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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국의 현
성산현
城山縣 | Seongsan hyeon
현청 소재지
성산구 성산현 오작로 532번
소속 구
성산구
면적
102.60㎢
인구
305,832명 (2020년)
하위 행정구역
16정 43가
인구 밀도
2980.81명/km2
현청장
손석형(재선)
국회의원
성산현 갑
여영국(초선)
성산현 을
노회찬(4선)
현의회
61석
26석
11석
무소속
2석
성산현청
성산현 전경
황거

개요

임나국의 정치, 사법 수도이다. 임나국 총리관저임나국 정부청사, 그리고 임나국 황거가 위치한 명실상부한 임나국 정치의 중심이며 동시에 대검찰청과 중앙경찰청, 대법원이 위치한 사법의 중심이기도 하다. 인구는 305,832명으로 임나국의 일반 현중 5번째로 많다. 이전에는 50만명에 달하였으나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위성 도시인 북창원현, 진해현, 김해현 등으로 인구가 분산되었다.

성산현은 고대 가야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도시였으며, 임나국의 독립 이후 400년동안 황실수도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1950년대 항만 사업과 금융업의 발전으로 경제의 중심지는 동래현으로 옮겨갔지만 현재까지도 명실상부한 정치 사법의 수도로서 남아있다. 임나국 헌법에도 명시되어져있다. 198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인해 도심 슬럼화가 이뤄지기도 하였으나 이명박 시장의 뉴타운 정책과 도시 재생사업으로 현재에는 세계 삶의 질 100대 도시 안에 들어갈 정도로 친환경, 재생 도시로 발돋움하였다.

역사

가야 시대에는 성산가야가 존재했고 인근에 위치한 금관 가야로 인해 가야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나, 대가야로 가야 패권이 넘어간 이후로는 별볼일 없는 항구도시가 되었고 신라의 가야 침공으로 인해 현재 성산현이 위치한 지역 일대가 초토화되기도 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 조선 태종 8년, 1408년 창원도호부로 불리게 되며, 선조 24년 1591년에는 창원대도호부가 되었다. 임나국 독립 이후에는 황거가 들어서 단숨에 임나국의 황실수도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18세기 들어서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임나국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당시 성산현은 동아시아 5대 항만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인들이 북적거렸으며 개방 정책으로 인해 유럽 상인들도 드나들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영천 7년(1804년) 성산도호부로 이름이 바뀌었고 광해 11년(1877년) 현재의 성산현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들어서는 성산 전철이 개통하였고 성산 황거 옆에 임나총독부가 들어섰다. 성산의 중심지인 본정이 개발되어 케이조와 함께 조선반도 제2의 도시로 발전하였으나, 동시에 급속한 도시 발전으로 인해 근교에는 빈민촌이 늘어나고 급속도로 빈부격차가 늘어났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에서 넘어온 난민들이 범죄를 일으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 양택식 성산 현장이 도시 재개발 정책을 구상하고 성산 지하철을 개통시켜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어나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임나국 산업의 중심이 동래현으로 옮겨가면서 쇠퇴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민주화의 중심지로서 데모가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 성산 현장의 뉴타운 개발과 도시 재생 사업으로 성산현은 친환경 도시로 거듭났으며, 2012년에는 세계 삶의 질 100대 도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행정

16정(町) 43가(街)로 이뤄져있다. 구도심 지역이었던 본정 일대와, 신도심 지역인 구본정, 그리고 공단지대인 사파정이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16정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정치

경제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