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화국-도이칠란트 관계

프랑스 공화국 프랑스 공화국과의 관계는 사실 역사상으로만 따지고보면 영국보다도 더 치열하게 치고박은 원수 지간이였다. 공군도 없던 시절, 바다 건너 영국보다는 바로 옆의 독일과 더 치고 박았을 것은 당연지사. 1871년부터 1945년까지 70여년 동안만 무려 세 번을 싸웠다. 아예 보불전쟁 이후로 거의 1세기 가까이 실질적인 주적으로 인식 했으며 1차, 2차대전을 거치면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극도로 증폭됬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극도로 증폭됐다.

하지만 1949년 서독이 수립된 이후 독일의 적극적인 과거사 청산 및 유럽연합의 창설 등을 통하여 두 국가 사이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됐으며 오늘날에는 진정한 우방으로 서로를 인지하고 있다.[* 특히나 2016년에는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호감가는 국가 1위로 독일이 꼽혀서 상당한 놀라움을 안겨줬다.]

단순비교

|| 국가 || 프랑스 || 독일 || || 면적 || 1,445,089km² || 1,168,564km² || || 인구 || 389,749,977명 || 481,114,452 || || 인구밀도 || 269.7명/km² || 399.82명/km² || || 정치제제 || 대통령제 || 혼용내각제 || || 1인당 GDP || $36,039 || $45,252 || || 1인당 GDP(PPP)|| $39596 || $45,252 || || 명목 GDP || $14조461억 || $21조 1426억 || || GDP(PPP)|| $15조 4300억 || $21조1426억|| || 국방비 || 1461억 달러 || 1,268억 달러 ||

역사

중세

19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2차 대전 후 : 갈등을 넘어서 협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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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프랑스와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은 기존까지 전세계를 호령하던 열강의 자리에서 탈락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운 국가는 바로 미국과 소련. 이들이 주도한 국제질서는 위대한 국가(Grande Nation)의 부활을 꿈구던 프랑스에게는 퍽 불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국력이 한 풀 꺾인 프랑스가 혼자서 무엇을 주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그런 프랑스의 눈에 독일이 들어온다. 한편 패배 후 독일에서는 콘라트 아데나워를 총리로 하여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됐고, 이들은 기존까지 독일의 주류 정계a.k.a. 프로이센가 자부하던 특수여정(Sonderweg)에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적극적으로 서구권의 일원으로 편입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즉 독일과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것.

협력의 첫 단추는 경제적 교류였다. 덜컥 정치적으로 협력했다간 일단 프랑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니까 EU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장 모네는 1950년 이른바 슈망 계획을 발표하면서 루르/알자스-로렌/베네룩스 일대의 철강과 석탄을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 국가들이 자유롭게 서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당시 독일에서는 막 라인강의 기적이 시작됐던 찰나였기 때문에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당시 독일 경제부 장관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1952년에는 불/독/베네룩스 3국에 이탈리아까지 합류하며 석탄-철강 공동체(ECSC)가 탄생한다.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1950년대 후반이 되면 양국 간의 정치적 협력 역시 활발히 이루어진다. 서독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가 강력한 친프랑스 인사였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이러한 협력에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1963년 아데나워와 샤를 드 골이 맺은 엘리제 조약. 양국은 엘리제 조약을 통하여 외교/경제/군사 등의 업무에서 노선을 같이 할 것을 약속했고 이는 실제로 이행된다. 양국의 국가원수들은 정치적 스탠스에 상관 없이 서로 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그 중에서도 아데나워 - 드 골과 헬무트 슈미트 - 지스카르 데스탱 사이의 관계가 무척이나 절친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도 메르코지가 유명하다. 이러한 협력 덕분에 양국간의 관계는 20세기 초중반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에 가까울 정도로 우호적이 됐으며, 혹자는 '843년 베르됭 조약 이후 유럽이 1200년 만에 재통합됐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할 정도.

1977년에 독일은 프랑스를 우호적으로 보는 비율이 10%에 그쳤으나 최근에는 27%로 프랑스는 독일을 우호적으로 보는 비율이 8%에 그쳤으나 최근에는 29%로 늘어났다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은 EU 개혁 논의를 계속 추진하면서 차세대 공동 전투기의 개발도 합의하고 프랑스 측도 프랑스 내의 독일어 교육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