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사클레치아)

WARSAW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5월 17일 (일) 17:01 판

틀:어나더어스 주의

사클레치아 국민의회
원내 구성
[ 펼치기 · 접기 ]
제24대 국민의회 220.02 ~ 221.10
호르스트 엘벤 내각
221.09 ~ 221.10
여당

통합군주당
56석

공명연단
3석

미래신화당
1석
야당

민주당
26석

자유당
10석

무소속
3+1석
재적 100석

사클레치아 왕국의 자유주의 정당
민주국민당 민주당 민주당 민주당
자유당
(개별 합류)
사회당
(개별 합류)
카네이션 연합 민주대안당
입헌민주당

사클레치아 민주당(Democratic Party of Saculechia, DPS)는 사클레치아 왕국의 제1야당이자 사회민주주의와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상징색은 파랑색이다. 현재 사클레치아 국민의회에서는 제2당이다.

IY 186년 6월 자유당, 사회당의 일부 당파 등 2개 정당과 카네이션 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창당하였으며 처음에는 율리우스 6세가 이를 불법정당으로 인식하고 해산을 시도한 바가 있었으나, 일리오스 광장에서 제1차 당대회를 열어 무려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동시에 군주당 해산과 율리우스 6세의 퇴진, 정치 탄압 중단을 촉구하였고 이에 따라 민주당원의 수는 1만명에서 3만명으로 증가하였고, 거기에 자유당이 동참하면서 더욱 거세지면서 율리우스 6세가 정치단체, 정당 설립과 활동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정당임을 인정하였다.

19대 총선에서 12석으로 원내 진출을 시작하였고, 20대 총선에서는 자유당과 49석을 얻어 총 59석의 연립 정부로 부상한다. 이후 통합군주당의 온건파 21명, 자유당과 선거법 개정, 개헌을 이끌어냈지만, 21대 총선에서 통합군주당이 제1당이 되면서 제1당 유지에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209년 율리우스 아페렌스 총리의 돈세탁 의혹으로 물러나자 의장이 21대 의회 해산을 선언하면서 민주당과 자유당은 절호의 기회가 된 듯 싶었다. 하지만 21명의 좌파 성향 의원들이 민주당이 지나치게 우경화되었다며 탈당을 선언하면서 민주대안당을 창당함에 따라 진보진영에 금이 가는 듯 싶었으나 민주당이 44석, 자유당이 20석으로 총 64석을 흭득하여 다시 한번 자유당과 연립여당이 된다. 그러나 민주대안당의 지지율이 자유당 지지율을 흡수하여 점점 증가하였고 지지율이 10%에 불과했던 통합군주당이 공명연단과 선거연합을 맺어 18%를 기록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자 민주당-자유당은 동반 하락, 결국 22대 총선에서 참패하여 제1당 자리를 내주었고 자유당은 10석이 되면서 교섭단체를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23대 총선 이후 여당 의원들의 각종 사고와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하여 매년 공석이 생기던 216년 재보궐선거부터 3년동안 자유당과 공동 압승하여 통합군주당-공명연단 연합미래신화당 연립 정권을 무력화시켰고 동시에 자유당이 추천한 루이스 노르트보른이 총리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24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자유당, 무소속 3석을 포함하여 39석을 얻으면서 참패를 당했고 동시에 UMP-KE에게 제1당 자리를 내주었다.

역사

창당

186년 1월 자유당은 율리우스 6세를 비판하기에 바쁜 상황이었고, 백성들과 자유당원들은, 자유당으로는 율리우스 6세를 비판할 힘이 없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를 대변하기 위한 정당을 만들자는 계획을 준비했고, 20명을 중심으로 창당 준비를 시작하였다. 4월이 되자, 당 명칭을 민주당으로 정하고,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원은 20명에 불과했으며, 사클레치아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데다가, 이 상태로는 민주당 창당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던 중, 사클레치아의 진보단체인 카네이션 연합은 당사를 방문하여 카네이션 연합에 합류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민주당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창준위는 자진 해산을 선언하였고, 카네이션 연합에 들어가게 된다. 그 중 민주당원 중 하나였던 마르쿠스 펠릭스가 카네이션 연합의 대표가 되었고 이에 대해 "과거 민주당 창준위에서 활동했을 때, 내 소원은 민주당이 의회에 입성하는 것과 사클레치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백성이 아닌 국민이며 국민들을 해치는 율리우스 6세를 끌어내리고 국민과 함께 왕정을 이 자리에서 끝내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정을 수립해야 한다"고 연설문을 발표했으며 이에 호응한 회원들은 민주정당 통합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월이 되자, 각 진보정당 대표들은 민주당 전당대회를 7월에 열 것으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시민단체들도 민주당 참여에 합류했는데 한편 자유당은 민주당 참여를 위해 민주계 대다수가 탈당한 상황이었고, 사회당도 당 내 갈등으로 중도파가 사회당과 결별한 상태였다. 이들은 민주당 참여를 선언하였고, 이어 입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입헌민주당,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민주국민당도 이에 참여하면서 곧 합당 절차를 밟기 시작한다. 150여 명의 의원단을 중심으로 투표를 진행했고, 투표 결과 전원이 합당에 찬성하면서 곧바로 합당을 선언하였고, 드디어 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하지만 민주당의 시작은 좋지 못했다. 자유당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도 율리우스 6세가 민주당을 반국가단체로 인식하여 해산을 시도했다는 점과, 당시 민주당 합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점차 우경화되면서 원외 우익정당인 국민당을 만들어 민주당 창당을 방해했다는 점 때문에 민주당을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도전은 계속되었으며 민주당의 첫 전당대회 장소를 수도 일리오스의 일리오스 광장으로 정하였고, 요구조건을 정당, 정치 단체 활동의 자유와 자유당 수호, 율리우스 6세 퇴진 촉구로 결정하였다.

드디어 7월, 전당대회가 시작되었다. 민주당은 시작 전 10,000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예상보다 많은 50,000명이 참가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