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

악마와의 성전.png

신교

신교(神敎, 신교어d.png신교어i.png신교어o.png신교어s.png신교어i.png신교어t.png신교어y.png, Diosity)는 우리 세계의 하느님,즉 디오스(신교어d.png신교어i.png신교어o.png신교어s.png, Dioc)를 믿는 종교이다. 이 종교는 마교와 비슷한 종교개혁을 통해 구신교(舊神敎, 디아스 교, 신교어d.png신교어i.png신교어a.png신교어s.png, Dias)와 아교(我敎, 디누스 교, 신교어d.png신교어i.png신교어n.png신교어u.png신교어s.png, Dinus)로 나뉘어졌지만, 거대한 악인 마교에 맞서 이둘은 화합을 택하였다. 이 둘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알지 못하는 섬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레그눔을 지키며 마교 국가들의 선박을 공격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천천히 알리고 있다. 오직 레그눔만이 신교를 국교로 삼고 있다.

명칭

신교는 한자로 '神敎'로 신을 믿는 종교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오직 신교도의 입장에서 쓰는 말로, 보통은 '디오스 교(Diosity)'라고 부른다. 이때 '디오스(Dios)'는 신교의 유일신이다. 'dios'라는 말은 신교어로 '신'이라는 뜻이다.

역사

선사시대

신교는 약 MR.300년대에 알테르 지방에서 생긴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때의 기록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아서 300년이 지난 후에서나 신교의 기록이 시작된다. 신교에 관해 가장 오래된 기록은 멤브라나 기록으로 메리디아누스 왕조에 쓰여졌다. 이때 멤브라나 기록에서는 신교의 창시자는 디오스 본인이며,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신교를 전파했다는 신화가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디누스 교의 사제들은 디오스가 직접 전파한 것이 아닌 디오스가 선택한 한 여성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여성이 페르마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디누스 교는 신인 디오스를 숭배함과 동시에 페르마토라는 여성을 디오스의 사도라 칭한다. 과거 알테르 지역에서는 선사시대의 신교유적이 많이 나왔으나, 제2차 신교-마교 전쟁에서 신교가 패한후 마교들에 의해 발견되는 족족 파괴되어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고대

PR.1년 이후 멤브라나 기록에 의해 신교가 기록되었다. 이때 멤브라나 기록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져 오던 신화들을 모두 엮어서 신교어비블리아의 초안을 썻다. 이후 멤브라나 기록에 기록된 신화들은 수십여년이 지난 PR.60년대에 바치카누스에 의해 비블리아가 쓰여졌다. 그러나 이들의 비블리아를 신격화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있었다. 때문에 PR.100년에 권력을 잡은 엑스페티오 국왕비블리아에서 를 신격화하는 내용 전부를 삭제했다. 때문에 현재도 비블리아에는 를 신격화했던 조항들이 삭제되어있다. 이후 주변국가들은 메리디아누스 왕조비블리아를 맘대로 수정하는 일이 빈번하자, 제2차 신교-마교 전쟁 이후로 약해진 메리디아누스 왕조를 압박해 비블로스의 수정을 금지시킨다.

중세

PR.393년, 메리디알리스신성 논제가 게시된다. 이에 바치카누스는 혼란스러워졌다. 신성 논제를 게시한 포시티오 레포르마티오 교수를 화형시켰으나, 바치카누스에서 분열은 계속된다. 이후 PR.397년에 디누스 교가 선포되고, 안테쿠르소르 왕조시누스 왕국디누스 교를 국교로 선포한다. 결국 PR.413년, 투타멘 왕국에게 안테쿠르소르 왕조시누스 왕국이 전쟁을 선포하면서 신교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후 5개월간의 전쟁끝에 디누스 교안테쿠르소르 왕조가 승리한다. 이후 제4차 신교-마교 전쟁에서 메리디스마교에게 넘어가고 메리디알리스바치카누스디누스 교를 믿는 안테쿠르소르 왕조의 차지가 됨으로써 디아스 교의 힘은 약해졌다.

현대

제5차 신교-마교 전쟁 이후로 신교는 레그눔으로 도망쳤다. 그후 대륙에서는 마교에 의해 신교 건축물이나 유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대륙에 남아있던 소수의 신교도들은 마교의 박해를 받으며, 근근히 살아남았다. 현재까지도 대륙에는 이 소수의 신교들이 만든 지하 교회가 남아있다. 한편 레그눔에서는 제4차 신교-마교 전쟁으로 파괴된 바치카누스상타리움에 건설되었으며, 섬 곳곳에는 신교의 건축물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레그눔 3세는 PR.638년에 디아스 교디누스 교 모두를 국교로 인정함으로써 레그눔에서는 종파간의 싸움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디아스 교를 믿는 귀족들과 디누스 교를 믿는 귀족들간의 다툼이 계속되어왔고, 이 중심에는 데이타스 기사단테오타스 기사단이 있었다. 현재까지도 이들의 소리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가장 최근인 PR.881년에 디아스 교의 귀족들을 데쿠스 게니토르를 암살하는데 참여했다면서 모두 죽여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신화

종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