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 (승리의 왕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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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승리의 왕관)|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불가리아(승리의 왕관)|불가리아 차르국]]의 확장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승리의 왕관)|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불가리아(승리의 왕관)|불가리아 차르국]]의 확장
|이유 = [[마케도니아 전쟁(승리의 왕관)|제2차 발칸 전쟁]]의 후폭풍
|이유 = [[마케도니아 전쟁(승리의 왕관)|제2차 발칸 전쟁]]의 후폭풍
|교전국1 = '''[[동맹국(승리의 왕관)|동맹국]]''' <br /> {{국기그림|도이치(승리의 왕관)}}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 <br /> {{국기그림|영국(승리의 왕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승리의 왕관)|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br /> {{국기그림|불가리아(승리의 왕관)}} [[불가리아(승리의 왕관)|불가리아]] <br /> {{국기그림|알바니아(승리의 왕관)}}[[알바니아(승리의 왕관)|알바니아 왕국]]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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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동맹국(승리의 왕관)|…기타 동맹국]]</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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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합계: 23,351,54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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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6월 19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의 [[부다페스트(승리의 왕관)|부다페스크]]에서 [[자유 운가르(승리의 왕관)|자유 운가르]] 주도의 봉기가 발생한다. 봉기군은 '실질적인 독립'을 요구한다. 그러나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6월 24일부터 [[운가르(승리의 왕관)|운가르]]의 전역에서 봉기가 발생한다. 이들은 '실질적인 독립'이 목표인 경우도 있었으나, '전쟁세금'과 '강제징집'에 불만을 품고 봉기를 일으킨 자들이 더 많았다. 결국 7월 1일이 되자 [[[슬로바키아(승리의 왕관)|슬로바키아 지역]]을 제외한 모든 [[운가르(승리의 왕관)|운가르 지방]]에서 봉기가 발생했다. 이후 [[자유 운가른(승리의 왕관)|자유 운가르]]는 1914년 7월 19일, [[운가르(승리의 왕관)|운가르 왕국]]의 독립을 선포한다. [[자유 운가른(승리의 왕관)|자유 운가르군]]은 봉기에 가담하지 않았던 [[슬로바키아(승리의 왕관)|슬로바키아 지역]]을 침공해 합병한다. [[운가르(승리의 왕관)|운가르]]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의 [[운가르족(승리의 왕관)|운가르족]]들 중 봉기에 찬성하는 자들은 군내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은 순식간에 통제가 무너진다. 결국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은 [[협상국(승리의 왕관)|협상국]]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1914년 6월 19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의 [[부다페스트(승리의 왕관)|부다페스크]]에서 [[자유 운가르(승리의 왕관)|자유 운가르]] 주도의 봉기가 발생한다. 봉기군은 '실질적인 독립'을 요구한다. 그러나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6월 24일부터 [[운가르(승리의 왕관)|운가르]]의 전역에서 봉기가 발생한다. 이들은 '실질적인 독립'이 목표인 경우도 있었으나, '전쟁세금'과 '강제징집'에 불만을 품고 봉기를 일으킨 자들이 더 많았다. 결국 7월 1일이 되자 [[[슬로바키아(승리의 왕관)|슬로바키아 지역]]을 제외한 모든 [[운가르(승리의 왕관)|운가르 지방]]에서 봉기가 발생했다. 이후 [[자유 운가른(승리의 왕관)|자유 운가르]]는 1914년 7월 19일, [[운가르(승리의 왕관)|운가르 왕국]]의 독립을 선포한다. [[자유 운가른(승리의 왕관)|자유 운가르군]]은 봉기에 가담하지 않았던 [[슬로바키아(승리의 왕관)|슬로바키아 지역]]을 침공해 합병한다. [[운가르(승리의 왕관)|운가르]]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의 [[운가르족(승리의 왕관)|운가르족]]들 중 봉기에 찬성하는 자들은 군내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은 순식간에 통제가 무너진다. 결국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승리의 왕관)|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은 [[협상국(승리의 왕관)|협상국]]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아시아 전구====
{{본문|아시아 태평양 전구 (제1차 세계 대전)(승리의 왕관)}}
1914년 4월 5일,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은 [[시암 왕국(승리의 왕관)|시암 왕국]]과 [[도이치-시암 조약]]을 체결한다. 그 내용은 [[시암 왕국(승리의 왕관)|시암]]이 전쟁에 참가한다면 [[프랑령 인도차이나(승리의 왕관)|프랑령 인도차이나]]의 땅 일부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곧 [[시암 왕국(승리의 왕관)|시암 왕국]]]은 이 [[도이치-시암 조약(승리의 왕관)|도이치-시암 조약]]에 따라 동원령을 내렸고, 1914년 4월 24일,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에 선전포고한다. 그러자 [[러시아 제국(승리의 왕관)|러시아 제국]]은 [[시암 왕국(승리의 왕관)|시암 왕국]]에게 선전포고한다.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의 지원을 받은 [[시암 왕국(승리의 왕관)|시암 왕국]]은 순식간에 [[프랑조시체 인도차이나(승리의 왕관)|프랑조시체 인도차이나]]를 점령한다.
1914년 5월 2일, [[프랑조시체 인도차이나(승리의 왕관)|프랑조시체 인도차이나]]가 항복하자,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은 [[시암 왕국(승리의 왕관)|시암 왕국]]에게 [[라오스(승리의 왕관)|라오스]] 일부와 [[캄보디아(승리의 왕관)|캄보디아]]를 준다. 이후 5월 11일,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은 [[북양정부(승리의 왕관)|중국]]의 [[하이난 섬(승리의 왕관)|하이난 섬]]을 점령한다. 그러자 5월 14일, [[북양정부(승리의 왕관)|북양정부]]는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에게 선전포고한다.
====아프리카 전구====
{{본문|아프리카 전구 (제1차 세계 대전)(승리의 왕관)}}
전쟁의 첫 충돌로는 아프리카에서 [[크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브리튼]],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의 식민지 사이의 충돌이었다. 1913년 7얼 7일, [[도이체 제국(승리의 왕관)|도이체 제국]]은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의 [[프랑조시체 토고(승리의 왕관)|토고]]와 [[프랑조시체 가봉(승리의 왕관)|가봉]]을 공격한다. 7월 12일,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은 [[앵글로-이집트 수단(승리의 왕관)|앵글로-이집트 수단]]을 공격한다. 전쟁 동안 아프리카에서는 [[동맹국(승리의 왕관)|동맹국]]의 일방적인 공격이 개시되었고, [[프랑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프랑]]과 [[이탈리아 왕국(승리의 왕관)|이탈리아 왕국]]이 항복하면서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은 거의 끝이 난다.


[[분류:승리의 왕관]]
[[분류:승리의 왕관]]

2019년 7월 2일 (화) 17:06 판

제1차 세계 대전(World War I 또는 WWI)는 1913년 7월 3일부터 1917년 월 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쟁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세계 대전(World War) 또는 대전(Great War)이라 불렸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약 1천만명의 병사가 전사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사상자가 가장 많았던 전쟁 중 하나이며, 수많은 정치적 변화를 일으켰다.

제1차 세계 대전
세계 대전의 일부

제1차 세계 대전의 진행 상황
날짜1913년 7월 3일 ~ 1917년 월 일
장소전세계
결과

동맹국의 승리

교전국

동맹국
도이치 (승리의 왕관) 도이체 제국
브리튼 (승리의 왕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불가리아 (승리의 왕관) 불가리아
알바니아 (승리의 왕관)알바니아 왕국
타일랜드 (승리의 왕관) 시암 왕국
…기타 동맹국


공동교전국

운가르 (승리의 왕관) 자유 운가르
아라비아 (승리의 왕관) 네지드 토후국
이란 (승리의 왕관) 카자르 왕조

협상국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프랑 식민 제국
러시아 (승리의 왕관) 러시아 제국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 (승리의 왕관)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오스만 제국 (승리의 왕관) 오스만 제국
니혼 (승리의 왕관)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 (승리의 왕관) 이탈리아 왕국
세르비아 (승리의 왕관) 세르비아 제1왕국
몬테네그로 (승리의 왕관) 몬테네그로 제1왕국
벨기에 (승리의 왕관) 벨기엔 제1왕국
그리스 (승리의 왕관) 그리스 제1왕국
루마니아 (승리의 왕관) 루마니아 제1왕국
아메리카 (승리의 왕관) 미국
중국(승리의 왕관) 중화민국

…기타 협상국
지휘관

동맹국 지휘관
도이치 (승리의 왕관) 빌헬름 2세
도이치 (승리의 왕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도이치 (승리의 왕관) 에리히 루덴도르프
도이치 (승리의 왕관) 에리히 폰 팔켄하이
도이치 (승리의 왕관) 헬무트 폰 몰트케
브리튼 (승리의 왕관) 조지 5세
브리튼 (승리의 왕관) 허버트 키치너
브리튼 (승리의 왕관)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브리튼 (승리의 왕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불가리아 (승리의 왕관) 페르디난드 1세
불가리아 (승리의 왕관) 니콜라 제코프
알바니아 (승리의 왕관) 윌리엄 1세

...기타 동맹국 지휘관

협상국의 지휘관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레몽 푸앵카레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필리프 페탱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페르디낭 포슈
러시아 (승리의 왕관) 니콜라이 2세
러시아 (승리의 왕관) 니콜라우스 니콜레비치
러시아 (승리의 왕관)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 (승리의 왕관) 프란츠 요제프 1세 (1914~1916)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 (승리의 왕관) 카를 1세 (1916~1918)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 (승리의 왕관) 프란츠 폰 회첸도르프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 (승리의 왕관) 아르츠 폰 스트라우센부르크
오스만 제국 (승리의 왕관) 메흐메트 5세
오스만 제국 (승리의 왕관) 엔베르 파샤
오스만 제국 (승리의 왕관) 탈라트 파샤
오스만 제국 (승리의 왕관) 아흐메드 제말
오스만 제국 (승리의 왕관) 무스타파 케말
니혼 (승리의 왕관) 다이쇼 천황
니혼 (승리의 왕관) 오쿠마 시게노부
니혼 (승리의 왕관) 데라우치 마사타케
이탈리아 왕국 (승리의 왕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탈리아 왕국 (승리의 왕관) 비토리오 오를란도
이탈리아 왕국 (승리의 왕관) 루이지 카도르나
이탈리아 왕국 (승리의 왕관) 안토니오 사란드라
그리스 (승리의 왕관) 요르요스 1세
그리스 (승리의 왕관)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루마니아 (승리의 왕관) 페르디난드 1세
루마니아 (승리의 왕관) 콘스탄틴프레자
아메리카 (승리의 왕관) 우드로 윌슨
아메리카 (승리의 왕관) 토머스 마셜
아메리카 (승리의 왕관) 존 조지프 퍼싱
중국(승리의 왕관) 리위안훙
중국(승리의 왕관) 돤치루이
중국(승리의 왕관) 펑궈장

...기타 협상국 지휘관
병력

도이치 (승리의 왕관) 13,250,000명
브리튼 (승리의 왕관) 8,841,541명
불가리아 (승리의 왕관) 1,200,000명
알바니아 (승리의 왕관) 60,000명

총 합계: 23,351,541명

러시아 (승리의 왕관) 12,000,000명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8,660,000명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 (승리의 왕관) 7,800,000명
이탈리아 왕국 5,615,140명
아메리카 (승리의 왕관) 4,743,826명
오스만 제국 (승리의 왕관) 2,998,321명
루마니아 (승리의 왕관) 1,234,000명
니혼 (승리의 왕관) 800,000명
세르비아 (승리의 왕관) 707,343명
벨기에 (승리의 왕관) 380,000명
그리스 (승리의 왕관) 250,000명

총 합계: 44,916,630명

틀:전역 상자 제1차 세계 대전(승리의 왕관) 이 전쟁은 세계를 두 세력으로 나눈 강대국들의 전쟁이다. 한쪽은 대영제국도이체 제국영-도 동맹이 중심이 되는 동맹국이며, 다른 한쪽은 프랑 식민 제국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3국 협상이 중심이 되는 협상국이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제국주의때문이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제2차 발칸전쟁(마케도니아 전쟁)이다. 1913년 7월 1일, 러시아 제국제2차 발칸전쟁으로 발칸 반도에 영향력을 펼치는 것에 못마땅했던 영-도 동맹러시아 제국에게 발칸 반도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보낸 최후통첩을 러시아 제국이 무시하면서 벌어졌다.

결국 1913년 7월 2일, 영-도 동맹러시아 제국에게 선전포고 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다른 3국 협상국에게도 선전포고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됬다. 러시아 제국이 무장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거라 예상한 도이체 제국영국에게 동부를 맡기고, 대부분의 병력으로 룩셈부르크벨기엔을 공격하여 점령한뒤, 파리까지 점령한다. 그러나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 제국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이 공세를 개시해 공세를 중단한다. 이후 전선은 고착화 되었으며,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내부의 운가르 인들이 봉기를 일으킨다. 1915년 말, 미국이 참전한다.

1916년, 러시아 제국은 혁명으로 인해 무너졌으며, 러시아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하다 결국 나르바 조약을 체결한다. 이후 1916년 말, 춘계 공세로 국토 대다수를 빼앗긴 프랑 제3공화국은 결국 무너지고, 1917년에는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세르비아, 오스만 제국, 미국이 항복함으로써 전쟁은 끝이 난다.

전쟁이 끝나면서 프랑러시아 제국,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은 해체되고 만다. 패전국들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은 모두 동맹국이 가져갔으며, 운가른을 제외한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러시아 제국에선 여러 국가들이 독립한다. 또한 도이체 제국 본토도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의 지역 몇몇을 합병해 확장하였다. 그러나 패전국들은 영토의 상실과 배상금으로 인해 분노가 쌓였고, 이것이 폭발하게 된 것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배경

정치 및 군사적 동맹

19세기 유럽 강대국들은 유럽 전역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 결과 1900년에는 복잡한 정치, 군사적 동맹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도이체 제국은 한때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러시아 제국과의 삼제 동맹을 체결했으나, 러시아 제국발칸 정책에 불만을 품은 도이체 제국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삼제 동맹을 탈퇴하여 독-외 동맹을 결성한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차이로 인해 이 동맹은 무산된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군사 동맹 지도. 3국 협상은 파란색, 3국 동맹은 회색으로 나타냈다.

이런 도이체 제국을 본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하 영국)러시아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도이체 제국킬 군항에서 상호불가침 조 및 반 러시아 동맹, 해군 군축 조약을 체결한다(킬 조약. 이에 대해 프랑영국도이체 제국에 맞서 프-러 협상을 체결함과 동시에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프-외 협상을 체결한다. 곧 러시아 제국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과의 러-외 협상을 체결한다. 그리고 이를 본 영-도 동맹이탈리아 왕국과의 동맹을 체결하여 유럽은 3국 협상3국 동맹으로 나뉘어진다.

서막

발칸 반도의 분쟁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한 이후 1908년부터 1909년까지 보스니아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에 세르비아 왕국러시아 제국은 분노한다. 그러자 프랑는 과거 체결한 프-러 동맹프-외 동맹을 명분으로 중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3국 협상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위해 도이체 제국영국이 중제에 개입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중제국들은 제1차 발칸 동맹국들에게 지원을 해주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결국 제1차 발칸 전쟁은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은 발칸 동맹이 승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불가리아세르비아, 그리스 사이에서 마케도니아를 두고 갈등이 발생했고, 이에 여러 나라들은 중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제국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화되었고,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이 발발한다. 이에 3국 협상들은 세르비아가 주축이 된 제2차 발칸 동맹에게 지원을 개시했고, 영-도 동맹불가리아에게 지원을 개시한다.

러시아의 잔류

1913년 6월 30일, 중제국들은 협의하에 발칸 반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되었다. 6월 31일에 프랑,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도이체 제국, 영국이 철수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철수하면서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러시아 제국에게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은 요구를 무시했고, 이에 도이체 제국러시아 제국에게 최후통첩을 보낸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은 이를 또 거절하였고, 결국 1913년 7월 2일, 영-도 동맹러시아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전쟁의 진행 과정

개전

슐리펜 계획

1913년 7월 11일, 도이체 제국슐리펜 계획을 실시하기 위해 벨기엔에게 군사통행권을 요구한다. 그러나 벨기엔은 이를 거절했고, 프랑의 동일한 요구 또한 거절했다. 이에 도이체 제국은 7월 19일, 벨기엔과 근처의 룩셈부르크를 침공한다. 8월 1일, 벨기엔의 국토 전체가 도이체 제국에게 함략된다. 이후 도이체 제국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8월 17일, 러시아 제국이 동부를 공격하고 있는 사이 프랑의 수도, 파리를 함략시킨다. 이에 프랑은 8월 21일, 제1차 마른 전투에서 공세를 가하지만 패배한다. 슐리펜 계획을 성공시킨 도이체 제국브레타뉴-루아르 공세를 개시한다. 이후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 제국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이 제국 동부를 유린하자, 군대의 3할을 동부 전선으로 재배치하고, 9월 11일, 브레타뉴를 점령하면서 공세를 중단한다.(서부 전선의 후회)

전쟁 초기 동부 전선

1913년 8월 29일, 러시아 제국동프로이센 공세가 개시된다. 러시아 제국의 군대는 동부의 영국의 군대를 격파하고 동프로이센 지역을 점령한다. 이후 9월 3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 또한 바이에른 공세를 개시해 바이에른작센을 점령한다.

그러자 도이체 제국서부 전선의 군대의 3할과 징집한 신병으로 이들에게서 맞섰고, 결국 러시아 제국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의 공세는 종료된다. 이후 1913년 12월 25일, 재정비를 완료한 도이체 제국영국은 각각 작센 공세바르샤바 공세를 개시한다(크리스마스 공세). 공세는 3개월 동안 지속되어 1914년 2월, 종료된다. 크리스마스 공세로 인해 영-도 동맹군은 빼앗긴 지역을 모두 되찾았고,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보헤미아, 티롤, 찰츠부르크를, 러시아 제국폴란드, 카우나스를 점령한다.

마케도니아 공세

1914년 1월 3일, 알바니아 왕국동맹국에 가입한다. 그리고 다음날, 알바니아는 총동원령을 내렸고, 이에 1914년 1월 7일, 몬테네그로 왕국알바니아를 침략한다. 전쟁 초반, 알바니아 왕국은 북부 지방을 몬테네그로 왕국세르비아 왕국에게 빼앗겼지만, 1월 11일, 세르비아의 군대 일부가 알바니아로 향하자, 불가리아 왕국마케도니아 공세를 개시한다. 재정비에 성공한 불가리아 왕국군은 파죽지세로 마케도니아 지방을 점령했다. 이에 알바니아도 반격을 개시해 몬테네그로 왕국세르비아 왕국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마케도니아 공세는 2월 5일에 종료되었으며, 알바니아-불가리아군은 마케도니아에 방어선을 구축한다.

운가르 봉기

1914년 3월, 도이체 제국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운가르족 독립운동을 이끌던 자유 운가른과 접촉한다. 이후 그들은 운가르에서 봉기가 발생한다면 동맹국이 지원을 해 줄것이며, 독립까지 보장한다는 운가르 협약도이체-운가른 밀서로 맺는다.

1914년 6월 19일,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부다페스크에서 자유 운가르 주도의 봉기가 발생한다. 봉기군은 '실질적인 독립'을 요구한다. 그러나 외스터라이히-운가른 제국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6월 24일부터 운가르의 전역에서 봉기가 발생한다. 이들은 '실질적인 독립'이 목표인 경우도 있었으나, '전쟁세금'과 '강제징집'에 불만을 품고 봉기를 일으킨 자들이 더 많았다. 결국 7월 1일이 되자 [[[슬로바키아(승리의 왕관)|슬로바키아 지역]]을 제외한 모든 운가르 지방에서 봉기가 발생했다. 이후 자유 운가르는 1914년 7월 19일, 운가르 왕국의 독립을 선포한다. 자유 운가르군은 봉기에 가담하지 않았던 슬로바키아 지역을 침공해 합병한다. 운가르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운가르족들 중 봉기에 찬성하는 자들은 군내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은 순식간에 통제가 무너진다. 결국 외스터라이히-운가른 군협상국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아시아 전구

1914년 4월 5일, 도이체 제국시암 왕국도이치-시암 조약을 체결한다. 그 내용은 시암이 전쟁에 참가한다면 프랑령 인도차이나의 땅 일부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곧 시암 왕국]은 이 도이치-시암 조약에 따라 동원령을 내렸고, 1914년 4월 24일, 프랑에 선전포고한다. 그러자 러시아 제국시암 왕국에게 선전포고한다. 도이체 제국의 지원을 받은 시암 왕국은 순식간에 프랑조시체 인도차이나를 점령한다.

1914년 5월 2일, 프랑조시체 인도차이나가 항복하자, 도이체 제국시암 왕국에게 라오스 일부와 캄보디아를 준다. 이후 5월 11일, 도이체 제국중국하이난 섬을 점령한다. 그러자 5월 14일, 북양정부도이체 제국에게 선전포고한다.

아프리카 전구

전쟁의 첫 충돌로는 아프리카에서 브리튼, 도이체 제국, 프랑의 식민지 사이의 충돌이었다. 1913년 7얼 7일, 도이체 제국프랑토고가봉을 공격한다. 7월 12일, 프랑앵글로-이집트 수단을 공격한다. 전쟁 동안 아프리카에서는 동맹국의 일방적인 공격이 개시되었고, 프랑이탈리아 왕국이 항복하면서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은 거의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