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우홀란트 자유당

동쪽의 홀란트.png

Coat of the Staten-Generaal icon.png 스타텐 헤네랄
원내 구성
연립여당
자유당 P1.png
자유당
31석·210석
Cdc-p1.png
기독민주연합
8석·35석
야당
DP-1.png
민주당
21석·143석
사회민주당-P.png
사회민주당
3석·20석
대안-1.png
대안당
2석·19석
PN-1.png
약진하는 누산타라
0석·10석
KCP-1.png
니우홀란트 공산당
0석·9석
Greon.png
녹색당
0석·5석
재적 65석·450석
좌측은 상원 의석 수, 우측은 하원 의석 수
자유당.png
자유당
Liberale Partij
약칭 자유
창당일 1817년 3월 5일
이념 보수주의
사회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스펙트럼 중도우파 ~ 우파
당색 주황색
대표 에리크 베르흐캄프
원내대표 아밀리아 데 리지아
의석
스타텐헤네랄 상원
35 / 64
스타텐헤네랄 하원
226 / 450
주지사
6 / 16

자유당(네덜란드어:liberale partij) 은 니우홀란트 연방의 집권 여당이며 민주당 과 함께 니우홀란트의 거대 양당중 하나이다. 상징색은 주황이다.

노선

보수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우파 정당이다. 하지만 군소정당을 흡수하고 여러 보수정당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극우세력에서 중도우파까지 흡수하여 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2010년 40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패배한 이후 배리 헬더 상원 의원과 아델버트 반 바타비아 상원 의원의 개혁보수운동을 통해 당원들의 차별적 발언 등 과격한 언행에 대해 제재하였다.2010년 이후 사실상 극우노선 세력은 니우홀란트를 위한 대안으로 넘어갔다. 이 시점을 기해서 자유당이 조금은 좌클릭되었다는 평가를 안팎으로 받는다.

역사

2차 세계대전 이전

제1차 자유당은 1817년니우홀란트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이주민과 근왕파가 창당한 정당이다. 창당세력이 니우홀란트 건국 초기부터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세력이라 집권여당으로 성장하였다.

자유당은 창당된 직후부터 사회, 경제 개혁을 기치로 내걸어, 네덜란드로 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국왕의 지지를 받은 자유당은 근 50년간 동인도제도 개척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연방의 영역까지 넓히게 되었으며 넓어진 영토와 자원을 바탕으로 산업화를 이뤄가기 시작하면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원주민들이 죽기도 하였으며 준노예로서 노동에 종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선거권은 백인에게만 있었기 때문에 백인 집단의 지지를 받아 1862년까지 여당으로서 집권할 수 있었다.

다만,1858년 이후에 자유당의 지지부진한 경제적,외교적 성과를 보이고, 리하르트 엥헬라트 행정부의 부정부패 및 연방총리 본인의 스캔들 같은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자유당의 지지세가 크게 약화되어 1895년까지 약 20년간 1번을 제외하고는 원내 2당의 지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자유당은 19세기 내내 개척을 통한 자원확보, 높은 임금과 높은 생산성, 1900년대 이후 부터는 남태평양제도의 식민지 확보 등을 강조하였다. 당시 자유당은 부르주아와 기독교도에게 상당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활발한 개척과 이주로 바타비아를 중심으로 국력이 성장하며, 여러 지역에 공장, 도로, 광산, 대도시들이 세워지고 일자리들이 급증하면서 국민들의 신임을 얻고 더 높은 단계의 성장을 위한 정책을 펼쳐나갔다. 19세기 연방 정부의 주도하에 철도 건설등 대규모 사업을 실시하고,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다만 외교적으로 남태평양제도를 군력으로 병합하며 제국주의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일본 점령기

1942년 2월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제국에 의해 점령당하였다. 일본은 정당통폐합명령을 내려 모든 정당을 자유당으로 통합하게 하고 인도네시아 공화국티모르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하였다. 당시 자유당 의원들은 해당 명령에 반발하여 의원직에서 사퇴하였다.

국민당 분당 사건

종전 이후 일본에 협력한 당원들의 처리 문제를 놓고 ‘부일자 전원 제명’ 과 ‘적극적 부일당원을 제외한 부일당원을 적당히 징계 내리고 다시 기회를 줘야한다.’ 로 당 내부에서 의견이 갈렸다. 또한 당시 국내에서 ‘자유당 = 부일정당‘ 이라는 이미지 여론이 형성되면서 당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 시작하였다. 이에 자유당 지도부에서 ’부일 당원 전원 제명’을 결정하자 이에 온건파 당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소극적 부일당원을 규합하여 ‘국민당’을 창당하면서 자유당은 갈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자유당은 국민당의 창당으로 3분 1 가량의 의석이 사라지면서 과반수를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