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땅의 모든 것은 축복을 통해 의미를 가지며, 이는 시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성이론에 지배되는 직관적인 3차원 공간과 단방향 시간 흐름인 실제 우주와 명확히 구분되는 특징으로, 이러한 특징에 따라 시공간은 각 신격이 부여한 축복이 서로 뒤엉키고 부딪히며 고차원적으로 얽혀있다.

요컨데, 공간의 의미를 넘어선 거대 개념 집합인 축복의 땅 안에 각각의 신격의 시공간이 존재하며, 그 시공간들은 개념의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 얽혀있다. 그렇기에 각 영역을 특정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서로의 시공간에 의해 분리되있으며 동시에 연결되있는 기묘한 세계다.

개념상 애벌레굴은 지하에 형성된 굴이기에, 겨울황무지 지하에 분명 애벌레굴은 존재한다. 그러나 애벌레굴을 구성하는 개념 중에 정확한 위치는커녕 겨울황무지와의 상대적 위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땅 아래 있으나 어디 있는지 특정되지 않은 애벌레굴은, 그렇기에 그 크기와 깊이에 무관하게 지하로 연결되는 그 어떤 굴도 애벌레굴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인식의 연속성이며,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리 될 수 있다. (해당 설정은 퍼시잭슨 시리즈의 다이달로스 미궁 설정과 게임 GOROGOA의 컨셉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기생숲은 꽃밭 어디더라도, 영원의호수는 거대한 물웅덩이라면 어디더라도, 고원은 높은 산중이라면 어디더라도 이어질 수 있다. 각 시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어, 다른 신의 영역으로 넘어갔다오면 오히려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르며, 어띤 영역에 들어선 곳으로 다시 빠져나가려고 한들 같은 곳으로 빠져나가리란 보장은 없다.

본래 축복을 선사받은 존재는 하나같이 그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오직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만이 시공간을 뛰어넘고 격계를 건널 수 있다. 그러나 경계를 건널 때마다, 인간은 필연적인 불안과 자기존재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고, 의심과 함께 경계를 건너는 순간 인간은 존재해선 안되는 시공간의 틈새, 허수경계로 들어서며 똬리와 부산물에 의해 결함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신의 축복에 의해 권속화가 진행되며 더이상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게 된다면, 그는 그 신의 영역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구원의 용 교단의 아룡, 피의 회랑의 갈증의 귀족 등이 있다. 그들 신을 향한 깊은 신앙과 농도 짙은 축복은 인간의 육신 뿐만 아니라 영혼과 정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본래 자유의지를 만들어내던 생명 자체를 뒤틀고 더이상 생명도 무엇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볕자리와 겨울황무지는 그 시공간을 축복하는 것이 태양과 달이라는, 같으면서 다른 이면의 신이기에 시공간의 왜곡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더이상 자유의지가 없는 후광의 성인 역시 겨울황무지를 거닐 수 있다.

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얘기가 아닌 개념적이고 정신적인 얘기에 가깝다. 애당초 나가고싶은 마음 자체가 안 들고, 나가려해도 그 방법을 알 수 없다. 인식 자체가 영역을 벗어나길 거부하게 된다.

이렇게 뒤틀린 시공간 속에서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감각과 신에 대한 믿음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