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봉기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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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봉기 (1989년)
제3차 세계 대전유럽 전구의 일부의 일부
Event of Oslo First shot.png
오슬로 봉기 당시 저항군참호 위치
날짜1989년 1월 8일 ~ 1989년 2월 5일
장소오슬로노르웨이 일부
결과

독일군의 승리

교전국
GETO :
우폴벤 독일 우폴벤 독일
NATO :
노르웨이 지하국 노르웨이 지하국
영국 왕립 국외 정부 영국 왕립 국외 정부
지휘관
우폴벤 독일 부르크하르트 폰 팔켄하우젠
우폴벤 독일 랄프 디트리히
우폴벤 독일 요하네스 바이스
노르웨이 지하국 욘 비르켈란
노르웨이 지하국 스테펜 온사게르
노르웨이 지하국 스톨레 이베르센
노르웨이 지하국 안드레 숄세르
영국 왕립 국외 정부 디앤드리 체임벌린
군대

우폴벤 독일 독일군

노르웨이 지하국 오슬로 저항군

영국 왕립 국외 정부 특수작전군

병력
독일:
5개 사단
1,761개의 대포
74대의 전차
67,226명의 병사

노르웨이:
4개 사단
132개의 대포
3대의 전차
79,831명의 병사
민병:
93,258명의 민병
영국:
2개 연대
90개의 대포
5,893명의 병사


전체:
5개 사단
222개의 대포
3대의 전차
178,982명의 병사
피해 규모

우폴벤 독일
12,347명 전사
32,431명 부상
4,295명 실종
전체 사상자:
49,073명 (72.997%)


민간인:
우폴벤 독일
223명 사망 및 실종
138+명 부상

노르웨이 지하국
65,336명 전사
11,374명 부상
2,631명 실종
노르웨이
62,996명 전사
24,573명 부상
3,689명 실종
영국 왕립 국외 정부
5,120명 전사
631명 부상
140명 실종
전체 사상자:
176,490명 (98.608%)


민간인:
노르웨이
152,651+명 사망 및 실종

오슬로 봉기(노르웨이어: Oslo oppstanden, 영어: Oslo uprising, 독일어: Oslo aufstand)는 제3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슬로우폴벤 독일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영국 왕립 국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노르웨이 지하국가 휘하의 오슬로 저항군이 일으킨 일제 봉기이다. 당시 영국 왕립 국외 정부, 과들루프 프랑스, 미합중국의 연합군이 우폴벤 독일의 치하에 놓은 노르웨이의 서해안에 상륙하던 것과 시기를 같이했다. 그러나 북대서양 조약군회네포스 코앞에서 독일군에 의해 진격이 저지되었고, 그 사이 독일군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폴란드 봉기군을 진압했다. 봉기를 시작한 이래 28일동안 오슬로는 독일군의 잔혹한 진압 아래 파괴되었다. 바르샤바 봉기는 제3차 세계 대전 저항운동사에서 첫 대규모 군사행동이다.

봉기는 1989년 1월 8일 시작되었다. 노르웨이 지하국북대서양 조약군오슬로로 진격중이던 것(킹피셔 작전)과 보조를 맞추어 노르웨이 전역에서 봉기를 일으키려 계획했으며, 오슬로 봉기는 이 상위 계획의 일부였다. 노르웨이 저항운동가들의 목표는 우선 첫째로 독일 점령군을 도시에서 몰아내어 독일이라는 거악에 맞서는 싸움에 힘을 보태는 것이었다. 그들은 노르웨이로 통하는 관문인 오슬로를 장악하여 적의 보급을 방해하고 지원군의 노르웨이 전역 참여를 지연시킴으로써 킹피셔 작전의 일부로써 작용되기를 기대했고 나아가 노르웨이의 해방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였다.

봉기 초기 단계에서 오슬로 저항군영국 왕립 국외 정부특수작전군은 오슬로 중심가 대부분을 점령, 해방구로 삼는 데 성공했다. 이에 호응하여 북대서양 조약군은 저항군들의 오슬로 장악 소식을 듣고 오슬로로의 진격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윽고 독일의 후방 예비군과 폴란드인 사이에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1월 15일 영국군 휘하의 제4침투연대가 바다를 통해 오슬로로 증원 되었다. 이 뿐 아니라 곳곳에서 노르웨이인들이 오슬로 봉기군에 가담했고 연합군이 가까워질수록 연합군 해군항공대와 공군으로부터 더 많은 보급품과 항공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오슬로 봉기 때 발생한 사상자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슬로 저항군 중 65,000 여명이 죽고 11,000 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노르웨이 민간인이 150,000 ~ 200,000 명 죽었으며, 대부분이 독일 공군의 폭격에 의한 희생자였다. 독일군 사상자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해서 12,000 명 이상이고 부상자는 32,000 여명이었다. 오슬로 봉기의 주도세력인 노르웨이 저항군과 지하국은 봉기 실패로 완전히 와해되었다.

배경

1988년, 공산주의 진영으로부터의 압력으로부터 무능했던 노르웨이 정부에 의해 평화적으로 노르웨이는 독일에 병합되었다. 합병 발표가 있었던 날부터 계속해서 시민들은 비폭력 시위를 하였으며, 무능한 정부 대신 노르웨이의 실질적인 정부로 노르웨이 지하정부이 수립되었고 이들에 의해 노르웨이 지하국미국에서 건국되었다. 이들은 그 아래에 무장 독립 세력을 양성하였는데 그 부대가 바로 노르웨이 저항군이다. 이들은 꾸준히 국내로 무기를 포함한 물자를 이송했으며 가끔씩은 독일 군사 창고를 급습하여 전차견인포와 같은 군병기를 탈취하였다. 또한, 이들은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연합국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독립의 기회를 노렸다.

이에 1989년, 연합군이 노르웨이 서해안에 상륙하는 킹피셔 작전 시행을 확실히 하자 이에 맞추어 눈보라 작전이란 이름의 노르웨이 전역에서의 봉기를 준비하였다. 이를 조금은 눈치 챈 독일군은 독일 북부와 덴마크, 스웨덴에 주둔 중인 여러 군대를 노르웨이의 주요도시인 베르겐오슬로 사이로 이동시켰다. 독일 해군1989년부터 해안지역에 대규모 기뢰를 매설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뿐 아니라1988년에는 80만 명이었던 노르웨이 주둔군의 수가 1989년이 되어서는 170만 명으로 증강되고 있었다.

자세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작전 시행일을 합의한 연합군은 1월 7일 킹피셔 작전으로 교두보가 확보되었을 때, 눈보라 작전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노르웨이군 총사령관인 욘 비르켈란 장군은 오슬로베르겐 그리고 스웨덴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을 중점으로 봉기를 계획하고 민병들을 조직하였다. 여기에는 지난 합병 때에 무장해제된 노르웨이군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월 7일, 오슬로에 상륙한 영국 제2침투연대를 포함하여 약 15만 명의 저항 세력이 오슬로로 모였다.

봉기 개시

1월 7일 베르겐을 처음으로하여 대규모 상륙작전인 킹피셔 작전이 시행되었다. 이후 오전 7시에 연합군은 베르겐에 교두보를 확보하였고, 30분 뒤에는 헤우게순, 스타방에르 마지막으로 오전 8시에 트론헤임을 확보함을 확인한 알렉산더 스펜서 영국 총사령관은 오전 8시 13분 욘 비르켈란 노르웨이 총사령관에 눈보라 작전 지시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북쪽의 트롬쇠스테인셰르을 시작으로 뢰로스와 같은 글롬마 강 곳곳의 도시에서 마지막으로는 오슬로릴레스트룀에서 봉기가 시작되었다. 오슬로에서 봉기가 시작된 시점은 오전 11시 30분 즈음이었다. 이로서 계획대로 독일군의 육상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에 성공하였고 북부지역은 손쉽게 도시를 점령할 수 있었다.

오슬로 저항군 15만 명 중 선봉 유격대 3만 명은 9개의 구획으로 나누어둔 활동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켜서 치안군을 수적으로 제압하였고, 본격적으로 봉기가 시작된 1월 8일에는 이미 노르웨이 왕궁, 병원, 공장, 발전소, 관공서, 요새기차역과 같은 주요 시설을 점령하였으며, 외부로 통하는 지하철 터널은 미리 준비한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막거나 바리케이트를 세웠다. 지상에서도 정오에 이르러서는 공원에는 참호들이 세워지고 도로에는 바리케이트가 즐비하게 되었다. 오슬로 중앙 기차역노르웨이 왕궁, 오슬로 시청에는 방공포대가 세워졌으며 지하철역은 지휘소로 변하였다. 오후에는 잔존한 독일 치안군이 규합하여 중앙 기차역을 공격하여 총격전이 있었고 이로 인해 치안군 50 여명과 봉기군 68명이 전사했다. 오후 9시, 영국군으로부터 공수받은 보급품을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국제공항에서 오슬로 봉기군에 보급하였다.

1월 9일, 노르웨이 저항군은 오슬로의 시가지를 완전히 요새화하였다. 이날, 도이치 국방군 사령부(MKD)는 스웨덴에 주둔 중인 67,000 여명의 후방 예비대를 오슬로로 이동시켜 포위된 독일군의 퇴로를 확보하며 빠른 지원이 가능하도록 계획했다. 연합군은 오전 9시와 11시에 각각 플롬노토덴, 리우칸의 독일 방어선을 타개하는데 성공했다. 오슬로 저항군은 1월 14일까지 오슬로와 그 광역권에서 가장 넓은 작전반경과 활동능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진압

도이치 국방군 사령부(MKD)가 예상한 일자보다는 조금 늦은 1월 14일 저녁 5시에 독일 후방 예비대 소속의 5개의 사단이 릴레스트룀에 도착했고 봉기 진압이 시작되었다. 봉기 진압 담당자였던 랄프 디트리히 장군은 최대한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를 원했으며 항공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정이 되기 직전에 릴레스트룀을 완전히 장악했다. 릴레스트룀을 장악한 뒤, 랄프 디트리히 장군은 부르크하르트 폰 팔켄하우젠 북유럽 총사령관의 오슬로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그들의 진군이 멈춘 사이, 오슬로 저항군은 마지막일지 모르는 보급품을 공항에서 가져와 릴레스트룀 북부의 다리를 건너 오슬로로 진입했다. 독일군이 릴레스트룀에 주둔한다는 것을 알게된 봉기군은 즉시 연합군에 전보를 보내었고 연합군은 항공 지원과 증원을 약속하였다.

1월 15일 새벽 6시부터 영국군 제4침투연대가 오슬로 항구에 상륙하면서 봉기군의 병력은 총 17만 여명이 되었다. 또한, 그들이 가져온 보급품은 모두 지하 시설로 옮겨져 보관되어 봉기 기간 내내 큰 도움이 되었다. 새벽 8시 독일군은 그 군대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각각 오슬로를 남부와 동부에서 압박하였다. 주요 시설이 밀집된 시가지와 가까운 남부에서는 제211기갑척탄병사단제324보병사단이 오전 10시부터 오슬로 중앙 기차역으로 공격을 가하였다. 공격이 까다로운 동쪽에서는 제178경보병사단제326보병사단, 제722후방보병사단이 정오부터 공격을 개시하였다. 정오를 살짝 넘겨 예비대로 릴레스트룀에 남겨두었던 제3263보병여단이 영국군의 공습에 큰 피해를 입었고 그들은 재편성을 위해 스웨덴으로 후퇴하여야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독일 사령부의 부르크하르트 폰 팔켄하우젠은 즉시 제1항공군의 일부를 스웨덴으로 차출하여 항공 지원을 하게하였다. 그 날이 밤에 다다를 즈음에 중앙 기차역은 독일 대포와 전차의 화력 공세에 밀렸지만, 끝끝내 자정까지 기차역을 완전히 넘겨주지 않았다. 동부에서는 봉기군의 막강한 저항에 독일군 피해가 급속히 늘어났으며 이에 경악한 사령부는 오슬로 폭격 명령을 하달하였다.

1월 16일 새벽 7시, 독일 제1항공군 소속 폭격기 8기와 전투기 23기가 오슬로 상공에서 항공 지원을 하였다. 폭탄 몇 개는 중앙 기차역 근처에 투하되며 봉기군 5명과 독일군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 외의 대부분의 공격은 동부의 주거 지역에 집중되었다. 연막을 지원받은 뒤, 독일군은 2차 공격을 감행했다. 공략이 까다로운 동부 지역에서는 연막의 도움을 받아서 봉기군의 진지 건물들로 진입하여 근접전을 진행하였다. 오전 10시까지 독일군은 중앙 기차역을 방어하던 봉기군에서 우위를 점하였고 이에 10시 18분까지 오슬로 지하철 그린란드 역에 위치한 봉기군 사령부는 즉시 중앙 기차역으로 제4침투연대를 투입하였고 이들과 함께 노르웨이 저항군 제881기갑대대를 이동시켜 독일 전차를 견제하였다. 오전 11시 제175보병대대과 제4침투연대의 호위를 받으며 제881기갑대대가 기차역 인근에 진입하였다. 이에 최전방에서 전투를 계속하던 제324보병사단 소속의 제32431보병대대는 가장 가까운 기갑부대였던 제22154기갑대대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는 동안 다른 독일군은 동부 지역의 최전방이었던 퇴위엔 역을 봉기군을 몰아내었다. 오후 3시, 미국 공중조기경보기가 적기의 오슬로 상공으로의 이동을 봉기군 사령부에 전달하였고 사령부는 즉시 대공병력을 증강시켰다. 오후 3시 14분 오슬로 상공에 진입한 적 전폭기 8기는 상공에서 영국 해군 소속 시 해리어 전투기 2기의 공격과 지상의 대공포화를 맞으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교전 10분 만에 독일 전폭기 2기와 영국 전투기 2기가 격추당했고, 13분에 마지막 시 해리어가 격추당하였다. 그들은 봉기군 상공을 배회한 뒤 오슬로 시청을 폭격하고 본부로 귀환하였다.

오슬로 중앙역 전차전

1월 16일 오후 12시 32분, 독일 제22154기갑대대 소속 레오파르트 2호 전차 8대가 제32431보병대대에 합류하면서 오슬로 중앙역은 양측 전차가 맞붙은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오전 11시부터 그 시각까지 독일 제32431보병대대는 잘 갖추어진 대보병 및 대전차 무기를 이용하여서 견제하며 큰 피해없이 비주요 지역에서 후퇴하였다. 정오에 이르러서 후퇴하던 독일군을 앞질러 기동을 시작한 노르웨이 기갑 병력에 기차역과 후퇴 지역과의 연결이 차단되며 기차역의 주요 지역을 수비하던 독일군이 포위되는 상황에 빠졌다. 그들은 기갑부대가 오기까지 봉기군의 공격에 맞서 11명의 사상자의 피해로 적 23명을 사살하고 12명에 부상을 입히는 기염을 토하였다. 12시 35분 독일의 기갑부대를 육안으로 확인한 노르웨이 기갑부대는 원거리에서 위협 사격을 실시한 뒤, 기차역 북부로 후퇴하였다. 그러는 동안 봉기군은 대전차 무기를 담당하는 제4침투연대가 엄폐물바리케이트, 건물 틈에서 대기하였다. 또한 제175보병대대는 적의 후방으로 기동하여 독일 보병과 교전을 시작했다.

18분이 지난 12시 43분에 이르러 독일군의 전차 1대가 지뢰에 피격되어 캐터필러가 파손되어 기동 불능에 빠졌다. 그럼에도 봉기군은 보병 28명이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자 봉기군 사령부는 기차역 파괴와 상관없이 화력 지원을 하라는 지령을 제25포병연대에 하달하며 오후 1시부터 봉기군의 포병이 기차역 인근에 화력 지원을 실시하였고 제171특수대대 또한 기차역에 폭약을 설치를 시작했다. 오후 1시 8분, 독일군 전차 5대는 봉기군 사령부인 그린란드 역 남부의 바리케이트에 막혀 진격이 막혔고 2대는 후방의 보병간 교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나머지 1대는 보병의 지원아래에서 캐터필러와 손상된 부분을 수리를 막 마친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노르웨이 기갑부대는 홀로 떨어진 독일군 전차와 호위 병력을 습격하여 적의 전차를 완파시키고 독일군 21명을 사살했다. 1시 22분에 이르러 후방 보병 교전에 독일 기갑부대가 지원에 나서며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제175보병대대는 중앙 기차역을 지나 후퇴하였다. 1시 34분 독일 기갑부대가 합류하기 전, 제25포병연대는 그린란드 역에서 후퇴하던 독일 전차들을 향해 대전차포를 발사하였다. 독일 기갑부대는 1시 55분 기차역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후방지역에서 집합하였다. 이 때 전투능력을 상실한 전차는 8대 중 4대였다.

오후 3시에 간단한 정비를 마친 독일 기갑부대는 4대의 전차를 이끌고 기차역으로 진입하였다. 이들을 맞이하여 노르웨이 군 3대의 전차들은 북부에 포격을 시작하였다. 적의 전차 수를 3대로 오인한 노르웨이 기갑부대의 전차장이 엄폐물에서 나와 기차역으로 진입하며 전차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는 사이 독일 보병 100 여명이 역사 내부로 공격을 감행했다. 외부에서는 노르웨이 전차가 발포한 탄환이 독일 전차의 측면에 명중했으나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보복 사격에 격파되며 봉기군은 큰 위험에 빠졌다. 독일 전차들은 기동하여 퇴로를 막고 2차 일제 포격으로 노르웨이 전차 1대를 추가로 격파하였다. 이와 동시에 노르웨이의 마지막 전차가 발포하였고 이 탄환이 독일 전차에 명중하여 유폭을 일으켰다. 이에 시야가 나빠진 독일 측은 급히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기동하였으나 노르웨이 측에서 한발 앞서 발포하였다. 행운적으로 명중하여 또 하나의 독일 전차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3시 20분 즈음에 양측 전차가 모두 발포하였고 여기서 노르웨이 전차는 엔진이 피격되어 기동 불능에 빠졌다. 대신 독일 전차 1대는 주포 발포 기능을 상실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전차의 전차장은 -독일 전차가 기동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침착함을 유지했으며 거의 동시에 포성이 울려퍼졌다. 노르웨이 전차는 대파되었고 독일 전차는 주포탑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오후 4시에 다다라서 독일군에 끝까지 저항하던 기차역 수비군에 봉기군 사령부가 후퇴를 명령했고 4시 42분 독일군의 기차역 점거와 함께 대폭발을 일으키며 중앙 기차역은 무너져내렸고, 독일군 136명이 전사했고 적어도 53명이 부상입었다. 이어서 진행된 노르웨이 측의 포격에 수리 가능한 독일군 전차들도 처참히 파괴되었다. 이를 보고받은 북유럽 독일군 사령부는 보급을 위해 비파괴 점거를 고집했던 기차역을 잃은 것에 체념하며 중장비의 무제한적인 투입과 화력 지원을 허용하고 도시 폭격을 완전히 허용하였다. 부르크하르트 폰 팔켄하우젠 총사령관은 이 날 평정심을 잃고 전선을 방문하여 랄프 디트리히 진압대장을 만나 직접 작전을 수정했고 주력부대의 투입을 결정했다.

Egal wie überlegen eine Armee ist, wenn sie nicht den Vorteil ihrer Überlegenheit nutzt, ist sie nur eine Horde von Randalierern. (제아무리 우월한 군대도 우월성에 사로잡혀 그 우위를 이용하지 않으면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는다.)

- 독일 북유럽 총사령관, 부르크하르트 폰 팔켄하우젠(Burckhardt von Falkenhausen), 1월 18일 랄프 디트리히 장군과의 회담에서.

독일군의 도시 파괴

1월 18일까지 팔켄하우젠은 제67군의 일부를 오슬로 봉기에 차출하였다. 후방 예비군보다 훨씬 신전 경험이 많았고 더 잘 무장되어 있는 정규군이 서부에 투입될 예정이었고 서부에서는 하루 동안 큰 전투없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디트리히는 팔켄하우젠의 도시 파괴 명령에 따라 새벽 6시부터 지상에서는 1,200 여문의 대포와 상공에는 70 여기의 폭격기와 180 여기의 전투기 등 모든 화력을 동원하여 도심지와 주요 저항지역에 대해 막강한 공세를 폈다. 이 공세를 막기 위해서 영국군 시 해리어 12기가 지원에 나섰지만 역부족으로 5기의 적기만을 격추하고 모두 격추되었다. 공원들과 노르웨이 왕궁, 오슬로 시청에서의 대공포화는 독일 공군과 포병들의 목표를 확실히 하였다. 오슬로 시청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노르웨이 왕궁은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큰 피해를 입었다. 공원들은 수 많은 폭격과 포격으로 참호들이 무너져 병사들이 깔리는 등 손실을 입었다. 지하 시설도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고 보급 창고 10곳 중 2곳이 포격에 파괴되었다. 독일군은 이 전투에서 총 8기의 전투기를 잃었으며 봉기군은 그보다 압도적으로 2천 여명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봉기군은 전체 탄약 보관양의 18% 이상이 파괴되고 식량의 21%를 잃었다. 지상 사령부인 오슬로 시청이 파괴되며 많은 사령관이 사망했으며 총 지휘부가 있던 그린란드 역은 균열이 생겨 스토르틴게트 역(Stortinget)으로 사령부를 이전하였다.

오전 11시까지 계속되는 포화에 압도당한 봉기군의 사기는 현저히 저하되었다. 그들이 다가올 공세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였을 때, 독일군은 사방에서 공격을 실시하였다. 전차와 장갑차를 필두로 처음 서부 지역을 공략하기 시작한 제67군은 스쾨위엔(Skøyen)에서 약간의 저항을 타개하고 뷔그뵈위(Bygdøy)의 저항군을 소탕하였다. 그보다 북쪽에서도 공격을 시작했는데 비겔란드 공원(Vigeland Park)에서 저항군 참호와 대전차포 공세를 맞이했으나 연막탄으로 시야를 방해하였고 그 사이 측면에 공격을 가하여 참호를 타개하였다. 오전 12시까지 서중부 진격군은 비겔란드 공원의 1차 진지선을 파괴했으며 호수의 동편을 제외한 지역을 소탕하였다. 오전 12시 28분에 이르러 남쪽에서 뷔그뵈위를 정리한 독일군이 비겔란드 공원의 후방에 공격을 가하며 봉기군의 서남부 방어선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이들이 더 이상 도심지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위해 프로그널(Frogner) 지역에 제10민병단을 배치하였다. 또한 비겔란드 공원 북부의 진지선에서 일부를 차출하여 민병단과 함께 노르웨이 왕국과 이어지는 새로운 방어선을 구성했다.

오후 3시에 이르러 서부에서 진격하던 독일군은 움직임을 멈추고 후방 정리에 나섰다. 동부에서는 독일 보병의 계속되는 공격에 톨소브(Torshov) 지구에 위치한 최북부 진지가 격파당했으며 소피엔베르그(Sofienberg) 지구 또한 일부가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 독일 사령관 랄프 디트리히는 다음 주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켈셀바 강(Akerselva)을 넘어야 한다고 하였다.

치열한 시가전

1월 19일부터 1월 말까지 양측은 치열한 시가전을 펼치며 많은 피를 흘렸다. 프로그널 지구에서는 민병대의 지뢰대전차 로켓을 이용하여 12대의 독일군 전차를 파괴하고 2천 여명의 독일군을 사살하였다. 그 대가로 봉기군 또한 1만 여명의 엄청난 사상자를 남겼다. 아켈셀바 강 동부에서도 치열한 시가전에 양측 합쳐 2만 여명이 전사하고 도시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1월 22일에 봉기군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중앙 기차역으로 공세를 펼쳤지만 적 전차 5대에 피해를 준 것을 제외하고는 1,260 여명을 잃는 등 손실만 입었다. 1월 24일, 서부에 배치된 제10민병단과 제8사단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회복 불가에 빠졌으며 동부에서도 아켈셀바 강까지 도달한 독일군이 봉기군 진지선의 끝을 공략하여 타게하며 1월 28일 아켈셀바 강을 넘어서 진격을 시작했다. 1월 30일까지 독일군은 추가로 공세를 펼쳐 해안 지역을 모두 수복하고 오슬로 지하철 전반을 장악했다. 봉기군은 사령부의 일부만이 소탕을 피해 살아남아서 노르웨이 왕궁으로 피하였다. 전선에서 항전하던 저항군들은 독일군에 퇴로가 당하기 전에 오슬로 북부로 후퇴를 시작하였고 그러는 동안 군대가 양분되어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봉기군의 독일 고위층 암살

봉기군은 봉기가 있는 전 기간 동안 제170특수대대가 오슬로와 그 광역권에 있던 독일 고위층이나 독일계 오슬로 이주민을 대상으로 암살을 하였다. 39 명이 암살 대상으로 암살되었으며 184 명이 폭탄 테러로 사망하였다. 이들 암살 중 67%는 봉기 첫 날에 이루어졌으며 대표적으로 암살 당한 사람은 로테르담 제1기갑 사관학교의 1대 학장이었던 펠릭스 부르크도르프와 그의 친구이자 독일 제국 기갑 사관학교의 1대 학장인 티만 룀, 독일 공업 기술 연구기관의 책임자인 가우스 자이츨러의 아들인 요하네스 엘프리데 자이츨러가 있다.

종지부

2월 1일 봉기군 사령부는 미영프 연합군이 회네포스드람멘, 아스커에서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퇴로가 차단되어 독일군에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고, 노르웨이 봉기군은 노르웨이 왕궁의 사령부를 버리고 오슬로 북부에서 살아남은 잔존군 5천 여명을 이끌고 비겔란드 공원과 오슬로 시청을 급습했다. 독일군은 이들을 1시간 만에 해안지대로 몰아붙였고 봉기군은 아케르스후스 요새칼 요한 거리에서 계속해서 저항하였다.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보급품으로 굶어가며 전투를 계속해야 했고, 2월 4일에 이르러 대부분의 봉기군은 탄약이 떨어져서 총검을 이용한 백병전을 전개해야했다. 독일군은 이러한 저항군을 상대로 해안지대에 무자비한 폭격과 포격을 한 뒤 탄압하였다.

2월 5일, 봉기군 지도자인 스톨레 이베르센 장군이 아케르스후스 요새에서 독일군의 포로로 사로잡히고 사령부 전체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봉기는 정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봉기군은 봉기 기간 동안 178,982 명의 병사들이 참여하여 98%에 달하는 176,490 여명이 사상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며, 이 과정에서 봉기군의 보호를 받은 민간인 152,000 여명이 사상하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던 부상병들 다수가 독일군의 공격을 받았다. 독일군 또한 노르웨이 민병의 강력한 저항에 투입된 67,226 명의 병사 중 72%에 달하는 49,073 명의 병사가 사상하고 74대의 전차 중 50 여대가 파괴되거나 수리 불능 상태가 되었다.

연표

전투서열

독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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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출처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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