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롭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없으며, 신사적으로 파괴하는 방법도 없다. 전쟁 속에서 좋은 일은 없다. 종전만 빼고. - 에이브러햄 링컨


1945년, 섬광이 워싱턴을 뒤덮었다. 그렇게, 자유의 시대는 종막을 고했다.


Production by:서드, 커피와 사탕

개요

2차 세계대전, 대동아 전쟁, 신질설 전쟁,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그 대전쟁이 끝난 지 수십년이 지났고, 아직 그 전쟁의 화마 속에서 태어난 회색 악마는 인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때 위대하다 불리던 나라들이 자리잡았던 구대륙은 마치 파이조각처럼 잘려나갔고, 신대륙에서 떠오르던 거인은 깨어나기도 전에 짓뭉개져, 서쪽에서 뜨는 태양의 위성과 동쪽에서 온 독수리의 영지가 되었을 뿐입니다.

모두가 길어야 20년이 갈 것이라 예상한 체제였으나, 아직 세계는 절묘하고 사악한 균형 아래 생명을 희미하게나마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연, 신질서의 주인들은 이전 지배자들처럼 현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끝은, 마침내 임박한 극적인 파멸일까요.

벚꽃이 질때까지는 2024년 2월 27일 연재를 시작한 서드,커피와 사탕의 세계관이다.

루즈벨트, 처칠의 죽음과 추축국의 초과학적 발견[1]으로 인한 추축국의 세계 신질서 건립이 이루어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정보가 나오는 시기는 2016년으로, 세계 신질서가 종막을 고할 때이기도 하다.

시나리오적인 측면에선 냉전기와 대체역사 소설 높은 성의 사나이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공상과학적인 측면과 TNO의 면모를 함께 투영하고 있다.

파멸의 타임라인

주요 분기점

루즈벨트 암살 ⇒ 30년 혁신 ⇒ 처칠의 의문사



'루즈벨트의 암살'은 1932년에 이루어졌으며, 그가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에 사망함에 따라 당시 부통령이었던 존 낸스 가너가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만으로는 루즈벨트가 했던 수준으로 미국 경제를 재부흥 시키는것이 힘들었고, 심지어 뉴딜 정책에 부정적이었던 그가 해당 정책을 폐기하면서 미국의 경제는 오히려 더 침체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심각한 예산 문제로 인한 해군력의 감소로 나타났다. 또한 대외정책에도 변화가 생겼으니, 바로 고립주의의 심화였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이래 내려오던 미국의 확장적인 대외정책은 ㅈ금 대공황에 빠진 미국에게 있어서 그저 돈이 많이 드는 쓸모없는 정책일 뿐이었고, 결국 이 풍조가 사라지고 가너의 다음 대통령인 존 W. 브리커가 임명될 시기에는 미 정부의 사실상 공식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이 남미에서의 영향력까지 대부분 상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를 틈타 파나마 운하에는 타국의 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한편 태평양에서 모종의 이유로 일본군의 함대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미국은 그나마 남아있는 약한 함대라도 지켜야 한다고 판단, 요새와도 같은 진주만으로 모든 함대를 모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국이 일본군의 늘어난 전투기 수에 함대를 전부 다 유린당하는 결과를 내놓았고, 여기에 작전 수행 도중 전투기 3대가 자살돌격으로 유류 저장고까지 박살내면서 미국에게 큰 타격을 끼쳤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선 기술력으로 미국의 암호를 해독한 일본은 사실상 미국을 손바닥 안에 넣다시피 했고, 그렇게 태평양에서의 치열한 결전은 서서히 일본에게로 승기가 기울었다.

30년 혁신은 추축국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우연히 찾은 진시황릉에서 터무니없을 수준으로 현대적인, 심지어 어떤 방면에선 미래적일 수준의 병기 제작서들과 생명 공학 문서들을 발견한 일본 제국을 시작으로 독일의 비엔나 궁전 지하, 이탈리아 판테온의 비밀의 방 등에서 극비리에 이루어진 조사들은 고대인들이 훗날의 후손들을 위해 남겨놓은 유산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확고히 증명해주었다. 이를 통해 방공 협정의 가입국들은 이 행운을 우선 비밀리에 부쳤고, 본격적인 전쟁을 준비하기 전, 해당 기록들과 유산들의 극히 일부만들 동원하여 자신들의 병기에 탑재하였다. 이를 통해, 추축국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연하국과의 기술 및 물산 우위는 어느정도 동등해지거나, 일부 방면에서는 확실하게 연합군을 앞설 수 있게 되었다.

처칠의 의문사는 결과적으로 본토 항공전 발발 당시의 영국을 극도로 불안한 상황으로 만들었다. 정치인들은 서로 갈등하며 통 하나로 뭉치지 못했고, 이 와중에 오스왈드 모슬리의 영국 파시스트 연합은 항공전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기 시작하자 태도를 바꾸어 독일에 항복하여 후일을 도모하자는 의견을 제안, 결국 의견차이가 심화되던 도중 아일랜드 방면에서 독일의 지원을 받은 반란군이 들고 일어나면서 전황은 악화되기만 했고,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1943년 영국 파시스트 연합이 쿠데타를 시도, 성공한 뒤 이미 소련과 아프리카를 제패한 독일에게 항복을 선언하면서 영국은 속국이 되어버렸다.



국제정세

국가

세력

기술문화방면

요주의 사건

기타


  1. 각각 오스트리아 궁전 지하, 그리고 중국의 진시황릉에서 발견된 시기불명의 기록 등을 통해 연합국보다 병기 반전 수준에서 동급, 혹은 10년 앞서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