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당 (신질서의 황혼)

Destiny63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2월 19일 (월) 20:11 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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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회주의-혁신 정당
대정익찬회
(개별 합류)
일본사회당 해산[1]
입헌양정회
(개별 합류)
일본사회당
日本社会党
등록 약칭 사회(社会)
영문 명칭 Japan Socialist Party (JSP)
슬로건 基礎生活向上
기초 생활 향상
창당 1990년 9월 17일
해당 2010년 2월 16일 내란사태로 해산
중앙집행위원장 에다 사쓰키 / 9선 (, 40~48대)
부위원장 오우치 게이코 / 10선 (, 35~37·40~43·46~48대)
서기장 이와모토 가이산 / 12선 (, 37~48대)
이념 사회민주주의
사민자유주의(리버럴)[2]
진보주의

분파: 민주사회주의
혁명적 사회주의[3]
좌익대중주의
중도주의
스펙트럼 중도 ~ 극좌

주류:중도좌파
참의원 5석[4] / 384석 (1.3%)
중의원 12석[5] / 650석 (1.8%)
당색 파란색 (#173283)
하늘색 (#01A8EC)
당원 수 243,945명 (해당 시)
국제조직
청년조직 일본 사회주의 청년 동맹
노동조합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6]
기관지 사회신보
홈페이지 현재 폐쇄
SNS 현재 모두 폐쇄

2010.02.16 기준

개요

일본사회당 (日本社会党, にほんしゃかいと)는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존재했던 일본의 좌파 사회주의, 리버럴 정당이었다.

상세

1990년 공영권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대정익찬회가 몰락하고 민주화가 된 이후, 대정익찬회 내의 진보 세력을 주축으로 대거 합법화된 지하와 재야의 무산 계급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사회당은 90년대 일본자유당, 일본국민당과 함께 거대 3당의 하나였다.

당내 파벌의 경우 대체로 익찬계는 중도좌파의 경향이 강했고 무산 계열은 좌파 ~ 극좌까지 있었다. 공산당은 여전히 불법이었기에 일부 극좌 세력은 사회당에 합류하여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했으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역사

잃어버린 10년의 혼란 속 무산정당을 표방하며 일본이 성공적인 사회민주주의의 기감이 되는 것을 주장했다. 초반에는 자유당과 국민당을 비롯한 보수계 정당에 그 세력이 밀렸으나, 1997년 일미태평양평화조약반미투쟁을 계기로 당세를 크게 불려, 그해 치러진 제43회 총선에서 제1당이 되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세력이 보수합동을 통하여 자유민주당을 창당하면서, 1997년부터 2009년까지에 이르는 자민당과의 양당 체제를 구축했다.

자민당과 사회당 양대 정당이 각축한 이 시기 12년을 모리간 시대[7]라고 했다.

그러나 말이 양당제지 97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자민당의 정권이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후 자민당이 지속적으로 실점했으며, 급기야 2007년에는 제6회 참의원 통상선거를 승리하며 집권에 한층 다가갔다.

2008년 3월 제47회 총선에서 마침내 650석 중 336석으로 안정 과반을 확보, 간 나오토 내각을 구성하여 여당이 되며 전성기를 맞이한듯 했다.

하지만 간 내각이 자민당에 비해 경제정책 면에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있어서 사회당 내각은 사실상 시작하자마자 지지율이 하락세에 봉착했다. 특히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강타하며 사회당은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고 재총선을 압박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불식시킬 대사건이 터지고 사회당은 그대로 공중분해되고 말았는데, 바로 2009년 4월 그 실체가 드러난 사회당 내란 사태다.

사회당 내의 무산파벌이 신생 중국 및 소련에게 조직적으로 포섭되어 일본의 비무장화, 만주 중립화, 일본 농촌사회와 시정촌단위의 공산이념 확산, 시민단체로의 잠입 등을 수립하고 심지어 관공서에 대한 테러, 무기 입수, 조센 독립 공작 등까지 계획한 것으로 알려진 대사건이었다.

이는 당장 일본을 이길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신생 중소가 일본 내에 협력세력을 만들어 일본을 서서히 허물려고 시도했던 사건으로서, 그 대상이 일본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인 사회당의 극좌 및 좌파세력이었다.

이 사건으로 사회당내 무산파벌은 모조리 체포 및 구속되면서 당이 붕괴했다. 의원의 3분의2 이상은 구속됐으며, 호소카와 모리히로, 하토야마 유키오 등 익찬계열은 민주당으로, 도이 다카코 등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극좌계열은 사회민주당으로 분화하게 되었다. 간 나오토도 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나 그는 연루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2009년 7월 치러진 제48회 총선에선 불과 12석으로 추락하며, 당이 군소정당화 되었고 2010년 2월 16일 마지막 전당대회를 열어 초유의 내란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해당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의 사민주의 정당의 계보는 사실상 끊겼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민당의 일당 독주 체제가 이어져오고 있게 된다.

  1. 민주당, 사회민주당 등이 실질적 후신. 법적 후신 없음
  2.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위원장이 주창한 이념으로, 사회민주주의와 리버럴의 중간 정도에 있는 자유사회주의의 일종이다.
  3. 극좌파 계열은 신사회당으로 대부분 이탈했기에 당 내에 소수만이 남아있었다.
  4. 지역구 2석, 비례대표 3석
  5. 지역구 8석, 비례대표 4석
  6. 동맹 등 다른 지지 노조의 수도 많았으나 일단 사회당의 공인 노조는 총평 하나 뿐이었다.
  7. 모리 요시로로 시작하며 나오토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