과 학사
국립한성대학 법학 석사
가족관계 배우자: 쑹안밍
슬하 1남 2녀
재위기간
대만성 성장
1936년 2월 8일 ~ 1938년 7월 15일
대만국 총통
1938년 7월 20일 ~ 1943년 3월 3일
대만국 국무총리
1940년 1월 6일 ~ 1943년 3월 3일
대만국 영도인
1940년 4월 7일 ~ 1943년 3월 3일

개요

대만성 한화계 출신의 한국의 정치인, 관료이자 타이완 자치정부의 우두머리를 맡았었던 독재자, 매국노.

생애

유년기, 청년 시절

대만성 성장

일본제국에 협조

타이완 자치정부의 독재자가 되다

최후

1943년 1월 7일 한국군이 기륭시에 상륙하여 타이베이로 남진하자 곧바로 타이난으로 천도를 선포하고 항전을 주창하였으나 일본제국이 대만섬에서 철수하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공허한 구호였다.

1월 13일 타이난에서 그는 전열을 가다듬고 2천명의 군인을 모으는데 성공했으나 5만명이 넘는 한국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치정부내 많은 인사는 서서히 항복, 강화를 주창하였으나 량전수는 끝까지 항전을 주장했다.

1월 17일 결국 량전수의 이러한 태도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정부내 쿠데타를 일으켰고 량전수는 간신히 도피하여 죽림으로 향하였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홍콩으로 밀항했다.

1946년 5월 9일 홍콩에서 지내던 그는 영국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그해 6월 2일 한국으로 송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