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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 제국의 역사
History of Britan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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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 제국
화이트로이드 황조
유럽의 황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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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B.B. 1948~B.B. 1526
서로마 제국
B.B. 1526~B.B. 1445
신성 로마 제국
B.B. 959~B.B. 115
프랑스 제국
B.B. 117~15
오스트리아 제국
B.B. 117~14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B.B. 54~14
독일 제국
B.B. 50~16
대영제국
0~
동로마 제국
B.B. 1526~B.B. 468
불가리아 제1제국
B.B. 1240~B.B. 840
불가리아 제2제국
B.B. 736~B.B. 525
세르비아 제국
B.B. 575~B.B. 550
오스만 제국
B.B. 622~9
루스 차르국
B.B. 374~B.B. 200
러시아 제국
B.B. 200~B.B. 2
번외 제3의 로마
브리타니아 제국
IMPERIVM BRITANNIAE
황실 문장
황제기 정부 문장
IMPERATOR EST FIDES NOSTRA
황제가 곧 우리의 믿음이다
국가 Impreial March
황실 찬가 God Save the King
국수 사자
국조 울새
지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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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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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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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609,062,166명 | 세계 3위
인구밀도 17.74명/km2
기대수명 82세 (99년)
인구구성 내지인 77.0%
외지인 23.0%
공용어 제국어 (영국식 영어, 라틴어)
지역어 스페인어, 중국어, 마오리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아프리칸스어, 그린란드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영국 성공회
분포 영국 성공회 56.2%
가톨릭 10.1%
개신교 3.0%
유대교 1.0%
기타 종교 2.1%
무종교 27.6%
군대 황제 폐하의 제국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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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전제군주정, 봉건제, 관료/군사독재정, 의원내각제
국성 화이트로이드 (Whitelloyd)
의회 대영제국 참사원 (상원)
대영제국 귀족원 (하원)
대영제국 평민원 (기타)
국가 원수 (황제) 조지 5세
황실
요인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
황부장관 앤드루 오길비
정부
요인
총리 뉴트 제이콥슨
재무장관 피트 더글러스
전쟁장관 제이슨 베일리해밀턴
국무장관 리처드 오언
내무장관 토머스 에시크로프트
여당 민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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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PPP)
£50,247,628,695,000 | 세계 1위
1인당 £82,500
GDP
(명목)
£52,988,408,442,000 | 세계 1위
1인당 £87,000
신용 등급 무디스 Aaa
S&P AA+
Fitch AAA
통화 파운드 스털링 (GBP, £)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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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황력 기원
도량형 SI 단위, 야드 파운드법 (혼용)
ccTLD
.gb
국가 코드
GB, GBE, 675

개요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대륙에 위치한 전제군주제 국가이다.

상세

Etiam si pereo imperium aeternum manebit
나는 죽지만, 제국은 영원할 것이다.

프레더릭 3세

수도는 임페리얼 캐피톨이고 최대 도시는 뉴욕이다.

영국의 국체는 10세기경부터 19세기 초까지 브리튼 제도에 존재했던 국가인 연합왕국을 모체로 한다. 연합왕국이 나폴레옹 전쟁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에 패전하고 런던이 프랑스 군에 의해 위협받자, 왕실과 주요 정치 인사들이 신대륙으로 천도하면서 현재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천도 초반의 영토도 넓었지만 이후 태평양 영토 확장 전쟁으로 텍사스(뉴 웨스트 레스터), 북멕시코, 칼리포르니아(솔즈버리 힐), 브리티시 컬럼비아 등의 영토를 얻고, 스페인과 러시아로부터 각각 카리브해 제도와 알래스카를 넘겨받으면서 영토가 전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가로 거듭났다. 현재의 영토가 확정된 것은 B.B. 9년 하와이를 합병하면서이다.

현재 대영제국은 GDP 규모 52조 파운드[1]로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강성한 국가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대륙 세력인 독일과 경쟁하였고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또다른 대륙 세력인 소련과 경쟁하고 있으나, 소련에 비해 배나 차이가 나는 국력 때문에[2] 세계 유일무이의 극초강대국으로 올라서면서 팍스 브리타니카라는 명칭의 패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상징

국호

공식 국호는 Empire of Great Britain, 즉 대영제국이다. 제국이 되기 전에는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후 프레더릭 3세 시절, 제국이 되면서 국호 역시 바뀌었다. 라틴어에서 따온 브리타니아 제국이라는 국호 역시 공식 국호로 사용된다.

민간에서는 영국 혹은 대영, 브리튼, 브리타니아 등 으로 불린다.

국가



황실의 곡인 "God Save the King"과 제국 군대의 행진곡인 "Imperial March"가 공동 국가로 지정되어있다. God Save the King을 연주한 다음 Impreial March를 연주하는 것이 관례이다. Imperial March에는 지정된 가사가 없기 때문에 가사를 부르지 않고 보통 God Save the King도 가사를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황실 행사 등 몇몇 행사에서는 God Save the King의 가사를 부르기도 한다.

Rule Britannia, Land of Hope and Glory, Jerusalem 등 국가로 지정되지 않은 곡들도 관례상 준 국가 취급을 받는다. 또한 I Want to Hold Your HandBorn in the British Empire 같은, 영국 대중음악을 상징하는 고전 명곡들이 거의 준 국가로 여겨져 여러 행사에서 불리곤 한다.

국기

유니언 잭
Union Jack | Union Flag
국가 영국
비율 1:2
채택 B.B. 120년

유니언 잭은 B.B. 120년 공식적인 국기로 채택된 이래,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과거 브리타니아를 구성하였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상징한다. 현재는 대영제국이 신대륙으로 천도한만큼, 국기 속의 국가들은 대영제국의 구성국이 아니지만 관례상으로 아직도 쓰고 있다.

이후 0년 칭제와 동시에 겉에 노란색 테두리가 추가되었고, 검붉은색 원과 국장이 국기에 추가되며 현재의 디자인이 되었다.

충성 맹세

Magnae Britanniae Imperatori subdito iuro me corpus et animam meam Imperatori devoveo, eique fidelitatem iuro.
나는 대영제국 황제의 신하로서 황제 폐하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한다.

12년 채택된 황제에 대한 충성 맹세로, 현재까지 공식 행사에서 국가 연주 직전에 황국신민의례의 한 부분으로 암송된다. 충성 맹세를 할 때에는 로마식 경례로 오른팔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 채 경례하며, 이는 로마제국의 계승국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충성 맹세는 라틴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라틴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외우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대영제국 황제 즉위식, 대영제국 귀족원 또는 대영제국 평민원 개원식, 대영제국 황제기사 서임식 등 매우 엄숙한 행사에서만 통째로 낭독되며, 보통은 생략하거나 맨 첫줄만을 읽는다.

역사

브리타니아 제국의 역사
History of Britannia

천도 이전의 역사

신대륙에 인간이 언제 도달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기 이전에 동아시아계에 속하는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배링 육교를 건너 정착하였다. 서양 세력에게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알려진 것은 10세기경 바이킹이 뉴펀들랜드 섬을 발견하고 정착촌을 건설하면서이다. 이 외에도 서아시아의 페니키아 상인들과 이베리아 반도의 바스크 상인들도 신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은 B.B. 429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의 카리브해 연안 발견 이후이다. 콜롬버스는 자신이 도달한 땅을 인도라고 생각하였지만, 얼마 이후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지리학자가 콜롬버스가 도달한 대륙이 인도가 아닌 신대륙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신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손을 뻗었다. 그중에서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북부 지역을 차지하였다. B.B. 314년 13개 식민지가 건국되었고, 약 200년간 존속하였다. 하지만 식민지에 대한 가혹한 통치는 B.B. 145년 조지 워싱턴의 반란으로 이어졌고 간신히 반란을 진압한 이후 영국 정부는 식민지 통치 노선을 수정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패전과 신대륙 천도

B.B. 116년 10월 영국 함대가 트라팔가 해전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기록한 이후, 프랑스군은 영국에 대한 전면 공격으로 수도 런던까지 위협하였다. 이에 영국의 국왕인 조지 3세와 그의 신하들은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의 천도를 결정하였고 B.B. 116년 12월 신대륙 식민지의 최대 도시였던 필라델피아에 망명 정부를 건국하게 되었다. 영국 왕실과 정부 인원 이외에도 약 150만명의 영국인들이 프랑스의 침공을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단숨에 13개 식민지는 영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본래 영국 왕실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천시하였으므로 프랑스와 2차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다음 브리튼 제도로 복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대서양의 드넓은 바다는 이를 어렵게하였다. 또한 프랑스가 러시아와 협상을 맺고 전쟁에서 승리해 유럽의 패권자가 되면서 영국 내에서도 최소 50년간은 브리튼 제도 복귀가 어렵다는 주장이 나와 결국 영국 정부는 제2차 프랑스-영국 전쟁 계획을 사실상 포기하였다.

천도 직후에는 영국으로부터 이주온 난민들과 식민지 원주민들이 갈등을 빚으며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또한 아메리카 식민지 독립파들도 활동하였다. 그러나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가 신대륙 내에서도 자리잡고 급격한 공업화와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사회 혼란은 잦아들었다. 19세기 초부터 말까지 영국의 공업화가 동부 중심 지역으로 일어나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프랑스의 경제까지 따라잡는데 성공하였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 영국 내에서 반불감정이 매우 거세졌기 때문에 프랑스어 사용 금지 등 프랑스인에 대한 차별 정책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71년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하였다.

태평양 영토 확장 전쟁

B.B. 67년부터 B.B. 60년까지 지속된 멕시코 및 기타 원주민과의 전쟁을 뜻한다. 이 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영국의 국경은 기존의 루이지애나 지역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넓혀졌고 남쪽으로도 멕시코의 북부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 외에도 영국은 영토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켰다. B.B. 51년에는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을 스페인으로부터 사들였다. 얼마 이후에는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구입하고, 하와이 왕국을 멸망시킨후 총독령을 설립한다. B.B. 9년 영국 정부가 총독령을 폐지하고 연합왕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현재의 영토가 이루어졌다.

공업화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중 하나가 된 영국은 영토 확장을 통하여 더더욱 광활하고 비옥한 토지를 얻으면서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오히려 천도 이전에 비해 국제적인 영향력과 경제력이 강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또 수많은 문화인과 지식인이 활동하면서 국가 역량도 크게 상승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식민정책을 추구하면서 우리가 아는 대영제국 체제가 완성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치지 않고 카리브해에 위치한 모든 섬과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의 여러 지역들을 식민화하였다. 인도차이나 반도, 홍콩, 대만섬, 호주, 뉴질랜드, 나이지리아, 콩고, 남아프리카 등이 이 당시 영국의 대표적인 식민지였다. 각국의 식민지에서 황인과 흑인 이민자들이 쏟아져오면서 일부 도시에서는 19세기 말에 일찍이 모자이크 사회가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인종차별적인 정책은 이민자들에게서 큰 반감을 샀다. 게다가 공업화로 인한 빈부격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영국 내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되었는데 이 시기 대표적인 사회주의 단체로는 시카고에서 결성된 전영국노동조합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 내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끊이지 않았고 사회주의의 세가 가장 강력했던 매싱엄, 시카고, 토론토 등의 도시에서는 폭동이 빈발했다.

독일과의 경쟁과 세계전쟁

중국 전선에서 청나라군과 대치하는 제국군

19세기 중후반 프로이센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나폴레옹 제국이 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어 로마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프로이센의 빠른 공업화는 독일 경제가 프랑스 경제를 추월하고, 급기야는 B.B. 50년대 북독일연방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전역을 통일하게하였다. 프랑스는 이런 프로이센의 성장에 위협을 느껴 전쟁을 선포했으나 도리어 프로이센에 패배하였고, 이후로는 독일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칭제한 독일이 유럽의 신패권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영국과 독일의 갈등이 고조되던 B.B. 7년 영국의 함선인 "프레저호"가 북해에서 의문의 사고로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영국 정부는 이를 프랑스와 독일의 협공으로 간주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아 독일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를 세계전쟁이라고 부른다.[3]

세계전쟁에서 영국은 아프리카 전역을 점령하고 피레네 산맥까지 프랑스-독일 동맹군을 몰아내면서 선전하였으나 소모적인 참호전에 돌입하면서 반전 여론이 높아졌다. 또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영국은 수세에 몰렸고 다시 북아프리카를 프랑스-독일 연합군에 빼앗겼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역시 나라 사정이 안좋은 것은 마찬가지였고, 반전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 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영국과 프랑스-독일 연합은 B.B. 1년 3월 5일을 기해 전쟁을 종전시키기로 협의하였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비록 절반뿐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며, 또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덕에 군수 물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전후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반대로 영국을 막아내었다고 자부했던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으로 소모된 막대한 자원과 인구로 인해 사회 혼란이 가속화되더니 10년대 전부 혁명을 겪으며 공산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공산권과의 냉전 체제

10년대는 혼란의 시기였다. 11년, 군수 경제로 지탱되던 영국은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경제 공황을 맞았다. 비슷한 시기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경제 공황에 직면하였다. 그나마 영국은 식민지 블록 경제로 자국 경제를 지탱했고, 존 드레이퍼슨 총리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정책으로 점차 위기를 해결해나갔지만, 유럽 국가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체 연이어 소련의 정치 공작과 사회 빈곤층의 불만 등이 원인이 된 공산주의 혁명을 겪고 공산화되었다.

21년에는 폭주하는 일본이 영국의 하와이를 공격하자 공산권 국가들과 협력하여 일본과 3년간의 전쟁을 치루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산권과의 협력은 그 뿐이었고 이후 공산권 국가들과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그렇지만 영국과 소련의 동시 핵개발로 인해 전면전까지 이르지 못했고, 국공내전과 한국전쟁, 인도차이나 독립전쟁, 인도 혁명 등 대리전의 양상이 주로 나타났다.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은 영국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군과 대한민국이 승리했지만 반대로 인도차이나 전독립전쟁과 인도 혁명은 소련과 유럽이 지원하는 혁명군이 승리하였다. 이러한 "평화적 적대 관계"는 이념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크게 봐서 제국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치열한 이익 갈등 싸움이었다.

공산권과 전면전을 치루지 않는 체제 경쟁은 또다른 한편으로는 지리적인 전쟁이기도 하였다. 신대륙과 구대륙의 싸움, 즉 오세아니아-아메리카-동아시아와 유라시아 대륙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40년대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공산주의와 제국주의 진영간 대리전의 양상이 다시 일어나기도 하였다.

조용한 혁명

인도차이나 독립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모습

20년대 영국의 경제 성장은 정점에 다랐고 국민의 삶의 질 수준도 최고조에 올랐다. 하지만 청년들은 꽉 막힌 체제의 개혁을 요구했다. 국왕과 양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판, 인종차별 정책[4] 등은 청년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42년 보수당존 하트먼 총리가 실각하고 민주당빅터 피어슨이 총리 자리에 올랐다. 린든 B. 존슨은 "위대한 사회" 정책을 통해 인종차별 철폐 정책과 서민층 지원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빅터 피어슨 총리 역시 46년 인도차이나 독립 전쟁의 반전 여론으로 사퇴했고 이후 같은 정당의 리처드 윌리엄스가 총리직에 올랐다. 피에르 트루도 내각은 적극적인 사회 개혁 정책과 프랑스인, 동양인, 아프리카인 차별 정책 완전 철폐, 사회 보장 제도 실현, 인도차이나 식민지 즉각 제후국 전환 등으로 젊은 층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윌리엄스 총리는 50년대 말까지 장기집권하였으며 57년 총선 패배로 실각한 이후 제국당헤이 헤빌랜드가 총리직에 올랐다. 기업인 출신의 헤빌랜드는 윌리엄스 내각의 진보적인 정책을 철폐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오히려 사회 개혁 기조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제국당과 민주당 양당의 사회 개혁은 특별한 시위나 폭동 없이, 제국 내각이 스스로 이룬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 때문에 "조용한 혁명"(The Silent Revolutio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용한 혁명을 통해 성공회, 백인, 왕정 중심으로 돌아가던 보수적인 영국 사회는 차츰 세속적이고 진보적으로 바뀌었다. 60년대 이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거의 사라졌고, 사회 고위층에도 유색인종이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그 외에도 B.B. 116년 이후 시행되었던 프랑스어 사용금지법이 철폐되고 지방 자치 의회도 설립되는 등 영국의 사회는 크게 변하였다.

50-60년대의 다극화와 데탕트 체제

46년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의 축출과 연이은 소련의 공격적 대외 정책에 반발한 유럽의 몇몇 국가는 손을 잡고 소련이 사회주의 노선을 배반하였다고 비난하면서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베네룩스 3국 등이 그러한 국가들이었다. 소련의 영향을 받고 있던 동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친소련의 노선을 견지했다.

영국은 이러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분열을 이용해 제빠르게 소련을 비난하고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과 손을 잡았다. 유럽 공산주의 국가와 손을 잡는게 말이 되냐는 반공주의자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실용주의적 외교를 지지했던 당시 내각의 방침 덕분에 유럽과 영국은 손을 잡고 소련을 포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유럽은 여러 국가가 뭉친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소련과 영국에 비해 체급이 낮을 수 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어떤 국가가 연합 내에서 우세를 점하냐에 따라 영국과의 관계는 변하였다. 또한 영국을 견제해야한다는 의견이 유럽 내에서도 나왔기에 때로는 사안별로 소련과 연합하기도 하였다.

데탕트 체제 속에서 영국은 구대륙 전체와의 대결을 피하면서 냉전에서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 유럽 공산주의자들과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연합은 제2차 세계전쟁에 대한 위협을 완화시키는데에도 크게 일조하였다. 이러한 불완전한 평화 구도가 60년대 영국의 전성기를 꽃피우게 했다는 설이 있다. 다소 음울하거나 세기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40년대의 문화에 비하여 60년대의 대중문화는 훨씬 상업적이고 밝은 분위기를 띈다는 것이 그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유럽 공산권의 붕괴와 신냉전 체제

70년대 초중반 공산주의 국가들은 계획경제의 한계로 인해 경제가 휘청였고, 또 경직된 정부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특히나 소련의 정치 공작과 영국으로부터의 자본주의 문물 도입이 일찍이 되었던 유럽에서 그러한 정치적 혼란이 더더욱 극심하였다. 그 결과, 70년 독일에서의 민주화 혁명을 시작으로 71년 프랑스, 72년 이탈리아와 터키, 73년 스페인 등이 차례대로 붕괴되면서 유럽 공산권은 해체되었다.

해체 과정 속에서 소련의 유럽 개입은 세계 정세를 긴장시켰다. 처음에 소련은 유럽의 민주화를 인정하는듯하였으나, 74년 유럽-소련 전쟁을 통해 유럽 국가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즉 데탕트 체제로 어느정도 해체되었던 냉전 분위기가 유럽 패권을 장악한 소련으로 인하여 다시 경직된 것이다.

신냉전 체제로 인하여 조용한 혁명 당시 잠시 풀어졌던 사회 분위기는 냉각되었다. 정교 분리 운동이 어느정도 수그러들었고 한동안 꾸준히 재기되었던 중국-인도인의 1등 시민화, 제2계급에 대한 제한적 투표권 부여, 제3계급 축소 혹은 폐지론 등이 대부분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으로 몰려 사장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부상은 황실에게나 민중에게나 있어서 사회주의에 대한 위협을 재부각시켰으므로 조용한 혁명 당시의 민주주의 유입, 해빙 분위기는 자연스레 이적 사상으로 몰려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황제기사의 난

프레더릭 5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조지 4세의 치세에는 사용되지 않는 절대 권력, 군정경 유착의 심화, 신냉전 체제 속에서 가라앉은 해방 무드 등으로 인해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이 거세졌다. 정치는 귀족들의 암투가 주를 차지하게 되었고 평민원의 권한도 프레더릭 5세의 시대에 비해 퇴보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중들은 물론 귀족과 황실 내부에서도 대영제국 내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조지 4세가 붕어한 이후 조지 5세가 1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조지 5세는 조지 4세 치하의 "앙시앵 레짐" 처단 작전을 공표하고, 자신의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에게 사실상 내각부터 제국은행까지 거의 모든 정부 고위 공무원들을 숙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렇게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의 주도 속에서 대숙청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대영제국 정보부 산하 5개 정보 기관의 활동을 통해 정부 수뇌부 인사들이 대거 갈려나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또한 강력한 군사 정책을 통하여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내정 간섭, 소련에 대한 도발 행보 등이 이루어져, 대영제국의 정책은 다시 한번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 대영제국의 거의 모든 정부 기관들이 대영제국 황제기사의 명을 하달받는 기구 정도로 격하되었으며 황제기사의 권력은 황제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 사건들을 한데 묶어 친위쿠데타나 다름이 없는 일이라 하여 황제기사의 난이라고 부른다.

내각을 비롯한 모든 정부 기구의 힘은 조용한 혁명 이후 가장 크게 퇴보되었고, 전제 군주 정치적인 면모(정확하는 대영제국 황제기사로의 권력 집중)이 강화된 가운데 공포 정치가 이뤄졌다. 따라서 현재의 브리타니아가 맞이하고 있는 시기는 대영제국 역사상 가장 일인 독재적인 면모가 강화된 시점으로 여겨진다.

역사성 : 제3의 로마

로마 제국의 계승국들과 정체성 비교
동로마제국 신성 로마 제국 불가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대영제국
신성 신앙적 정통성 O O O O X X
사도 전승 O O O O O
로마 제국 수도 지배 O X X O X
로마 시민의 지지 O X X
제국 제국위 계승 O X X X
혈연적 계승 O X X X X
대영제국은 로마제국의 법통을 계승한다. 대영제국 국체는 로마의 계승 국체로 정의하며, 대영제국 황제는 로마제국의 황제의 계승자로 정의한다.
대영제국 제국기본법 제2조

공식적으로 제3의 로마를 표방하고 있다. 국호와 관공 문서, 즉위식, 미사에서도 전부 라틴어가 쓰이며, 제국어라는 이름으로 지칭된 대영제국의 공용어는 라틴어와 영어를 통칭하는 말이다. 대영제국의 추존 황제 1대조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올라와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대영제국은 자신들이 로마의 계승자임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다만 제3의 로마라고 보기에는 정통성과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대영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많이 제기된다. 우선 로마가 과거 지배했던 영토중 현재 대영제국 본토와 제후국이 다스리고 있는 곳이 단 한곳도 없다. 신앙적 정통성에 있어서 대영제국은 성공회를 믿기 때문에 이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혈연적 계승 역시 없고 제국위 계승도 없었기 때문에 제3의 로마라고 부를만한 점은 세계를 쥐고 있는 패권을 제외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대영제국과 그 제후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대영제국을 제3의 로마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리

영국의 영토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총 넓이만 34,771,900km2에 달하며, 이는 세계 1위에 해당된다. 동서 가로로 길쭉한 모양인 소련과 달리 영국 본토는 동서남북으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다. 이 때문에 영국의 자연 환경은 매우 다채롭다. 한대 기후의 특징을 띄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부터 건조 사막 기후인 멕시코, 온대기후인 중부 지역 그리고 열대기후인 카리브해 연안 등 다채로운 자연 환경은 관광 수익에 크게 공헌 하고 있다. 식민지까지 포함하면 더욱 다양한 자연 환경을 만날 수 있다.

제국 내에서 가장 큰 도시는 뉴욕으로 광역권 인구는 약 1,000만명에 이른다. 또한 뉴욕부터 볼티모어까지 이어지는, 아메리카 동부권의 도시들을 모두 합치면 그 인구가 4,000만명에 육박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제국의 수도인 임페리얼 캐피톨도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은 명목상으로의 수도로 런던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수도는 모든 제국 정부 기관들이 위치한 임페리얼 캐피톨이다. 본래 이름은 "필라델피아"였지만 천도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직역하면 "제국의 수도"라는 뜻이므로 제국 측에서도 사실상 런던 대신 필라델피아를 수도로 치고 있는 셈이다.

그 외의 주요 도시권으로는 아메리카시카고권, 애틀랜타권, 솔즈버리 힐포트 앤젤리스~세인트 프랜시스~세인트 제이콥스권, 뉴 웨스트 레스터댈러스-포트워스권, 캐나다몬트리올권과 토론토권, 벤쿠버권 등이 존재한다.

식민지 내에서는 호주시드니, 퍼스, 맬번, 브리즈번권, 남아프리카요하네스버그권과 케이프타운권, 중화제국홍콩, 난상권, 인도제국델리권, 봄베이권, 촐라캘커타권, 베트남사이공권, 시암방콕권, 벵골다카권, 일본도쿄권, 케이한신권, 대한국서울권 등이 가장 크다.

도시권이 아닌 단일 도시로서 그 인구 순위를 따지자면 1위는 뉴욕(860만명), 2위는 홍콩(750만명), 3위는 요하네스버그(560만명) 그리고 4위는 포트 앤젤리스(401만명)이다. 그 뒤로 애틀랜타, 시카고, 토론토, 솔즈버리 등이 잇는다. 제후식민지까지 포함시킬시 1위는 도쿄(1,520만명)이다.

해외 식민지

영국은 세계의 거의 반을 차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많은 식민지들을 차지하고 있다. 40년대에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식민지 독립운동이 일어남에 따라 위기를 맞았지만 조용한 혁명 당시 많은 식민지들이 자치권을 보장하는 제후국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식민지의 제후국 전환은 대부분 주민투표에 의거한 것이었기에 주민투표에서 독립파가 우세를 점하지 못한 일부 국가는 자치권을 얻는 선에서 그치며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린란드, 벨리즈, 호주, 뉴질랜드는 독립 투표에서 독립 찬성 의견에 비해 반대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로 현재까지 잔존중인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현재는 영국 정부 측에서 공식적으로 "식민지"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신 "외부영토"라고 부른다.

식민지 목록

국명 면적 인구수
내지 20,830,737km2 469,048,701명
호주 7,741,220km2 25,788,217명
뉴질랜드 268,021km2 4,860,642명
벨리즈 22,966km2 398,000명
수리남 163,821km2 591,798명
뉴기니 462,840km2 9,119,005명
남아프리카 1,251,392km2 50,041,996명
나미비아 825,615km2 2,587,344명
입스위치 581,730km2 2,397,240명
로디지아 390,757km2 15,092,171명
실론 65,610km2 21,509,270명
홍콩 1,105km2 7,571,777명
총합 34,771,900km2 609,062,166명

제후국

브리타니아 제국
제후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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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화제국, 인도제국 등 역시 대영제국의 식민지이나 국왕이 직접 통치하는 외부영토와 달리 해당 지역의 국왕이 지배하기 때문에 제후국 혹은 제후식민지, 제후외부영토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의 인구를 모두 총합하면 그 수는 44억명에 이른다. 본토와 외부영토, 제후외부영토의 인구를 합치면 총 50억명 정도이다.

독자 외교권과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기에 명목상으로는 독립국 같아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영제국이 식민지 내에서의 반란을 막고 지나치게 비대한 중앙 정부를 두지 않게 하기위하여 겉모습만 독립국으로 꾸민 것이다. 제후국들중 대부분이 대영제국의 외교적 결정을 따라가며, 정치적으로도 대영제국 본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게다가 중화제국, 일본, 인도제국 등은 "제후국"임에도 불구하고 대영제국 황제가 왕위직을 겸직한다. 즉 제후국 역시 식민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적으로 보았을때 제후국과 대영제국 본토는 다른 나라로 여겨진다.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대영제국에 종속된 상태이긴하나, 독자적인 입법권과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영제국과 제후국의 관계는 연방제의 관계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제1급 제후국 (제국급)

중화제국

현재 중화제국인도제국이 유이한 제1급 제후국이다. 이 두 국가는 "제국"으로 국가 원수가 황제이며, 외교적으로 대영제국 본토 바로 아래 수준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중화제국과 인도제국은 전세계 국가중 단 유이하게 인구가 10억명을 넘어가는 국가로, 그 영향력은 단순히 국가 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인도제국과 중화제국이 가지는 정통성은 상당하다. 인도제국의 경우 세포이 항쟁을 통해 이름만 남아있던 무굴제국을 멸망시키고, 전 인도 대륙을 통일하여 세워진 국가이다. 중화제국은 B.B. 4년 영국의 국왕 프레더릭 3세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로부터 옥새를 건내받아 청나라의 황제를 선위받았고, 이후 대영제국으로 칭제하며 세워진 국가이다.

제1급 제후국에 속하는 신민들은 사실상 대영제국 본토의 신민들과 같은 권한을 누린다고 봐도 된다. 인도제국과 중화제국의 많은 기업들이 대영제국 내에도 진출해있다. 대영제국과 중화제국, 인도제국 사이에 관세는 거의 없는 수준이고, 대영제국의 황제도 이 두 국가들을 배려해 1년중 1개월은 양국에서 거처한다.

특히나 중화제국은 중국 왕조 역사를 그대로 이어받은 국가인만큼 존재감이 상당하다. 대영제국 황제들은 중화식 이름을 가지며, 칸호가 존재하며(대청국 황제의 계승), 연호와 존호, 시호, 묘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중국어를 의무적으로 공부해야하기도 하다. 대영제국 황실도 청나라, 명나라 황실의 전통을 상당수 수용하기도 하였다.

제2급 제후국 (왕국급)

일본국

국가의 규모가 크나 제국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은 왕국으로 분류된다. 대영제국의 황제가 아닌 사람들이 해당 왕국의 왕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는데, 가령 전주 이씨 왕공족이 왕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국이나 짜끄리 왕공족이 왕위를 이어받는 시암 등이 있다.

이 국가들은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보다는 한등급이 아래로, 중화제국이나 인도제국 시민에 비해 신분제에 있어서 밀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현재에 들어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며, 조금 더 높은 관세 부과와 자치권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제2급 제후국과 제1급 제후국 그리고 본토 주민간의 차별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된다.

양국간 자유 이동이 가능하고 자유 이동시 무제한으로 체류가 가능한 제1급 제후국 시민들과 달리, 제2급 제후국 시민들은 최대 730년(2년)간 체류가 가능하며 그 이상으로 체류하고 싶을 경우 개별적인 심사를 받아 체류 연장을 해야한다. 대영제국 황국신민권과 제2급 제후국 제후왕국신민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제2급 제후국 국적의 신민은 1,461년(4년)으로 기간이 2배 정도 연장된다.

제3급 제후국 (공국급)

왕국보다 급이 낮지만 방백국에 비해 군사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최하등급의 식민지라고 할 수 있다. 공국급에 속하는 식민지들은 대부분 인구가 5,000만명 이하로 적은 편이며 주민들의 삶의 질도 그렇게 좋지 않다. 멕시코는 예외인데, 이 경우에는 대영제국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지역인만큼 자치권을 부여하지 않고 대영제국 정부 측에서 직접 관리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제1급 및 제2급 제후국과 달리 제3급 제후국의 경우에는 직할 식민지에 가깝다. 정부에서 보내는 총독이 행정 수반으로서 전권을 가지며, 제3급 제후국의 주민들은 제1-2급 제후국 주민들에게는 존재하는 자치평민원 투표권이 없다. 즉 제3급 제후국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대영제국 본토에 대변하지 못하는 완전한 종속의 관계이다.

다른 권리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는다. 가령 제2급 제후국 신민들은 대영 본토가 아닌 다른 등급의 제후국으로 이동할 시 무기한 체류가 가능하지만, 제3급 제후국 주민들은 제1급에는 180일, 제2급에는 730일, 제4급에는 60일간의 체류만이 허가된다. 연장은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는 심사를 받아야한다.

제4급 제후국 (방백급)

제3급 제후국보다 외교적으로 급은 더 높지만, 주민들의 권리만 따져봤을때는 그야말로 최하중의 최하라고 할 수 있다. 방백국은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세워진, 이민족이나 이교도 등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제국이나 왕국의 변두리에 설치하였던 군사 및 행정단위를 뜻한다. 이름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제4급 제후국은 외국, 특히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을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군사적인 요충지인만큼 황제 폐하의 제국군이 상당수 주둔하고 있으며, 대영제국 군부대가 이곳 저곳 배치되어있다. 이 지역에 배치된 대영제국 제국군 수만 해도 200만명은 거뜬히 넘어간다.

당연히 군사적인 목적이 다분한 지역인만큼, 지역 주민들의 인권 수준은 매우 좋지 못하다. 자치권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방백국 내 모든 정치를 대영제국군이 대신한다. 즉 합법적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민들이 이적 세력과 담합하여 대영제국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주민들은 260일마다 한번씩 대영제국군에 의해 수사를 받아야하며, 거주 이전의 자유 역시 없어 한번 이사를 신청하면 매우 번거로운 절차가 요구된다.

심지어 자유롭게 다른 제후국이나 대영 본토를 방문할 권리도 없다. 보통 60일로 제한되는 비자를 받아야 입출국이 가능하며, 그 외에 외교적인 목적으로 오래 체류할 경우에는 최대 730일로 연장되는 대영제국 황제기사의 특별체류증을 받아야한다. 특별체류증은 재갱신이 불가능하며 체류가 만료될 시, 해당 인물은 즉각 자신의 본국으로 귀환하여야하며 60일 이후에 재신청이 가능하다.

행정구역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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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내지와 식민지인 외지로 구분된다. 북아메리카 내지는 총 8개의 구성국으로 나누어져있고 외지는 총 12개의 식민지로 구성된다.

명칭 문제

제국 정부 측에서 20세기 초에 스페인어, 광둥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되어있던 지명을 영국식으로 번안해서 실제 주민들에게서 통용되는 지명과 행정상의 지명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제국 내 최대 도시중 하나인 포트 앤젤리스는 스페인어 지명이었던 "로스 앤젤레스" 또는 "로스 앙헬레스"를 영국식 지명으로 번안한 것인데, 스페인계 영국인이 인종적으로 다수인 포트 엔젤리스 내에서는 "포트 앤젤리스" 말고 "로스 앤젤레스"라는 이름이 더 많이 통용된다. 이는 솔즈버리힐 내 주요 도시들이 전반적으로 안고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

대영제국은 봉건제 전제군주정 국가이며 총리의 권한은 황제를 보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국가 업무가 늘어난만큼 황제가 모든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대영제국은 전제군주제 국가라기보다는 황제의 칙명에 따르는 황제기사, 총리, 내각과 그 산하 관료들의 군사-관료형 독재 국가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황제에게 의회해산권, 군대통솔권, 총리해임권, 내각 장관 해임권 등이 존재하며 이러한 해임건이 실제 발동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황제 휘하의 직속 신하인 대영제국 황제기사대영제국 총리가 각각 군정과 민정을 이끌고 있고, 이들이 거의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운 수준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관인 대영제국 황제는 이들을 해임하고, 임명할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전제군주제 국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단 말로는 의회민주주의이지만 실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독재 국가에 조금 더 가깝다. 우선 황제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에 몰려있어서 공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는 집권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실제로 집권한적도 없다. 아예 의회 진입조차 어려운게 실정이다.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선거를 시행하지만, 사회주의 또는 공화주의와 같은 황제 또는 귀족 중심 체제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중앙 정계에 진입할 수 없도록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는 대상을 귀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영제국의 정치는 좋게 말해 매우 안정적이지만 나쁘게 말해 지나치게 경직되고, 귀족과 황실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와 별개로 종교가 정치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귀족 가문에서조차 성공회의 열성 신도들이 줄어들고 있는데다가, 조용한 혁명을 통해 세속화가 상당 부분 이뤄진 바가 있기 때문에 귀족 중심의 관료형 독재체제 국가 치고는 종교가 정치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은 적은 편이다. 게다가 식민지와 본토에서 나오는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자산을 축적한 귀족들의 특성상 기업에 휘둘릴 이유도 없고, 기업의 오너가 귀족인 경우도 매우 많아서 정치가 평민 자본가들의 영향력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 대신 귀족 기업가들의 정치 개입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치 체제 : 삼중 독재 체제

BBC, 100년 12월 11일
선호 정치 체제 여론 조사
계급 군사독재정 문민독재정 민주정 없음/기타
전체 75.9% 8.4% 11.5% 4.2%
계급별
제1계급 47% 44% 7% 2%
제2계급 78% 8% 10% 4%
제3계급 53% 2% 36% 9%

군사독재정과 관료독재정이 혼재된 복잡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전제군주정 국가이며, 황제의 권력 역시 상당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 대영제국 황제를 보좌하는 대영제국 황제기사는 대영제국군을 이끌며, 동시에 대영제국 정보부를 직속으로 두고 있어 정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군사독재정의 모습을 보이는데, 귀족들을 대변하는 대영제국 총리가 내각을 주도하는 문민독재적 면모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즉 전제군주독재정, 군사독재정, 관료독재정이 삼중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황제기사, 총리는 서로를 견제하며 군정과 민정의 파워밸런스를 맞춰왔고, 여기에 황제가 특정한 쪽에 힘을 실어주면 그쪽으로 권력이 쏠리는 양상을 보여왔다.

다만 현재는 황제-황제기사-총리의 파워밸런스가 무너진 상태로, 황제기사가 대영제국 내에서 일인 독재를 추구하고 있다. 현 황제인 조지 5세조차 대영제국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의 막강한 권력에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이다. 무자비한 귀족 숙청, 권력 장악 등을 통해 군대, 정보부, 사법부, 입법부가 전부 게스코인세실경의 손아귀 아래에 있고 내각은 최대한 저항하였으나 결국 정보부와 군대를 동원한 협박과 정보전에서 완전히 패전하여, 주요 장관들이 전부 숙청당하고 게스코인세실의 장기말 정도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더군다나 정보부를 동원해 황제기사가 선거에도 개입하고, 대영제국의 근본적인 체제부터 들어 엎으려는 모습을 보이며 귀족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제2계급 시민들은 게스코인세실 경을 매우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황제기사의 난을 통해 평민원의 발언권이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평민들이 누리는 권리는 올라갔고, 무엇보다 기존 대영제국의 사회적 문제였던 과도한 귀족 중심 체제와 귀족 기업인의 정계 개입, 부패한 귀족들의 농간 등이 한순간에 청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여론조사에서 군사독재정을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문민독재정을 구성하는 귀족들의 정당중에서도 진보파인 민주당과 급진당은 현재 군사독재정을 지지하고 있고, 보수파만이 기존의 문민독재정을 지지하고 있다. 현 내각은 민주당에게 넘어가있으므로 내각도 군사독재정을 지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군사독재정을 막을 수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런 판을 깔아준 것이 현 황제인 조지 5세이다. 조지 5세의 지지 하에 강력한 일인독재정이 실시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황제기사의 난을 통해 수입된 일인 독재 체제가 쉽게 저물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도 적지 않다. 군사 독재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평민들의 보통선거를 통한 내각이 정치를 이끌어야한다는 일부 자유주의자들의 급진적인 주장이 존재한다. 물론 이 개혁안은 헨리 게스코인세실의 개혁을 지지하는 제2계급 시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권력 서열

대영제국의 권력 서열
1위 대영제국 황제 조지 5세
2위 대영제국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
3위 대영제국 총리 뉴트 제이콥슨
4위 중화제국 총독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
5위 인도제국 총독 조지 허버트 화이트로이드
6위 제국은행장 레너드 에스페런드
7위 대영제국 재무장관 피터 더글러스
8위 대영제국 전쟁장관 리처드 오언
9위 일본 총독 호소카와 스테트필드
10위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로저튼

권력 서열에 있어서 불변의 1위인 대영제국 황제 밑에 귀족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대영제국 총리와, 대영제국 황제를 보호하고 대영제국 황제군을 통솔하는 대영제국 황제기사가 권력의 정점에 서있다. 나라의 정세에 따라 영향력은 바뀌곤 하지만 전제군주제 국가 하에서 황제의 신임을 받는 대영제국 황제기사가 2순위로, 대영제국 총리가 3순위로 여겨진다.

정치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에 따라 권력의 구도도 변한다. 중화제국의 총독, 인도제국의 총독은 두 나라의 방대한 넓이와 국력 때문에 보통 권력 서열에서 5위 안에 들어간다. 내각 내에서는 대영제국 전쟁부, 대영제국 국무부, 대영제국 재무부, 대영제국 내무부대영제국 국무조정실의 권한이 가장 강력하다.

현재는 3위부터 10위까지 전부 다 대영제국 황제기사의 명을 따르는 구도이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는 정보이다. 실질적으로 대영제국 황제기사의 권력이 대영제국 황제보다 더 높다.

대영제국 황제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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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황제 조지 5세
대영제국 황제 폐하는 대영제국과 그 제후국을 이끄는 최고 국가 원수로, 대영제국의 정부와 군대를 통솔하며, 황제 폐하의 대리자와 폐하의 신하인 대영제국 황국 신민은 황제 폐하께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대영제국 제국기본법 제1조

대영제국의 황제는 대영제국의 최고 국가원수로, 6억 본토의 신민과 44억 제후국 신민들을 통솔하는 제국의 중심이다. 대영제국은 말이 입헌군주제지,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의 도입으로 인하여 사실상 전제군주제 국가나 다름 없으므로 황제에게 군대통솔권과 의회해산권 등이 존재하고 실제로 이루어진적도 많다. 상징적 존재로서의 가치도 있기 때문에 황제라는 위치가 영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왠만한 일이 없다면 황제의 임기는 종신이지만 황제가 조기 퇴위하는 일도 있다. 물론 이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장장 1~50년에 달하는 기간동안 한명의 황제가 종신의 재위 임기를 수행한다. 다른 황제국과 마찬가지로 보통 장남이 대영제국의 황제 자리를 계승한다. 황태자에 해당되는 자리는 "연합왕국 국왕"이라는 왕위가 따로 존재한다.

연합왕국의 국왕이 본래 대영제국의 국가원수였으나 20세기 들어 식민지의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내외지를 구분할 목적으로 내지만을 다스리는 연합왕국 국왕은 국가원수직에서 분리되었고 대신 대영제국 황제의 황위가 성립되었다.

대영제국 황제는 작센코부르고타 왕조의 분가인 화이트로이드(Whitelloyd) 가문의 세습직이다. 본래 색슨(Saxon) 황가였으나 세계 전쟁 당시 독일과 전쟁을 치루면서 화이트로이드 궁의 이름을 따서 화이트로이드 황가로 분가하였다.

특이한점은 다른 서양권 왕실에 비해 대영제국의 황실은 유독 중국 황실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대영제국 내에서 독자적으로 황제의 행보를 다룬 저서가 편찬되고, 총리와의 독대가 아닌 내각 구성원 전체와 회의하며 황제로서 갖춰야할 덕목, 지식을 배우는 경연 시간을 가진다. 또한 황제가 생전에 퇴위할시 상황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 역시 다른 나라의 왕실에서 보기 힘든 일이다. 이는 중국 황실에 큰 호감을 보이고 있던 프레더릭 3세가 도입한 제도들이다.

총리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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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1세
초대
로버트 월폴
조지 2세
초대
로버트 월폴
제2대
스펜서 컴프턴
제3대
헨리 펠럼
제4대
토머스 펠럼홀리스
제5대
윌리엄 캐번디시
제6대
토머스 펠럼홀리스
조지 3세
제6대
토머스 펠럼홀리스
제7대
존 스튜어트
제8대
조지 그렌빌
제9대
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0대
대 윌리엄 피트
제11대
오거스트 피츠로이
제12대
프레더릭 노스
제13대
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4대
윌리엄 페티
제15대
윌리엄 캐번디시벤딩크
제16대
윌리엄 피트
제17대
헨리 에딩턴
제18대
윌리엄 피트
제19대
윌리엄 그렌빌
프레더릭 1세
제19대
윌리엄 그렌빌
제20대
리처드 앳킨스
제21대
제임스 와일드
제22대
조지 프리먼
프레더릭 2세
제22대
그레이엄 스튜어트
제23대
존 트리켓
제24대
클레어 로
제25대
캐런 브레들리
제26대
밴 브래드쇼
제27대
케너스 길럼
제28대
롭 노먼
제29대
케네스 길럼
제30대
배리 가디너
제31대
이언 솔론
제32대
로버트 린지
제33대
리처드 존스
윌리엄 4세
제33대
맷 커버데일
제34대
제러미 로
제35대
에덤 로이드모이스
제36대
도미닉 그레이엄
윌리엄 5세
제36대
도미닉 그레이엄
프레더릭 3세
제36대
도미닉 그레이엄
제37대
폴 브리스토
제38대
앤디 밀러
제40대
매티 리치먼드
제41대
조지 위버
제42대
키어 모리슨
제43대
키스 워너컨
제44대
필 윌슨
제45대
이언 레이버리
제46대
닉 리처
프레더릭 4세
제46대
닉 리처
제47대
존 드레이퍼슨
에드워드 7세
제47대
존 드레이퍼슨
제48대
그레그 클라크
제49대
데미언 헨더슨
제50대
어윈 유진 롬멜
제51대
매튜 패니쿡
제52대
해리엇 허먼
제53대
존 하트먼
제54대
빅터 피어슨
제55대
리처드 윌리엄스
프레더릭 5세
제55대
리처드 버르너도트
제56대
헤이 헤빌랜드
제57대
에드 고든레녹스
제58대
닉 웨이클링
제59대
크리스 히튼해리스
제60대
테리 에넌
제61대
니콜러스 어린지나소
조지 4세
제61대
니콜러스 어린지나소
제62대
데릭 코번트리
제63대
에드 하워드
제64대
브라이언 허버트클린턴
제65대
피터 어린지나소
조지 5세
제65대
피터 어린지나소
제66대
뉴트 제이콥슨
황제 · 총리

대영제국 황제를 보조하는 대영제국의 행정수반이자, 6억 대영 신민들을 대표하는 최고위 공무원이다. 황제가 임명하지 않는 직위중에서는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예외적으로 전시에는 전쟁장관이 큰 힘을 가지지만, 이때는 전쟁장관이 총리직을 겸직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사실상 총리는 모든 때에 있어서 비황제임명직 공무원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때에는 대영제국 황제대영제국 황제기사에 이은 권력 서열 3위이다. 대영제국 황제기사와 경쟁하며 파워밸런스를 맞추는 자리에 있는데, 최근에는 총리의 권한이 약화되고 황제기사 쪽의 권력이 높아져가는 추세이므로 총리의 위신은 상당히 추락했다.

다수당의 당수가 대영제국의 총리로 선출된다. 소수당 출신이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게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정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양당 모두가 과반을 얻지 못할 경우 제3지대 정당이 어디에 투표하느냐에 대한 여부에 따라 총리가 제2당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지난 100년간 대영제국 총리직은 제국당민주당이 주고받아왔다. 현재는 민주당이 다수당인만큼 총리는 민주당의 당수인 뉴트 제이콥슨이다.

대영제국 총리의 임기는 딱히 정해져있지 않으며 짧으면 1년에서 길면 15년까지 역대 총리들은 국회와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 한에서 대영제국을 이끌어왔다. 대영제국 총리는 대영제국 뿐만 아니라 제후국의 총리들의 상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영제국 총리는 대영제국을 구성하는 제후국과 구성국들의 수장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 권한이 남다르다.

현 총리는 99년에 취임한 뉴트 제이콥슨이다. 소속 정당은 민주당.

내각과 제정회의


브리타니아 제국 제정회의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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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제국 황제
조지 5세
제국황무직
황제기사 황부장관
헨리 게스코인세실 앤드루 오길비
중대국무공직
총리
뉴트 제이콥슨
재무장관 국무장관 전쟁장관 내무장관
피터 더글러스 제이슨 베일리해밀턴 리처드 오언 토머스 에시크로프트
내각 장관
국정조정장관 법무장관 귀족장관 사회장관
스펜서 위틀스버크 줄리언 리어본 베스 블레이크 조너선 엘모어
복지장관 기술장관 교육장관 보건장관
사이먼 워버튼 이언 리치 피터 오스틴 로버트 핵스모건
안보장관 치안장관 무역장관 상공장관
퍼거스 노플러 앨린 스미스 개러스 오브라이언 올리버 페리어존스
자원장관 문화장관 통신장관 건설장관
대니스 버니어모건 피터 호언촐런 리처드 프라이스 덩컨 메이엄
교통장관 노동장관 농무장관 환경장관
루스 맥페이든 어널드 허드슨 그레이엄 코긴스 코널 트레벌라이언
비내각 제정회의 참석자
참사원장 귀족원장 평민원장 사법원장
리처드 버스위슬 토머스 엘런존스 필 레퍼드 레이너드 블런
제국은행장 중화제국 총독 인도제국 총독 캔터베리 대주교
레너드 에스페런드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 조지 허버트 화이트로이드 윌리엄 로저튼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 ·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 브리타니아 제국 황부장관

총리가 지명하는 정부 부처의 장관들로 구성된다.

크게 봤을때 총리, 재무부장관, 국무부장관, 전쟁부장관, 내무부장관으로 구성되는 중대국무공직과 20개직의 일반 내각장관으로 내각이 구성된다. 내각의 구성원은 여기에 군과 황실을 대변하는 인사들까지 모인 제정회의에도 참석한다.

대영제국을 이끌어가는 수뇌부라고 할 수 있으며 각 장관이 지니는 권한은 대영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을 감안하였을때 거의 한 국가의 수장과 다름 없다고 평가받는다. 대영제국 내각 구성원은 대영제국 뿐만 아니라 대영제국 산하의 제후국의 장관들을 그 산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권한이 다른 나라의 내각 구성원에 비해 매우 비대하다.

참사원(상원)과 귀족원(하원)

브리타니아 제국 참사·귀족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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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폐하의 여당 국왕 폐하의 야당

민주당
376석 407석

제국당
320석 246석
기타 야당

급진당
14석 52석

녹색당
5석 9석

확장당
7석 8석

노동당
0석 5석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교 주교 50석 1석
무소속 28석 3석
좌측은 참사원(상원) 의석 수, 우측은 귀족원(하원) 의석 수

House of Councillors
House of Lords

대영제국 국회의사당의 모습

대영제국의 의회는 상원인 참사원과 하원인 귀족원으로 나뉘어져있다. 명목상으로 참사원은 상원이지만 현재는 사실상 명예직에 가까운 직책이다. 총리 선출, 법안 발의와 통과 등 중요한 입법 활동은 대부분 귀족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영국은 사실상의 단원제 국가이다. 참사원은 황제의 자문기구에 가까운 형태를 띄며, 보통 전직 총리나 장관 혹은 귀족경 등의 최고위 귀족들로 이뤄진 명예직이다.

참사원에는 정원이 정해져있지 않고, 귀족원은 총 730석을 정원으로 하고 있다. 성공회 주교중 한명이 의장으로 선출되기에 사실상 731명이 정원이다. 730명의 귀족원 의원들은 전원 중선거구제의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된다. 이 때문에 제국당과 자유당 양당을 제외한 제3의 정당이 치고 올라오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참사원과 귀족원 의원들은 무봉급으로 근무한다. 귀족들이 가지는 특혜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여 추가적인 세금을 의회에 써서는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여론이 크기 때문이다.

평민원

House of Commons

철저하게 귀족 중심의 정치판인 대영제국 내에서 그나마 평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바로 평민원이라는 강력한 권력 기구의 존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원과 참사원 밑에 제2계급 시민들의 보통 선거로 구성되는 평민원이 존재한다. 평민원은 29년 에드워드 7세의 칙령에 의하여 대영제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제2계급 시민들을 대변해야할 기구가 있어야한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실질적인 입법 권한은 없지만 평민들을 대변한다는 면에서 스피커는 매우 크다. 단순한 황제 및 귀족원 조언 기관 이상의 역할을 할때도 있다. 귀족원도 평민원의 요구를 대놓고 뒤집지는 못하며 일정부분 수용하여 타협안을 낼 정도이다.

대영제국 총리대영제국 황제기사가 직접 평민원에 출석하여 정책 브리핑을 하며 평민원 의원들과 정책 방향성에 대해 토론한다. 의원들은 정책에 대해 가결과 부결을 결정할 권한이 없으나, 조언 기관의 일원으로서 정책의 수정을 요구한다. 이들의 요구가 무시받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여론을 의식해 정책의 피드백이 여기서 많이 이뤄지는 편이다. 출석의 주기는 정해져있지 않지만 보통 총리는 1주에 한번, 황제기사는 2주에 한번 출석하는 것이 관례이다.

조지 4세 시대에는 귀족들과 권신들의 견제로 인해 발언권이 축소되었으며, 황제기사의 난 도중에는 의원 20여명이 체포되어 많이 움츠러든 상태이다. 그러나 헨리 게스코인세실 황제기사는 전반적으로 평민원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2주에 한번 출석하는 것을 1주에 한번 출석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평민원의 권한은 높아질 가능성이 높고, 아예 입법 권한을 귀족원으로부터 이전받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의원의 수는 딱히 정해져있지 않고 인구비례에 따라[5], 전 제2계급 신민들이 참여하는 보통선거를 통해 평민원 의원이 선출된다. 제2계급 시민들에게는 정치 활동이 금지되어있기에, 평민원 내에서는 정당이 활동하지 못하며 모든 의원은 무소속으로 활동한다. 물론 인간의 본성인 당파성까지는 막지 못하기에 원내 진보파, 원내 보수파 등 여러 파벌이 존재한다.

참사원, 귀족원과는 달리 평민원들에게는 봉급이 주어진다. 봉급은 일년에 대략 152,500 파운드 스털링 상당이나 국가의 재정 상태에 따라 어느정도의 수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영제국 평민원 5대 파벌
파벌 이름 성향 의석수 파벌 이름 성향 의석수
주권파
Sovereigntists
진보주의
자유주의
중도좌파
233 / 760 (31%)
신민파
Subjectists
보수주의
근황주의
우파
203 / 760 (27%)
노동파
Labourists
사민주의
자유주의
좌파
93 / 760 (12%)
연방파
Federalists
연방주의
중도주의
중도좌파
55 / 760 (7%)
제국파
Imperialists
제국주의
강성 근황주의
극우파
46 / 760 (6%)
기타/무파벌
130 / 760 (17%)

정당

진보를 대변하는 민주당과 보수를 대변하는 제국당의 양당구도가 대략 100년 가량 이어지고 있는 강력한 양당제 국가이다. 초기에는 자유당은 자유무역을 지지했고, 보수당은 보호무역을 지지했으나 점차 영국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양당이 표방하는 가치 역시 넓어졌다. 양당은 B.B. 20년대에 이합집산을 하며 혼란을 겪다가 보수를 대변하는 제국당과 진보를 대변하는 민주당으로 각각 개편된다.

현재 민주당은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신제국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현대자유주의 등 진보주의의 전반을 포괄하며 제국당은 반대로 사회보수주의, 영국 민족주의, 제국주의, 자유보수주의 등 보수주의의 전반을 포괄한다. 이 때문에 제국당과 민주당은 각각 우파와 좌파 내에서 빅텐트나 다름 없다는 평이 있다.

황제기사의 난 정국 당시, 민주당은 군사독재를 지지하였으며, 제국당은 본래의 민정독재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갈라지며 민주당과 제국당의 골이 커지고 있다.

이 외에 귀족 내 좌파들이 결성한 급진당과, 근래에 들어 치고 올라온 녹색당, 팽창당 그리고 진보적인 노동당이 존재하지만 군소정당에 불과하다.

국방

세계적으로 가장 군사력이 강한 국가이다. 소련을 제외하고는 자국에 거의 피해를 받지 않은채 국가들을 삭제해버릴 수 있는 수준이다.

제국 정부의 주도로 가히 오버테크놀로지에 가까운 군사 기술들이 발명되었고, 9년대에 핵 분열을 이용한 기초 형태의 원자 폭탄이 발명되었으며 10년 이후에는 수소 폭탄도 개발되었다. 이때도 다른 국가와 군사 기술이 크게 차이났지만 70년대 이후 소련을 제외한 경쟁 강대국들을 전부 제거한 현재 상태에는 제2의 군사 기술력을 지닌 소련과도 그 군사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편이다.

대영제국의 상비군은 전 인구의 0.44%인 2,679,873명이며, 전시에 영국군의 지휘 하에 놓이게 되는 제후국들의 상비군까지 모두 합칠시 규모는 전체 제국 신민의 0.41%인 20,314,560명이다. 전시에 대영제국이 동원 가능한 병력은 대영제국 본토 내에서 전 인구의 14.1%인 85,877,765명, 전 제국에서 인구의 15.3%인 758,079,942명이다.

대영제국의 성인 남성들은 20세가 지나면 반드시 3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하며, 여성들은 1주간의 기초 군사훈련 혹은 2주간의 실무 훈련을 받아야한다. 이후 40세가 될때까지 1년에 최소 1주간 의무 군사훈련을 다시 받아야하고 41세부터 65세까지는 비전투 인력으로 간주해, 여성들과 남성들 모두 비전투 실무에 투입된다.

징병제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병제이기 때문에, 예비군 제도가 조금 빡빡한 것을 제외하면 대영제국 신민들의 불만은 적다.

장비

본래 대영제국 육군의 주력 장비는 3세대 MBT였으나, 80년대 이후, 보병의 일종인[6] 다목적 고기동장비를 개발하여 운용중에 있다. 또한 공군의 중요성 역시 나날이 커져감에 따라 공군 개발도 활성화되는 추세이다.

헨리 게스코인세실의 황제기사 취임 이후 군사 장비 개발이 더욱 촉진되고 있다. 4.5세대 MBT인 갤러해드 3이 개발되었고 현재까지 존재하는 다목적 고기동장비중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랜슬롯 C의 양산형이 생산되었다. 현재 대영제국군에서 운용하는 전차의 수는 총 324,335대,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총 572,100대이다. 그 외에 7세대 스텔스기 7,250기와 항공모함 158대를 운용하고 있다.

핵무기의 경우, 5년 중화제국에서 시행된 핵실험에 따라 원자폭탄 거플릿-A가 개발되어, 대영제국-일본 전쟁 당시 가고시마와 기타큐슈에 투하되었다. 이 당시 일본이 입은 엄청난 피해로 인해 일본 뿐만 아니라 대영제국 본토 내에서까지 핵무기 사용 반대 여론이 커져서 핵무기는 현재까지 개발되기만 할 뿐 실제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31년 수소폭탄이 개발되었고, 이후 원자폭탄 뿐만 아니라 수소폭탄도 개발되었다. 현재 대영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폭탄은 120MT급 수소폭탄 칼로그레난트 B로, 총 15기가 개발되었으나 실제 발사 시 대영제국 본토까지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가 있어[7] 사실상 위협용이나 다름이 없다. 대영제국 내에서 가장 주된 폭탄은 30MT급 수소폭탄인 칼로그레난트 C이다. 대영제국은 현재 원자폭탄 17,600기와 수소폭탄 5,100기를 보유하고 있다.

기사

아직까지 기사 작위가 잔존하고 있는 국가이다. 평민 출신의 기사는 평기사(The Commoner Knight)로, 귀족 출신의 기사는 기사경 (The Lord Knight)로 칭해진다. 평기사(73,000명)와 기사경(3,100명)의 수를 합치면 약 8만여명에 달한다.

중세 때의 기사와는 많이 다르다. 영지도 가지지 않으며, 시대가 시대인만큼 말을 타고 싸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법적으로 이들은 잉글랜드 왕국 시대 기사와 크게 다른 권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일부 귀족들은 자신의 땅을 편의상 기사에게 임대해주기도 한다.

평민기사의 경우 평시에 귀족들의 신변을 보호해야하며 전시에는 군대 최고위 인사로서 군사작전을 지휘한다. 기사경은 귀족 신변 보호의 의무는 없으며 평민기사보다 급이 높기 때문에 이들을 통솔하는 상급자의 역할을 맡는다.

평민기사는 계급상 제2계급에 속하지만, 상술하듯이 "제1.5계급"이라는 별칭이 있는 만큼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황제기사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Britannian Imperial Knight of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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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

사실상 현재 대영제국 내에서 권력 서열 1순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직책 자체가 1순위인 것은 아니며, 헨리 게스코인세실 중심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 것이다.

대영제국 황제기사는 대영제국 황제의 직속 기사로서, 대영제국 기사들의 총책임자이며 동시에 황제의 호위를 맡는다. 즉 대영제국 황제 폐하의 제국군의 실질적인 최고 원수라고 할 수 있다. 황제가 임명하는 기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황제 및 황실 일원들에 이은 권력 서열 2위로 여겨진다. 특히나 헨리 게스코인세실 경의 황제기사 임명 이후에는 정보부를 활용한 정권 장악이 이뤄짐에 따라, 기존의 내각과의 파워 밸런스가 무너지고 기사단 중심의 독재 체제로 돌입하고 있는 중이다.

황제 기사의 직속으로 대영제국 정보부가 존재하며, 대영제국 기사단 역시 황제기사 휘하의 조직이다. 그리고 기사단 휘하에 황제 폐하의 제국군이 있고 정보부 밑에는 5개의 정보국이 존재한다.

대영제국 황제가 직접 임명하도록 되어있으나, 보통 대영제국 황제 기사가 은퇴하는 일은 거의 15~20년에 한번 있는 일이고, 대영제국 내에서 황태자 직위에 해당하는 연합왕국 국왕이 대영제국 황제로 즉위할 시 연합왕국 기사도 대영제국 기사로 자동적으로 진급이 되기 때문에, 대영제국 황제가 완전히 새로 황제기사를 뽑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황제 기사가 스스로 은퇴했을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황제기사직은 자신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계속 황제기사직을 맡을 수 있는 영원직이다. 대체로 황제기사의 나이가 60세가 넘었을때 은퇴하는 편이다. 이때에는 황제기사 교체식을 진행하는데 그야말로 황제 즉위식 다음가는 대규모 이벤트라고 볼 수 있을정도로 규모가 크다. 총 40년간 재위했던 에드워드 7세의 치세에 2번, 23년간 재위했던 프레더릭 5세의 치세에 1번 황제기사 교체식이 진행되었다.

기사경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3,156명이 기사경으로 집계되고 있다.

평기사를 거느리는 상급의 기사이다. 귀족의 호위 의무가 있는 평기사와 달리, 기사경들은 애초에 그 스스로가 귀족이기 때문에 귀족에 대한 경호 의무가 없다. 대신 자신의 영지를 스스로 지키거나 전쟁시 사령관과 같은 고위직을 맡게 된다.

평기사들은 귀족들에 의해 임명되지만, 기사경들은 황실 일원이 직접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보통은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 해밀턴 군사학교 등 귀족 군사학교에서 기사 교육을 받고, 졸업식 겸 기사 임명식에서 황실 일원에게 기사 임명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족중에서도 기사경들은 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영제국을 지탱하는 세개의 기둥, 즉 제계, 정계, 군사계에서 군사계열은 기사경들이 꽉 잡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사경이 된 이후 정계에 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현 총리인 뉴트 제이콥슨도 본래는 학교에서 전쟁군사학을 공부하고 기사경으로 임명받은 기사 출신의 정치인이다.

평기사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73,974명이 평기사로 집계되고 있다.

평기사는 기사경 휘하의 기사로 분류된다. 대영제국군의 평민 출신의 군인중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들로, 귀족은 아니지만 사실상 귀족 취급을 받는다. 이들은 평시에는 귀족들의 경호를 맡다가 전시에는 전쟁 수행도 병행한다. 기사중에서도 계급이 있는데, 가장 계급이 높은 평기사는 대영제국 황제기사로 대영제국 황제의 경호를 맡는다. 다만 보통 황제기사로는 기사경이 주로 임명된다.

귀족적인 특혜가 많기 때문에 평민에게 있어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귀족들도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 개입은 철저히 차단된다. 물론 전쟁에서 공을 세우거나 직급이 높은 귀족의 배려가 있다면 귀족으로 임명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평기사를 목표로 입대하는 평민들도 상당하다.

정보부

대영제국의 정보 부처는 소련의 KGB와 더불어 세계 최강이라고 평가받는다. 과거 독일의 슈타지정도만이 대영제국 정보부에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공식적으로는 Imperial Security Service가 명칭이지만, 보통 ISS라고 줄여 부른다.

대영제국 정보부는 하나의 기구가 아니다. 5개의 기구를 통칭하는 말이며, 5개의 기구에는 대영제국 비밀안보부, 대영제국 통신안보부, 대영제국 보안정보국, 대영제국 국가치안국, 대영제국 국방보안국이 속한다. 5개의 기구 모두가 대영제국 황제기사의 직속기구에 속하며, 동시에 대영제국 기사단과 협조하는 관계이므로 정보는 황제기사 및 기사단에게 제공된다. 또한 원활한 정보 업무 처리를 위하여, 대영제국 국무부, 대영제국 재무부, 대영제국 전쟁부, 대영제국 내무부에도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

경제

대영제국의 총 GDP는 명목 52조 파운드, PPP 51조 파운드에 이르러 독보적인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제국, 중화제국과 같은 타 식민지까지 전부 합칠시 대영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세계 GDP 규모의 80%대를 넘어간다. 냉전 시기에도 대영제국의 경제는 공산권 전체를 합친것보다 더 컸으며, 유럽 공산권이 붕괴한 이후로는 그야말로 극초강대국에 걸맞는 강성한 경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대영제국의 경제 우위 체제를 팍스 브리타니카라고 부른다. 정치, 외교, 경제적으로 대영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만 경제 부분에서의 우위는 다른 분야에서의 우위에 비해 확연하다. 사실상 현재 상태에서,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된 개별적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일부 3세계 국가밖에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대영제국의 경제적 파워는 막강하다. 소련, 유럽 공동체 역시 대영제국의 경제에 일부 종속된 모습을 보인다.

핵심 산업

과거에는 제조업이 융성하였으나, 51년부터 53년까지 일어난 대영제국 내의 석유 파동은 대영제국 제조업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후 대영제국은 50년대 들어 제조업을 정리하고 금융업과 서비스업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 수많은 제조업 공장들이 문을 닫고, 제조업이 중심이 된 몇몇 도시들이 몰락하기도 하였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산업의 전환은 대영제국의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후 제조업은 70년대 유럽의 공산주의 정권들이 몰락한 이후 유럽으로 주도권이 건너가 유럽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 배경을 마련했다.

현재 대영제국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산업은 금융업이다. 대영제국 내 최대 도시인 뉴욕은 세계 금융의 수도라고 불린다. 뱅크 오브 브리타니아, 골드만삭스, 시티 뱅크, 모건 스탠리, 리먼 브라더스 등 세계의 주요 투자 은행들이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모여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들은 대부분 대영제국에 모여있다. 대영제국 국적의 회사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대영제국 제후국 국적의 회사들이다. 세계 매출액 순위 1위부터 4위까지 전부 대영제국 국적의 회사이며, 5위인 중화전신회사 역시 대영제국의 제후국인 중화제국 국적의 회사다. 이렇게 대영제국과 그 제후국 국적의 회사들은 세계 기업 매출액 1위부터 20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통화

제국은행의 로고

대영제국의 통화인 파운드스털링은 대영제국과 그 제후국 내에서 공식적인 화폐 단위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국 역시 파운드 스털링을 화폐로 사용한다.

파운드 스털링은 세계 경제의 통화이다. 소련의 루블, 독일의 마르크화의 파워도 강하지만 가장 강한 것은 대영제국의 파운드 스털링이다. 파운드 스털링 우위는 20세기 초반에 확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0년대의 대공황 당시 파운드화의 가치가 출렁거렸으나 현재는 특별한 위기 없이 세계 공용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파운드 스털링은 대영제국의 중앙 은행인 제국은행에서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은행만이 파운드 스털링을 발행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파운드 스털링을 발행하는 것은 민간은행이다. 그러나 각 민간은행들은 제국은행의 통제하에 파3운드 스털링을 발행하며, 통화 정책 수립을 위해 통화발행권을 가진 민간은행들은 제국은행의 통화발행이사회에서 제국은행의 환율 정책 집행에 따라 파운드화를 발행한다.

통화 발행이 복잡해진 것은 10년대 초중반 일시적으로 일어난 대영제국의 경제 혼란 때문이었다. 당시까지 대영제국의 화폐 발행은 제국은행의 감독 하에 민간은행에 의하여 이뤄졌는데,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혼란해짐에 따라 민간은행들의 통화 발행도 들쭉날쭉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프레더릭 4세 황제의 칙령을 받아 제국은행이의 직속 산하 기구로서 통화발행이사회를 설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말이 민간은행의 발행이지 실질적으로는 통화발행이사회의 지시를 받아 통화발행을 제국은행이 한다고 봐도 괜찮은 통화정책이 시행되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통화 발행 "지시"는 제국은행이 하고, 통화발행 그 자체는 각 은행이 맡는다.

발전

대영제국 내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다. 전체 전기 발전량 중 54.3%를 원자력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 뒤는 39.4%의 재생 에너지와 6.3%의 화석 에너지가 잇는다. 현재 핵재생 발전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고 상용화도 머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는 미완성 단계이므로 대중화되지는 않은 발전 방식이다. 핵융합 발전이 개발된다면 거의 모든 발전이 핵융합 발전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생 에너지는 대체로 태양광을 이용한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중 90% 가량을 태양광 발전이 차지하고 있다. 다만 태양광 발전은 태양이 쨍쨍하게 비추는 일이 드문 북부 냉대기후 지역이나, 동북부 지역 등에서는 사용하기 부적절한 발전의 형태이다. 또한 뉴기니와 같이 열대우림이 울창한 지역에서도 사용하기 곤란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태양광 발전은 현재 뉴 웨스트 레스터호주와 같이 일년 365일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 지역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뉴 웨스트 레스터 지역의 경우, 지역에서 소비되는 전기으ㅏ 98.3%가 태양광으로 발전된다고 한다. 초기에 태양광 발전은 효율이 높지 않았지만, 지난 50년간의 꾸준한 개량을 통해 현재는 매우 값 싸고 효율이 높은 에너지 발전 방법이 되었다.

원자력의 경우 재생 에너지에 비해 값이 매우 비싸고 효율성도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주위에 물가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발전할 수 있기에 태양이 잘 비추어지지도 않고 바닷 바람도 강하지 않은 아메리카 지역 등지에서 애용되고 있다. 게다가 휴대용 원자력 발전기까지 개발되어 랜슬롯 시리즈와 같은, 고출력을 필요로 하는 다목적 고기동장비와 같은 군사장비는 물론 비행기 같은 교통 수단에도 애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원자력 발전은 스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이 일단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어 리스크가 큰 발전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사실상 폭발의 가능성이 없고, 폭발하더라도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개량되었다.

다만 문제는 폐기된 원자력 전지의 처리이다. 원자력 전지를 사용하면 방사능 폐기물이 나오는데, 이는 원자력의 단가가 매우 비싼 원인이 되고 있다. 그나마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 자체가 땅 속에 묻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던 30년 전과 달리, 요즘에는 핵 폐기물을 분해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되어 이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핵 폐기물 분해는 매우 값이 비싸서 운이 없다면 원자력 전지를 만드는 비용만큼이나 핵 폐기물 분해 비용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여건이 된다면 보통 언제 어디서나 발전이 가능하지는 않지만 값이 싼 재생 에너지가 선호되며, 원자력 발전은 고출력 에너지가 필요로되거나 군사 장비와 같은 장소가 민감한 곳에서 사용되는 기구의 발전 시스템으로 자주 사용된다.

한편 화력 발전은 오랜 기간동안 대영제국 내에서 주류를 차지해왔던 발전 방식이지만, 30년대 이후 환경 파괴의 위험성이 부각되며 대중적으로 화력 발전을 꺼리는 풍조가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의 개량을 통해, 재생 에너지의 단가가 폭발적으로 줄어들고 전기 효율성 면에서도 원자력이 화력을 앞서자, 현재는 부득이하게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를 둘 다 사용할 수 없는 지역에서만 화력 에너지가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법

대영제국 국교회는 자유로우며, 그 권리는 온전히 유지되고, 자유 또한 침해될 수 없음을 대영제국 황제 및 황제의 대리인에게 영구히 신의 이름으로 허용하며 특허장으로써 확인한다.
대영제국 제국기본법 제1조

오랜 기간 불문 헌법을 지켜왔으나, 26년 에드워드 7세에 의해 단지 법의 전례만을 두고서 사람의 죄질을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 하에 마그나카르타를 포함한 이전의 모든 법례들을 모아서 29년 제국기본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기본법 외에 형법, 상법 등 구체적인 법에 관해서는 여전히 불문법이 유지되고 있다.

딱히 교도소가 없는 대신, 경범죄는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중범죄는 계급 격하[8]로 처리한다. 제3계급 시민들은 제2계급 시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로 도시를 이루어 살기 때문에 사실상 감옥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제2계급 시민중 그 죄질이 특별히 나쁘다고 판단된 경우라면 아예 수용소에 갇혀 강제 노동을 해야하거나 혹은 사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사법부

대영제국의 사법부는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대영제국 법무부 산하의 기관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사법부 자체가 내각에 속한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하여 고위 공무원을 수사하는 기관은 따로 존재한다. 대영제국 황제의 직속 기관인 대영제국 공무수사청이 정치중립성의 의무를 가지고 공무원들을 수사한다. 나머지 업무는 법무부에서 처리한다.

법정 연호

대영제국은 서력 기원이 아닌 황력 기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다. 서력 1921년이 대영제국 황력의 기점으로, 서력 1921년이 황력 0년이 된다. 따라서 올해는 101년이 된다.

A.B.E.와 B.B.E.는 각각 "After British Empire"와 "Before British Empire"를 뜻한다. After / Before를 나누는 기준점은 서력 1921년 프레더릭 3세의 칭제건원이다.

서력 기원도 연호로서 가끔 사용되지만,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대영제국 외에 중화제국과 대한국, 일본 등의 제후국에서는 청나라 시대의 전례에 따라 대영제국 황력기원이 아닌 중화제국 연호를 사용한다. 101년은 강덕 11년이다.

사회

기본적으로 현재까지 존속하는 완고한 신분제도, 황실 중심의 전제군주정, 귀족들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 철저하게 중앙 정치 개입이 배제되어있는 제2~3계급 때문에 사회의 분위기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경직되어있다.

대영제국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영제국이 자국의 신민들을 취급하는 태도를 알 필요가 있다. 대영제국은 철저한 능력주의와 효율 우선주의 사회로, 신민들을 한명의 인간이 아닌 장기말 또는 도구 정도로만 여기고, 대부분의 신민들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그정도로 여긴다. 즉 전체주의적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영제국 내에서 신민의 수는 곧 국력이라는 가치 하에 무의미한 희생도 강요되지 않지만, 동시에 효율을 위해서라면 계급에 따른 차등과 인권의 희생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간은 곧 도구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인권의 개념은 매우 희미하고, 동시에 봉건제 사회를 옹호하는 수단으로서 사용된다.

다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언제나 유지되어온 것은 아니다.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면서 점차 대영제국의 사회 분위기는 풀려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세속적이고 진보적인 사회로 발돋움했다. 소련의 유럽 합병 직전까지 제3계급 폐지론, 중국 및 인도인 1등 신민화 등이 활발히 논의되었을 정도였고 황실도 이에 대해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70년대에는 소련의 영향력이 어느정도 복구됨에 따라 사회주의와 같은 이적사상에 대한 경계감이 황실, 중앙 정치계, 민중에게 있어서 부각되었고, 황실의 영향력 축소 및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로 몰려 탄압당하였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용한 혁명 시대에 이뤄진 개혁안들을 제외하면 인권, 민주주의 부분에서 나아진 부분은 거의 없고 오히려 더 폐쇄적으로 변한 부분이 존재한다. 헨리 게스코인세실 주도의 황제기사의 난이 이뤄지긴 했지만 평민원의 권한 확대를 제외하면 인권 부분에서의 진전은 없고, 반대로 군사 독재정권의 수립으로 인하여 인권이 더 후퇴했다는 분석도 있다.

20년대에 비하면 확실히 나아진 부분은 존재한다. 대영제국 내에서 여성 차별, 인종 차별 등은 거의 없어졌고 종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축소되어 세속적인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투표권은 오직 900만명에 달하는 1계급에서 미치고 있으며, 황실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귀족에 의해 선출되어, 귀족으로 구성되는 내각은 그저 귀족의 이익만을 대변할 뿐이고 복지 체제는 제2계급의 중산층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나마 대영제국의 경제적 수준이 높아 제2계급 신민 뿐만 아니라 제3계급 신민도 소련의 중산층정도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에 현 체제에 대한 큰 불만은 없으나, 여전히 민중의 뜻에 의한 민주주의와 공화제 전환을 외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물론 대영제국 정부에서 이를 무력진압하고 있기에 시위가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언론의 자유, 집회 및 정당 결사의 자유 등의 기초적인 인권과 정치적 자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다. 언론과 정당 등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 대부분 귀족 계층에 귀속되어있다. 노동조합과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자유이지만, 어디까지나 황실의 허가가 있어야한다. 즉 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대영제국 본토 주민들이 아닌, 제후국에서 온 2등 신민(중화, 인도 신민)과 3등 신민(그 이외 지역의 제후국 신민) 출신의 이민자들은 철저하게 신분제에 따라 차별받는다. 그나마 인종차별주의가 사라졌기에 표면적으로 차별이 크게 드러나는 편은 아니긴 하지만 이들은 관공서 업무와 같은 곳에서 본토 주민에 비해 확실히 차별받는 점이 많다.

이러한 비민주주의적인 요소와 별개로 낙태 합법화, 동성혼 합법화가 일찍이 시행된 것 등 의외로 진보적인 면이 있다.

신분제

신분제가 강력한 국가인만큼, 각 계급의 비율은 큰 변수가 없는 이상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신분 상승과 하락도 상당히 어렵다. 제1계급에서 2계급이나 3계급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손에 꼽으며, 50년대 이후로는 2계급에서 3계급으로 추락하는 사례도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2계급에서 1계급으로 올라가거나 3계급에서 2계급으로 올라가는 것 역시 매우 힘들다.

제0계급 : 화이트로이드 황가

화이트로이드궁

제1계급에 속해있지만, 법적으로 이들은 제1계급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조사상으로 543명이 제0계급에 속한다.

이들은 대영제국 황제의 적법한 계승자들로, 가족 관계에 따라 왕위 계승 서열을 1위부터 543위까지 매긴다. 황제의 8촌 조카부터는 황위 계승 자격이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대영제국 정부와 경찰, 군대로부터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아 의전의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지며, 이들에 대한 비난과 같은 공격적 행보는 즉시 사상불온으로 취급되어 처벌받게 된다.

제1계급 : 귀족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9,196,838명(1.51%)이 귀족으로 집계되고 있다.

귀족들중에서 1억 파운드 스털링 이상의 재산을 가진 초부호는 전체 귀족 비중에서 47.32%를 차지하며, 1백만 파운드 스털링 이하의 재산을 가진 귀족은 극소수중에 극소수일정도로 대영제국의 부와 명예, 권력이 몰려있는 특권 계층이다.

제1계급은 대영제국 내에서 모든 권력과 경제의 중심을 맡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특혜와 특권도 어마어마하다. 귀족들은 세금에서 자동으로 면제되며 다른 계층과 달리 의회 의원을 선출할 투표권도 가진다. 대신 사회적인 책임이 크게 요구되는 편이다. 귀족들은 제2계급의 인심을 얻기 위하여 자선 사업에 참여하며, 매년 상당한 액수를 기부금으로 내고 있기도 하다.

신대륙 천도 이전부터 귀족 가문이었던 성골들도 있지만,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등의 특수 사례의 경우 제2계급 평민들도 제1계급 귀족으로 상승할 수 있다. 본래 귀족들은 전부 백인들로 이루어지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지만 대영제국의 규모가 커진 이후에는 아이신기오로 가문(Aisin Gioro)와 같은 타민족 계열의 귀족들도 생겨나고 있다.

특수 왕공족 (제0.5계급)

대영제국 내에서 제후국의 국왕 또는 명목상으로 그러한 작위를 가지고 있는 가문은 귀족중에서도 특수한 귀족 가문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대영제국 황제와의 정략결혼 기회 등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혜택을 받는다. 왕공족이 급격하게 많아진 것은 10년대 유럽 혁명으로 유럽의 왕정들이 대부분 붕괴되면서이다. 이때 대영제국은 유럽 왕실 구출 작전을 통하여 거의 대부분의 유럽 왕실 가문을 스위스와 그리스를 통해 탈출시켰으며, 이들중 일부가 대영제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대영제국 황제의 신하가 되면서 가문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명목상으로 유럽 군주국들의 왕위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이 다시 대영제국의 영향력 하에 군주정으로 복귀될 경우 이들은 대영제국의 제후로서 그 왕위권과 영토 지배를 인정받기 때문에 권한이 어느정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주 이씨와 같은 몇몇 왕공족들은 실제로 재위하고 있기도 하다.

호엔촐레른 가문, 보나파르트 가문 등 일부 왕조들은 세계 전쟁에서 대영제국과 크게 싸운 경험도 있고, 원래부터 숙적 관계였던만큼 다른 왕공족의 대우에 비해 약간 격이 낮다. 둘다 각각 독일 황제, 프랑스 황제 직을 잃고[9] 다른 왕공족에 비해 겉도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큰 위험 때문에 이들에 대한 처우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특수 왕공족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원어명 영어명 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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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lloyd (화이트로이드) 화이트로이드 대영제국 황제
중화제국 황제 실제 재위
인도제국 황제 실제 재위
독일 제국 황제
일본국 천황 실제 재위
포르투갈 국왕 실제 재위
아르헨티나 국왕 실제 재위
나이지리아 국왕 실제 재위
버마 국왕 실제 재위
필리핀 국왕 실제 재위
멕시코 대공 실제 재위
라오스 대공 실제 재위
캄푸치아 대공 실제 재위
아프리카의 보호자 실제 재위
남아메리카의 보호자 실제 재위
중앙 아프리카 변경백 실제 재위
이베리아 변경백 실제 재위
콘스탄티노플 변경백 실제 재위
튀니지 변경백 실제 재위
알제리 변경백 실제 재위
Habsburg (합스부르크) 합스버그 오스트리아 국왕
헝가리 국왕
Oranje-Nassau (오라녜-나사우) 어린지나소 네덜란드 국왕
동인도 국왕 실제 재위
Saxe-Coburg Gotha (작센코부르크고타) 색스코버그고타 벨기에 국왕
콩고 국왕 실제 재위
Wittelsbach (비텔스바흐) 위틀스버크 바이에른 국왕
Bourgogne (부르봉) 버르건 프랑스 국왕
스페인 국왕
Savoia (사보이아) 서보이아 이탈리아 국왕
나폴리 변경백 실제 재위
Glücksburg (글뤽스부르크) 글뤽스버그 노르웨이 국왕
덴마크 국왕
그리스 변경백 실제 재위
Bernadotte (베르나도테) 버르너도트 스웨덴 국왕
Bonaparte (보나파르트) 보너퍼트 코르시카 대공
Hohenzollern (호엔촐레른) 호언촐런 프로이센 대공
루마니아 국왕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 Aisin Gioro (아이신기오로) 아이신교로 청나라 황제 폐위
李 / Lee (이) 대한국 국왕 실제 재위
尙 / Sho (쇼) 류큐국 국왕 실제 재위
阮 / Nguyễn (응우옌) 응우옌 베트남 국왕 실제 재위
จักรี / Chakkri (짜끄리) 차크리 시암 국왕 실제 재위

제2계급 : 평민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567,767,752명(92.22%)이 평민으로 집계되고 있다.

귀족에 버금갈정도로 부유한 평민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평민들은 경제적으로 중산층 계층이 속한다. 대영제국의 높은 경제적 수준 때문에 중산층이라고 하더라도 경제적인 수준은 매우 높다. 하지만 평민중의 20%정도는 일정하게 경제 하류층으로 분류된다.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의 비율은 1970년대 이후 10% : 70% : 20%정도로 유지된다.

대영제국 신민들의 대다수가 이쪽 계급에 속하는만큼, 제1계급도 제2계급보다 신분제상으로 위에 있을지언정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한다. 어디까지나 귀족의 특권이나 황실 중심의 전제군주정이 유지되는것도 2계급이 체제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제2계급의 체제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강력한 복지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50년대 이후로는 제2계급 신민이라고 해서 특별히 인권을 탄압받는 것은 아니나,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세금도 소득의 수준에 따라 내야한다. 제국의 제2계급 남성들은 20대에 반드시 3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이후로는 40세까지 1년에 1주 이상은 의무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아야한다.

제3계급 : 비신민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32,097,576명(5.27%)이 비신민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영제국에서는 교도소라는 것이 딱히 없는 대신, 죄질이 매우 크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 제3계급 신민으로 신분 계급을 떨어트리는 편이다. 2건 이상의 살인, 존속 살해 등의 강력 범죄는 그린란드에 위치한 특별 수용소에 수용시킨다.[10] 민주주의자, 급진적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공화주의자, 식민지 독립론자(민족주의자) 등 대영제국의 황실과 체제에 위협될만한 세력들도 이쪽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야말로 대영제국의 최하위 계층이자 적대 계층 그 자체로, 거주 이전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기본적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외진 곳에 집단으로 격리 수용된다. 수용소보다는 그래도 신체가 자유롭고, 강제 노역도 하지 않는 등 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만 대영제국의 최정예 경찰들이 삼엄히 감시하는 수용소와 달리 제3계급 신민들은 적성 행위를 하는지 감시하기만할 뿐이지, 탈옥을 제외한 거의 모든 행위에 대해 경찰이 개입하지 않는다. 즉 제3계급 신민들 사이에서는 다툼이 일어나 사람이 죽건 말건, 보호할 가치도 없으므로 치안 관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3계급 신민중 5.3% 가량이 매년 자연사 이외의 방법으로 사망한다.

과거에는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정도로만 해도 괜찮을 제2계급 신민들을 아무나 비신민으로 분류하고 집어넣어 비신민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나, 1980년대 법이 바뀐 이후 경범죄자들은 비신민으로 지정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또한 비신민의 자식들 뿐만 아니라 비신민 자신들도 자진하여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면 비신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제3계급에서 2계급으로 올라섰음에도 제국을 위협하는 행위를 자행했거나, 혹은 제3계급 신민인 와중에 그렇게 하였을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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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지역별 종교 분포를 나타낸 지도

대영제국 내에서는 기독교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유대교, 불교, 이슬람교, 민속 종교 등도 존재하지만 아메리카 본토와 외부영토를 포함하여 성공회가 약 56%, 가톨릭이 10%, 개신교가 3%의 비중으로 기독교가 약 70%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무종교는 20%대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성공회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영국은 세속화를 겪는 중이다. 조용한 혁명 이전까지 기독교가 영국 내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상당하였으나, 최근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최근 Yougov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중 매일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전체 인구중 불과 8%에 불과하다고 한다. 기독교는 믿지만 독실하지 않은 "생활속의 기독교인"이 다수를 점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무종교인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59년, 무종교인의 비율은 10%정도로 집계되었지만 최근에는 25%를 넘겼다. 전문가들은 129년에 무종교인의 비율이 40%를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무종교 중에서는 무신론과 불가지론이 팽팽하게 엇갈린다.

다만 성공회를 비롯한 기독교 문화는 영국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보편적 도덕관과 가치관의 뼈대는 어디까지나 기독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것이 쉽게 무너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영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동양 문화권에서 유교 성리학이 차지하는 비중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즉 기독교의 세가 줄어들지언정, 기독교의 가르침은 영국 사회의 근간이 되는 뿌리로서 존속하고 있다.

대영제국 성공회

영국 성공회는 현재 영국의 국교이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 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성공회는 상당히 개방되어있어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종교중 하나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공회에 거부감 없이 입교하고 있다.

영국 내에서는 그 권위를 구분하기 위해 개신교와 분리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신교의 분파중 하나이다.

성공회의 수장은 캔터베리 대주교이다. 흔히 대영제국 황제가 성공회의 지도자인 것으로 착각하곤하는데, 황제는 어디까지나 성공회의 보호자일 뿐이지 지도자도 아니며 숭배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영국 황실에서 성공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6명의 황제중 종교에 대한 논란이 있는 프레더릭 3세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의 황제는 모두 확실한 성공회의 신도였다.

교육

대영제국의 교육은 5년동안의 초등학교, 5년간의 중등학교, 2년간의 준비학교, 3년간의 석사 과정, 2년간의 학사 과정, 그리고 2년간의 박사 과정으로 구성되어있다. 중등학교는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합친것과 같은 학교이다. 대한국에 외국어 고등학교, 특수목적사립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등 여러 형태의 고등학교가 존재하듯이, 대영제국의 중등학교도 Grammer School이나 Art Colledge 등 다양한 과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으로 치면 일반고등학교에 속하는 Secondary School에 진학한다.

중등학교에서 졸업한 학생들은 2년간의 준비학교를 거치면서 바로 취업 전선에 나갈것인지 혹은 대학교에 진학할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대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중등학교 과정의 심화 과정을 배우게 되며,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실업 교육을 받는다. 실업 교육 쟁점 학교로는 크게 공업 학교, 사무 학교 그리고 군사 학교가 있지만 그 외에도 실업 학교는 다양하다. 이중 군사학교는 예외적으로 2년간의 이론 교육과, 2년간의 실전 교육을 받아 총 2년간 재학하는 다른 실업 학교와 달리 4년간 재학하게 된다.

대학 진학반이 끝난 학생들은 졸업 시험을 치루고, 시험 성적과 학교에서의 성적을 합친 최종 대학 입학 성적을 부여받는다. 대학 입학 성적에 따라 어느 대학교에 갈것인지가 정해진다. 상위 대학교와 하위 대학교의 수준 차이가 큰 것은 아니지만, 상위 대학교가 유명한 것도 있고 학과도 더 다양하며, 교수들의 수준 역시 높아 보통은 상위권 대학을 더 희망하는 학생들의 수가 압도적이다.

대학은 입학보다 졸업이 더 어려운 구조라서 약 30%정도의 재학생이 학/석사 과정에서 탈락한다. 이 과정을 통과한 학생의 80%도 박사학위에서 탈락하거나 박사 학위로 가지 않는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박사 학위자를 존경하는 분위기가 있다.

언어

대영제국의 공용어는 제국어이다. 제국어는 영어라틴어를 일컫는 말인데, 두 언어는 대영제국의 법상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민간에는 영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라틴어는 일부 귀족 혹은 성직자 계층에서만 쓰이는 언어이다. 현 황제인 조지 5세, 황제기사인 헨리 게스코인세실, 총리인 뉴트 제이콥슨 중 라틴어 구사자는 헨리 게스코인세실 단 한명에 불과하다. 라틴어가 공용어가 된 것은 단지 로마의 계승국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함일 뿐이다.

영어가 현재 제국 내에서는 주류 언어이며 그 외에 스페인어, 프랑스어, 아프리칸스어, 독일어 등도 사용된다. 다만 프랑스어는 거의 150년 가까이 이어져온 프랑스어 사용 금지법 때문에 사실상 본토 내에서는 멸절당했고 식민지에서만 사용된다. 원주민들의 언어도 간혹 사용되지만 대부분 영어로 대체되었다.

황국신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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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신민증 템플릿

대영제국은 모든 계급의 시민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황국신민증을 발급하고 있으며, 15세 이상의 대영제국 황국신민이라면 반드시 발급받아야한다. 귀족의 경우 이름과 성 뿐만 아니라 공작/후작/백작/자작(부백작)/남작 작위도 3번째 칸에 나타내도록 되어있다.

인식번호의 경우 1은 1계급을, 2는 2계급을, 3은 3계급을 나타낸다. 지역의 경우에는 1부터 9까지 있으며, 1~8은 내지, 9는 식민지를 뜻한다. 그 외에 대영제국의 제후국에서 거주하는 경우, 대영제국 제후왕국시민증이 따로 발급되며, 제후국과 대영제국 본국의 복수 국적을 가지고 있을 시 양쪽을 다 발급받도록 하고 있다.

제2계급 시민에서 제3계급 시민으로 강등된 경우, 범죄 유무 칸이 따로 생긴다. 제3계급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 제2계급으로 올라선 경우에도 이 칸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제3계급 시민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들은 범죄 유무에 상관 없이 제3계급이 된 것이기에 제2계급으로 올라서면 이 칸은 사라지게 된다.

인권

대영제국의 모든 황국신민은 황제 폐하의 신하로서, 황제 폐하 및 황제 폐하의 대리자의 명령에 절대적인 복종과 충성을 다한다.
황제 폐하의 대리자는 황제 폐하와 제국의 안녕을 위하여 신민들의 귄리를 제약할 권리를 가지며, 황국신민은 명령으로서 제한되는 권리를 영위하고 절대복종할 의무를 진다.

대영제국 제국기본법 제17조

대영제국 내에서 인권의 개념은 매우 희박하다. 대영제국의 모든 황국신민은 대영제국 황제의 신하로서, 황제와 황제 폐하의 대리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황제의 대리자라고 할 수 있는 군대나 정부가 제약하는 인권에 반항할 권리가 없다. 제약된 권리에 대한 불복종은 곧 군대에서의 명령 불복종으로 여겨지며 이는 제3계급으로의 주된 강등 사유중 하나이다. 대영제국인들도 굳이 인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침해받을만하니 침해받는 것"이라며 군대와 정부의 인권 침해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영제국 내에서는 황제 폐하의 신하로서, 정부와 군대의 명은 설령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있더라도 황제와 제국 그리고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희생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매우 당연시되고 있다.

애초에 대영제국 내에서 한 사람을 여기는 시각은, 인간 대 인간이 아닌 국가 대 장기말의 시각이다. 제1계급 귀족들조차 국가를 위한 도구로 취급되며 능력주의와 효율성이 최대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만약 제국에 이익이 된다면 인간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무의미한 도구의 남용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다시피, 대영제국에서는 인명이 곧 국력이라는 가치관 하에 무의미한 인명 희생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일본제국에서 자행되었던 자살 공격의 형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은 제국을 위한 장기말이며 제국을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 뿐이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있어서 인권의 소중함은 대영제국 내에서 매우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범죄자, 전쟁 포로의 인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영제국 내에서 정치 범죄자에 대한 고문은 불법이 아닐 뿐더러 효율적인 취조 수단으로 오히려 적극 권장되고 있다. 전쟁 포로는 기본적으로 강제노역의 의무를 맡으며, 상급 전쟁 포로는 그 가치가 전혀 없어졌다고 판단될 시 즉결 처분된다. 당연히 전쟁 범죄에 대한 문제 의식도 없어서 한번 전쟁이 터지면 각종 대학살과 약탈이 일어나는 일이 빈번하다.

다만 인권은 온정주의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저럴 수 있느냐" 등의 여론이 나오곤 한다. 이에 따라 대영제국군 측에서도 전쟁범죄나 불필요한 민간인 권리 탄압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전쟁 범죄나 비전시 즉결 처분은 비난의 대상일 뿐이지 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문화

철저하게 귀족 중심 문화와 평민 문화로 나뉘어져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귀족 문화가 평민에 의해 모방되기도 하고 귀족들이 평민 문화를 즐기기도 하는 등 귀족 문화과 평민 문화가 혼재되어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전제군주제와 관료독재정이 시행되는 것과 별개로, 문화적으로는 자유가 어느정도 보장되어있다. 황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절대로 안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허용된다. 이 때문에 문화가 소련에 비해 융성해있다.

50년대 이후 인종차별 정책의 폐지로 인하여 흑인, 황인, 백인의 문화가 고루 섞여 융합된 모습을 보인다. 재즈, 록 음악 등 흑인 음악이 평민 음악 문화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귀족 계층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문화에 대한 선호 양상이 나타난다.

스포츠

크리켓, 축구가 최대 인기 종목이며, 그 외에 야구도 인기있다.

소련, 독일과 더불어 전통적인 올림픽 강국으로, 크리켓과 축구는 거의 모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계에서는 독일, 소련, 인도 등 올림픽 강국들과 언제나 1위 종목을 다투고 동계 종목에서는 소련에 이은 세계 2위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 캐나다는 아이스 하키를, 남부 카리브 해 연안에서는 야구가 인기를 얻는것과 같이 지역별로 선호하는 스포츠 종목이 어느정도 차이가 나는 점도 특징이다. 하지만 축구와 크리켓은 전국을 통틀어 세대와 성별에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영제국 로열 프리미어 리그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축구 리그이기도 하다.

음악





대영제국의 대표적인 대중 음악

귀족 계층에서는 클래식과 재즈가 강세를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 클래식 음악이 다소 퇴조한것과 달리, 대영제국은 유럽과 소련의 공산화 당시 유능한 작곡가, 지휘가들의 망명을 받아들여 클래식의 수명을 연장하였다. 클래식 음악은 50년대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의 물결을 타고, 록 음악, 재즈와 융합되어 더욱 음악적으로 발전하였고[11], 평민 문화로도 확장되어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평민 문화에서는 재즈와 록 음악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 외에 R&B가 인기있고 클래식 음악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70년대 힙합이라는 장르가 등장하기도 하였으나 과격성과 폭력성으로 인하여 대중들의 외면, 정부의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언더그라운드 문화 신세이다.

재즈와 록 음악은 나온지 꽤 오래된 장르인만큼 그 갈래도 다양하여, 현재는 각 분파가 거의 같은 장르라고 볼 수 없을정도로 특징이 다양해져 메인스트림을 형성한지 정말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재즈와 록 음악의 융합 형태인 재즈 록도 인기이다. 두 장르들은 50년대 세계의 다양한 음악에서 음악성을 받아들여 그 갈래를 넓히고, 60년대에는 보다 대중적인 노선을 추구하여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열었다.

최근에는 동양의 전통 음악과 록 음악이 융합된 형태인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이 등장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교통

대중매체에서

  • 일본에서 85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여 브리튼 제도를 붙들고 있는 대영제국(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여담

  • 제이위키 내에서 무지막지한 국력과 무지성 인플레이션 설정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제이위키 내에서 또다른 무지성 초인플레, 극초강대국 설정 국가인 신조선 연방과의 환핀대전급 비교가 주요 밈으로 사용된다. 봉건제, 전제군주제, 군사 독재를 표방하는 대영제국과 달리 신조선 연방은 민주제 국가이기에 더욱 비교되곤 한다.

각주

  1. 기타 제후국까지 다 합칠시 213조 파운드에 달한다.
  2. 군사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영국이 소련을 압도한다. 인구, 경제력 모두 그 격차가 10배 이상이다.
  3. World War(영어), Weltkrieg(독일어). 영국과 독일의 치열한 싸움을 통틀어 영독전쟁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러시아, 프랑스 등은 이 명칭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4. 사실 0년대 들어 정치 개혁을 통해 영국 내에서 인종차별적인 법안은 대부분 철폐되었고 북부 대도시들에는 이미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가릴 것 없이 모자이크 사회의 양상이 나타나곤 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시기 신분이 철폐된지 오래임에도 백정에 대한 차별로 인해 형평운동이 일어났듯이, 40년대까지 흑인종과 황인종은 극히 일부의 대도시들을 제외하면 뿌리박힌 인종차별 의식으로 차별을 받는 일이 많았다.
  5. 평민원 의원 한명이 약 75만명의 제2계급 시민들을 대변하도록 되어있다.
  6. 만화영화에 나오는 메카닉 로봇을 생각하면 된다.
  7. 이론상 도쿄에 칼로그레난트 B가 떨어졌다고 가정할 시, 사망자 23,979,000명과 부상 및 피폭자 104,489,120명이 발생한다. 사실상 나라 하나를 없앨 수 있는 수준의 폭탄이다.
  8. 1계급 신민은 2계급으로, 2계급 신민은 3계급으로 한계급씩 계급이 낮아진다. 다만 귀족이 2계급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9. 독일 황위는 화이트로이드 황조에, 프랑스 왕위는 부르봉 가문에 넘어갔다.
  10. 제1계급 귀족들도 큰 죄를 저질렀을시, 신분을 강등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보통 특별 수용소로 보내진다.
  11. 쿨 재즈, 프로그레시브 록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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