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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글씨 색|orange|1916년}}]] [[제6차 함대법|{{글씨 색|orange|제6차 함대법}}]]이 통과됨에 따라서 독일 황립해군은 더 강한 전함을 건조하길 바랬다. 특히, [[7월 위기|{{글씨 색|orange|7월 위기}}]] 이후로 심화된 [[독일 제국|{{글씨 색|orange|독일제국}}]]과 [[대영 제국|{{글씨 색|orange|대영제국}}]] 간의 외교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1916년 [[4월|{{글씨 색|orange|4월}}]]에 북해 상에서 양국의 해군이 조우한 사건까지 생겼다. 이 사건 당시 함대를 지휘하고 있던 [[라인하르트 쉐어|{{글씨 색|orange|라인하르트 쉐어}}]] 제독은 대영제국의 1선급 전함들을 압도할 수 있는 전함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독일 해군 무기부|{{글씨 색|orange|독일 해군 무기부}}]]는 42cm 함포를 개발하여 채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1916년 [[11월|{{글씨 색|orange|11월}}]] 회의에서 추가적으로 40cm 함포와 38cm 함포로 무장한 설계안이 제안되었지만, 모두 기각되었다. | [[1916년|{{글씨 색|orange|1916년}}]] [[제6차 함대법|{{글씨 색|orange|제6차 함대법}}]]이 통과됨에 따라서 독일 황립해군은 더 강한 전함을 건조하길 바랬다. 특히, [[7월 위기|{{글씨 색|orange|7월 위기}}]] 이후로 심화된 [[독일 제국|{{글씨 색|orange|독일제국}}]]과 [[대영 제국|{{글씨 색|orange|대영제국}}]] 간의 외교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1916년 [[4월|{{글씨 색|orange|4월}}]]에 북해 상에서 양국의 해군이 조우한 사건까지 생겼다. 이 사건 당시 함대를 지휘하고 있던 [[라인하르트 쉐어|{{글씨 색|orange|라인하르트 쉐어}}]] 제독은 대영제국의 1선급 전함들을 압도할 수 있는 전함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독일 해군 무기부|{{글씨 색|orange|독일 해군 무기부}}]]는 42cm 함포를 개발하여 채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1916년 [[11월|{{글씨 색|orange|11월}}]] 회의에서 추가적으로 40cm 함포와 38cm 함포로 무장한 설계안이 제안되었지만, 모두 기각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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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자금은 1916년 통과된 제6차 함대법에 따라 3척의 선박에 대해 배정되었다. [[SMS 지크프리트|{{글씨 색|orange|SMS 지크프리트}}]]과 [[SMS 에기르|{{글씨 색|orange|SMS 에기르}}]]의 재정은 다음 해에 바로 지원되었고, [[SMS 오딘|{{글씨 색|orange|SMS 오딘}}]]은 생산 비용이 실제보다 많이 나갔기 때문에 다음 해 배정된 재정과 함께 건조되었다. [[SMS 헤임달|{{글씨 색|orange|SMS 헤임달}}]]와 [[SMS 하겐|{{글씨 색|orange|SMS 하겐}}]]는 그 다음 해에 되어야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지크프리트'''와 '''오딘''', '''에기르'''는 각각 SMS 카이저 빌헬름 데어 그로세, SMS 카이저 카를 데어 그로세, SMS 카이저 바르바로사 를 대체했고, '''헤임달'''와 '''하겐'''는 각각 SMS 비텔스바흐와 SMS 베틴을 대체했다. | 그들의 자금은 1916년 통과된 제6차 함대법에 따라 3척의 선박에 대해 배정되었다. [[SMS 지크프리트|{{글씨 색|orange|SMS 지크프리트}}]]과 [[SMS 에기르|{{글씨 색|orange|SMS 에기르}}]]의 재정은 다음 해에 바로 지원되었고, [[SMS 오딘|{{글씨 색|orange|SMS 오딘}}]]은 생산 비용이 실제보다 많이 나갔기 때문에 다음 해 배정된 재정과 함께 건조되었다. [[SMS 헤임달|{{글씨 색|orange|SMS 헤임달}}]]와 [[SMS 하겐|{{글씨 색|orange|SMS 하겐}}]]는 그 다음 해에 되어야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지크프리트'''와 '''오딘''', '''에기르'''는 각각 SMS 카이저 빌헬름 데어 그로세, SMS 카이저 카를 데어 그로세, SMS 카이저 바르바로사 를 대체했고, '''헤임달'''와 '''하겐'''는 각각 SMS 비텔스바흐와 SMS 베틴을 대체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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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7일 (화) 20:48 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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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guinea-Klasse Schlachtschiff
ᐳ 1 개요ᐯ 1 개요
지크프리트급 전함를 계승하면서 더 확장된 노이기니아급 전함은 이전 함급의 42cm 거포 8문을 그대로 탑재했다. 아직 16인치 주포로 무장한 영국 왕립해군, 미합중국 해군, 일본 제국 해군의 함들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고, 그들보다 더 먼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었다. 이전 함에 있었던 3번, 4번 주포탑의 간격을 극복했으며, 수상기 2기를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이전에는 포곽식이었던 부포를 포탑식으로 변경했다. 또한, 시험적으로 디젤 엔진을 채택하여 154,000 마력을 낼 수 있게했고, 최대 29 노트라는 속도로 고속전함이라 불렸다. 다만 디젤 엔진을 채택하면서 운영비나 유류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다만 이후에 합성 석유 사업이 성장한 뒤에 유류 공급의 불안정성은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자매함의 이름은 차례차례 노이기니아, 자모아, 카메룬, 토고란트, 키아우초우으로 독일 제국령 식민지와 조차지에서 따왔다.
ᐳ 2 동형함 목록ᐯ 2 동형함 목록
SMS 노이기니아 | SMS 자모아 | SMS 카메룬 | SMS 토고란트 | SMS 키아우초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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ᐳ 3 설계ᐯ 3 설계
ᐳ 4 활동ᐯ 4 활동
ᐳ 5 둘러보기ᐯ 5 둘러보기
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군함 (1939~19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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