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커먼웰스

Creative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7월 6일 (토) 00:59 판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영토(지도의 청색 영역)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North American Commonwealth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국기[1]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대통령기
통칭 '북아메리카, 북미, 커먼웰스
정치체제 대통령제 민주 공화국, 연방제
의회 체제 양원제: 대의원(하원) / 연방원(상원)
경제 체제 시장경제, (부분적) 개입/복지국가주의
설립 연도[2] 1775
국가 ISO 코드 NAC
소속 국제기구 자유주의 국제 연맹League of Liberalist Nations
수도 연방특구 콜럼비아 Commonwealth District Columbia
국가 오, 아름다운 커먼웰스!
세계관의 국가 상징색 #192EED
화폐 단위 크레딧Credit/NCC
현재 인구수 약 2억 6,790만 명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정부 인사 목록
현직 국가원수 커먼웰스 대통령 리디아 윤Lydia Yun
현직 부통령 커먼웰스 부통령 세바스천 트루도Sebastian Trudeau
현직 하원의장 대의원 제1대변인 파티마 우마르Fatima Umar
대법원장 케이트 긴즈버그Kate Ginsburg
국무부 장관 클린턴 프랭클린Clinton Franklin
재무부 장관 조르지오 크로체Giorgio Croce
국방부 장관 길버트 매케인Gilbert McCain
법무부 장관 유페미아 롤스Euphemia Rawls
내무부 장관 압바스 이브라힘Abbas Ibrahim
농무부 장관 허마이오니 앤드루스Hermione Andrews
상무부 장관 셸든 폴크Sheldon Foulke
노동부 장관 에드워드 브라우더Edward Browder
보건-복지부 장관 앙헬 마리아 실바Angel Maria Silva
교통부 장관 유미 카스가노Yumi Kasugano
에너지부 장관 앤드루 정훈 김Andrew Junghun Kim
교육부 장관 브루스 커닝엄Bruce Cunningham

개요

북아메리카 커먼웰스North American Commonwealth가상지구 BF 세계관의 북아메리카 지역 상당수를 점유하는 대국이다. 현실 세계의 미국이 강대국이듯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또한 가상지구 BF 세계관의 강대국이다.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모티브는 '미국 남북전쟁에서, 갈라진 미국이 다시 통합되지 않고 그 분열이 지속되었다면?'이라는 대체역사 세계관에서 출발했지만, '현실 미국의 영토를 남북으로 가름'은 대체적으로 유지하지만 그 외의 발상은 새롭게 썼다.

역사

식민지 개척기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라는 나라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유럽권에서의 신대륙 개척에서 시작했다. 비록 후일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될 대륙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토착 아메리카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유럽인들의 개척 과정에서 대부분 밀려나거나, 피로 얼룩진 길이라는 처참한 결말을 맞게 되었고[3] 그와 같은 잔인한 역사의 결과로 아메리카 대륙의 주역은 유럽의 이민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토착 아메리카인들의 불운함은 뒤로 해두고 무주공산의 식민지를 '개척' 하면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가꾸어 나갔고, 개척자들은 자신들이 이 땅을 개척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농토를 일구었기에 자신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인식하였다. 최초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본토에서 파견된 관리들이었거나, 새 삶을 찾으러 온 이주자들, 또는 강제로 '유배'된 죄수들이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왔던 '본토' 나라의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대를 이은 자손들은 아메리카에서 나고 자랐기에 형식적인 국적 의식을 제외하면 본토와의 유착감이 약해져 갔다. 거대한 바다라는 자연 방벽이 있었기에 유럽의 '본토'에서도 이들에 대해 강력하게 간섭할 수 없었으며 유럽의 왕실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릴 '세금'만 적절히 받아내는 데 만족했고 식민지인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두었기에, 개척자들의 '자립 의식'은 더더욱 커져만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근세 시기 유럽 대륙이 '절대주의 시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유럽 대륙은 각국의 분쟁에 의하여 많은 전비를 소모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식민지에도 중과세, 통제의 손길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알비온의 경우에는 당대 왕실이 걷잡을 수 없이 전쟁에 연루되고, 또 당시 왕 '리처드 5세'의 사치와 낭비[4]를 충당하기 위하여 아메리카 식민지의 풍요로움을 이용하려고 하였다.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세금을 내고 싶어하는 이는 없기에, 식민지인들은 알비온 본토에서 요구한 과세를 반발하였다. 아메리카의 알비온 식민지는 당시 유럽에서 벌어지던 난장판에서 일차적으로 떨어져 있었고, 그리고 문화에 심취한 리처드 5세의 온갖 시설 건축은 알비온 식민지에도 약간의 '떡고물'이 떨어졌기에 대체적으로 왕실에 크게 나쁜 이미지를 갖고있지 않았기에, 식민지인들은 단지 왕이 중대한 과세를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이 알비온 정치계에서 대표되기를 원했다.[5]

그러나 리처드 5세는 식민지인들의 요구를 불허했으며, 세금의 요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왕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던 식민지인들조차도 알비온을 반대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서 일부 '불순분자들'이 아예 독립을 하자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유럽에서 불어오던 '자유주의'의 물결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도 전해졌고, 이 자유주의 사상에 포함된 '사유재산의 자유' 및 '법에 따른 국가' 이념은 세금으로 고통받던 식민지인들의 반알비온 감정에 불을 지폈고, '불순분자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이용하고 '우리들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나라'를 새로 만들자고 공공연하게 선동하였다.

식민지 독립 ~ 아메리카 왕국기

그러던 와중, 1773년에 식민지가 독립하게 된 '관청의 폭력 사건'이 벌어진다. 알비온령 아메리카 식민지의 '아캄Arkham' 시의 정무관청에서, 식민지인들과 본토에서 파견된 총독 관료들간의 패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현재까지도 이 사건의 진상은 오리무중인데, 한편의 의견에서는 '평화로이 탄원을 하러 간 식민지인들을 정무관청의 관료들이 우롱하고 모욕하였다' 라고 주장하며, 다른 의견에서는 '그들은 평화로운 탄원자가 아니라 폭력의 의도를 가진 불순분자들이었다'라는 의견이 있으며, 알려진 사건의 정황에 석연찮은 부분이 많기에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마침 식민지 총독이었던 '제임스 액턴 경Sir James Acton'은 정무관청에 없었고, 급하게 이 소식을 듣고 나서 식민지 파견군을 보내 이를 진압하였다. 그러나 군대 투입은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악수였는데, 반 알비온 왕실파 = 독립파들은 이 사건을 크게 대서특필하고 선동하여 잔혹한 알비온 왕실의 폭정! 또는 알비온인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 따위의 출판물과 선전이 난무하였고, 이에 영향받은 식민지 대표들은그 소문들이 얼마나 진실되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한데 모여 대책을 모의하기로 했고, 결국 24시간동안의 밤을 꼬박 샌 비밀회의 결과[6] 이들은 알비온과 독립된, '독립 국가'를 선언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아메리카 독립 전쟁인 것이다.

식민지인들은 약간의 민병대밖에 갖추지 못했지만, 이들은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끼고 게릴라전을 벌여 진압군을 고사시켰고, 또 식민지 지식인 대표들이 유럽 각국의 알비온 적대국들에 호소하여 알비온을 견제, 방해하도록 호소한 결과, 결국 알비온의 왕 로버트 2세(이 사단의 원인이 된 리처드 5세는 독립전쟁 시작 직후에 병사했다)는 눈물을 머금고 아메리카 식민지를 독립시키기로 결정하였고, 알비온령 아메리카 식민지는 독립하게 된다.

그런데, 갓 독립을 하게 된 13개 주의 식민지는 시작하자마자 둘로 나뉘게 되었다. 식민지인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왕'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버리지 못했고[7] 일부 식민지 대표들은 당시의 전쟁 영웅이자 대지주였던 '윌리엄 클레이턴William Clayton'을 국왕으로 세울 것을 주장했고, 남부 식민지 대표들은 이를 반발하였다(윌리엄 클레이턴이 남부 식민지쪽과 개인적 악연이 있었다고도 한다), 끝내 의견을 합치지 못한 13개주의 식민지들은 서로 개별 국가를 세우기로 합의하였고, 북부 식민지 주들은 '아메리카 왕국'을 선포한다. 제 갈길을 가기로 한 남쪽 식민지는 대 맹방국The Great Confederacy이 되었다.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역사에서, 대 맹방국과의 분쟁과 전쟁사는 여러번 있었는데, 그 갈등의 씨앗이 식민지 독립때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윌리엄 클레이턴은 유명한 대중 선동가이자, 전쟁 영웅이기는 하였지만, 막상 그가 왕이 되자, 그는 통치에서 무능함을 자랑했으며, 알비온 왕정에만 반대했을 뿐 그 자신이 귀족적인 성향이 가득했기에 그는 이미 유럽과 아메리카에 만연하던 '자유주의' 기조에 반대하는 반동적인 정치를 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윌리엄 왕의 폭정기The Tyrany of King William로 불리며, 마침 비잔티움 제국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황제를 죽이고 로마 노바 공화국을 선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문필가이자 시인, 그리고 모험가였던 니콜라스 페인Nicholas Payne이 <당연한 지식>이라는 책으로서 왕을 쫓아내야 한다는 견해를 발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메리카 왕국'에 속한 각 주들이 왕의 통치를 부인하고 공화국을 선포하자, 전쟁영웅의 면모는 온데간데 없어진 '윌리엄 왕'은 곧 권좌를 버리고 1792년에 도주하였다. 그리고 '아메리카 왕국'은 연방제 공화국으로 개편되었으며, 이때부터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라는 국명이 반포되었고, 그 유명한 '커먼웰스의 공화국헌법'이 제정되었다.

혁명의 사상적 아버지였던 니콜라스 페인을 커먼웰스 대통령을 모시자는 여론이 있었지만, 페인은 그 시기에 이미 중병에 걸렸기에 스스로 대통령직을 반려하였고, 곧 사망하였다. 니콜라스 페인은 현재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국부 중 한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커먼웰스의 수도 '연방특구 콜럼비아'의 공항인 '니콜라스 페인 공항'이 있으며, 또 커먼웰스 해군에는 그 배의 형태는 달랐지만 언제나 '니콜라스 페인 함CNS Nicholas Payne'이 존재하는 것이 전통이다.

각주

  1. 본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 설명
    출처 : [1]
    저작자: Lady zero로 추정
    저작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Unported
  2. '아메리카 왕국' 시기까지 포함한다
  3. 단, 가상지구 BF 세계관에는 일부 토착민 문명들이 현대까지 살아남아, 현대국가를 이루고 있다고 잠정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상세한 것은 추후 생성할 예정.
  4. 개인적인 향락을 추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 지대하게 심취하여 온갖 문화시설이나 극장, 동물원 등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였다
  5. 그래서, 일부 역사가들은 (현재는 한물 지나간 학설이지만) 이 때 리처드 5세와 알비온 중앙 정부가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독립이 없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유력 학설은 그것은 기폭제에 불과하였을 뿐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6. 공포심에 싸인 식민지인들 사이에서, 이 회합이 발각된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인스머스Innsmouth라는 마을의 허름한 교회 지하에서 24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회의를 진행했다. 현재 이 인스머스의 교회는 커먼웰스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7. 단적으로, 현대적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등의 전통이 되었다는 계몽주의 시기의 책을 보더라도, '군주' 또는 '왕'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내용들이 있다. 그리고 현실의 미국사에서도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왕으로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