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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왕국
Kingdomiania de Utopia
국기 국장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 모두를 위한 세계
상징
국가 미트라스여, 유토피아를 지켜주시옵소서!
국조
가시검은딱새
국목
자작나무
국화
실잔대
수호성인
유토푸스 1세
위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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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4년 유토푸스 1세가 건국
1660년 남부 대기근
1670년 유토푸스-히픈 가문 전쟁 발발
1867년 루도비코 2세 퇴위 운동 전개
1872년 제 1차 아마로트 전투 발발
1883년 다중 국가 통상 협약 채결
1901년 유토피아 제국 건국, 기존 왕정 멸망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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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아마로트(amaurot)
최대 도시
아마로트(amaurot) (35만)
면적
61,000km²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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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61,2150명(본국) / 56,129명 (식민지)
밀도
10.03 (km²당)명/km2
인종
백인 96%, 흑인 3%, 그 외 1%
민족 구성
유토피아인, 차폴라티에인,오파르인,러시아인,영국인 등
출산율
4.61명
평균 수명
71세
기대 수명
76세
공용어
유토피아어
지역어
유토피아어, 차폴라티에어, 오파르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
공용 문자
유토피아 문자
종교
국교
없음
분포
가톨릭 10%, 동방 정교 9%, 개신교 5%, 이외 종교 76%
군대
유토피아 왕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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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본섬
54개의 도시와 216개의 도시구
엔틸노바
3개의 도시와 12개의 도시구
베스탄시니아
1개의 도시와 4개의 도시구
트란톤
2개의 도시와 8개의 도시구
헤스틴바
2개의 지역관할도시와 8개의 도시구, 11개의 마을 속주령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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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왕정 국가
국가 원수 (왕)
유토푸스 15세
정부
요인
내각 의장
폴 로크
부의장
존 헤이그
국방장관
시에라 키루스
시포그란투스
베르테 카렌스
캐머럿 제나
한스 요르요스
베르테 카벨린
입법부
시포그란투스 논의회
여당
유토피아 왕실파(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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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정부 주도의 중상주의 체제
GDP
(PPP)
전체 GDP
약 2억 6950만$
1인당 GDP
385$
GDP
(명목)
전체 GDP
약 2억 8700만$
1인당 GDP
410
화폐
공식 화폐
유토피니아
ISO 4217
UTPN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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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유토푸스력
시간대
UTC +1
도량형
미터법
ccTLD
.ut
국가 코드
UTPIA
전화 코드
(전화가 보편적으로 보급되지 않아서 없다.)


개요

유토피아 왕국 (유토피아어:Kingdomiania de Utopia)는 북유럽 노르웨이해에 위치한 한 섬나라이며, 입헌군주정 왕국으로 수도는 아마로트 이다.

역사

건국

<유토피아>가 쓰여진 1516년으로부터 약 1760년 전인 기원전 244년에 건국되었다고 나타나 있다. 유토푸스 1세에 의하여 건국되었으며, 신화에 의하면 그는, 기존 유럽 대륙으로부터 연결된 유토피아 반도를 대륙과 분리하고, 섬 곳곳에 운하와 항만 시설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고서인 유토피아 고대문헌 에 따르면, 그는 기존 원주민들을 문명인으로 개화시켰으며, 섬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유토피아라고 지었다. 그는 인재 등용을 통하여 왕권의 무차별적 팽창을 방지하였으며, 이 시기 유토피아 본섬의 모든 도시가 계획되었다고 한다.

초기 유토푸스 가문 통치 시대(B.C 212~ A.C 351)

기원전 212년, 유토푸스 1세가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후계자인 유토푸스 2세가 왕위를 이었다. 유토푸스 2세~ 유토푸스 7세 시기 동안, 유토피아 왕국은 매우 평화로운 상태였다. 또한 문화적으로도 진보를 이루었는데, 우연히 표류한 로마 제국, 이집트 사람들이 유토피아에게 선진 기술을 전수해주었으며, 수도 아마로트에 중앙 수도교가 설치되는 등의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유토푸스 5세의 도로정비 사업으로 인하여 유통망이 확대되었으며, 선진 농기구 도입으로 인한 수확량이 늘어나 인구가 유토피아 왕국은 제 1차 전성기를 맞게 된다.

가문 내분(351~412)

유토푸스 7세가 후사가 없어 사망하자, 유토피아 왕국은 후계자를 정하기 위한 심사에 들어가게 된다. 유토푸스 7세가 사망할 즈음, 관련 친족 중, 누구도 유토푸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 이때부터 유토푸스의 이름은 잠시 단절된다. 결국, 왕가 사이에 로만트 1세와 카슌 간의 내분이 일어났고, 전쟁에 지친 국민들은, 로만트 1세와 카슌을 아마로트의 한 식당에 불러 협상을 하였다. 로만트 1세가 왕위에 오르는 대신, 카슌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성사되었으며, 이 협상이 이후 시포그란투스 의회의 시초가 되었다.

유토푸스 이름의 계승자(412~570)

허나 카슌은, 로만트 1세가 승하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으며, 시민 협상으로 해결된 왕위 계승권 문제가 다시 대두되는 듯 하였다. 이때, 로만트 1세의 조카인 캐슨이 자신의 이름을 유토푸스로 개명하고, 왕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하였다. 수많은 시민들의 반발이 예상되었지만, 그동안의 그의 공덕이 차츰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면서, 캐슨은 유토푸스 8세로 개명, 다시 유토푸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유토푸스 이름 계승은, 570년, 유토푸스 12세를 비롯한 왕가 일족이 배를 타다 폭풍우로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신정 정치의 시작(570~1660)

가족들을 데리고 오파르 왕국의 미쉘 1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출항했던 유토푸스 12세가, 3일 후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하여 그를 포함한 왕족 거의 대부분은 익사하였으며, 유토피아는 지속되는 왕위 계승 문제에 큰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그때, 성직자 타이그레이누스가 국민들을 통합하고, 시포그란투스 의회를 꾸준히 소집하여, 왕의 부재 속에서도 최대한 혼란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654년, 멸족한 줄 알았던 유토푸스 가문의 마지막 혈족인 아반나 3세가 발견되어 왕위에 오르니 혼란이 사라졌으며, 아반나 3세가 성직자들의 공로를 인정하면서왕위 후계자는 성직자의 바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으며, 아반나 3세 대부터 헤라트 1세까지 이어진 1100년간의 신정 정치는 우려했던 바와 달리, 유토피아 국민의 심적 안정과 국가의 올바른 통치를 지향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과의 접촉이 있었는데,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에 나오는 라파엘이 그 예시이며, 그는 영국 지식인들에게 제한적으로나마 유토피아의 존재를 알렸다.

남부 대기근(1660~1670)

1660년, 소빙하기로 인한 기온 하락은 전 세계 국가들에게 치명적인 기근을 발생하게 하였다. 특히, 북극과 밀접해 있는 유토피아의 경우, 더욱 심각했는데, 에른스팔트에 있는 농작물들이 수확되지 못한 채 모두 죽고, 아마로트는 주민들이 식량이 부족하여 일시적으로 폭도들이 즐비했었다. 수도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당시 성직자가 식인을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헤라트 1세의 아들 헤라트 2세는 로만트 1세 조카 캐슨처럼 자신도 유토푸스로 개명하겠다고 선포, 유토푸스 13세가 되었으나, 5년 후에 시민들의 원성을 사 불명예스럽게 죽고 만다.

유토푸스-히픈 가문 전쟁(1670~1672)

유토푸스 가문의 연이은 실책에 분노한 히픈 가문은, 유토푸스 왕가를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거점이였던 북부 지역을 시작으로 2년 후 당시 왕이였던 유토푸스 14세를 폐위하며 히픈 가문의 콘도비스 1세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히픈 가문의 통치(1672~1872)

콘도비스 1세가 왕위에 오른 다음, 시포그란투스 의회를 해산시키고, 식민지에게 명목상의 자치권을 주던 이전과는 달리, 총독을 임명하여 식민지를 관리하게 하였다. 또한 유토푸스 가문 왕릉들을 파해치라고 지시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식량난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유토피아 국민들은 잘못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정치보다는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게 만든 대기근의 여파로, 악행들이 묻혀졌다. 하지만, 이러한 치세도 오래가진 못하였는데, 콘도비스 3세 대에, 베스탄시니아 총독 토비 코프가 엔틸노바 앞바다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국내 불안과 식민지 통제권의 상실 위협에 시달렸다. 7일 후, 루도비코 2세가 왕이 되었지만, 각종 논란 등에 휩싸여 루도비코 2세 퇴위 운동이 전개되었고, 바로 유토푸스 15세가 왕위에 오른다.

열강의 침략(1872~1901)

한편, 1867년, 베스탄시니아를 정복했던 러시아 발틱함대 중장 미하일 타쇼노프는 본국으로 돌아간 지 5년 후인 1872년, 북방 항로 재개척을 위하여 다시 노르웨이해를 탐사하였고, 그들은 유토피아 본섬에 도착하여, 더 많은 광물들을 거래하기 위해 통상을 요구하였으나,유토피아 측에서 거절하여 제 1차 아마로트 전투가 일어나게 된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여 카벨린-미하일 조약이 채결되고, 더 많은 열강들이 유토피아를 향하여 통상을 요구하면서, 1883년, 다중 국가 통상 협약을 채결하였다. 이로 인하여 유토피아의 수많은 이권들과 자원들을 빼앗겼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영국-러시아 제국 간의 유토피아 패권 분쟁이 격화된다. 유토푸스 15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으나, 독일 공사 하인리히에게 독일의 견제를 부탁하여 잠시나마 막을 수 있었다. 이후, 유토피아는 친독 성향의 국가가 되었으며 독일의 자금 지원을 받아 수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나, 러시아가 1899년, 이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유토피아군을 공격하고, 왕궁을 점령하여, 러시아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유토푸스 15세는 1901년, 러시아로부터의 자주를 선포하며 유토피아 제국을 건국하였다.

정치

유토피아 왕실파 주도의 일당제 내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당제 내각이긴 하지만, 왕의 권력 팽창을 견제하기 위하여 시포그란투스 의회가 국가의 중요한 일이나, 상황을 결정하며, 행정 집행에 국민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한다. 유토피아는 도시마다 30세대씩 한 그룹을 이루어 대표인 '시포그란투스'를 선출하며, 왕위 계승 투표와 시장 선거에 책임을 지고 있다. 이외에도 감사원에 해당되는 트라니보루스가 있는데, 노동을 감독하는 일을 한다. 유토피아 왕국은 지방 자치 제도에 관하여 세계 최고급의 관리를 보여주며, 공직자들은 유토피아 국민의 의무 중 하나인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직책이기 때문에 매우 엄격하게 선발된다.

외교

유토피아는 그린란드 동북부 지역의 주변국들과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사절단도 유토피아 인들이 귀금속을 경멸하는 태도 때문에 매우 검소하게 차려입는다. 아네몰리우스의 사절단을 대접하는 것만 봐도, 귀금속을 매단 사절단들에게 광대라고 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다(당시 아네몰리우스 사절단들은 엘즈미어 섬 남부에 있는 관계로 유토피아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하였다.) 유토피아 이웃 나라 중 관리(대사)가 파견된 '동맹국'과 민간 관계가 활발한 '우방국'이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관계를 맺을 때 조약을 불필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유대에 따라 관계를 맺는 것으로,유대가 무시될 시 조약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냐는 가정 하에 관계를 맺는다. 허나 이러한 외교 정책을 바꾼 사건이 있는데, 제1차 아마로트 전투로, 당시 러시아 제국은 단순한 교류를 통한 유대감이 아닌 더 많은 수탈을 원하여, 무력을 통해 강제로 카벨린-미하일 조약을 채결한 것이다. 이후에도 조약 경시는 계속되었으나, 국가 멸망의 위기에 까지 다가온 유토피아는 결국 '살기 위해' 조약을 억지로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군사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 시대 기준으로 약 23,000명의 군대와 30만의 예비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쟁을 대비하여 지속적으로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으며, 전쟁이 일어날 시, 자국민들의 안위를 최상위로 여기는 유토피아 특성상 자국민이 아닌 차폴라티에 용병들을 먼저 전장에 내보내어 먼저 싸우게 하는 한편, 그 다음, 우방국들의 병력을 이용하여 싸우며, 최후의 최후까지 치닫을 땐 자국민들을 내보낸다. 허나 군대는 1670년 유토푸스-히픈 가문으로 인한 군벌화로 인하여 타락하게 되었으며, 대기근 이후의 병영 식량난은, 군대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1872년 러시아 제국과의 만남 이후, 군대를 증원, 근대식 군대로 탈바꿈 시켰으며, 당시 유토피아군의 장비들은 다음과 같다.

유토피아 군의 장비
유토피아 왕국 육군 독일 제국 게베어71 소총 13인치 박격포 미국산 케첨 슈루탄
유토피아 왕국 해군 러시아 제국산 베르단 소총 러시아산 순양함 2척 1866년 초기형 어뢰
유토피아 왕국 기병대 대영제국 리앤필드 소총(1896년 극후반부터 쓰임.) 19세기 초 세이버 국내산 바스타드 소드
유토피아 왕실 호위군 독일 제국 게베어 71 소총/대영 제국 스나이더 앤필드 영국산 암스트롱포 75mm 야포(후기)

유토피아군은 이러한 장비를 운용함으로써 차츰 근대적 군사 체계를 갖추었으며, 1901년, 유토푸스 15세의 개혁으로 인하여 유토피아 제국군으로 명칭이 변경된다.

경제

전 세계 GDP 순위로 보았을 땐, 동아시아 약소국에 비교될 만큼 매우 경제 사정이 열약하지만, 국민 경제생활 만족도는 세계 1위이다. 우선 유토피아는 국내무역과 국제무역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있으며, 국내의 경우에는 존재하는 사유 재산이 없기 때문에, 상점에 청구하면 물품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금 등의 귀금속을 경시하여, 유토피아 국민들은 사치품에 대한 욕망이 없다. 한편 국제 무역에 관해선, 유토피아 국토 자체가 금이 많이 나는 곳으로, 금 채굴을 통하여 타국과는 무역을 한다. 허나 이러한 금의 가치는, 러시아와의 통상 이후의 유토피아에서의 다량의 금 채굴로 인한 금의 가치가 하락하자, 유토피아 왕국은 국제적으로 빈곤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 화폐 개혁을 단행하여, 거류지 한정으로만 사용 가능한 유토피니아 화폐를 만들어, 금 약탈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을 막으려 하였다.

교통

유토피아 왕국은 초기 유토푸스 1세부터 시작된 항만 정비 사업으로 인하여 전국에 항만이 설치되어 매우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수도 아마로트에서는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던 중앙 도로를 통하여 유통업이 발달하였다. 또한 유토피아의 모든 도시는 모두 계획도시여서, 교통체중으로 고통받을 일이 적다.

자연

유토피아 왕국은 상당히 고위도에 위치해 있음에도, 기후는 한대 기후 치고는 온화하여 그 성질이 냉대에 가깝다. 유토피아에서도 북유럽 국가처럼 어느 곳에서나 오로라와 피오르 해안을 볼 수 있으며, 봄,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는 노르웨이 해의 해상이 막히면서, 그린란드 북부 지역을 제외한 국가들과의 무역이 상당히 어려운 상태이다.

치안

유토피아의 사회 체제가 워낙 안정된 상태이다 보니 치안에 관해서도 불안이 심화되지 않는다. 유토피아 사회가 불안해질 때는 선출된 왕이 폭정을 일삼을 때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으며, 도덕을 중시하는 특성상 범죄자는 매우 경멸받아 범죄를 저지를 시, 노예가 되며, 자유가 통제된다.

식민지

엔틸노바: 인구 24,120명, 유토피아 본섬에서 2번째로 가까운 지역이다.
트란톤: 인구 8,021명 , 유토피아 식민지 중 최대 규모의 군도 지역이다.
헤스틴바: 인구 18,270명, 유토피아 본섬에서 제일 가까운 지역이다.
베스탄시니아: 인구 5,718명, 유토피아 식민지 중에서 본섬에서 가장 멀며, 면적도 가장 적으며, 유토피아 최남단이다.

문화

교육

유토피아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매우 높다. 쾌락을 지양하고, 지적 성장을 중요시하는 풍조 탓으로, 기술 학교가 존재하며, 이론 습득 이후, 실습을 통하여, 기술이 자신에게 적합한지를 따진다. 유토피아 국민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단 6시간으로, 나머지 시간에는 공개 강좌를 통한 지적 활동을 추구한다. 또한 16세기 기준 500명 정도의 학자 계급은,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되며, 논문 연구를 통한 지식 발전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후기에는 근대식 실업 학교와, 학문 전문 학교가 새워져 이를 더욱 명확히 하였다.

언어

언어는 공용어로 유토피아어를 사용하며, 대체로 북부 지역으로 갈수록 사투리가 심한 편이다. 베스탄시니아 같은 남부 지방은 가끔 오는 바이킹의 영향으로, 일부 단어는 노르웨이, 스웨덴어랑 비슷한 경우가 많다. 문자 같은 경우는, 기존의 복잡하였던 문자 체계를 버리고, 라틴 문자를 통한 표기가 일상화되고 있다.

종교

유토피아의 국교는 없다. 이는 유토피아 건국 시기까지 넘어가는데, 당시 유토푸스 1세 치하 이전의 유토피아에서는, 종교로 인한 싸움이 지속되어 그들의 내부 결집력이 매우 약해졌고, 순식간에 유토푸스 1세는 유토피아를 정복한 이후, 종교의 관용 정책을 펼쳐, 모든 종교가 존중받게 한다. 모든 종교인들은 공통의 신인 '미트라스'를 섬기며, 종교가 다르더라도, 길만 다를 뿐이지, 신에 의한 영혼의 영생의 목적은 다 같다고 본다. 유토피아 국민들은 예배 시간이 될 때 예배당에 모이며, 교회 외관이 화려하고 웅장한 편이다. 한편,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라파엘에 의하여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순식간에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감명받아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