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황제를 도우사

1891년, 오쓰 사건으로 인해 일본은 러시아에게 다양한 불평등 조약을 강요받았다. 그로 인해 일본은 청일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영일동맹이 체결되었다. 이에 의해 일본은 러시아가 용암포와 마산포를 조차로 요구하자 이에 맞서 절영도를 조차로 얻어낼 수 있었다.

일본은 마산포 또한 조차로 요구했는데, 이는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마산에서의 충돌은 오쓰 사건의 굴욕을 되갚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본 내에서 부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07년 영러협상이 체결되었고, 일본은 러시아에 홀로 맞서 싸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일본과 러시아는 협상을 체결해, 한반도에 대한 이권을 나누어 가지는 협상을 체결하게 된다.

10년 후, 마침내 러시아가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일본은 한국을 완전히 수중에 넣게 된다. 러시아와 일본에 휘둘렸던 대한제국은 완전히 일본의 괴뢰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