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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oat of Arms of New Hibernia.png 영어: Kingdom of Saint Kane and the Pescadores 네덜란드어: Koninkrijk der Saint Kane en de Pescadores 독일어: Königreich St. Kane und die Pescadoren 민난어: Saint Kane kap Pescadores Ông-ko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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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 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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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의 경관[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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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 왕국(영어: Kingdoom of Saint Kane and the Pescadores 킹덤 오브 세인트 케인 앤드 더 페스카도레스, 중국어: 星肯恩和澎湖王國 싱켄언허펑후왕궈), 줄여서 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영어: Saint Kane and the Pescadores, 중국어: 星肯恩和澎湖)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섬나라로 세인트케인 섬과 페스카도레스 제도를 국토로 삼고 있다. 총 면적은 36,121 km2로 기니비사우(약 36,125 km)와 크기가 유사하다. 인구는 약 1,200만 명으로 홍콩, 마카오와 같은 속령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국가들 중, 몽골(약 300만 명) 다음으로 적다. 수도는 질란디아, 최대 도시는 노스홀랜드이다.
16세기 이전까지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원주민들이 널리 분포해 거주했으며, 미다그 왕국이라 불리는 연합 부족국가를 세우기도 했다. 1590년, 포르투갈이 세인트케인 섬을 발견한 이후로 유럽인의 진출이 활발해졌고,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와 에스파냐가 식민지를 건설하고 대립했다. 이후 명나라의 부흥을 꾀한 정성공이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한족 정권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에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상인이자 해적, 허드 마이어스홀터가 강희제의 세인트케인 정벌에 협력함으로서 정씨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공헌했고, 섬에 대한 영구 임대권을 황제로부터 승인받아 상업 지구를 세웠다. 그는 사탕수수, 차, 장뇌를 중국 대륙과 일본 등지로 수출하여 동중국해 무역 창구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섬의 권리를 아들에게 넘기는 등 백인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제1차 아편 전쟁이 발발하자 너바다·앤 처형 사건을 계기로 청조의 조치에 항거했고, 난징 조약을 통해 독립, 1856년엔 베이징 조약으로 페스카도레스 제도를 할양받아 오늘날의 국토를 확립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남부 공략을 위한 교두보로서 일본 제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 과정에서 퀸 헬레나 섬 대학살, 해럴드 왕세자 피살 사건 등의 전쟁범죄에 맞닥뜨려야 했다. 1945년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되었으며 국공내전 당시 중국 국민당을 지원하는 등 자본주의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2]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원조와 군사 정권의 경제 우선 정책을 토대로 빠른 시일 내에 경제 발전을 이루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꼽혔다. 1980년대부터는 군부 독재의 신음을 앓던 학생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민주화 요구가 빗발쳤고, 해바라기 혁명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결국 군부 정권이 국민직선제 도입과 민간 정권 이양을 약속함으로서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될 수 있었다.
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는 총리직선제 입헌군주국이다. 현재 군주는 데이비드 2세이며, 총리는 에드워드 얌, 부총리는 메이슨 피츠제럴드이다. 일본처럼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총리와 부총리는 국민 투표를 통해 직접 선출된다. 서민원의 집권당은 포르모사 통합당이며, 귀족원 의장을 아놀드 G. 카드웰 경[3]이 맡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민원의 집권당과 총리가 입법·행정권을 행사하나, 군주에게도 의회 해산권·의원 임명권[4]·법안 거부권과 같은 막중한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 사실상 전제군주제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5]
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는 류큐 제도, 중국 대륙, 필리핀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중세부터 무역 중개지로서의 가치가 높았으며, 현재도 무역업이 경제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수많은 유물과 동아시아에서 이질적인 유럽식 문화를 바탕으로 매년 천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방문하는 등 관광업이 크게 발전해 있다.
각주
- ↑ 위에서부터 아래로 노스홀랜드의 야경, 페스카도레스 제도 마켕에 위치한 마쭈 사원, 왕실의 거처인 포트 세인트 도미닉이다.
- ↑ 중국 국민당의 패전 이후에는 다수의 국민당 인사들과 중국 자본가들을 받아들였고, 이들의 물적·인적 자원의 활용함으로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룰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 ↑ 제3대 케타갈란 백작(3rd Earl of Ketagalan)을 역임하고 있다.
- ↑ 정확히는 귀족원 정원의 1/3에 해당하는 33명의 의원을 임명할 수 있다.
- ↑ 현대의 입헌군주국 중에서 군주의 실권을 인정하는 나라는 리히텐슈타인, 통가, 바레인, 모로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