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지니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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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지니 시대''', 혹은 '''태수시대'''는 원고국 건국 초기 [[원고 성종|신주친 테지니]], [[원고 진종|페노미아 테지니]], [[원고 무종|카누렉타 테지니]]의 집권기를 일컫는 명칭이다.
'''테지니 시대''', 혹은 '''태수시대'''는 원고국 건국 초기 [[원고 성종|신주친 테지니]], [[원고 진종|페노미아 테지니]], [[원고 무종|카누렉타 테지니]]의 집권기를 일컫는 명칭이다.


테지니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의 원고 반도는 혼란 그 자체였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반란을 일으키고 패륜을 저지른 [[원고 민왕|민왕]]은 정권을 잡은 뒤 폭정을 이어갔으며 북쪽에는 아직 세력을 갖추고 있던 북방민족이 원고국을 침략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이때의 혼란기를 잠재우기 위해 민왕을 처단한 사람이 바로 최초의 테지니인 [[원고 성종|산데주 보사니오]] 이며, 그에 의해 시작된 테지니 체제는 이후로 삼대를 이어가며 원고국 초기의 혼란을 잠재웠다. 이러한 안정된 체제는 [[원고 태조|태조]]가 정권을 잡고 완디로 즉위하여 본격적으로 원고국 역사의 포문을 여는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즉, 테지니 시대는 남연 멸망 직후의 혼란기와 제타시옥 가문의 권력 장악 이후의 시기 사이에 끼어있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테지니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의 원고 반도는 혼란 그 자체였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반란을 일으키고 패륜을 저지른 [[원고 민왕|민왕]]은 정권을 잡은 뒤 폭정을 이어갔으며 북쪽에는 아직 세력을 갖추고 있던 북방민족이 원고국을 침략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이때의 혼란기를 잠재우기 위해 민왕을 처단한 사람이 바로 최초의 테지니인 [[원고 성종|산데주 보사니오]] 이며, 그에 의해 시작된 테지니 체제는 이후로 삼대를 이어가며 원고국 초기의 혼란을 잠재웠다. 이러한 안정된 체제는 [[원고 태조|태조]]가 정권을 잡고 완디로 즉위하여 본격적으로 원고국 역사의 포문을 여는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즉, 테지니 시대는 남연 멸망 직후의 혼란기와 제타시옥 가문의 권력 장악 이후의 안정기 사이에 끼어있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2023년 6월 5일 (월) 13:17 판


원고국의 역사
元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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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지니 시대
?~?년
이전 이후
남연 원고국

개요

太帥時代

테지니 시대, 혹은 태수시대는 원고국 건국 초기 신주친 테지니, 페노미아 테지니, 카누렉타 테지니의 집권기를 일컫는 명칭이다.

테지니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의 원고 반도는 혼란 그 자체였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반란을 일으키고 패륜을 저지른 민왕은 정권을 잡은 뒤 폭정을 이어갔으며 북쪽에는 아직 세력을 갖추고 있던 북방민족이 원고국을 침략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이때의 혼란기를 잠재우기 위해 민왕을 처단한 사람이 바로 최초의 테지니인 산데주 보사니오 이며, 그에 의해 시작된 테지니 체제는 이후로 삼대를 이어가며 원고국 초기의 혼란을 잠재웠다. 이러한 안정된 체제는 태조가 정권을 잡고 완디로 즉위하여 본격적으로 원고국 역사의 포문을 여는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즉, 테지니 시대는 남연 멸망 직후의 혼란기와 제타시옥 가문의 권력 장악 이후의 안정기 사이에 끼어있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