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1968 벨지엄 긴배

대한민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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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1대 경상남도지사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권영길
權永吉 | Kwon Young-gil
출생 1941년 11월 5일 (82세)
일본제국 야마구치현
사저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재임 기간 제20·21대 경상남도지사
1991년 1월 20일 ~ 1996년 5월 12일[1]
제13대 대통령
1997년 1월 20일 ~ 2001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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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권우현, 어머니 하영애
배우자 강지연
자녀 슬하 2남 2녀
본관 안동 권씨
학력 경남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잠학 / 학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가롤로)
소속 정당
약력 민주노총 위원장
사회민주당 부위원장
경상남도지사
대한민국 대통령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13대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상세

국민 여러분, 살림 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삶이 더 편안해지셨습니까?
제13대 대한민국 정부통령 선거 당시의 슬로건[2]

김일성 이후 최초로 나온 진보 혁신 계열의 대통령이다. 1980년대 민주노총 설립을 주도하여 대한민국 전역의 노동 운동을 이끌었으며, 이후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중앙 정치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인물난으로 인해 존립조차 위태롭던 사민당은 그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가들의 적극적인 입당을 통해 당의 역사가 180도 바뀌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권영길은 사민당의 구세주에 가까운 역할로 평가받았다.

1990년 중간선거에서 경상남도지사에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차기 대권 주자중 하나로서 여겨지기 시작했다. 당시 경상남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공화당의 조직력이 압도적인 곳이었음에도 현역 도지사인 김혁규를 꺾고 당선된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 권영길은 제13대 대한민국 정부통령 선거에서 단병호와 러닝메이트로 출마, 조봉암 이후 최초의 사민당 출신 대통령이 되었다.

비록 대통령이 된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나, 일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진보 계열 정치인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비현실적인 현실 인식이나 계파 중심주의 등의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사민당 출신 인사들에게 권영길 전 대통령은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생애

젊은 노동 운동가

민주노총의 지도자로서

경상남도지사

대통령

퇴임 이후의 삶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소속 정당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율 (득표수) 당선 여부 비고
1990 제8회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1,129,976 (49.31%) 당선 (1위) 초선
1994 제9회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 1,389,925 (57.85%) 재선
1996 제13회 대한민국 정부통령 선거 대한민국 15,739,895 (40.03%) 초선

여담

  1. 제13대 대한민국 정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
  2. 장면제4대 대한민국 정부통령 선거에서 내건 못살겠다 갈아보자와 함께 한국 정치사 역사상 최고의 슬로건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