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 020

방공호 도면 및 전개도
핵심기관 개요 및 소개

방공호 020는 핵전쟁(영어:Nuclear Warfare·Nuclear War) 이후 지하 방공호에서 살아가는 세계관이다. 전간기 말에 대두되었던 핵전쟁 위기론 시기에 건설되었지만 막상 핵전쟁 발생 이후에는 기존의 관리인원과 담당자 외에는 누구도 대피하지 못했다. 위치는 경상북도 예천군으로 방공호 020라는 명칭은 실제로 20번째 방공호인 것이 아니라, 스무번째 방공호 건설계획안이 확정되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핵심 요인들과 수행 인력 등을 종합하여 약 150명이 최장 10년을 버티도록 설계되었으나, 문이 닫힌 직후 초기의 인원은 불과 85명에 불과[1]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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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사태 이후 약 90년간 단 한차례도 핵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MD시스템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예산문제로 핵방공호도 고작 하나만 완성[2]되었다. 방공호 020에서는 원폭의 영향으로 한반도 전체가 파괴되었다고 확인했으므로 이곳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최후의 정부기관이자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유사시를 대비해 자체적인 생산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통조림에 갇힌 신세까진 아니었다.

또한 계획과 체계 구성에서 여성은 없었으나 방공호 가동 당시 시설 내부에서 기타적인 업무를 보던 민간인 22명에 의해 여성이 포함되었다..

핵심 시설

현재까지의 기록

  • 데프콘1(DEFCON ONE)의 발령 이후 광역시급 이상의 모든 도시에 전술핵과 생화학 무기를 포함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방공호 020는 정식 명칭과 건설기념도 하지못한 채 10톤 규모의 격문이 닫힐 준비를 시작했다. 군 유선 연락망을 통해 전황을 확인했으나 EMP 효과로 인해서 연락두절되었다. 관리책임자는 국가요인들의 대피를 예상하고 군사공항을 확인했으나 여전히 연락이 부재했다. 이튿날 MD 체계 관측으로 2차 핵공격이 예상되었으며 관리책임자의 독단적인 판단 하에 방공호 격문이 닫혔다.
  • 긴급사태 1일차 방공호 020의 총원은 84명으로 확인되었으며 이중 49명은 정부 군무원 및 군인, 22명은 민간인. 13명은 방공호 자율 시스템 및 필요 기반을 갖추기 위해 설비를 준비하던 전문기술자들이었다. 이후 주변지역으로 외출을 나갔던 군인 1명이 돌아오면서 2일차 총원이 85명이 되었고 이후 출입자가 없었으므로 약 3개월 간에 85명 총원이 유지되었다.
  1. 자체 생산시설과 기타 수급을 종합하면 약 17년에서 20년을 견딜 수 있는
  2. 나머지는 각각 준공 단계와 계획 단계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