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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결과 = 러시아 제국의 몰락, 동유럽 대혼란, 슬라브 대분열 사태 초래, 소비에트 인민공화국 수립 ...그리스군과 불가리아군은 패퇴를 거듭했고, 1919년 6월 24일 제2차 코스탄티니예 공방전, 1919년 7월 13일 테살로니키 공세 작전, 1919년 8월 30일 제2차 플로브디프 공방전을 통해 그리스와 불가리아의 세력을 크게 축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동부에서도 이란군과 ...
    32 KB (200 단어) - 2024년 3월 2일 (토) 23:51
  • ...[제6 합중병단]]의 지휘관이었던 [[우쥔성]]과 [[대한제국 의용군]](大韓帝國義勇軍)을 이끌던 [[민영환]](閔泳煥)과의 독자적인 작전 수립을 통해 [[시베리아 출병]](西伯利亚出兵)에 나서면서 [[사할린]](樺太)과 [[바이칼 호]](贝加尔湖) 일대에 대한 영향력을 행 ...[복드 칸국]]을 잇는 교통 교두보의 역할을 행하는 등 합중국 내에서 경제적으로 상당한 융성을 자랑했다. 1930년대 [[봉천당]]의 몰락 이후에는 [[계운제]]를 위시한 근왕 [[장쉐량 내각|파시즘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수많은 나라를 침략하는 [[제국주의]]적 식민제국 ...
    43 KB (258 단어) - 2019년 3월 14일 (목) 20:16
  • 비록 지식과 능력의 차이로 인해 판크라티온에서도 몰락 시민들이 지배층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토지를 통해 세습되는 다른 도시국가의 시민계급과 달리, 판크라티온 시 공략에 투입된 병력은 대부분 용병이었다. 마그니우스는 용병들에게 급여의 절반을 선불로 지급하고, 남은 절반은 작전 후 후불로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본국의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용병에게 선불을 지급할 수 없었고, 이 상황에서 용병대의 지휘관이 자유 ...
    51 KB (72 단어) - 2022년 6월 2일 (목) 00:01
  • ...가서야 인류의 존속과 문명의 파괴에 패전국, 승전국 할 것 없이 전쟁으로 살아남은 이들을 모두 루베르 레이지로 피난 계획, '엑소더스 작전'을 실행하기로 한다. 센트럼 연방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일란트 코퍼레이션]]의 몰락 전후로 크게 바뀐다. 밑에 서술된 특징들은 센트럼 연방의 중심이자 대도시가 밀집되어있는 유니언 아일랜드에 많이 적용되는 설정이다. 다른 ...
    54 KB (631 단어) - 2024년 5월 6일 (월) 17:49
  • 여하간 나하추를 항복시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북원 정권을 몰락 시키려 했을 정도니, 당시 명나라는 군사적, 외교적 행보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판이었다. 또한 명나라는 더 이상 고려가 다른 나라와 ...지원과 요서 공략의 난점이라는 명분은 있었으나, 엄연히 왕명을 거역한 입장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우왕은 실제로 지원군에 대하여 회유 작전 또한 시도하고 있었기에, 싸움이 생각만큼 쉽게 끝나지 않고 길어진다면 지원군은 분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의 무시무시한 ...
    52 KB (89 단어) - 2018년 5월 16일 (수)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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