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1. 넘겨주기 틀:GHQ (동방)

개요

연합국 최고사령부(영어: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General Headquarters, GHQ) 또는 렌사이(連最, れんさい)는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뒤 1945년 8월 29일부터 1953년 7월 1일까지 설치되어 있었던 연합국 사령부를 말한다.
다만 60만여명 가까이 일본에 주둔하고 있었던 한국군이 압도적인 권한을 휘둘렀기에 사실상 한국군 점령하 일본이라고 보기도 한다.
한국과 영어권에서는 SCAP를 많이 사용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시기를 ‘렌사이’ 또는 ‘GHQ’라고 부르며 민간에서는은 렌사이라고, 학자들은 GHQ라고 많이 부른다.

미군은 필리핀, 남양군도(현 미크로네시아), 규슈일대에만 5만명 가량이 주둔했지만 한국군에게 통치권한을 모두 넘겼기 때문에 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1947년 모두 본국으로 철수했다.
영국군도 4만명 가량 시코쿠, 케이한신 지방에 주둔했다.

전쟁이 매듭지어진 시점에서 일본제국 정부는 점령했었던 한반도, 고엽도(사할린)와 천도열도(쿠릴열도), 남양군도와 빼앗았던 대만에 대한 지배권은 물론 자신의 영토였던 홋카이도에 대한 지배권까지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게 반환할 영토는 없었다.
다만 영국에는 파푸아뉴기니등을 반환해야 했다.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946년 1월 1일을 기해 점령되었던 영토를 즉각 원래 점유 국가들에게 반환하였다.

군정의 정치, 정책

60만에 달했던 한국군은 일본군과 일본경찰의 즉각적인 무장해제를 실시하였고 군사재판을 통한 전범 처벌, 기업집단의 해체등이 이루어졌다. 또한 전범 행위에 간접적으로 부침한 인물들을 모두 공직에서 쫓아냈고 극우단체와 일본군은 해산되었다. 일본 육군성과 해군성은 폐지되지 않고 제1지원부, 제2지원부로 이름이 바뀌어 SCAP의 감독 아래 해외에 있던 일본군 전력의 귀국과 무장해제 업무를 수행했다.

화족제도가 폐지되었고 덴노의 직계를 제외한 모든 황족은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박용만 대장은 덴노 일가를 축출하고 일본을 아예 공화국으로 만들 기획도 했었으나 여운형 총리가 이를 만류하면서 결국 철저한 입헌군주제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덴노를 교토어소로 축출하고 도쿄의 중앙정치와 분리시키는 동시에 1948년에는 자유 총선거를 실시하여 의회민주주의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설치를 통한 지방분권제도, 언론 자유화를 전면 실시하였고 군정 아래 헌법도 제정하면서 일본에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잡았다.
또한 SCAP는 지주들의 땅을 몰수하여 소작농들에게 무상분배하였고 전범 기업집단을 일본 정부 산하로 국유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인들은 잽싸게 일부 일본 기업을 매입해 자회사로 만들었고 SCAP는 이를 묵인했다. 더불어 노동조합 활동이 인정되었으며 치안유지법과 특별고등경찰제도를 폐지해 사회주의 활동도 용인했다.
1948년 와병으로 박용만 대장이 떠나고 최고사령관이 김원봉 중장으로 대체되었을 때도 이런 정책기조는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유지되었다.

김원봉 중장은 일본 정부인사들은 물론 덴노에게까지 ‘형장에서 목이 매달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라’고 말하며 고압적으로 대해 상황, 조코(上皇)라는 별명도 붙었다. 김 중장은 이 당시 쇼군이면서 상황이었던 셈이다. SCAP가 너무나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나머지 일본에서는 ‘렌사이 바쿠후(連最幕府)’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한다. 쇼군 김원봉과 SCAP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가운데 덴노의 조정에 해당하는 일본정부는 SCAP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강화조약 이후

일본은 한국에게 북해도, 유구, 대마도와 은기도를 할양해야 했고 남양군도는 한국의 UN 신탁통치령으로 지정되어 사실상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또한 한국에게 영구적으로 각 지역의 조차지를 내어주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