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의 변 (천하서사)

Sangyoon6133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4월 4일 (목) 16:50 판 (→‎배경)

개요

평안 14년 (CD: 627) 주나라의 1대 황제 유상의 죽음으로 촉발된 대규모 군사반란 및 군웅할거. 유상이 일생일대의 목표였던 중앙집권화를 이루지 못한 채 승하하며 일어난 다발적 반란 사건으로, 잠시나마 불안전했던 평화를 깨뜨리고 다시금 난세에 돌입하게 만든 사건, 그리고 천하 시리즈의 시발점이 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배경

유상 (천하)100년 전란 시기의 난을 끝내고 양 용제에게 선양을 받아 주나라를 세운 후, 또 다른 전란을 막기 위해 많은 개혁이 시도 되었다. 특히 지방 행정에 대한 거대한 개혁을 시도해 100년 전란의 원인이었던 지방 소군벌들의 난립을 차단 시키려 노력했고 양나라의 천하관을 완화시켜 주변국들의 반발보단 형식적인 편입국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유한 통치 14년의 시간은 중원 전체를 바꾸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으며, 유상도 이를 알고 있었다. 형식적인 편입국이라고 해도 중원 을 시시콜콜 노리고 있는 서쪽의 투판 (천하)과 북쪽의 기나라, 유상의 엘리트 장수들이지만 군벌평정을 명분으로 막강한 힘을 쥐고 있는 외곽의 성평사 (천하)들은 유상이 죽으면 언제든 독립할 수 있는, 사실상 독자 세력들이었으며, 후계자를 아직 정하지 못한 채로 정국을 이끄는 것은 주나라의 근간을 확실히 뒤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아가 아들 유기의 난폭한 성향과 얕은 지식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허나 유상의 나이가 채 50이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가 있는 한 성평사나 편입국의 반란은 꿈에도 못 꾸는 것이었다. 유상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군제 개혁을 통해 성평사들의 권력을 차츰차츰 줄여 나갔으며 휘하 각 성평사들의 사병 수를 천명 이하로 제한하는 등 여러 개혁을 꾸려나갔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계획을 이루어 나가던 주나라는 평안 14년 천하춘제에서 유상이 의문사로 승하하면서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타 세력 배경

물론, 유상의 개혁은 꽤나 큰 효과를 이루면서 주나라를 차츰차츰 안정화 시켜놓았지만 그 전에 있던 100년의 혼란, 그리고 전 왕조의 300년 통치기간의 유산을 14년만에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었다. 당장 일족인 유연, 유평에게 큰 권한을 주어 서쪽과 북쪽 경계선의 방위 및 통치를 시켰으며 남부는 황후 장씨와의 결혼으로 인해 복속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에 동, 서북 및 중남부 쪽의 성평사들인 동황, 진하, 요연 등의 존재는 소군벌들보다 더 큰 위협이 됐으면 됐지, 못하지 않았다. 특히 요연은 유상 시절 대장군 유연의 바로 아래 계급인 우장군직을 맡았기 때문에 사방의 크고 작은 군 세력들과 연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형식적으로 고개를 숙인 주변 편입국들의 알 수 없는 꿍꿍이 및 자체 천하관 수립 역시 완전한 개혁이라 보기 힘든 것들 이었다. 한때 동맹을 맺고 싸웠지만 속셈을 알 수 없는 북쪽의 유목국 기나라, 불과 10년 전 까지만 해도 창칼을 맞대고 있던 월종, 내란에 빠지기 직전인 천도국 등 사방의 편입국들은 사실상 형식적으로 고개를 숙일 뿐, 언제든 통일 제국을 침략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 존재들이었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편입국들은 유상의 동생인 왕후 유씨와 혼인동맹을 맺은 동쪽의 해동, 그리고 동남쪽의 운서 정도였기 때문에 편입국들에 대한 외교적 성과는 필수인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제어기라고 할 수 있던 유상의 존재가 사라졌는데다 이렇다 할 후계자는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결국 저마다의 야심을 가지고 있던 당시 권력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언제든 다시 전장터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던 것이다.

전개

강제 승계, 그리고 숙청

평안 14년 1월 20일, 제 2차 천하춘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고, 대황루에서 황궁을 청소하는 관리들을 보면서 식사를 즐기던 유상이 급작스럽게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다음날 승하하게 된다. 이에 조정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이를 지켜보던 어대사의 사마량, , , 등은 혼란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자 후계자 계승을 논하게 된다. 하지만 의논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유상의 장남이었던 유기가 어사대와의 논의 없이 주 2대 황제의 자리를 승계하기 시작하며, 아버지의 금위군을 업고 무자비한 숙청을 시작한다. 이로 인해 유상을 따랐던 많은 개국공신들이 죽어났으며, 유상의 입양아들이자 서삼성왕 유평은 목숨만 간신히 부지한 채 수도인 역양에서 탈출한다. 마찬가지로 혈통이 부족했던 유상의 서자 유한은 재상 사마량의 만류 [1]로 태비 마씨와 같이 유폐되었다.

반란의 제일 첫 조짐이 보인 것은 북쪽의 편입국이자 한때 북방 초원을 호령했던 기나라 였는데, 유목제국 답게 신속하게 기병 병력을 남쪽 경계이자 유연의 본거지인 안북성으로 보냈다. [2] 황권을 확실히 잡을 생각이었던 유기에겐 안북성을 지키고 있는 자신의 삼촌 유연을 복속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자찬하며 다음날 조회에서 황제의 친북을 선언하며 단 50기의 호위군을 이끌고 안북성으로 향한다.

지방세력의 대두, 유기의 허무한 죽음

이 와중에 도망치던 유평은 그의 충신인 이현의 도움을 받아 수도 서쪽에 있는 광정성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3] 다른 성평사들도 수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하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숙청 명령을 명분으로 군사를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또한 기나라의 움직임에 긴장한 하서, 주진, 그리고 서역의 도시들도 방어태세에 전환하며 천하는 또 한 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한 편, 호위병을 이끌고 안북성에 도착한 유기는 도착하자마자 유연의 장군들 및 신하들을 하대하며 의례도 없이 바로 유연의 왕좌에 앉아 유연을 겁박하기 시작한다. 허나 유연은 유상의 군벌 시절부터 유목민들 패면서 그를 따르던 명장 중의 명장이었으며, 그 위세는 유상에 못지 않았다.[4] 유기의 겁박은 유연에게는 단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으며 이에 당황한 유기는 호위군을 이용해 유연을 체포하려 했으나 안북성은 유연의 손에 있었으므로 그를 체포하려던 호위병들은 궁중내 잠입해있던 유연의 군사들과 유연에 의해 몰살당한다. 기강 세우려 왔다 죽을 위기에 처한 유기는 삼촌인 유연을 '대숙'이라고 까지 부르며 무릎을 꿇고 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번째 절을 올리려는 찰나 유연에게 목을 베이며 허무하게 죽는다.

수면위로 드러나는 전란의 조짐

사실 유기가 친북을 공표했을때 대다수의 왕들 및 장군들은 머지 않아 전란이 크게 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이미 100년 전란에서 같이 싸워본 전적이 있기에 유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던 장수들과 왕들은 유연이 순순히 황위를 내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이는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유연도 황제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는 천하를 자극시킬 것이라 생각해 궁궐의 보안을 한층 더 높이고 유기의 죽음이 새어나가지 않게 대비하며 주변의 성평사들을 복속시키기 시작한다.

수도인 역양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마량은 유기의 표문이 끊긴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신하들과 함께 국사를 논의하기 시작한다. 사마량은 미리 유폐시켜놓은 유한의 마지막 핏줄임을 내세워 정통성을 주장하며 유한을 새로운 황제로 등극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연, 유평, 유한 세 명의 후계자, 그리고 각각의 다른 성의 성평사들에게 줄을 서기 시작한 신하들은 아직 유기의 죽음이 확실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한을 황제로 등극시켰다가는 반역자의 죄를 뒤집어 쓸 수 있다는 핑계와 각 유연, 혹은 유평이 계승을 해야한다는 주장에 부딫혀 지지부진 해진다. 한 편, 수도에 있는 군사들은 경기부윤 겸 수도방위도사 구겸[5]이 휘어잡게 되고 급해진 사마량은 최악의 사태일 경우 몽진을 해야될 수 있다 판단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동쪽의 항구도시이자 동경인 해성부윤에게 유한의 방문의사 사절과 월종의 왕 함비선에게 4군 방위사 이양에 관한 사절을 보낸다.[6]

한 편, 광정성에 머물던 유평은 서쪽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본거지인 파도성으로 돌아왔으며,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과 이복동생 유기의 살해시도에 상심하고 있었지만, 부장이었던 이현의 진심어린 조언 및 충심을 이해하게 된다. 죽은 유기를 이어 황위에 올라야한다는 이현 및 다른 측근들의 간언을 듣고 투판의 세이센 야루에게로 찾아간다.

유연의 북쪽 성평사 복속이 시작될 무렵, 주변의 다른 거대 성평사들은 하나 둘 씩 자신의 안위를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다. 서북쪽의 동황, 동북쪽의 요연은 군사를 움직일 준비를 완벽히 채비하였으며 다른 성평사들 역시 어디서 올 지 모르는 공격에 대비해 방어력을 높이시 시작하였다. 동황은 천하가 혼란한 틈을 타 하서를 공략하여 서쪽의 교역로를 장악할 심산이었으며 요연은 그보다 더 대담하게 수도를 공략해 유한을 옹립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중남부의 옛 황족이자 현 성평사였던 진하 역시 양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좋을 때라 생각하여 군남에 사절을 보내는 등 야심을 들어내기 시작하였으며 양아들에 의해 황실에서 쫓겨난 유상의 전부인 장씨는[7] 자신의 가족이 있는 남부로 향하게 되며 약하게나마 유지되어 있던 통일 주나라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성평사들의 대두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요연이었는데, 동북에서 주둔 중이던 요연은 자신이 바로 거병하면 유연은 자신의 군사를 정비하는 한 편 물론 다른 편입국과 성평사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기에 비밀리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은주에 주둔해있던 장군 종진에게 수도로 진격해 유한을 옹립하라 명령한다.[8] 서북쪽의 동황 역시 사태를 주시하면서 기나라에게 비밀리에 동맹 사절을 보낸다. 기나라와 동맹을 맺어 유연 및 동쪽의 편입국들을 묶어놓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낸 것인데 이를 통해 하서를 손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 였다.

한편 전 황족이자 성평사였던 진하 역시 수상치 않은 정세를 관망 중이었는데 때마침 유평의 도주 소식이 전달된다. 그리고 그 도주 이유가 명백히 유기의 짓임을 깨달은 진하는 지금이 양나라를 부활시킬 기회라 생각하며 역시 세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그 쯔음에 유기의 서거 소식이 유연의 궁에서 새어나가 전 제국이 이를 알게 되며 각 지방의 성평사들은 자기 군세를 끌어모으며 홀로서기를 할지, 아니면 기존 세력으로 투항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때 각 성평사들은 물론 유평, 유한, 그리고 각지의 편입국들에 차례차례 유기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는데[9] 이를 알게 된 각지의 성평사들은 자신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도 쟁탈전

유기의 승하 소식은 수도 역양에도 전달된다. 하지만 경악스럽게도 승하소식과 동시에 장군 종진의 수도 진격 사실 역시 도달하게 되고 조정은 말그대로 패닉에 빠진다. 즉위식이고 뭐고 황제가 내일 모레면 잡히게 생겼으니 사마량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황제의 안위와 신변을 확보해야 했으며 결국 미리 짜두었던 몽진 계획을 이행한다. 사마량은 즉시 윤주에 위치한 사절에게 추가 사절을 보내 월종에 조서를 보낸다. 그리고 유한과 그를 따르는 소수의 인원을 짐짝, 마차 등에 숨겨 동문으로 행한다. 중간에 동문장과 아는 사이인 신하 때문에 곤욕을 치를 뻔 했으나 오히려 도움을 주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으며 유한과 사마량은 그대로 동진을 개시한다. 한 편, 수도권인 경주의 성평사들이 유기의 서거 소식을 듣고 하나 둘 씩 수도로 진군하기 시작한다.

요연의 부장 두위 역시 유한이 떠난지 하루만에 도착하고 바로 성 포위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한 편, 역양으로 전령을 보내 성문을 열 것을 재촉한다.

  1. 후계자가 없을때 남은 황족을 바로 죽이면 반란이 더 거세질 수 밖에 없다는 이치
  2. 허나 유연이 지키고 있는 안북성인 만큼, 기나라의 군사 이동은 주나라를 떠보기 위한 속셈으로 보인다.
  3. 수도에서 100여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적이 머물고 있는데 알지도 못한 유기가 얼마나 무능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4. 애초에 유연이 안북왕 직책을 맡은 것도 유목제국이 얼마나 유연을 두려워 하는지 알아서이다. 심지어 유연은 자신의 형인 유상에게 진심으로 충성 했으며, 이를 잘 이용했다면 유연은 유기의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5. 이미 유기의 계승때부터 요연의 사람이 된지 오래였다.
  6. 이 때 월종에게 보내는 사절을 둘로 나눠 보내는데 한 명은 바로 월종에게, 다른 한명은 월종의 경계주인 윤주에 위치한 고을에 보내 대기시킨다.
  7. 유기의 친모가 아니기에 온갖 모멸을 받으며 궁에서 쫓겨났다.
  8. 유기의 서거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았으나 북쪽의 크고 작은 성평사들과 무관들이 유연쪽으로 몰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는 확신 했으나 아직 물증이 없었기에 일단 자신이 믿는 부장에게 먼저 행동을 개시하게 한 것이다.
  9. 100년 전란부터 뛰어난 우편기술로 유명한 비달인 화대사들이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