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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의정대신
희종시대
1844-1856
역대 영의정
1대 2대 3대 4대
박규수 김좌근 유홍기 윤자승
역대 의정대신 (헌종시대)

역대 조선국 의정대신
歷代 朝鮮國 議政大臣
개화 정권
수구 정권
개화 정권
제1대
박규수(朴珪壽)
제2대
김좌근(金左根)
제3대
유홍기(劉鴻基)
김좌근
金左根
인물 정보
경은(景隱)
하옥(荷屋)
본관 안동(新安東)
시호 충익(忠翼)
재임 기간 1845년 9월 11일-1847년 6월 18일

김좌근(중국어: 金左根, 1797년~1869년)은 조선국의 의정대신을 비롯하여 주요 직책을 역임한 관료이자 희종의 외삼촌으로서 척신(戚臣)이었다. 그외에 김조순의 아들이자, 김유근의 동생이며,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남동생이다.

1825년, 아버지인 김조순의 추천으로 무품관직(無品官職)인 부수(副率)가 되었고 1834년에는 상의원 첨정(尙衣院僉正)으로 승진하여 183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41세의 나이로 진사가 되었고 1838년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부교리(副校理)와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지내고 승진하여 한성부 판윤 등에 재직하면서 순탄한 벼슬길을 걷기 시작했다.

1844년, 의정부 체제가 아문 체제로 변혁하고 삼정승제가 폐지되면서 의정대신을 필두로 한 내각 체제가 수립되자 이러한 희종의 조치에 반발하여 수구파를 구성하여 정치적으로 대항코자 했다. 1845년, 을사개혁(乙巳改革) 당시에는 사무아문(事務衙門)[1]의 당상관장(堂上官長)을 맡으면서 동도서기론에 기반한 문물 수용과 함께 왕권 강화 및 구 체계 부활을 내걸었다. 1845년 9월에 박규수가 희종과의 궁내부(宮內府) 설치 논의 끝에 내각 해산을 선언하고 퇴임하자 후임 의정대신으로 추천되어 발탁되었다.

이윽고 척신 내각(戚臣內角)이라 부르는 수구파 인물 중심의 정치 체제를 구성하였다. 김흥근(金興根), 김문근(金文根), 김수근(金洙根) 등의 안동 김씨가 내각 요직을 차지하였으며, 이들의 전횡이 극심하였다. 그러나, 1847년 6월에 희종과의 수령들의 뇌물 문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들의 전횡을 눈감아 줄 것으로 잠정 결정을 내리자 이에 노한 희종의 압박 끝에 내각 해산을 선언하였다.

이후에는 주요 요직에 발탁되는 일 없이 지방직을 떠돌다가 희종이 1856년에 숨을 거두자 실록총재관(實錄摠裁官)으로서 『희종실록』의 편찬을 주관 및 지휘하였다. 기로소(耆老所)에서 원로(元老)로 활동하던 중 1869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충익(忠翼)으로 추증되었다.

각주

  1. 근대 기구로서 부국강병 업부와 외무통상 업무에 치중하는, 개화 정책의 중심이 되는 관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