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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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민족작가로 분류되는 박청(朴淸)이 세르쿠스 공국 시절 쓴 고전 소설 유사전에서 언급되는 '남서'가 키타이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사전은 남서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대표적인 민족작가로 분류되는 박청(朴淸)이 세르쿠스 공국 시절 쓴 고전 소설 유사전에서 언급되는 '남서'가 키타이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사전은 남서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인용문1|向南ᄋᆡ 南嶼ㅣ 이스니 北으란 島馬고 南으란 大竺이라. 宥士ᅵ 南嶼ㅅ 王 보ᅀᆞᄫᅳ니 南北도곤 말ᄊᆞ미 다ᄅᆞ다.
{{인용문1|向南ᄋᆡ 南嶼ㅣ 이스니 北으란 島馬고 南으란 大竺이라. 宥士ᅵ 南嶼ㅅ 王 보ᅀᆞᄫᅳ니 南北도곤 말ᄊᆞ미 다ᄅᆞ다.
남쪽에 남서가 있으니 북쪽으론 도버이고 남쪽으론 대축[* 현재의 죠스바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유사가 남서의 왕을 뵈었는데, 남북과 언어가 다르더라.
남쪽에 남서가 있으니 북쪽으론 도버이고 남쪽으론 대축<ref>현 죠스바 지역을 이르는 말</ref>이다. 유사가 남서의 왕을 뵈었는데, 남북과 언어가 다르더라.
|유사전(宥士傳) 中}}  
|유사전(宥士傳) 中}}  



2023년 11월 19일 (일) 19:24 판

개요

키타이의 예상위치

키타이는 도버 남쪽에 존재했다고 알려지는 전설적인 대륙이다. 오랜 시간동안 전설로만 여겨져온 이야기였으나, 일각에서는 재야 사학계를 중심으로 키타이가 실존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많이 나오고 있다. 키타이가 전설 속 내용처럼 도버 섬에 필적하는 크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열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키타이의 존재를 시사하는 문헌 기록은 다음과 같다.

키타이 실존설의 증거

유사전(宥士傳)의 남서(南嶼)

대표적인 민족작가로 분류되는 박청(朴淸)이 세르쿠스 공국 시절 쓴 고전 소설 유사전에서 언급되는 '남서'가 키타이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사전은 남서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向南ᄋᆡ 南嶼ㅣ 이스니 北으란 島馬고 南으란 大竺이라. 宥士ᅵ 南嶼ㅅ 王 보ᅀᆞᄫᅳ니 南北도곤 말ᄊᆞ미 다ᄅᆞ다.

남쪽에 남서가 있으니 북쪽으론 도버이고 남쪽으론 대축[1]이다. 유사가 남서의 왕을 뵈었는데, 남북과 언어가 다르더라.


유사전(宥士傳) 中

반박

유사전은 소설이기에 가상의 공간을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그렇다면 왜 굳이 도버와 죠스바 사이를 선택했는지를 알 수 없다.

동이사 (東吏史)의 서술

세르쿠스 제국 시절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서 동이사에는 이런 서술이 있다.

起泰對島馬戰也. 此島皇宣斷水斷食, 其期卽三年也.

島馬之神牙馬聽其請, 起泰沈也.

키타이가 도버와 전쟁을 하고, 이에 도버의 황제가 단수와 단식을 선포하니, 그 기간이 3년이더라.
도버의 신 아마테라스가 그 청을 들었으니, 키타이가 침몰되더라.
동이사(東吏史) 中

반박

하지만 동이사 자체가 사실만을 담은 역사서가 아닌 야사집에 가깝고, 그 내용도 꽤나 비현실적이기에 "오래 전부터 내려져온 키타이의 전설을 그대로 실은 것 아니냐"라는 주장이 있다.
키타이 실존설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키타이의 침몰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없었다면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신을 동원한 야사가 존재할 수 없다"라며 팽팽히 반박하고 있다.

  1. 현 죠스바 지역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