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5번째 줄: | 5번째 줄: | ||
{{전쟁 정보 | {{전쟁 정보 | ||
|분쟁 = 제1차 세계 대전 | |분쟁 = 제1차 세계 대전 | ||
|전체 = | |전체 = 세계 대전 | ||
|그림 = 제1차 세계 대전 상황.svg | |그림 = 제1차 세계 대전 상황.svg | ||
|그림크기 = | |그림크기 = | ||
|설명 = 제1차 세계 대전의 진행 상황 | |설명 = 제1차 세계 대전의 진행 상황 | ||
|날짜 = 1913년 7월 3일 ~ | |날짜 = 1913년 7월 3일 ~ 1917년 월 일 | ||
|장소 = 전세계 | |장소 = 전세계 | ||
|상태 = | |상태 = | ||
125번째 줄: | 125번째 줄: | ||
===러시아의 잔류=== | ===러시아의 잔류=== | ||
1913년 6월 30일, 중제국들은 협의하에 [[발칸 반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되었다. 6월 31일에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승리의 왕관)|영국]]이 철수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철수하면서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에게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은 요구를 무시했고, 이에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은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에게 최후통첩을 보낸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은 이를 또 거절하였고, 결국 1913년 7월 2일, [[영-독 동맹(승리의 왕관)|영-독 동맹]]은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 1913년 6월 30일, 중제국들은 협의하에 [[발칸 반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되었다. 6월 31일에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승리의 왕관)|영국]]이 철수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철수하면서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에게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은 요구를 무시했고, 이에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은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에게 최후통첩을 보낸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은 이를 또 거절하였고, 결국 1913년 7월 2일, [[영-독 동맹(승리의 왕관)|영-독 동맹]]은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 ||
==전쟁의 진행 과정== | |||
{{전역상자 제1차 세계 대전(승리의 왕관)}} | |||
===개전=== | |||
====슐리펜 계획==== | |||
{{본문|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승리의 왕관)}} | |||
1913년 7월 11일,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은 [[슐리펜 계획(승리의 왕관)|슐리펜 계획]]을 실시하기 위해 [[벨기엔 제1왕국(승리의 왕관)|벨기엔]]에게 군사통행권을 요구한다. 그러나 [[벨기엔 제1왕국(승리의 왕관)|벨기엔]]은 이를 거절했고,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의 동일한 요구 또한 거절했다. 이에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은 7월 19일, [[벨기엔 제1왕국(승리의 왕관)|벨기엔]]과 근처의 [[룩셈부르크(승리의 왕관)|룩셈부르크]]를 침공한다. 8월 1일, [[벨기엔 제1왕국(승리의 왕관)|벨기엔]]의 국토 전체가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에게 함략된다. 이후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8월 17일,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이 동부를 공격하고 있는 사이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의 수도, [[파리(승리의 왕관)|파리]]를 함략시킨다. 이에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은 8월 21일, [[마른 강(승리의 왕관)|제1차 마른 전투]]에서 공세를 가하지만 패배한다. [[슐리펜 계획(승리의 왕관)|슐리펜 계획]]을 성공시킨 [[독일 제국(승리의 왕관)|독일 제국]]은 [[브레타뉴-루아르 공세(승리의 왕관)|브레타뉴-루아르 공세]]를 개시한다. 이후 [[동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승리의 왕관)|동부 전선]]에서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이 제국 동부를 유린하자, 군대의 3할을 [[동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승리의 왕관)|동부 전선]]으로 재배치하고, 9월 11일, [[브레타뉴(승리의 왕관)|브레타뉴]]를 점령하면서 공세를 중단한다.(서부 전선의 후회) | |||
[[분류:승리의 왕관]] | [[분류:승리의 왕관]] |
2019년 6월 29일 (토) 17:15 판
제1차 세계 대전(World War I 또는 WWI)는 1913년 7월 3일부터 1917년 월 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쟁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세계 대전(World War) 또는 대전(Great War)이라 불렸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약 1천만명의 병사가 전사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사상자가 가장 많았던 전쟁 중 하나이며, 수많은 정치적 변화를 일으켰다.
제1차 세계 대전 | |||||||
---|---|---|---|---|---|---|---|
세계 대전의 일부 | |||||||
제1차 세계 대전의 진행 상황 | |||||||
| |||||||
교전국 | |||||||
공동교전국 네지드 토후국 카자르 왕조 |
협상국 | ||||||
지휘관 | |||||||
동맹국 지휘관 |
협상국의 지휘관 | ||||||
병력 | |||||||
총 합계: 23,351,541명 |
12,000,000명 |
틀:전역 상자 제1차 세계 대전(승리의 왕관) 이 전쟁은 세계를 두 세력으로 나눈 강대국들의 전쟁이다. 한쪽은 대영제국과 독일 제국의 영-독 동맹이 중심이 되는 동맹국이며, 다른 한쪽은 프랑 식민 제국과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3국 협상이 중심이 되는 협상국이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제국주의때문이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제2차 발칸전쟁(마케도니아 전쟁)이다. 1913년 7월 1일, 러시아 제국이 제2차 발칸전쟁으로 발칸 반도에 영향력을 펼치는 것에 못마땅했던 영-독 동맹이 러시아 제국에게 발칸 반도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보낸 최후통첩을 러시아 제국이 무시하면서 벌어졌다.
결국 1913년 7월 2일, 영-독 동맹이 러시아 제국에게 선전포고 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다른 3국 협상국에게도 선전포고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됬다. 러시아 제국이 무장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거라 예상한 독일 제국은 영국에게 동부를 맡기고, 대부분의 병력으로 룩셈부르크와 벨기엔을 공격하여 점령한뒤, 파리까지 점령한다. 그러나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 제국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이 공세를 개시해 공세를 중단한다. 이후 전선은 고착화 되었으며,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내부의 운가르 인들이 봉기를 일으킨다. 1915년 말, 미국이 참전한다.
1916년, 러시아 제국은 혁명으로 인해 무너졌으며, 러시아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하다 결국 나르바 조약을 체결한다. 이후 1916년 말, 춘계 공세로 국토 대다수를 빼앗긴 프랑 제3공화국은 결국 무너지고, 1917년에는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과 세르비아, 오스만 제국, 미국이 항복함으로써 전쟁은 끝이 난다.
전쟁이 끝나면서 프랑과 러시아 제국,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은 해체되고 만다. 패전국들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은 모두 동맹국이 가져갔으며, 운가른을 제외한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과 러시아 제국에선 여러 국가들이 독립한다. 또한 독일 제국 본토도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의 지역 몇몇을 합병해 확장하였다. 그러나 패전국들은 영토의 상실과 배상금으로 인해 분노가 쌓였고, 이것이 폭발하게 된 것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배경
정치 및 군사적 동맹
19세기 유럽 강대국들은 유럽 전역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 결과 1900년에는 복잡한 정치, 군사적 동맹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독일 제국은 한때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과 러시아 제국과의 삼제 동맹을 체결했으나, 러시아 제국의 발칸 정책에 불만을 품은 독일 제국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은 삼제 동맹을 탈퇴하여 독-외 동맹을 결성한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차이로 인해 이 동맹은 무산된다.
이런 독일 제국을 본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하 영국)은 러시아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독일 제국의 킬 군항에서 상호불가침 조 및 반 러시아 동맹, 해군 군축 조약을 체결한다(킬 조약. 이에 대해 프랑은 영국과 독일 제국에 맞서 프-러 협상을 체결함과 동시에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과 프-외 협상을 체결한다. 곧 러시아 제국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과의 러-외 협상을 체결한다. 그리고 이를 본 영-독 동맹은 이탈리아 왕국과의 동맹을 체결하여 유럽은 3국 협상과 3국 동맹으로 나뉘어진다.
서막
발칸 반도의 분쟁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한 이후 1908년부터 1909년까지 보스니아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에 세르비아 왕국과 러시아 제국은 분노한다. 그러자 프랑는 과거 체결한 프-러 동맹과 프-외 동맹을 명분으로 중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3국 협상이 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위해 독일 제국과 영국이 중제에 개입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중제국들은 제1차 발칸 동맹국들에게 지원을 해주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결국 제1차 발칸 전쟁은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은 발칸 동맹이 승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그리스 사이에서 마케도니아를 두고 갈등이 발생했고, 이에 여러 나라들은 중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제국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화되었고,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이 발발한다. 이에 3국 협상들은 세르비아가 주축이 된 제2차 발칸 동맹에게 지원을 개시했고, 영-독 동맹은 불가리아에게 지원을 개시한다.
러시아의 잔류
1913년 6월 30일, 중제국들은 협의하에 발칸 반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되었다. 6월 31일에 프랑,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독일 제국, 영국이 철수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철수하면서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러시아 제국에게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은 요구를 무시했고, 이에 독일 제국은 러시아 제국에게 최후통첩을 보낸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은 이를 또 거절하였고, 결국 1913년 7월 2일, 영-독 동맹은 러시아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전쟁의 진행 과정
|
개전
슐리펜 계획
1913년 7월 11일, 독일 제국은 슐리펜 계획을 실시하기 위해 벨기엔에게 군사통행권을 요구한다. 그러나 벨기엔은 이를 거절했고, 프랑의 동일한 요구 또한 거절했다. 이에 독일 제국은 7월 19일, 벨기엔과 근처의 룩셈부르크를 침공한다. 8월 1일, 벨기엔의 국토 전체가 독일 제국에게 함략된다. 이후 독일 제국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8월 17일, 러시아 제국이 동부를 공격하고 있는 사이 프랑의 수도, 파리를 함략시킨다. 이에 프랑은 8월 21일, 제1차 마른 전투에서 공세를 가하지만 패배한다. 슐리펜 계획을 성공시킨 독일 제국은 브레타뉴-루아르 공세를 개시한다. 이후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 제국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이 제국 동부를 유린하자, 군대의 3할을 동부 전선으로 재배치하고, 9월 11일, 브레타뉴를 점령하면서 공세를 중단한다.(서부 전선의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