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그눔

악마와의 성전.png

레그눔(신교어r.png신교어e.png신교어g.png신교어n.png신교어u.png신교어m.png, Regnum)신교를 믿는 유일한 국가로 레그눔 섬에 위치해있다. 레그눔에는 신교의 여러파벌이 함께 연합하여 생존해 있으며, 주로 마교도 국가들의 상선을 약탈하여 그들의 군대를 키우는 중이다.

레그눔 신성 연합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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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of United Holy of Regnum
레그눔 국기.png 신교도 연합기.png
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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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상타리움
정치
공용어 신교어
렉스 레그눔 15세
역사
수보르디노 왕조의 건국 416년
 • 건국 558년
 • 기사단 창설 645년
 • 레그눔 3세 독살 651년
 • 해군 창설 723년
 • 레그눔 내전 766년 ~ 781년
 • 레그눔 13세 즉위 832년
인구
901년 어림 4,370,000명
경제
통화 레눔

역사

레그눔의 발견

PR.555년, 상타리움 레그눔의 탐험대는 레그눔 섬을 발견한다. 상타리움 레그눔은 당시 시누스 왕국의 속국이였던 수보르디노 왕조의 탐험가였고, 자연스럽게 레그눔 섬수보르디노 왕조의 영토가 된다. 허나 수보르디노 왕조는 속국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레그눔 섬의 발견을 시누스 왕국에게 알리지 않았다.

국가의 이주

레그눔 섬이 발견되고 개척자가 상타리움을 개척하고 건설한다. 이후 수보르디노 왕조메리디아누스에 재건중이던 바치카누스 성당레그눔 섬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PR.572년에 상타리움바치카누스가 설립된다.

PR.558년에는 수보르디노 왕조의 국왕을 제외하고 모든 왕실구성원들이 레그눔 섬으로 이주하여 상타리움을 개척하는데 동참하였다. 그리고 PR.574년에는 상타리움 궁이 완공되었다.

600년대

PR.581년, 수보르디노 왕조트란스미 국왕이 서거한다. 그후 수보르디노 팔마 왕자레그눔의 초대 렉스, 레그눔 1세로 즉위한다. 그러나 그는 PR.598년에 서거했다. 이후 그의 아들인 수보르디노 라미 왕자레그눔 2세로 즉위하였고, PR.613년에 완공된 서쪽 도시의 이름을 팔마로 명한다. PR.617년, 레그눔 2세레그눔 섬을 발견한 탐험가, 상타리움 레그눔을 귀족으로 임명하고 상타리움 가문에게 귀족작위를 수여한다. 상타리움 가문의 수장은 상타리움 레그눔의 손자인 상타리움 네포스 후작이 된다.

레그눔 2세는 634년에 서거하고, 레그눔 3세가 즉위한다. 레그눔 3세는 PR.638년, 디아스 교디누스 교를 모두 국교로 인정한다. 이에 디아스 교디누스 교의 반발이 있었으나, 레그눔 3세는 반대파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반발을 누그러뜨린다. 이후 PR.645년에는 디아스 교디누스 교에게 기사단을 설립할 권리를 수여한다. 이에 PR.647년, 디아스 교는 중장기병이 중심인 데이타스 기사단을 창설하고, PR.649년, 디누스 교는 경기병이 중심인 테오타스 기사단을 창설한다.

PR.651년, 레그눔 3세가 독살당한다. 이후 즉위한 레그눔 4세는 암살범을 찾기위해 많은 귀족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암살범은 찾지 못하였고, 수 많고 죄없는 귀족들만 피해를 받는다. 이후 레그눔 4세는 이 사건을 만회하기 위해 동부에 레그눔 2세의 이름을 붙인 라미를 건설한다. 그리고 PR.671년에는 북부에 처형되었던 상타리움 가문상타리움 베르베네 백작의 이름을 딴 베르베네를 건설을 개시한다. 하지만 PR.674년 그가 죽자 도시 건설은 잠시 주춤한다.

PR.674년, 레그눔 5세가 즉위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귀족들의 권력이 강했고, 때문에 레그눔 5세의 세력은 무척이나 약했다. 또한 PR.681년에는 디아스 교가 정치에 간섭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PR.684년에 베르베네가 완공된다.

PR.697년, 레그눔 6세가 즉위한다. 레그눔 6세레그눔 5세와 마찬가지로 권력이 약했고, 몸도 약했다. 결국 PR.711년, 서거한다.

700년대

PR.711년, 레그눔 7세가 즉위한다. 그는 테오타스 기사단의 기사단장은 결혼동맹을 맺은 상타리움 가문을 이용하여 궁에서 귀족들과 디아스 교를 몰아낸다. 이후 그는 PR.717년, 군대를 이용하여 상타리움 가문디아스 교를 궁에서 몰아낸다. PR.723년, 레그눔 7세는 해군을 창설하고 해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후 PR.731년, 레그눔 7세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해군의 라트로 가문은 권력을 잡기 시작한다.

PR.737년, 레그눔 8세가 즉위하였다. 그가 즉위할때에는 라트로 가문과 해군파들의 권력이 강해져서 왕권은 무척이나 악화되었었다. 이에 레그눔 8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체 PR.741년에 의문사 당한다.

레그눔 8세가 사망한뒤 라트로 가문은 자신들의 반대파던 프로스크립티오 대공을 추방하고, 포스투무스 왕자레그눔 9세로 즉위시킨다. 레그눔 9세도 해군파의 힘에 짓눌려 사치와 향략만 쫒았고, 때문에 해군파는 렉스의 방해없이 여러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를 본 레그눔 9세의 황태자, 데둑티오 황태자는 왕궁을 나와 힘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이후 해군파는 라트룸 가문의 화력파와 벨로치타스 가문의 기동파로 나뉘어져 분열이 이루어졌다.

PR.766년, 레그눔 9세가 서거한다. 그러나 화력파와 기동파는 누구를 렉스로 세울지에 대해 의견다툼이 발생하였고, 결국 궁내에서는 내분이 벌어진다. 그러자 데둑티오 전 황태자를 따르는 데쿠스 가문의 군대는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내분은 멈추지 않았고, 내전의 양상으로 흘러간다. PR.768년, 데둑티오 전 황태자상타리움 전체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였고, 이윽고 레그눔 10세로 즉위한다. 그러자 화력파와 기동파들도 자신들의 왕을 세운다. 이후 내전은 고착화되었고, 레그눔 10세는 PR.780년, 전사한다.

레그눔 10세가 전사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력파와 기동파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으나, 이들은 서로 싸우느라 힘을 뺐다. 이후 레그눔 11세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결국 PR.781년, 15년간의 내전은 해군이 궁에서 쫒겨남으로써 끝이 나게된다. 이후 레그눔 11세라트로 가문라트로 린테르공작작위를 박탈하고 자작작위로 강등시킨다. 또한 데쿠스 가문데쿠스 레포노에게 공작의 작위와 상타리움 주변의 영지를 수여한다. 이후 레그눔 11세는 내전의 피해와 해군의 부정부패에 의한 피해를 복구하는데 투자했다.

800년대

PR.811년, 레그눔 12세가 즉위한다. 레그눔 12세데쿠스 가문에게 기사단을 창설할 권리를 주었고, PR.814년, 데쿠스 가문데쿠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우구스투스 기사단을 창설한다. 또한 PR.818년에는 머스킷을 생산하고 개발하는 상타리움 무기고를 건설한다. 이에 데이타스 기사단테오타스 기사단 또한 베르베네 무기고팔메 무기고를 건설한다. 이후 이 세 기사단들은 경쟁에 돌입하였고, 가문들은 의지와 압박에 따라서 서로다른 기사단들을 지원하였다. 또한 PR.821년부터는 데이타스 기사단을 시작으로 새해 기념 훈련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 훈련은 서로의 기사단을 어필하는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PR.832년, 레그눔 13세가 즉위한다. 그는 라트로 가문의 영향력이 견제하던 포스틀리미니움 연합 해군을 렉스 휘화로 두었다. 결국 라트로 가문의 권력은 일개 가문만큼 보잘것 없어졌으며, 가문장의 작위또한 자작이여서 그들의 위에는 많은 가문이 놓이게 된다. 이후 레그눔 13세공작령 데쿠스에서 자작령 레클라위스남작령 나위클라, 교황령 바치카누스왕령 상타리움에 복속시킨다. 때문에 데쿠스 가문공작 가문중에서는 무지 적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PR.841년에는 가 오직 교황령 바치카누스만을 다스리게 하고, 궁에 대한 간섭을 할수 없게 권력을 축소시킨다. 때문에 많은 이들은 레그눔 13세레켑투스 국왕이라고도 불렀다.

PR.856년, 레그눔 14세가 즉위한다. 그는 전 렉스인 레그눔 13세의 권력을 발판으로 여러 정책들을 귀족의 방해없이 추진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공작령 데쿠스가 다른 공작 영지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작은것을 발견한 레그눔 14세는 다시 교황령 바치카누스남작령 나위클라를 수여한다. 이후 이 대가로 데쿠스 가문은 다른 공작령에 비해 더 높은 양의 세금과 더 많은 수의 병력을 지급해야했다. 레그눔 14세는 즉위 이후부터 교통망을 정비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는 라티클라우스와 동쪽 바다를 잇는 레그눔 산을 넘는 도로를 건설했다. 또한 상타리움의 수로를 정비하고 방어시설을 정비하였다.

PR.881년, 레그눔 15세가 즉위한다. 그가 즉위한년, 데쿠스 게니토르의 후계자인 데쿠스 시푸스가 암살당한다. 이후 데쿠스 게누스에 의해 레그눔 15세는 이일이 디아스 교의 일이라 판단, 곧 디아스 교의 여러 귀족들이 사형을 선고받는다. 데쿠스 시푸스의 암살로 데쿠스 게니토르는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데쿠스 가문은 혼란에 빠졌다. 공작령 데쿠스에서는 데쿠스 가문을 향해 남작령 나위클라백작령 아이기스가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이 반란은 데쿠스 시푸스의 동생이던 데쿠스 게누스가 토벌하면서 평화를 되찾는다. PR.887년엔 페르마티오 용병단이 혜성같이 등장해 전국에서 방치되던 산적들을 대부분 토벌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페르마티오 용병단아우구스투스 기사단에 고용된다. 그 모습을 본 데이타스 기사단라트로 가문라트로 용병단을 고용한다. 레그눔 15세 시기부터는 세 기사단의 권력이 궁정까지 미쳤고, 디아스 교디누스 교까지 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결국 궁은 종파와 세 기사단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년 새해에 이뤄지는 훈련은 다른 기사단에게 보여주는 것 뿐만이 아닌 권력을 유지시킬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이 목적이 되었다.

역대 렉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