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트리츠 6세

리반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5월 23일 (수) 18:48 판

에스트리츠 6세
(언어 오류(da): Estrits Ⅵ)
Estrits Veyo-Vidus Alberts Wilens
에스트리츠 6세의 초상화, 아델스 위리경, 1919년
인물 정보
왕호 블라쉬덴의 국왕이자 오덴베르의 상원의장
(Kongen i Det Blaswiden og Det Ordenberg Præsident for senatet)
이름 에스트리츠 베요-비두스 알베르츠 빌렌스
(Estrits Veyo-Vidus Alberts Wilens)
생몰년도 1860년 7월 11일 ~ 1931년 9월 25일
출생지/사망지 블라쉬르펜 크노르 허스/블라쉬르펜 베른하르스
재위기간 1913년 5월 3일 ~ 1931년 9월 25일

에스트리츠 6세(언어 오류(da): Estrits Ⅵ, 1860년 7월 11일 ~ 1931년 9월 25일) 혹은 에스트리츠 베요-비두스 알베르츠 빌렌스(언어 오류(da): Estrits Veyo-Vidus Alberts Wilens)은 블라쉬덴-오덴베르 국가연합(Blaswiden-Ordenberg Konføderation)에서 블라쉬덴 왕국의 국왕이자 올르덴게르가(House of Orldengerg)의 수장이었으며, 오덴베르 공화국의 종신 상원 의장(Præsident for senatet)을 역임하였다. 아버지인 구스타우스 4세(Gustavus Ⅳ)가 1913년의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부터 전간기 중반이 재위기간과 겹쳤으며, 그의 재위기간은 큰 혼란의 연속이었으나, 그는 블라쉬덴-오덴베르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전제군주제가 퇴색되고 의원내각제에 의거된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전반적인 생애

유년기

에스트리츠 6세는 1860년 7월 11일 조부인 에스트리츠 5세의 재임 기간 중 블라쉬르펜의 크노르 허스에서 에른데우스 공이자 훗날 국왕으로 즉위하는 구스타우스 4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60년 8월 3일, 드라카르궁의 성 올르덴게르 성당에서 당시 헤르데릭스보르 대주교였던 스메스 초다르키우스(Smes Chodarkus)에게 세례 받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을 보냈으며, 1880년의 귀국하여 아버지에게 제왕학을 배웠다. 한편으로 그의 아버지, 구스타우스 4세는 "해군 생활이 사내아이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이라고 생각했기에, 1882년, 22세의 나이로 에스트리츠 6세는 그의 동생과 함께 KBOM(Kongelige Blaswidene-Ordeberge Marine)베르니키아의 해군 생도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의 동생들이 해군 생활에 대해 어려움을 겪던 것과는 달리, 에스트리츠 6세는 해군 생활을 즐겼다. 이 당시의 해군 복무 경험은 훗날 그의 양육 방식과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에른데우스 공

재위기간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