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신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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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8월 12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한국 광복군]]은 [[조선 독립 전쟁|독립 전쟁]]을 일으킨다. [[8월 13일]], 독립군은 [[선양]]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을 공격하여 [[선양 전투]]를 개전한다. [[관동군]]은 화력으로는 우위를 점하였으나, 수적, 지리적 열세로 인해 주둔지를 잃고 선양역으로 집결하였다. 선양역에서 [[대련]]으로 [[관동군]]을 운송하기 시작하였고, 독립군을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공세를 진행한다. 급하게 이루어진 탈출 작전으로 인해 [[선양]]에 주둔중이던 [[관동군]]은 소총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기를 버려두고 떠나야했으며, 독립군은 이를 노획하여 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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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을 함략시킨 독립군은 [[8월 18일]]까지 어떠한 전투도 치르지 않고 [[대련]]까지 진군하였다. [[8월 19일]], [[보란점]]에서 20km 떨어져 있던 독립군을 [[관동군]]이 공격하면서 [[대련 전투]]가 발발한다. 약 20분간 진행된 야간 급습에서 독립군의 피해는 미미하였으나, 주둔군은 12km 만큼 군대를 물렸다. [[8월 21일]], 본격적인 전투가 개시된다. 군대는 둘로 나뉘어져 한 군은 [[보란점]]을 공격하였고, 다른 한 군은 강을 따라 이동한 뒤 [[성자탄]]으로 진군한다. [[보란점]]을 공격하던 군대는 천천히 산악 지형을 따라 피해를 누적시키며 전진하였고, [[8월 23일]]부터 [[보란점]]의 [[관동군]]은 남서부 방향으로 병력을 집중하여 미완성의 포위망을 뚫고 [[금주]]로 퇴각한다. 독립군은 [[보란점]]에서 하루의 휴식을 취하고 난 후 [[금주]]에 도착한다.


=== 한성 진군 ===
=== 한성 진군 ===

2021년 3월 27일 (토) 23:47 판


대한
大韓
대한제국
大韓帝國
1929년-현재
국가 애국가
愛國歌
국목 오얏나무
국화 오얏꽃
국조
100%
수도 한성 (북위 37° 35′ 00″ 동경 127° 00′ 00″ / 북위 37.58333° 동경 127.00000° / 37.58333; 127.00000)
최대 도시
면적 1,546,109 km²
(아시아 8위, 세계 20위, 아시아의 3.47%)
대한 황제
1929년 - 1955년 신주 황제
1955년 - 1993년 정안 황제
1993년 - 현재 청천 황제
의정대신
부의정대신
독립 선언 1928년 9월 1일
부산 조약 1928년 9월 3일
한성 쿠데타 1929년 1월 16일
신대한제국 선포 1929년 1월 18일
신주 선포 1929년 1월 21일
정안 선포 1955년 8월 19일
청천 선포 1993년 6월 18일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487,265,530명(2020년)
민족 구성 한국계 68.3%
만주계 11.5%
우크라이나계 6.6%
중국계 3.9%
러시아계 3.2%
기타 6.5%
인구 밀도 315.16명/km2(2020년)
출산률 ()
출생 인구 ()
사망률 ()
사망 인구 ()
기대 수명 ()
성비
GDI
HDI
공용어 한국어
지역어 만주어 화어 유구어 일본어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공용 문자 한글
문해율 99.2%(2020년)
종교 무교 57.5%
개신교 21.4%
불교 9.6%
천주교 3.4%
동방정교 2.9%
기타 5.2%
군대 대한군
세부 군대 육군 대한 육군
해군 대한 해군
공군 대한 공군
기타군 대한 시위대
행정구역
행정
구역
34개의 도
--개의 부
---개의 시
----개의 군
정치
경제
경제 체제 혼합경제
명목
GDP
전체 GDP
1인당 GDP
GDP
(PPP)
전체 GDP
1인당 GDP
수출
입액
수출
수입
화폐 공식 화폐 대한제국 원
국가
예산
1년 세입
1년 세출
통계
자료
경제성장률
고용률
실업률
지니계수
코드와 단위
ccTLD .kr
국가 코드 410, KR, KOR
국제 전화 코드 +82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정안
시간대 KST (UTC+9)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YYYY-MM-DD
운전석
(통행방향)
왼쪽
(우측 통행)
외교
UN UN 가입 1945년 10월 24일
UN 회원국
승인 여부
창립국
수교국
무비자
입국
180일
90일
60일
30일
15일
여행 경보
이전 국가
다음 국가
대한국
봉천 군벌
대만 공화국
남양 군도
일본
소련
유구국

대한제국(大韓帝國, 영어: Korean Empire 코리안 엠파이어[*], 일본어: 大韓帝国 (だいかんていこく) 다이칸데이코쿠[*], 중국어: 大韓帝國 다한디궈[*]) 혹은 대한(大韓, 영어: Korea 코리아[*], 일본어: 大韓 (だいかん) 다이칸[*], 중국어: 大韓 다한[*])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로써, 서쪽으로는 중화민국이, 동쪽으로는 일본,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필리핀 등과 접하고 있다. 수도는 한성부이며, 부산, 평양, 대련, 선양, 장춘, 합이빈, 금각, 대북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한국어가 공용어이며, 북부에서는 만주어중국어가 북동쪽에서는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 남쪽에서는 유구어 등이 지역어로써 사용된다.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 공식적인 국명은 대한제국대한이나, 국내에서는 한국(韓國), (韓) 등으로도 사용되며, 일본령 조선 이전 존속하였던 대한제국 (1897-1910)과 구별하기 위해 신대한제국(新大韓帝國) 혹은 신한국(新韓國)이라 불리기도 한다.

약 3만에서 4만년전, 한반도에 고대 인류가 출현한 뒤로, 기원전 24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건국한 조선을 시작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삼국시대남북국 시대, 고려를 거치며, 1392년, 태조에 의해 대조선국이 건국된다. 대조선국은 약 500년 동안 단일의 왕조이 존속해왔으며, 17세기에 들어 열강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1897년에는 27대 국왕이던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로 바꾸며 대한제국 (1897년-1910년)이 선포되었다. 광무개혁과 같이 여러 개혁을 단행하였음에도, 청일 전쟁러일 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에 대한 다른 열강들의 영향력을 걷어낸 일본 제국에 의해 합병당하였다. 1929년, 관동군의 독단적 행위로 인해 봉천 군벌과의 사이가 파탄에 이른 일본 제국 내부에서는 관동군에 대한 처벌을 두고 분열되었고, 이는 내전으로 치닫는다. 이때 대한민국 임시 정부난징 국민정부봉천 군벌과 손을 잡고 조선 독립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여 독립을 이룬다. 그러나 독립 이후 건국된 대한국은 국내의 분열으로 인해 '국가 안정'을 명분으로 한 한성 진군에 의해 문민 정부는 붕괴된다. 한성 진군 이후 군부는 황정복고를 선언하고 의친왕대한 황제로 옹립한다. 건국 이후 신주개혁을 시행하며 광무개혁의 후신 개혁을 진행하였고, 봉천 군벌과의 전쟁을 통해 개혁의 필요를 증명하였다. 신주 개혁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신주 북벌이나 신주남정 등의 팽창 정책을 채택하며, 주변국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로 인해 서양 세력의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왔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으로 참전함으로써 동맹을 체결하였고, 이후에는 팽창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대한제국은 대한제국 국제에 의해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국가이다. 대한제국의 국가원수는 대한 황제으로 국가를 대표하며, 대한제국군을 통솔한다. 전주 이씨가의 청천 황제가 즉위 중에 있으며, 가 법적 계승자로 있다. 대한제국 의정대신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한제국의회에 의해 선출되어 궁내부원수부를 제외한 내각을 이끈다. 대한제국의회는 대한제국의 입법부로써 대한제국 중추원대한제국 추민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제국 중추원은 도 단위의 대선거구제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6년의 임기를 지니며, 대한제국 추민원소선구제 선거를 통해 4년의 임기를 지닌다. 추민원에서 가결된 법안은 중추원에서 다시 논의되어 법안을 부결시킨후 추민원으로 되돌려보네거나 통과시킨후 대한 황제의 승인을 받아 공표된다. 대한제국 대법원은 대한제국의 최고 사법부로 1명의 대법원 대법관과 --명의 대법원 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3심제에 의해 항소상고를 거친 사건을 판결하거나, 대한제국 국제에 반하는 법안을 판단하고 법안을 무효화시킨다.

국명

"대한제국"이라는 국호 중 대한(大韓)의 어원은 고대 한반도 남부 일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이름인 한(韓)에서 유래한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삼한이라고 불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합쳐 삼한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韓)이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고대부터 내려오던 말로서, "하나", "하늘", "크다", '칸(汗) 등 여러 해석이 있다.

근대 국가의 국호로서 "대한"은 1897년 광무 황제대한제국 (1897-1910)을 선포하면서 다시 선택한 것으로 새 국호를 정한 이유를 "조선이라는 이름은 기자가 봉해졌을 때의 이름이니 제국의 이름으로 합당하지 않은데, 한(韓)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이름이며 삼국시대의 세 국가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므로 "큰 한"이라는 이름이 적당하다"고 밝혔다.

대한은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구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바뀌면서 일본령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바뀜과 동시에 사용되지 않았으나, 1928년, 해방으로 인해 대한국이 선포되면서 다시 사용되었다. 이후 1929년 한성 진군 이후 왕정복고되면서 "신대한제국", "대한제국", "신한국"이 선포된다.

일본, 중화민국, 베트남 등 주로 동아시아에 있는 한자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일상에서 대한제국을 간단히 한국(중국어 간체: 韓國, 주음 부호:ㄏㄚㄋˊㄍㄨㄛˊ한궈, 일본어: 韓国 (かんこく) 칸코쿠[*], 베트남어: Hàn Quốc한 꾸옥)이라 부른다.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Korea로 불리는데, 이 명칭의 시초는 중세 왕국인 '고려'라는 국명이 수도인 개성으로 통하는 벽란도를 출입하던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전해지면서 Corea로 음역 되어 전 세계에 전해진 것이다. 그 후 서방에 전해져 프랑스어로 Corée, 스페인어로 Corea, 영어로 Korea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대한제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Korean Emprie로서, 약칭 'K.E.'로도 사용된다.

구대한제국 시절 공식 문서에는 Corea 또는 Korea가 혼용되어 사용되었고, 1900년대 초기부터 영어권에서는 Korea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1892년 외국인이 자주 보는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5월호에는 “미국 국무부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는 우리가 차용한 이 땅의 이름을 아주 조리 있게 Korea로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한 지방이 된 것으로부터 Chosen이라는 일본식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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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역사

조선 독립 전쟁

1928년 6월 4일, 관동군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에 의해 황고둔 사건이 발생한다. 봉천 군벌의 수장인 장쭤린은 암살을 피해갔으나, 이로 인해 봉천 군벌일본 제국과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화하였다. 일본 제국 군부 내에서는 해당 사건을 일으킨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의 처분을 놓고 통제파황도파로 분열되어 6월 15일, 통제파의 쿠데타가 발생한다. 쿠데타는 곧바로 내전으로 번졌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를 이용하여 독립을 쟁취하기로 한다. 황고둔 사건으로 봉천 군벌난징 국민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면서(동북역치) 대한민국 임시 정부국민정부 뿐 아니라 봉천 군벌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1928년 8월 12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한국 광복군독립 전쟁을 일으킨다. 8월 13일, 독립군은 선양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을 공격하여 선양 전투를 개전한다. 관동군은 화력으로는 우위를 점하였으나, 수적, 지리적 열세로 인해 주둔지를 잃고 선양역으로 집결하였다. 선양역에서 대련으로 관동군을 운송하기 시작하였고, 독립군을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공세를 진행한다. 급하게 이루어진 탈출 작전으로 인해 선양에 주둔중이던 관동군은 소총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기를 버려두고 떠나야했으며, 독립군은 이를 노획하여 무장한다.

선양을 함략시킨 독립군은 8월 18일까지 어떠한 전투도 치르지 않고 대련까지 진군하였다. 8월 19일, 보란점에서 20km 떨어져 있던 독립군을 관동군이 공격하면서 대련 전투가 발발한다. 약 20분간 진행된 야간 급습에서 독립군의 피해는 미미하였으나, 주둔군은 12km 만큼 군대를 물렸다. 8월 21일, 본격적인 전투가 개시된다. 군대는 둘로 나뉘어져 한 군은 보란점을 공격하였고, 다른 한 군은 강을 따라 이동한 뒤 성자탄으로 진군한다. 보란점을 공격하던 군대는 천천히 산악 지형을 따라 피해를 누적시키며 전진하였고, 8월 23일부터 보란점관동군은 남서부 방향으로 병력을 집중하여 미완성의 포위망을 뚫고 금주로 퇴각한다. 독립군은 보란점에서 하루의 휴식을 취하고 난 후 금주에 도착한다.

한성 진군

신주개혁

제1차 한봉 전쟁

신주남정

제2차 한봉 전쟁

한중 전쟁

한소 전쟁

지리

지형

기후

정치

대한 황제

대한 정부

대한제국의회

대한제국 대법원

행정 구역

국방

경제

사회

인구

민족

종교

언어

교육

언론

복지

교통

문화

대외 관계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