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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의 원유관
아침해의 원유관은 임진왜란 축소로 인해 뒤바뀐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세계관입니다.
청화대에 이화문이 꽂혀있는 이 세계의 국가, 사회, 정치 및 문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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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의 경성(京城)급 행정구
서울 한성부
漢城府 | Hansong[1]
부기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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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청 소재지
여의도
지역 분류
수도권
면적
3059.6km2
인구
11,215,352명
부윤
오세훈
부의회
종로
여당
대한사민당
한성부의 전경
빌딩과 한옥
황거 경복궁[2]

개요

너와 나의 동행, 500년 서울 한성
한성부의 캐치프라이즈

한성은 대한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동아시아에서 도쿄, 베이징, 춘칭과 함께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로, 뉴욕, 런던, 도쿄와 함께 세계 4대 도시로 불릴 정도로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명칭

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로, 다른 명칭으로 서울, 황도와 경성(京城) 등이 있다.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서울과 한성이라는 말이 주로 쓰이고, 노년층과 중년층은 3가지 단어 모두 광범위하게 사용하지만 경성, 황도라고 부르는 경우는 대부분 노년층에 해당한다.

한국 내 극우들은 대한호국회가 국수주의 과시 용으로 권장했던 명칭인 황도, 제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위

명실상부, 한국의 수도이자 최중요 도시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이다. 한성부의 등급인 경성급 행정구역은 오로지 대한국 내에 한성부와 평양부 단 둘 뿐이며, 한국 내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곳이자, 한국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인 황실이 기거하는 곳이 바로 한성부다. 그나마 서경 평양부가 20세기에 들어 많이 발전하였고 개발지수 면에선 일부 서울보다 우세이나[3] 여전히 한성의 규모와 중요도에는 못 미치는지라, 그만큼 한국 내에서 한성이 가지는 위치는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

한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본격적인 시대는 칭제건원 이전인 조선시대로, 조선 건국 이후 한동안은 지역적인 기반에 관련된 문제로 여전히 개경을 수도로 삼았으나 1394년(태조 3년)에 태조 고황제의 명으로 천도하였고, 이 시기에 정도전에 의해 경복궁이 건설되었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정종은 한성을 불길하게 여긴것인지 1399년(정종 1년)에 다시 개성으로 천도하였었으나, 태종 대인 1405년(태종 5년)에 다시 서울로 천도했고, 이후 600년의 세월 동안 한반도의 중심지이자 최대도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서구화 정책인 임신개혁을 단행한 이후 고조는 국가의 생존을 위해 전면적인 개혁을 진행할 것을 명령하였고, 점점 다가오던 변화는 제 1차 동아시아 전쟁에서의 승리로인해, 마침내 한성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적으로는 대대적으로 세계 만국에 한국의 수도임을 홍보하였으며, 내적으로는 서양과 일본의 신식 문물들이 들어오면서 개화의 중심지가되었다.

고조 광무제의 황명으로 한성에 설치된 전신주와 전선을 시작으로, 산업화의 상징인 공장과 신식 도로, 공공시설들이 건설되었다. 또, 기존 조선시대의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되거나 재건축되었으며, 그 빈 자리에는 벽돌과 시멘트 등으로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면서 한성은 근대적인 제국의 수도로 거듭났다. 이 도시의 상징이자 중심인 황궁 또한 변화를 맞아 환한 불빛이 들어왔고, 서양식 궁전인 석조전을 지으면서 대한제국이 문명국가이자 강대국임을 열강들에게 알렸다.

1920년대,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한성의 전경은 먼저 개화를 시작한 일본의 동경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가장 개화된 도시이자, 자바섬을 제외하고 동양의 유이한 서구라고 해도 결단코 과언이 아니었다. 거리에는 한복과 양장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다녔고 백화점과 가게, 고층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섰으며, 한성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운영되는 열차의 불빛과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전깃불이 온 천지를 비추었다. 역설적으로, 정치적 암흑기였던 1930년대에는 대한호국회가 국가 위상 과시와 경제 성장 광고를 위한 목적으로 각종 공공시설과 거대 건축물들을 건설하면서 오히려 더 화려해졌고, 이 중 대부분은 현대에서도 의미 있는 랜드마크들로 평가받는다.

1944년에 한성내전이 종결된 이후, 내전으로 엉망이 된 한성의 구시대적 인프라들에 대한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제외하고 대한호국회의 파시즘에 의거한 거대한 건축물들이 철거되었고, 이후 다시 도래한 경제적 발전으로 인하여 지금의 경제적, 문화적인 번영을 보여주는 대한국의 수도 한성으로 거듭나 대한국 수도의 임무를 계속 이행하고 있다.

도시의 특징

기타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1. 과거 서울로 변경되기 이전에는 황도라는 명칭이었으나, 1940년대에 투표를 실시하여 변경되었다.
  2. 뒤의 건물은 임신개혁 실시 이후 융희 시대에 착공을 시작하여 1921년에 완공된 신관 청와전이다.
  3. 재미있게도, 평양은 서울보다는 사고적으로 진보적인 풍토가 있으나 종교 면에서는 오히려 더 보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