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간기 ~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조선

한혁성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14일 (일) 23:27 판 (한혁성님이 전간기 조선 문서를 조선의 민주화 과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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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조선국 건국

1917년 12월 5일, 대한제국은 경성 조약을 체결하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한다. 이후 1919년 3.1 혁명으로 국민과 열강은 대한국 국제의 개정을 요구했고, 정부는 이상룡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를 통해 조선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기초한 대한조선국 헌법이 작성되었고, 그 후 추밀원의 심의를 통해 순종의 재가를 승낙받은 왕실은 1923년 7월 17일 헌법을 공표하며 대한조선국을 건국한다.

융희 데모크라시

대한조선국 초대 수상 김섭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체제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잔존한 신분제의 영향을 제거하고, 전후 경제 복구와 대공황의 극복을 위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며 의회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했다. 이를 토대로 조선 내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자유주의적 풍조를 순종의 연호를 따 융희 데모크라시라 부른다.

조선 군국주의

1936년 김섭 암살의 혼란을 틈타 한성 진군을 통해 집권한 박두정은 1차 세계 대전의 피해를 거의 복구했지만, 군비증강과 때마침 일어난 중일전쟁을 틈타 동아시아 정국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만주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중국과 외교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의 행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남중국에서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일본의 협력 요청을 묵살하며 중립을 유지했다. 대한 해협과 동해에서 대규모 해군 훈련을 개시하며 일본의 팽창 야욕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1942년 5월 13일 일본이 4.20 복강 사태를 빌미로 제주도를 무력 점령 및 포격했을 땐 독일, 일본에 선전 포고하고 미국과 민주화 협정을 체결, 연합국에 가입했다. 전후 연합국의 민주화 요구 및 국내의 반발로 박두정은 1948년에 자유 민주 선거를 시행하고 조선 최초로 자유민주주의 정당인 이승만의 민주조선당이 집권한다. 이후 제1세계에 속하며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