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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문화= | ||
==전반적인 문화== | |||
==언론, 대중매체== | |||
==교육== | |||
=대중매체에서의 금국의 모습= | =대중매체에서의 금국의 모습= |
2024년 2월 13일 (화) 04:27 판
동아시아의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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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민국 大金民國 | Republic of Manchur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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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 국장 | |||||||||||||||||||||||||||||||||||||||||||||||||||||||||
오족공화 五族共和 | ||||||||||||||||||||||||||||||||||||||||||||||||||||||||||
민주화 이전 | 민주화 이후 | |||||||||||||||||||||||||||||||||||||||||||||||||||||||||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 대금민국 | |||||||||||||||||||||||||||||||||||||||||||||||||||||||||
상징 | ||||||||||||||||||||||||||||||||||||||||||||||||||||||||||
만주 찬가 | ||||||||||||||||||||||||||||||||||||||||||||||||||||||||||
보춘화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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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 ||||||||||||||||||||||||||||||||||||||||||||||||||||||||||
신징시 | ||||||||||||||||||||||||||||||||||||||||||||||||||||||||||
신징시 | ||||||||||||||||||||||||||||||||||||||||||||||||||||||||||
약 970,000km2 | ||||||||||||||||||||||||||||||||||||||||||||||||||||||||||
북만주 일대 및 부속도서 | ||||||||||||||||||||||||||||||||||||||||||||||||||||||||||
대한국, 중화민국, 러시아 차르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 ||||||||||||||||||||||||||||||||||||||||||||||||||||||||||
인문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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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및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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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신징시의 전경 |
지린시의 전경 |
개요
새로운 시대에 밝아오는 희망 |
2000년 민족사회당 신년덕담 中 |
다시 부활한 대초원의 사냥꾼.
대금민국, 통칭 금나라 혹은 금국은 북만주 지역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동쪽으로 러시아 차르국, 서쪽으로 중화민국과 접해있으며 남북으로 각각 대한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또한, 지역적인 역사 및 특징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중세에는 여러개의 부족들로 분열되어 있다가 1618년 후금을 건국, 중국침공을 시도하였으나 조명연합군에 의해 누르하치가 죽고 전세도 불리해지면서 결국 다시 내분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3]. 이후 1700년대에 다시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주도로 통일이 되었었으나 조선을 공격할 수준은 되지 못했고, 결국 이를 보안하기 위해 연해주 및 몽골 일대로 원정과 정복전쟁을 펼쳐 중흥기를 이룩했었다. 그러나 1689년 러시아 탐험대를 겨우 격퇴한 이후 강경화되던 국가의 여론이 결정적으로 동방전교회를 믿게 된 만주인 기독교도들의 반역모의가 적발되면서 완전히 쇄국 정책으로 들어섰고, 이후 이 쇄국의 풍조는 금 문종의 병세가 약화된동안 왕비 예허나라 힝전이 실권을 장악, 조선과 중국으로부터의 관계까지 경직시키면서 절정에 달했다가, 1800년대 중반 한국의 국서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한국군의 침공이 일어났고, 이 침공에서 패배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후 정국을 역전시키기 위해 예허나라 힝전은 순나라와의 관계를 밀착시켜 일본과 한국을 모두 격퇴할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제 1차 동아시아 전쟁에서 순금 연합의 패배를 기점으로 금나라 덕종의 아관파천 등이 일어나면서 예허나라 힝전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후일 러시아에서 돌아온 덕종은 국호를 대청제국으로 바꾸고, 근대화 계획인 광서개혁을 실시하였으나,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택한 친러 외교가 한러일 전쟁으로 무의미해지면서 1908년, 대청제국은 대한제국에 정식으로 병합되었고 만주라는, 한국의 일개 지역으로서 불리게 된다.
이후 한국은 만주 영토의 관리를 위해 무단통치 등을 시행하였고 자국 내 빈민과 농촌 인구들을 만주로 보내는 정책을 실행하여 만주인들의 토지 대다수를 강탈하였다. 여기에 적백내전 이후 러시아인들도 들이닥치면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본 한국 정부의 정책으로 만주인의 사회적인 신분이 더 내려가자, 3월 1일에 만주의 중심부인 신징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대한 대처로 한국은 만주인에 대한 정책을 바꾸어 '교화통치'라는 이름의 동화작업을 실행하였으나 효과는 미미했었고, 오히려 당시 한국에 번지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인식이 만주에도 전파되던 중 스탈린에게 반대한 소련 인사 일부들이 몰래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졸지에 공산주의 세력들의 온상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김창암이 집권하면서 만주는 전쟁을 위한 발판으로 서서히 탈바꿈 되기 시작하였고, 동시베리아 전쟁 도중에는 작황이 최하치를 기록하거나 러시아인들에 대한 우대가 철폐되는 등 상태가 좋지 못했다. 결국 한성내전을 시작으로 북만주 지역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자 곧바로 만주 내 무장 공산주의 세력과 만주 독립운동 세력은 신징시를 접수하였고, 이후 소련군이 남하한 뒤 다급해진 한국이 해동성맹 해체와 더불어 해외 식민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면서 독립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점령한 만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은 이념적으로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고, 끝내 이 불편한 관계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전쟁 결과는 치열한 저항과 , 결국 1956년 소련이 모든 만주 영토에서 퇴각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끝맺었다. 전쟁이 끝난 후 황폐화된 국가를 복원해야하는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민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만주 공산당에게 강요되었고, 그렇게 1963년 공식적으로 만주가 다문화국가라는 사실을 공표했다. 1975년부터 개혁개방 정책등을 시행하여 서서히 경제적인 성장 또한 이룩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개혁개방 정책의 영향으로 만주 국민들은 사실상 소련의 유사국가가 아니냐는 데에 동요하였고, 결국 내부에서 아시아계 민족이 러시아계를 탄압하는 등의 사태 또한 벌어졌다가, 결국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러시아의 영향을 짙게 받은 공산당이라고 판단한 국민들이 만주 민주화 운동이라고 알려진 시위를 정부 청사 앞에서 진행하였다. 더 이상 공산주의 노선의 고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당시 서기장은 ,시위 3일 후 사회주의 공화국 체제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사회주의적 이념보다 만주의 풍토에 더 걸맞는 국명, 오늘날의 '대금민국'이 정식으로 수립되었다.
오늘날, '하일러강의 기적'으로 국력을 회복하고 서방 진영에 들어간 대금민국은, 서양으로부터 대중화인민공화국 파트너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확실하게 서방 진영에 속한 그러나 소련이 점령한 만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은 이념적으로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고, 끝내 이 불편한 관계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전쟁 결과는 동시베리아 전쟁 당시 트로츠키가 축출되면서 국내 사회주의 세력이 현실적으로 변화한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이 서방의 지원을 받으면서 승리로 끝을 맺었고, 결국 1956년 소련이 모든 만주 영토에서 퇴각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끝맺었다. 전쟁이 끝난 후 황폐화된 국가를 복원해야하는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민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만주 공산당에게 강요되었고, 그렇게 1963년 공식적으로 만주가 다문화국가라는 사실을 공표했다. 1975년부터 개혁개방 정책등을 시행하여 서서히 경제적인 성장 또한 이룩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개혁개방 정책의 영향으로 만주 국민들은 사실상 소련의 유사국가가 아니냐는 데에 동요하였고, 결국 내부에서 아시아계 민족이 러시아계를 탄압하는 등의 사태 또한 벌어졌다가, 결국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러시아의 영향을 짙게 받은 공산당이라고 판단한 국민들이 만주 민주화 운동이라고 알려진 시위를 정부 청사 앞에서 진행하였다. 더 이상 공산주의 노선의 고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당시 서기장은 ,시위 3일 후 사회주의 공화국 체제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사회주의적 이념보다 만주의 풍토에 더 걸맞는 국명, 오늘날의 '대금민국'이 정식으로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