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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3일 (수) 00: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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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The Destroyed Country: Divisions of the Korean Peninsula / 붕괴된 국가: 한반도의 분열은 Hearts of Iron IV의 대형모드인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의 설정들을 참고하여 창작한 세계관 입니다.

설정

"대륙을 집어삼킨 대한제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 초국가적 재난에 의해 모든것들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더이상,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우리는 분열된 제국의 통합을 위해서, 모든것들을 내걸고 싸워야 합니다..."

대한제국의 붕괴

과거 만주과 연해주를 넘어 전세계에 공포를 심겨준 대한제국은 1940년대부터 진행된 서-남해의 초규모 간척사업과 해저터널 건설의 강행으로 붕괴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봉황계획"이라고도 불리우는 한반도 간척사업은 수질오염과 더불어 수자원 부족으로 작물들이 말라 비틀어지고, 인간이 살기에는 극박한 환경의 황무지만이 있었으며, 제주 해저터널은 수 조원의 세금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의 붕괴로 탁상행정의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었습니다.

1970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불안한 정국과 식민지들의 독립열풍이 심화되어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졌으며, 무능한 정부와 황실의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커져갈뿐이였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구국군사위원회의 반란으로 김종필 내각은 해산, 황실은 군부의 꼭두가시가 되었으며, 식민지 국가들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1979년 12월 25일 성탄절, 제국의 국민들은 폭정을 휘두르는 군부에 대항하여 한성광장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2월 30일, 80년대로 들어가기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화의 요구는 한반도를 넘어 식민지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제국에서의 민주화 열풍이 거세져가자, 더이상 군부는 두눈 뜨고 지켜만 볼 수 없었습니다.

12월 31일, 한성광장에는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과 전차들이 들이닥쳤고...


그날, 한강은 피로 물들어갔습니다.


군부는 국민을 배신하였고,

군부는 황실을 배신하였으며,

군부는 제국을 배신하였습니다.

대화를 통한 제국의 민주화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무혈에 의한 제국의 평화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로 이루어지며,

국민은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리고...


1980년 1월 1일, 강원도에서의 혁명이 시작되니...


한반도

틀:한반도의 군벌

구 자치구역

만주

틀:만주의 군벌

연해주

봉황계획

1912년, 대한제국은 국토의 확장을 위해서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남서부 지역을 간척하여 확장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1918년에는 '봉황계획' 이라는 이름으로 구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상의 기술력 한계와 상상도 못할 만큼의 비용을 요구하여 계획은 기밀로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1930년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인류의 기술력이 급속도로 발전하자, 점차적으로 봉황계획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940년대, 비밀리에서 봉황계획을 시작하지만, 곧 환경운동가들의 반대로 큰 위기를 겪게됩니다.

명백히, 한반도 간척사업은 갯벌의 파괴와 동시에 심각한 환경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으며, 간척된 토지는 다방면에서 활용하기에는 비효율적이였습니다.

그러나 제국은 환경운동가들의 극구반대를 무릅쓰고, 계획을 강행하였습니다.

결국, 환경주의자들이 나서서 봉황계획의 중단시키려 시도하였으나 빈번히 실패로 돌아갔고, 대한제국의 간척사업은 계속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963년 2월 18일, 제국은 공식적으로 한반도 간척사업의 종식을 알렸습니다.

간척사업으로 더 많은 토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제국의 국민들은 그 간척사업의 끔직한 결과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지의 부실한 기반과 잦은 침수위기, 그저 진흙밖에 지나치지 않은 간척지는 사람이 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이후, '정부가 돈 받아 먹고 한거다'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자기들만 이익을 챙겼다' 등 한반도 간척사업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면서 이는 곧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