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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한국군의 패배, 남부 주둔 한국군 철수, 거문도 조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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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에르난데즈 전쟁은, 대한민국과 스페인 사이의  에르난데즈(진도) 영유권을 찾기 위해 일어났던 전쟁으로 2년 10개월 동안 진행되었던 전쟁이다. 대한민국은 이 전쟁에서 패배하였으며 앞으로 2131년까지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
== 배경 ==
진도(에르난데즈)는 1898년 [[미서전쟁]]에서 패배하여 [[쿠바]]와 [[필리핀]]을 빼앗긴 스페인이 대한제국으로 부터 구입한 땅이였다. 진도(에르난데즈)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렇게 자연스러히 스페인어를 익히게 되었고, 스페인인들의 이주 또한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1910년 [[대한제국]]이 한일병합으로 멸망했을 때도 진도만은 스페인 영토로 규정되어 합병되지 않았다. 한편 [[조선총독부]]에서 토지 조사 사업을 시작하면서 부터, 본토에 있는 민중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독립운동가들 또한 진도로 많이 건너갔었는데. 인세진<ref>1890~1972 [[대한민국 임시정부]] 에르난데즈 지부를 담당하였던 독립운동가였으며. 독립운동가들 중 특이한 케이스로 '''형무소에 갇힌 적이 없다.''' </ref>등 독립운동의 주요 인사들이 많이 활동하였다. 그렇기에 이것이 눈엣가시였던 조선총독부는 1929년 에르난데즈 주 정부에게 부탁하였으나. 돌아온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인용문|'''에르난데즈는 평화의 장소다. 누굴 잡아가려는건 용납할수없다.'''_ 호세 루옹(에르난데즈 8대 주지사}}

2020년 8월 27일 (목) 11:46 판

1차 에르난데즈 전쟁

오른스트 전투 당시 폐허가 된 건물.
날짜2032년 3월 2일 ~ 2033년 12월 24일
장소에르난데즈 섬 전체, 대한민국 전라남도 남해
결과 한국군의 패배, 남부 주둔 한국군 철수, 거문도 조약 체결.
교전국

스페인 (동음이의) 스페인[1]

포르투갈 포르투갈[2]
대한민국 대한민국
지휘관

유진 마르코 초이[3]
세오타크 엘로 리
펠리페 7세
호세 압스부르고
곤살로 압스부르고
훌리오 스테파노
샤비 토레스
페르난도 보르본
미겔 고야
안토니우 데보시
메르반 코스카
루카스 마르또
카에타누 밀로시

이반느 코리부시

구유문
이종성
정채준
채병수
박수희
박수염
마진천
유도기
강도래
이만주
정중표
설중도

범세준
병력

육군 4000여명
해군 2000여명
공군 200여명
육군 20만명
해군 5만명
공군 1만명
육군 7만명
해군 2만명

공군 1만명

육군 59만명
해군 20만명
공군 3만명

해병대 2만명
피해 규모

1000여명
4만 2천명

1만 9천명
7만 1천명

개요

1차 에르난데즈 전쟁은, 대한민국과 스페인 사이의 에르난데즈(진도) 영유권을 찾기 위해 일어났던 전쟁으로 2년 10개월 동안 진행되었던 전쟁이다. 대한민국은 이 전쟁에서 패배하였으며 앞으로 2131년까지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

배경

진도(에르난데즈)는 1898년 미서전쟁에서 패배하여 쿠바필리핀을 빼앗긴 스페인이 대한제국으로 부터 구입한 땅이였다. 진도(에르난데즈)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렇게 자연스러히 스페인어를 익히게 되었고, 스페인인들의 이주 또한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1910년 대한제국이 한일병합으로 멸망했을 때도 진도만은 스페인 영토로 규정되어 합병되지 않았다. 한편 조선총독부에서 토지 조사 사업을 시작하면서 부터, 본토에 있는 민중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독립운동가들 또한 진도로 많이 건너갔었는데. 인세진[4]등 독립운동의 주요 인사들이 많이 활동하였다. 그렇기에 이것이 눈엣가시였던 조선총독부는 1929년 에르난데즈 주 정부에게 부탁하였으나. 돌아온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에르난데즈는 평화의 장소다. 누굴 잡아가려는건 용납할수없다._ 호세 루옹(에르난데즈 8대 주지사

  1. 에르난데즈군 4천여명 & 스페인군 20만
  2. 2033년 1월 1일~
  3. 스페인 에르난데즈 주지사
  4. 1890~1972 대한민국 임시정부 에르난데즈 지부를 담당하였던 독립운동가였으며. 독립운동가들 중 특이한 케이스로 형무소에 갇힌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