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의 내용은 특정 집단이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으나, 서술 전반이 켈트 드루이드의 관점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이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 가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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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묘목을 생장시키는 드루이드 |
개요
주술(Draíocht)[1]은 자연과 초자연의 힘을 빌려 현실에 작용을 일으키는 기술이자, 세계의 보이지 않는 흐름에 말을 걸고 응답받는 일종의 관계적 작동 체계이다. 주술은 사물과 언어, 상징과 생명, 시간과 감정에 깃든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통해 사람의 삶과 운명, 공동체의 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구성된다. 그 본질은 세계의 힘을 '정복'하거나 '변형'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을 이해하고 접근하며 조율하는 데 있다. 주술은 항상 외부의 힘에 대한 존중과 요청, 그리고 그 대가에 대한 자각을 전제로 하며, 이로 인해 단순한 기능적 수단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실천의 차원을 지닌다.
주술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엄밀한 체계를 가진 분과 학문이 아니라, 기억과 전통, 상징과 감응, 계절과 축제력에 기반한 유동적 지식 체계이다. 그러나 실천 양상에서는 말과 이름, 문자의 힘을 통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주술, 식물·광물·동물 등을 매개로 생명력과 질병, 정화 등을 다루는 주술, 현실 지각을 조작하거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주술, 절기와 천체의 주기를 통해 특정한 시기를 고정하는 주술, 일정한 행위나 조건을 위반할 경우 작동하는 주술, 요정이나 신적 존재와 접속하여 그 힘을 빌리는 주술 등 일정한 범주로 나누어 설명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들은 엄밀히 나뉘어있지 않고 조합되어 사용되며, 주술의 효과는 사용자의 숙련도, 기아스, 정합성 등에 따라 달라진다.
주술은 외형상으로는 마법이나 신비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으나, 그 철학과 작동 원리에서 뚜렷한 차이를 가진다. 마법이란 세계를 구성하는 마나의 흐름을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능동적으로 변형하는 기술이며, 신비는 신의 의지에 의해 일방적으로 발현되는 절대적인 힘이다. 이에 비해 주술은 세계의 흐름과 접속하여 그것을 존중하고 조율하는 기술이며, 변화는 흐름 안에서의 설득과 의례를 통해 이루어진다. 주술은 변형보다는 중재를, 지배보다는 설득을 지향한다.
이러한 주술은 말 그대로 사람과 세계가 맺는 가장 오래된 관계 방식 중 하나다. 주술은 세계와의 계약이며, 자연과 시간, 존재와 상징 사이에 숨겨진 질서를 해석하고 조심스럽게 현실에 반영하려는 노력이다. 주술은 그 어떤 힘보다도 정돈되고 의미 있는 변화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주술은 힘을 다루는 수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태도이며, 그러한 책임에서부터 비로소 비롯되는 흐름이다.
상징
트리스켈리온 (Trísceallóin) |
주술의 상징은 세 개의 나선형 곡선이 중심을 향해 회전하는 형상을 지닌 트리스켈리온(Triskelion) 이다. 이 오래 된 상징은 주술이라는 힘의 본질과 순환적, 유기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각각의 나선은 자연, 사람, 신이라는 세 가지 체계를 나타내며, 이 세 가지는 주술적 세계관에서 세상과 사람, 신성한 존재가 상호작용하는 근본 구조를 이루고 있다.
트리스켈리온은 끊임없는 운동과 상호 관계 속에서 힘이 발현되는 흐름을 표현한다. 주술이란 특정한 형식이나 도구에 의존하기보다, 자연과 신비, 조상, 신령과의 교감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되고 해석되어야 하는 살아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나선은 외부 세계의 현상에서 내부의 깨달음으로, 다시 그것이 외부로 작용하는 '들숨-통찰-날숨'의 사이클을 나타내며, 이는 주술 행위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 도형은 또한 시간성을 담고 있다. 중심을 향해 돌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코 도달하지 않는 이 형상은 주술의 세계가 완결된 공식이 아닌, 끝없이 이어지는 해석과 체험의 흐름임을 나타낸다. 주술 사용자들은 자연이나 영혼의 신호를 읽고, 그 흐름에 몸을 싣되, 결코 그것을 인위적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트리스켈리온은 그러한 유동성과 조화를 동시에 담은 상징으로, 주술이 형이상학적 순환 속에 드리워진 신성과 실천의 다리를 놓는 기술임을 나타낸다.
많은 주술 사용자들은 트리스켈리온을 명상이나 기아스 의식, 예언적 꿈을 불러오는 주술의 초점으로 사용하며, 그것을 새긴 목재판이나 부적은 신성한 기억과 흐름을 붙잡기 위한 도구로 간주된다. 따라서 트리스켈리온을 통하여, 주술이라는 힘이 곧 사람과 세계를 잇는 살아 있는 대화라는 것이 드러난다.
역사
주술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주술은 언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을 수도 있고, 최초의 인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순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늘과 바람, 숲과 강, 별과 동물, 자연의 모든 요소와 교감하려는 욕구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단지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주술은 그러한 교감의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에 말을 걸고, 자연의 반응을 읽고, 그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행위가 점차 축적되어 주술이라는 형식이 되었으며, 이 점에서 주술은 마법이나 신비보다도 오래된 초자연적 기술로 여겨진다.
켈트계 전설에 따르면 주술은 다누 신족(Tuatha dé Danann) 이전부터 이미 신과 사람의 세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힘은 신들과 요정[2]들에 의해 먼저 사용되었고, 이후 그들과 가까운 자리에 있던 몇몇 선견자 인간들 역시 주술을 다루기 시작했다. 신의 시대가 저물고 사람의 시대가 도래하자, 이 힘을 다루는 인간들은 '드루이드'(Draoi)라 불리게 되었다[3]. 인간 드루이드들은 신들이 떠난 뒤에도 자연과 소통하며,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적인 작용으로 바꾸는 주술적 연구를 지속했다. 이들은 주술의 발동뿐 아니라, 그것이 발휘되는 방식, 사용 후의 잔류 흔적, 다시 자연으로 환원되는 경로 등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흐름을 '주술 흐름'이라 불렀고, 이를 추적하고 이해하는 것을 자신들의 책무로 삼았다.
그러나 주술 세계를 둘러싼 외부 환경은 점차 변해갔다. 라틴인들이 유럽 대륙에 패권을 확립하면서 켈트인들은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고,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히베르니아 같은 지역에만 드루이드의 전통이 잔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늑대인간과 밤피르는 자체적으로 고유한 주술을 발전시켜 왔으며, 인어들 역시 주술을 익히고 계승하며, 인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 흐름을 보존해 나갔다.
시간이 흐르며 주술은 각 계열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간 세계에서는 게르만 문화권을 중심으로 마법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마법은 마나의 흐름을 분석하고 구조화하여 변형하는 기술로, 보다 즉각적이고 공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드루이드들이 보기에 마법은 지나치게 도구적이었다. 마법사들은 힘을 조율하기보다는 휘두르려 했고, 그로 인해 주술 흐름의 균형이 무너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이 차이는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를 넘어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철학의 충돌이었으며, 결국 드루이드들과 마법사들 사이에는 깊은 갈등이 싹텄다. 그 갈등이 정치적 충돌로 이어졌는지, 혹은 정치적 대립이 주술과 마법의 대결로 비화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인간 사회에서 주술은 점차 세계 질서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한편 늑대인간 사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주술의 위기를 맞았다. 원래 자연과 감각에 깊이 연관된 이들의 주술은 혈통과 공동체 전통을 통해 전승되었으나, 인간 세력의 팽창과 그에 따른 사냥, 격리, 은폐로 인해 공동체의 지속성이 무너지며 점점 쇠약해졌다. 전승이 끊긴 부족도 적지 않았고, 일부는 마법이나 신비에 밀려 주술을 폐기한 채 생존을 택하기도 했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밤피르에서 나타났다. 15세기 말, 이른바 '밤피르 절멸 사건(Evenimentul Extincției Vampirilor)'으로 인해 이들과 함께 그들만의 고유한 주술 체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밤피르 주술은 어둠과 시간, 피와 기억을 매개로 한 특수한 의례 체계였으며, 그 심오함과 위험성 때문에 외부에서는 제대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절멸 이후 남겨진 문헌은 거의 없으며, 소수의 기록자들과 추적자들에 의해 단편적으로만 복원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주술은 인간 세계뿐 아니라 사람의 다양한 아종들에게서도 각기 다른 도전에 직면하며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침잠이었다. 주술은 외부의 억압이나 내부의 붕괴로 표면에서 모습을 감추었을 뿐, 각 세계의 균열 속에서 여전히 은밀하게 살아남고 있었다. 주술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드루이드 대평의회 연맹'이라는 느슨한 연합체를 통해, 늑대인간들 사회에서는 늑대인간 자체의 전통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곳에 흩어진 드루이드 평의회와 늑대인간 공동체는 여전히 고대적 주기를 따르며, 주술적 질서를 연구하고 계승한다.
오늘날 마법이나 신비에 비하면 그 세는 많이 줄어들었고, 주술의 작용을 이해하거나 존중하는 이들도 과거에 비해 적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술은 자연과 신에 대한 사람의 오래된 질문에서 비롯된 힘이며, 세계의 숨겨진 언어에 귀 기울이려는 오랜 전통이다. 주술은 기능이 아니라 기억이며, 순환이며, 질서에 대한 경외이다. 그것은 한때 세계를 움직였던 가장 오래된 힘이고, 지금도 조용히 세계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주술은 쇠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구조적 특징
주술은 마법처럼 고도로 체계화된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해진 공식이나 분과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대신 보다 유동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주술은 상징과 감응, 기억과 전통, 언어와 감각을 조합하는 행위이며, 그 조합 방식은 드루이드 개인의 이해와 삶의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동일한 힘을 두고도 그것을 호출하는 방식, 사용하는 방식, 봉인하거나 환원하는 방식은 사용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이것이 주술을 개별적 실천으로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술에는 일정한 기초가 존재한다. 드루이드들은 누구나 약초학과 식물학, 오검 문자(Ogham)에 대한 이해, 환영과 언령에 대한 통찰, 그리고 신성함과 저주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지식을 학습한다. 이러한 기초 소양은 주술을 구성하는 기본 재료와 같아서, 드루이드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술을 해석하고 응용한다. 예컨대 어떤 이는 식물의 독성과 향기를 이용해 감정과 기억에 작용하는 주술을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오검 문자의 배열을 통해 결계를 형성하거나 감각을 전이시키는 의식을 구성하기도 한다.
주술은 곧 조합의 예술이다. 그것은 기본 요소들 즉 언어, 기호, 약초, 감정, 시간, 의도를 직관과 경험을 통해 결합시킴으로써 비가시적인 흐름을 가시화하는 기술이며, 드루이드들은 이러한 조합 속에서 자신만의 주술을 개척해 나간다. 이와 같이, 주술은 분과보다 맥락에, 이론보다 감응에, 체계보다 질서의 흐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바로 이 유동성과 개별성이야말로 주술이 지닌 가장 핵심적인 구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주술의 발현 원리와 조건
주술은 단순한 암기나 기계적 반복으로 발현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신,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와 감응을 조율하는 행위이며, 그만큼 높은 수준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주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며, 이때 '세계'란 눈에 보이는 지형과 기후뿐 아니라 그 안에서 흐르는 생명, 이야기, 신성, 감정의 층위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조율은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무엇이 본래의 흐름이고, 무엇이 억지스러운 변형인지, 어떤 방향이 자연스럽고 어떤 의도가 거스르는지를 분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주술은 올바르게 작동한다.
이러한 이유로, 드루이드는 환경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철학자이자 문학가여야 한다. 그들은 지구와 식생, 날씨와 별의 주기, 동물의 습성과 광물의 성질을 익히는 한편, 신화와 전설, 시와 노래, 금기와 예언, 사람의 심성과 기억의 작동에 대해서도 꿰뚫어야 한다. 드루이드는 한 명의 개인이자 동시에 하나의 문화 체계이며, 그 교육은 때로 한 세기 가까이 걸린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전수할 수 없기에, 드루이드들은 수명을 연장하는 주술을 먼저 개발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드루이드는 수 세기에 이르는 삶을 누린다. 대드루이드들 가운데에는 1000세까지 살아간 인물들도 존재하며,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신화로 간주된다.
그러나 주술이란 드루이드로서의 교육과정을 완전히 수료한 뒤에야 발현할 수 있는는 것은 아니다. 이해의 깊이에 따라 주술의 효율과 범위가 달라질 뿐, 기본적인 주술은 일정 수준의 학습과 집중을 통해 발현이 가능하다. 교육 과정에 있는 초급 드루이드들도 간단한 주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실전적 숙련은 대부분 이 단계에서부터 축적된다.
주술의 작동은 본질적으로 '의지'와 '조율'의 결합에 있다. 세계에 얽힌 주술의 실타래를 감지하고, 그것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풀어내며 짜넣는 과정은 집중력과 감응력, 그리고 강렬한 마음의 작동을 요구한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낯설고 벅차며, 마치 꿀로 가득 찬 수영장에서 버둥거리는 듯한 느낌을 동반한다. 그러나 점차 훈련이 쌓이면, 드루이드는 주술 흐름을 굳이 '찾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경지에 이르면 주술은 더 이상 복잡한 의식이나 언어, 준비 동작 없이도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마음속에 품은 뜻이 그대로 자연에 반영되고, 상징의 조율만으로도 세계가 응답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숙련된 주술은 마법이나 신비보다도 더 빠르고 섬세하게 세상을 움직인다. 그것은 손이 닿기 전에 꽃잎이 피는 것과 같으며, 말을 하기 전에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와 같다. 주술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흐름을 누구보다 잘 듣고, 그것에 가장 정확히 화답할 수 있는 자만이 쓸 수 있는 언어다.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자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
정형 주술과 고유 주술
정형 주술
드루이드 주술은 본래 각 개인의 감응과 이해에 따라 구성되는 고유한 기술이지만, 모든 드루이드가 긴 세월을 들여 자신만의 주술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직 입문 단계에 있는 미숙한 드루이드들이나, 고유 주술의 체계에 접근하기 어려운 외부인이 주술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드루이드 학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와 실전 기록을 바탕으로 일정한 형식을 갖춘 주술 체계를 개발하였다. 이를 '정형 주술(Draíocht Fhoirmiúil)'이라 부른다.
정형 주술은 고유 주술과는 달리 구조가 고정되어 있다. 사용되는 오검 문자, 주술적 의식의 순서, 힘을 빌려오는 대상, 그리고 주술이 일으키는 효과까지가 마치 수식처럼 정해져 있어, 일정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누구든 동일한 방식으로 이를 발현할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숙련도와 감응력에 따라 강도나 안정성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 '실패하지 않는 주술'로서의 신뢰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교육과 실무, 응급 대응, 집단 의례 등 다양한 상황에서 널리 활용된다.
정형 주술의 장점은 명확하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효율적인 주술 발현이 가능하며, 상호간의 소통과 재현이 쉽다. 그러나 동시에 정형 주술은 주술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세계와의 조율, 감응의 정밀성, 드루이드 개인의 고유한 흐름을 다 담아낼 수는 없다. 따라서 정형 주술은 어디까지나 주술의 언어를 배우는 문법이자 공통 기도문에 가까우며, 진정한 주술의 깊이는 결국 고유 주술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형 주술은 드루이드 전통을 유지하고 보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오늘날에도 각 대평의회와 학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형 주술을 개발하고 표준화해 나가고 있다.
고유 주술
모든 드루이드는 교육의 초기 단계에서 다양한 정형 주술을 실습하며 주술이라는 힘의 구조를 체득하게 된다. 이들은 반복과 실험을 통해 주술의 발현 조건, 범위, 지속 시간, 그리고 소멸 방식에 대한 감각을 몸으로 익히며, 각기 다른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화될 수 있는지를 배운다. 그러나 드루이드 교육의 진정한 핵심은 정형 주술의 반복이 아니라, 그를 통해 자신에게만 맞는 길을 발견해 나가는 데 있다. 교육이 깊어질수록 드루이드 지망자들은 자신들의 재능과 흥미, 영혼의 울림, 그리고 스승으로부터 전해받은 가르침들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마주하게 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 주술(Draíocht Dhúchasach)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고유 주술은 특정한 형식이나 규격 없이, 드루이드 개인의 이해와 성향, 세계관에 따라 자율적으로 구성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혈통에 깃든 요정적 감응을 기반으로 언령과 문자의 힘을 결합하고, 어떤 이들은 의학적 소양과 죽음의 인식을 바탕으로 균류나 약초의 주술을 다듬는다. 누군가는 세상의 인과를 실처럼 짜내는 직조의 형식으로 시간과 운명을 다루며, 또 다른 이는 신의 힘을 빌려 공간을 접고 천 리를 한 호흡에 달린다. 물, 금속, 대지, 열기, 냉기, 불꽃, 별빛, 그림자, 바람, 죽음, 재생, 망각, 상전이 등, 고유 주술은 그 수만큼의 형태와 깊이를 지니며, 그것을 창조한 드루이드의 삶과 운명 전체를 반영한다.
이러한 고유 주술은 세계와 개별 드루이드 사이에 형성된 독자적인 관계의 결과물이다. 각 드루이드는 고유 주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주신과의 계약을 심화시킨다. 또한 고유 주술은 그 드루이드가 세계와 맺은 첫 번째 해석이자 서사이며, 이후의 각 드루이드의 모든 개인적 의례와 활동은 이 고유 주술을 바탕으로 변형되고 확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드루이드에게 있어 고유 주술이란 단순히 특화 마법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존재의 방식이다.
고유 주술을 정립하는 과정은 길고 고독한 여정이지만, 이를 완성한 드루이드는 마침내 자기만의 언어로 세계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른 자는 더 이상 세계의 흐름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는 흐름 위에 자신의 고유한 선율을 얹고, 흐름과 함께 노래하며 그것을 조율할 수 있다. 고유 주술은 그렇게 세계의 고요한 틈을 꿰뚫는 낮은 목소리처럼 발현되며, 정형 주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섬세함, 정합성을 가지고 세상에 작용한다.
정형 주술과 고유 주술의 경계
상술했듯, 고유 주술은 드루이드가 자신의 내면과 감응, 학습과 직관, 기아스와 주신 계약을 종합하여 만들어낸 독자적 주술 체계다. 정형 주술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해진 절차와 효과를 갖추고 있는 데 반해, 고유 주술은 그것을 창조한 드루이드 한 사람의 세계관과 삶 전체가 투영된 실천적 언어에 가깝다. 그것은 학문이라기보다 하나의 노래이자 기억이며, 세계와의 단일한 계약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유 주술은 충분히 정교하게 구축되었을 경우 그 자체로 하나의 정형 주술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완결성과 체계를 갖추기도 한다. 다만 고유 주술은 애초에 누구에게 가르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므로, 그 작동 원리나 조건, 수행 방식이 외부자에게는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어떤 고유 주술은 언어 하나로 작동하고, 어떤 것은 특정한 밤의 기온과 습도, 의복과 심리 상태에 따라 작동하며, 또 어떤 것은 특정한 혈통이나 기억, 과거의 맹약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발동 방식의 편차가 극단적으로 크기 때문에, 고유 주술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거나 계열화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며, '유사한 주술'은 수 없이 많이 존재하더라도 '완전히 동일한 주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 주술이 전수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드루이드는 제자에게 자신의 주술을 물려주기도 하고, 어떤 학회나 가문은 고유 주술을 수 세대에 걸쳐 보존·전승하기도 한다. 드루이드 간에 자발적으로 주술을 공유하고, 뜻이 맞는 제자가 그 본질을 온전히 흡수해내는 경우, 해당 고유 주술은 이제 '오직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의 주술'이 된다. 이러한 주술은 특정 가문이나 학파 내에서 공동의 유산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전승이 끊긴 주술을 후세대가 고문서와 기록을 바탕으로 복각해내는 사례도 있다. 드물지만 어떤 드루이드는 자신의 고유 주술을 완전히 개방하여, 그것을 후세 교육과 실천의 바탕으로 삼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경우, 그 주술은 점차 많은 이들이 익히고 사용하게 되며, 결국 공통의 체계를 갖추고 정형 주술로 편입되기도 한다.
이처럼 고유 주술과 정형 주술은 반드시 엄격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펙트럼의 양 끝에 위치해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개인의 감응에서 시작된 주술이 수련과 전승을 거쳐 보편적 도구가 되고, 반대로 정형 주술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조합과 변형을 통해 새로운 고유 주술이 탄생하는 일도 있다.
주술 흐름의 폭주
주술이 실패하는 원인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기아스를 어긴 채 무리하게 의식을 진행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감응 대상이 일시적으로 봉쇄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단순히 집중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량이 부족해서 일어난 실패는 대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은 수류탄을 던졌는데 불발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실망스럽기는 해도 치명적이진 않다. 진짜 위험은 반대편에 있다. 너무 과도했기에 실패하는 경우, 곧 주술 흐름의 폭주(Sárú Srutha Draíochta)가 발생하는 것이다.
주술은 세계와의 조율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이 조율은 흐름에 대한 감응을 통해 이루어지며, 드루이드는 항상 흐름의 저항이나 굴절, 불균형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훈련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 경계를 시험하고, 흐름이 터지기 직전의 한계까지 주술을 몰아붙인다. 마치 풍선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한계에 가까워질수록 주술의 힘은 팽창하고 팽창하다 결국 폭주하게 된다. 작은 주술의 폭주는 흔적만 남기고 끝날 수 있지만, 대드루이드 중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자랑하는 이의 주술이 폭주하면 그것은 곧 재앙이 된다. 그 드루이드의 신체는 물론이고, 감응하고 있던 자연, 정령, 기운, 심지어 공간 자체가 비틀려 파열될 수 있다. 드루이드가 그대로 증발하거나, 반쯤 소멸된 채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주술 발현의 구조상 드루이드는 흐름을 직접 느끼고 조율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폭주로 향하는 과부하 상태를 미리 감지하고 중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드루이드는 그 한계선을 넘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동하며, 한계를 넘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금기로 여긴다. 그러나 일부 드루이드들은 의도적으로 그 위험을 이용한다. 극한까지 주술을 과열시켜, 마치 풍선이 터지기 직전의 팽창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강력한 효과를 얻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일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매우 위험하며 각 대평의회에서는 징계 사유, 심각하게는 무기징역의 사유로 간주된다.
그만큼 주술 흐름의 폭주는 역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건이다. 실제로 폭주가 발생하면 그것은 반드시 기록된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례는 켈트-게르만 전쟁 당시, 에린 대평의회의 아르드리 에이레 트라너(Eiire Treana)와 알라퍼 대평의회의 리알라펀 아오단 타스갈(Aodhàn Tasgall)이 유도한 이중 폭주이다. 두 대평의회장은 전황의 절망적인 흐름을 돌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쳐 주술 흐름을 폭주시켰고, 그 결과 거대한 재앙과도 같은 힘이 터져 나와 전장을 갈아엎었다. 이후 그 주술 폭발의 위력은 전후 세계의 질서마저 바꾼 계기로 남았다.
보다 어두운 사례도 있다. 켈트 세계가 전쟁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시절, 일부 집단은 이 폭주 현상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주술로 전환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1569년, 에린 대평의회 8대 대평의회장 리나 와니스티르(Rionach Mhainistir)의 전사다. 그녀는 데스몬드 반란을 지원하던 중 색슨 마법사 측의 주술 역류 함정에 걸려, 몸의 절반이 사라지는 치명상을 입고 즉사했다. 당시에는 색슨계 마법의 특수 기술로 여겨졌지만, 훗날 밝혀진 바로는 색슨에 투항한 드루이드 집단이 폭주 유도 주술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주술은 대상자가 주술을 사용하는 순간 그 흐름을 외부에서 비틀고 과열시켜, 강제적으로 폭주 상태에 이르게 하는 기술이었다.
또한 이러한 폭주가 반드시 인간 드루이드의 전유물은 아니다. 주술 흐름의 폭주란, 주술적 에너지의 흐름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되며, 주술 대상이나 시전자, 주변 세계 전체에까지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은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하지만, 드물게 대규모 집단 주술이 동시다발적으로 겹쳤을 때, 세계적 재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집단적 폭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476년경 발라히아에서 일어난 '밤피르 절멸 사건(Evenimentul Extincției Vampirilor)'이다. 오스만 제국의 침공에 맞서 마지막 방어선을 펼쳤던 블라드 3세 가시공과 그를 따르던 복수에 찬 밤피르 민중 수십만 명이 절망과 분노 속에서 동시에 밤피라 주술을 사용하며, 통제 불가능한 주술 공명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주변의 모든 밤피르들이 자신도 모르게 주술에 휘말려 강제로 밤피라화 되었다. 이 사건은 밤피르 아종의 생물학적 멸종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밤피르라는 아종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역사 속 존재로 남게 되었다.
이 같은 사건들은 주술이 결코 무한한 힘이 아니며, 감정과 욕망에 휘둘릴 경우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로 전해진다. 주술이 사람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된 힘이라면, 그 관계가 무너질 때 주술도 또한 파멸로 이끄는 칼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드루이드, 혹은 스스로를 드루이드라 부르지 않는 주술 사용자들에게 있어 진정한 숙련이란 많은 힘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언제 멈추고 어떻게 조율할지를 아는 지혜에 있는 것이다.
세 가지 힘 간 비교
세 가지 힘 비교 표 | |||||||||
자의적 통제 | 재현 가능성 | 학습과 훈련을 통한 습득 | 도구나 형식의 필요 | 초월적 존재의 개입 | 발현자의 대표적 명칭 | ||||
마법 |
○ | ○ | ○ | ○ | ✕ | 마법사 | |||
주술 |
○ | ○ | ○ | △ | △ | 드루이드 | |||
신비 |
✕ | ✕ | ✕ | △ | ○ | 랍비, 사제, 이맘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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