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질서의 황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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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고도 성장을 거듭한 끝에 1968년 미국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GDP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으며, 1970년대에 가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1960년대에 고도 성장을 거듭한 끝에 1968년 미국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GDP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으며, 1970년대에 가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73년 인도에서 군을 철수해 권위가 실추, 1970년대 말 석유파동을 시작으로 일본 경제가 흔들리고, 1982년 독일에서 [[유럽대전]]이 발생해 [[대게르만국]]이 멸망 직전까지 몰리자 대동아공영권 내에서도 반향이 일어 1984년 중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선포하고 이어 공영권 국가들이 가담해 [[대아대전(신질서의 황혼)|대아대전]]이 시작되며, 신질서의 붕괴가 다가왔다.
그러나 1973년 인도에서 군을 철수해 권위가 실추, 1970년대 말 석유파동을 시작으로 일본 경제가 흔들리고, 1987년 독일에서 [[유럽대전]]이 발생해 [[대게르만국]]이 멸망 직전까지 몰리자 대동아공영권 내에서도 반향이 일어 1988년 중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선포하고 이어 공영권 국가들이 가담해 [[대아대전(신질서의 황혼)|대아대전]]이 시작되며, 신질서의 붕괴가 다가왔다.


1987년 8월 결국 일본은 중국에서 철수하였고, 이어서 다른 공영권 국가들도 무너져 내려 1989년엔 공영권 소속국 국가가 만주국과 필리핀만 남은 지경이었다. 심지어 1987년 중순부터 유럽에서 독일군을 끝장내고 다시 소련이 부활, 소련군이 일본의 극동 영토를 공격하기 시작하며 그야말로 멸망 직전까지 몰려버렸다.
1989년 8월 결국 일본은 중국에서 철수하였고, 이어서 다른 공영권 국가들도 무너져 내려 1989년엔 공영권 소속국 국가가 만주국과 필리핀만 남은 지경이었다. 심지어 1988년 중순부터 유럽에서 독일군을 끝장내고 다시 소련이 부활, 소련군이 일본의 극동 영토를 공격하기 시작하며 그야말로 멸망 직전까지 몰려버렸다.


그러나 1989년 일본군은 하얼빈에서 극적으로 소련군을 격퇴한 뒤 [[몽강]]을 소련에 내주고 만주국은 호지하는 선에서 강화를 체결해 멸망 위기는 벗어났다. 하지만 공영권이 완전히 붕괴하고 경제도 무너져 내리면서 일본은 바야흐로 대혼란에 들어갔다. 결국 1991년 쇼와 덴노에게 황위를 승계한 아키히토가 스스로 친정을 선포하며 일본이 유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9년 일본군은 하얼빈에서 극적으로 소련군을 격퇴한 뒤 [[몽강]]을 소련에 내주고 만주국은 호지하는 선에서 강화를 체결해 멸망 위기는 벗어났다. 하지만 공영권이 완전히 붕괴하고 경제도 무너져 내리면서 일본은 바야흐로 대혼란에 들어갔다. 결국 1991년 쇼와 덴노에게 황위를 승계한 아키히토가 스스로 친정을 선포하며 일본이 유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4년 1월 28일 (일) 21:04 판


일본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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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日本国 | Japan
언어별 명칭
중국어 日本, 日本國
ㄉㄚˋ ㄖˋ ㄅㄣˇ ㄉㄧˋ ㄍㄨㄛˊ
영어 Japan
황실 문장
국기 정부 문장
八紘一宇
팔굉일우
(1926 - 1991)
天皇陛下万歳
천황 폐하 만세
(1991 - )[1]
상징물
국가 임금님의 치세 (君が代)
국조 일본 꿩
국화 국화, 벚꽃
역사
진무 덴노의 즉위 기원전 660년 2월 11일
대정봉환 1867년 11월 9일
대일본제국 헌법 시행 1890년 11월 2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1945년 8월 15일
지나사변 승전 1947년 9월 2일
대아대전 1988년 6월 25일
중국 철수 1989년 8월 29일
헤이세이 유신, 대일본제국 해체 및 일본국 헌법 시행 1991년 12월 25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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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도쿄도 (東京都)
북위 35° 41′ 22″ 동경 139° 41′ 30″
최대도시
면적 676,983.9km2 | 세계 49위
접경국 만주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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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억 5,849만 6,243명 | 세계 5위
인구 밀도 381.75명/km2
민족 구성 일본인 96.2%
중국인 2.4%
다이완 원주민 0.3%
기타 1.1%
출산율 1.63명 (2021년)
기대수명 84세 (2021년)
공용어 일본어
공용문자 가나, 한자
종교 국교 없음 (정교 분리)
분포 불교 34.2%
기독교 11.1%
기타 3.2%
무종교 51.5%
군대 일본 국방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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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양원제, 양당제, 의원내각제,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6.85점 | 결함있는 민주주의
(168개국중 32위, 아시아 3위)
국성 일본 황실[2]
천황 (국가 원수) 나루히토
내각총리대신
(정부 수반)
기시다 후미오
정부
요인
부총리 마쓰모토 다케아키
참의원 의장 오쓰지 히데히사
중의원 의장 스가 요시히데
입법부 일본 국회 (참의원·중의원)
집권 여당
연립 여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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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 경제
GDP
(PPP)
$11조 2,451억 1,311만 | 세계 3위
1인당 $42,419 | 세계 17위
GDP
(명목)
$11조 5,157억 1,521만 | 세계 3위
1인당 $44,555 | 세계 18위
국부 $102조 5,933억 4,922만 | 세계 1위
수출
입액
수출 $1조 9,943억 5,330만 | 세계 2위
수입 $2조 3,263억 2,699만 | 세계 3위
외환보유액 $4조 3,672억 1,280만
신용 등급 무디스 Aaa
S&P AA+
Fitch AAA
통화 화폐 일본 엔(¥, 円)
ISO 4217 JPY
국가
예산
1년 세입 $3조 5,362억 2,810만
1년 세출 $4조 2,245억 7,750만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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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형 SI단위
통행 방향 우측통행
연호 레이와(令和)
시간대 GMT+08:00~09:00 (JST)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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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가입 1996년
수교국 192개국
ccTLD
.jp
국가 코드
392, JPN, JP
국제 전화 코드
+81
위치

개요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국호는 1868년부터 1991년까지는 대일본제국, 현재는 일본국이며 대체로 "일본"으로 불린다.

상세

일본국의 역사를 보자면 매우 복잡하다. 본래 일본은 그 영향권이 혼슈와 규슈 등지에 지나지 않는 소국이었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 유신과 왕정복고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이겼으며 조센과 다이완을 병탄했다.

일본의 절정은 1930년대 중국 침략을 시작으로(지나사변), 서양 열강들을 격파하고 독일과 동맹을 맺어 마침내 1941년부터 1945년까지의 대동아전쟁에서 승리를거뒀으며, 태평양의 미국 영토들을 모조리 침탈하고 샌프란시스코마저 조약항으로 확보한 등 초강대국에 등극, 대일본제국미국, 대게르만국 두 열강과 함께 냉전 동안 세계 3대 강국이었다.

일본은 독일의 아인하이츠팍트, 미국의 자유 국가 기구에 대응하여 "대동아공영권"을 선언하고 이 국가들을 사실상의 식민지로 거느리며 번영을 누렸다.

1960년대에 고도 성장을 거듭한 끝에 1968년 미국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GDP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으며, 1970년대에 가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73년 인도에서 군을 철수해 권위가 실추, 1970년대 말 석유파동을 시작으로 일본 경제가 흔들리고, 1987년 독일에서 유럽대전이 발생해 대게르만국이 멸망 직전까지 몰리자 대동아공영권 내에서도 반향이 일어 1988년 중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선포하고 이어 공영권 국가들이 가담해 대아대전이 시작되며, 신질서의 붕괴가 다가왔다.

1989년 8월 결국 일본은 중국에서 철수하였고, 이어서 다른 공영권 국가들도 무너져 내려 1989년엔 공영권 소속국 국가가 만주국과 필리핀만 남은 지경이었다. 심지어 1988년 중순부터 유럽에서 독일군을 끝장내고 다시 소련이 부활, 소련군이 일본의 극동 영토를 공격하기 시작하며 그야말로 멸망 직전까지 몰려버렸다.

그러나 1989년 일본군은 하얼빈에서 극적으로 소련군을 격퇴한 뒤 몽강을 소련에 내주고 만주국은 호지하는 선에서 강화를 체결해 멸망 위기는 벗어났다. 하지만 공영권이 완전히 붕괴하고 경제도 무너져 내리면서 일본은 바야흐로 대혼란에 들어갔다. 결국 1991년 쇼와 덴노에게 황위를 승계한 아키히토가 스스로 친정을 선포하며 일본이 유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덴노의 유신에 대해 일본군 장교들이 저항하며 도쿄 8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진압됐고, 1991년 12월 25일 헤이세이 유신이 선포되며 대일본제국이 해체, 일본국 헌법이 시행됨은 물론 민주화가 단행되었다. 이 외에도 모병제 실시, 신자체 도입, 공문서의 히라가나 통일, 신적강하 등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으며 일본에서는 1991년을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본다.

몰락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거대하고 강대한 국가였다. 일본은 1993년 만주국, 필리핀 등 아직 남은 친일 국가들을 규합해 아시아태평양공영기구라는 대동아공영권의 후신 격인 기구를 만들었으며, 중국 내전이 공산당의 북중국 공산화로 전개되자 미국과 타협을 이뤄 1995년 미일동맹조약, 또는 미일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미국과 50년 이상 이어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시아 태평양에서 미국의 최대 비OFN 동맹국이 됐다. 이어 탈냉전 후 창설된 UN에 1996년 가입했고 상임이사국이 됐다. 참고로 상임이사국 배정은 냉전의 승자 미국, 각각 독일과 일본을 물리치고 유라시아의 한 축을 차지한 소련과 중화민국, 그리고 냉전의 패자이지만 여전히 유라시아의 강자이며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독일과 일본까지 총 5개국에 배정됐다.

패전 직후 19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불황기를 보내야 했지만, 1998년부터 경제 성장률이 +로 다시 전환하여 무난한 성장을 했다. 그 와중에도 세계 GDP 2위만큼은 지켰고, 2023년 현재도 몇년 내로 남중국에게 따라잡힐 예정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 타이틀을 유지 중이다.

민주주의, 기술, 경제, 그리고 국민의 삶의 질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우위를 구축하고 있는 강대국이다. 일본의 통화인 일본 엔만 하더라도 세계 통화 거래량의 20~25%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기축통화이다. UN을 비롯한 여러가지 국제 조약과 기구에 가입되어있으며, 비 서구권 국가중 유일한 G7의 회원국이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주도국, 아시아개발은행(ADB) 설립국 등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상징

국호

일본의 공식적인 국호는 일본국(日本国, 니혼고쿠)이다. 이 국호는 1991년 헤이세이 유신 당시 확정된 것이다. 1868년부터 1991년까진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을 썼다. 참고로 대일본제국이란 국호는 1889년 대일본제국 헌법에서 정해졌고 약 102년간 일본의 공식 국호로 쓰인 셈이 된다.

약칭으로는 일본(日本)이 주로 사용된다. 일본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전인 아스카 시대에는 왜국(倭國)이 공식적인 명칭이었으며, 701년의 다이호 율령 반포 당시 왜국의 명칭이 일본으로 바뀌었다. 그 외에는 야마토(大和)라는 명칭도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일본의 별칭(別稱)이다.

국제적으로는 일본국(日本國)의 중국식 발음이었던 지펀구를 마르코 폴로가 라틴 문자로 옮긴 Zipangu가 Japan이라는 단어로 변형되어 보통 일본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일본 측의 공식적인 명칭 또한 Japan이다. 국(国)에 대응되는 영어 단어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국기

대일본제국의 법정 국기
일장기 | 히노마루
日章旗 | 日の丸
빨간색 (#AF001F) 하얀색 (#FFFFFF)

일본의 공식적인 국기인 일장기(日章旗)는 일본 민족의 상징으로서 수천년간 사용되어온 깃발이었다. 공식적인 국기로 채택된 것은 메이지 3년(1870년) 2월 27일의 일이다. 하지만 가마쿠라 시대 때부터 일장기와 디자인이 유사한 니시키노미하타가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일본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일장기가 사용되어온 기간은 가늠할 수 없이 길다. 공식적인 명칭인 일장기보다도 히노마루(日の丸)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는 깃발이다.

속 일본기에 따르면, 701년 몬무 덴노가 태양을 나타낸 깃발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 역사상 최초로 태양 상징 깃발을 사용한 사례이지만, 흰색 바탕에 빨간 동그라미는 아니었다. 다만 바탕에 원 하나라는 디자인은 고대나 현대에나 같았고, 이 깃발은 일본의 조정을 상징하는 깃발로서 사용되었다. 늦어도 16세기 이전에는 빨간색 동그라미에 하얀 바탕이 디자인이 되는 현대 모양의 일장기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에도 시대 때부터 상선에 흰 바탕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넣은 상징을 사용하게 되면서 일장기는 국제적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국기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욱일기 역시 일장기와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지만, 공식적인 국기는 아니며 군기(軍旗)로 사용된다. 하지만 욱일기 역시 일장기에 못지 않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기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다.

국가


(きみ) () (임금의 치세)[3]

일본의 국가는 <기미가요>이다. <기미가요>는 국가치고 분위기가 매우 어두우며, 단 11마디의 단가로만 되어있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 특유의 애니미즘적인 요소가 들어가있는 것도 특징이다.

기미가요는 가사가 먼저 나왔고 곡은 나중에 붙었다. 912년 편찬된 <고금 와카집>에 익명의 단가로 처음 등장하였는데, 이후 여러 문헌에 수록되며 장수를 기원하는 노래로써 신분에 관계없이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랑받았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이뤄진 이후, 일본에는 자국을 상징할만한 국가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프란츠 에케르트가 기미가요에 현재의 곡조를 붙여 곡을 완성하였다. 20세기 들어 기미가요는 천황을 기리는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에는 기미가요는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였다. 약 40년간의 대동아공영권 지배 기간 동안 동남아와 중국에서 자국의 국가보다도 더 불렸던 곡으로서, 현재도 많은 아시아의 장노년층에선 기미가요를 부를수 있다고 한다.

지리

자연

혼슈

크게 열도, 반도, 다이완 섬으로 이루어져있지만, 부속 도서까지 포함할 시 그야말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섬들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다. 영토중 확실하게 대륙의 일부라고 할만한 것은 반도로 딸려있는 조센 반도의 일부 지역에 불과하며 그 외의 영토는 모두 섬으로 이뤄져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섬나라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영토는 온대기후에 걸쳐있지만, 영토가 넓은만큼 기후도 그만큼 다양하다. 조센반도 북쪽과 북방영토, 사할린 섬 그리고 홋카이도 일대는 한대 기후에 속한다. 조센 반도의 게이조부 역시 냉대기후에 걸쳐있다. 반면 다이완 섬은 태풍이 자주 몰아치고 연중 습하고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열대 기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고, 산과 강이 많아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다이완섬과 히가시니혼 지역은 환태평양 화산대를 끼고 있어 지진이 빈발한 반면, 조센반도와 케이한신 지역의 경우 지진 활동이 적은 편이고 조선은 햐쿠토산정도를 빼면 활화산도 딱히 없다.

인구

일본 열도에 총 1억 4천만명이, 조센 반도에 8천만명이, 다이완 섬에 2천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일본 열도는 규슈, 시코쿠, 혼슈, 홋카이도 등 4개의 섬으로 나뉘지만, 인구의 절대다수가 혼슈 섬에서 거주하고 있다. 인구상으로 가장 밀집된 곳은 혼슈 섬의 간토 평야, 긴키 일대의 케이한신 권역[4], 조센반도의 니조하라[5] 권역, 그리고 다이완섬의 다이호쿠부이다.

1가구 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보니 간토 평야와 같은 곳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스프롤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20개중 19개가 일본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의 대도시들은 그 규모와 인구 수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중소도시와 지방의 형편이 어려운데다가 대도시의 집값이 비싸 최근에는 오히려 지방 도시로 이주하는 인구수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행정구역

대일본제국
도도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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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단체 개념으로 도도부현(都道府県 (とどうふけん))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중 도(都)는 도쿄도, 도(道)는 홋카이도, 가라후토도가 있고 대부분의 광역지자체들은 부나 현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도(都)

도쿄도

일본 유일의 도(都)인 도쿄도는 제국의 수도이자 최대도시로, 약 1,500만명이 거주하며 광역인구는 3,900만명이다. 최대 도시이자 수도라는 점에서 도라는 특별 지위를 받았고 다른 도는 현재까지는 없다. 전쟁 중이었던 1943년 7월 1일 도쿄도제가 실시되면서 도쿄부를 도쿄도로 개편하였다. 당시 도쿄도 수장의 명칭은 '도쿄부 장관'이었다. 현재 도의 지자체 수장은 도지사이다. 도쿄도지사는 다른 현지사나 부지사와 마찬가지로, 직접선거로 4년에 한번씩 뽑으며 재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도쿄도의회 선거 역시 4년 주기로 치뤄진다.

본래 직할시였으나, 1947년 23구를 설치하고, 1967년 도쿄도지사를 직선으로 선출하면서 광역자치단체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도쿄도의 특별구는 다른 정령지정도시의 행정구와는 달리 시에 속해있지 않다는 특징이 있고 각각의 특별구는 시정촌과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도쿄는 23구부로 이루어진 정사각형 모양의 도심지역과, 시와 정으로 구성된 배후 도시인 타마가 합쳐진 가로로 길쭉한 모습을 하고 있다. 보통 도쿄라고 하면 23구부만을 이야가하지만, 1,500만 도쿄도민중 1/3 가량인 480만명 가량이 타마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도(道)

홋카이도

홋카이도를 지칭하는 행정구역단위이다. 도는 7세기 율령제 반포 이후 설치되어 1871년 이후 서서히 용도폐기되었다. 홋카이도는 위의 행정구역의 명명 방식에 따라 역사적으로 가장 최근에 이름이 붙은 지역인데, 이제 이 행정단위를 쓰는 곳은 홋카이도가 유일하다. 홋카이도는 본토와는 정반대로 3현(하코다테현, 삿포로현, 네무로현)을 거쳐 1886년 홋카이도청(北海道廳/北海道庁)이 설치되었다. 이후 1956년 북방 영토의 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 홋카이도를 엮어 홋카이도가 출범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땅이 넓어서 출장소 개념으로 14개의 진흥국(振興局)과 2개[6]의 지청(支庁)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진흥국 및 지청 중 두 곳에는 시가 없다.

홋카이도의 수장은 홋카이도지사로 마찬가지로 직선직이다.

부(府)

게이조부

부는 현의 가장 큰 도시를 현의 개념으로 승격시킨것과 비슷하지만, 도(都)와는 달리 산하에 자치구를 둘 수 없다. 현재는 오사카부, 교토부, 게이조부, 다이호쿠부 등 총 4개의 도시가 부로 설치되어있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홋카이도 하코다테, 나가사키현, 가나가와현, 나라현, 에치고, 카이에도 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1869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면서 교토, 오사카, 도쿄만이 부로 남게 되었으며, 1943년 최종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통하여 도쿄가 도쿄도로 승격되고 게이조와 다이호쿠가 부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부가 도(都)와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받았지만, 점차적으로 부지사의 직할 권한이 없어져서 현재는 현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 영어 명칭도 현과 같은 Prefecture를 쓴다. 부는 산하에 시정촌은 있을 수 있어도 자치구를 둘 수는 없다. 설치 초기에는 부지사가 해당 부의 중심 도시를 관할했기 때문에 적어도 그 당시에는 광역시와 비슷했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51년 체제로 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부는 일반 행정구역인 현과 동일한 법령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일부 부는 도(都)로의 승격을 노리고 있다. 2011년 게이조도 전환 주민투표, 2015년 오사카도 전환 주민투표 문서를 참조. 참고로 양측 모두 부결되어, 도로의 전환을 추진했던 부지사가 정치적인 타격을 입었다. 지역주의 활동이 활발한 게이조부, 오사카부와 달리 다이호쿠와 교토는 도로의 승격 움직임이 거의 없다.

현(県)

1868년 폐번치현을 통해 에도 시대의 각 번(藩)들을 행정구역화한 것이다. 이 때문에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현의 개수가 302개에 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개의 현이 합쳐지고, 또 분리되는 과정을 합치면서 현재는 현의 개수가 77개로 줄어든 상태이다.

여담으로 현의 이름은 현청이 소재한 도시의 이름이나, 예전에 현청이 소재했던 도시의 이름을 따온 경우가 매우 많다. 오키나와현 정도만이 이 경우에 속하지 않는다.

식민지 시대의 행정구역

과거에 조센다이완에는 각각 도(道)와 5주 3청(5州3庁)이라는 이름의 개별 행정구역이 존재하였다. 또한 내지와의 구별을 하고자 지명을 음독으로만 읽었다. 1943년, 교키도게이조시다이호쿠주가 부로 승격되었고, 이후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내지 편입을 통해 조센과 다이완에도 도도부현제도가 실시되었다.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식민지인 다이렌청, 혼콘, 마카오, 쇼난에는 각기 다른 행정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이 지역들은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으며 여전히 천황이 임명하는 총독들이 파견된다.

기초자치단체: 시정촌

시정촌(市町村)이라고 하여 도도부현 산하의 기초자치제도 역시 실시되고 있다. "시정촌"이란 이름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도쿄도의 23개 특별구도 시정촌과 같은 단계의 지자체이기 때문에 묶어서 시구정촌이라고도 부른다.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상공업자가 모여사는 마을을 정(町), 농민이 사는 마을을 촌(村)이라고 불렀다. 메이지 시대 초중기에 정촌을 폐지하고 대구소구제 등을 시행하다가 폐지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현재의 시정촌제는 1888년 도입되었으며 시정촌 대통합 작업 후인 1899년 실시되었다. 1888년 이전에도 정촌은 존재했지만 이때의 정촌은 말그대로 '마을' 단위로 설정되었는데, 이른바 메이지 대합병 과정을 거친 1889년부터는 마을 여러 개를 묶어서 시정촌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후 1951년 51년 체제에 따라 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른 제도로 현재의 시정촌 제도가 확립되었다.

인구가 5만명 이상이면 시로 승격된다. 시는 다시 특례시(特例市), 중핵시(中核市), 정령지정도시(政令指定都市)로 나뉜다. 인구가 25만 명 이상이면 특례시, 50만 명 이상이면 중핵시, 70만명 이상일시 중핵시로 지정된다.

외지

대일본제국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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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본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입헌군주제에 기반한다. 헤이세이 3년 제정된 일본국 헌법에서 천황을 "국가원수이자 국방군의 통수권자"로 규정한 바 국가원수는 천황이며, 정부수반은 내각총리대신이다.

현재 천황은 전임 아키히토가 2019년 일본 역사상 최초로 생전 퇴위함으로서 양위를 받은 나루히토이며, 연호로는 레이와(令和)를 쓰고 있다.

총리대신은 2021년 10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부총리로는 마쓰모토 다케아키가 있다.

국회는 중의원참의원이 양원제이다. 1890년 개설된 일본국 국회는 133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헤이세이 유신 이전 제국 시대까지는 참의원 대신 귀족원이 존재하였다.이는 화족들을 위한 명예직에 가까웠었다. 그러나 냉전 후 유신의 과정에서 신적강하를 통해 화족를 폐지하면서, 자연스럽게 귀족원도 사라지고 대신 1992년 참의원이 개설되었다.

정당정치의 경우, 일본은 오랫동안 익찬 체제라고 하여 1940년부터 1989년 정당 자유화에 이르기가지 49년간 다른 모든 정당을 합병한 군부 관제 정당인 대정익찬회가 일당 통치를 벌였다. 즉 군부독재 체제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대동아전쟁에서의 승전으로 군부의 발언권이 더욱 증대되기도 했다.

헤이세이 유신을 전후하여 익찬회가 해체되고 각 정당이 허용되면서, 난립하기도 했으나 곧 통폐합되어 1990년에는 보수적/구군부 위주의 일본자유당(日本自由党), 리버럴/민주적 성향의 입헌민정당(立憲民主党), 보수적/구 관료 위주의 일본국민당(日本国民党) 등 크게 3개의 세력으로 분화됐다.

대체로 일본자유당과 입헌민정당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체제가 이어지다가, 1997년 11월 22일 국가위기 상황에서의 안정을 명분으로 자유-국민을 위시한 범 보수 세력이 대통합해 자유민주당(自由民主党)을 창당하며 급격히 보수 일방적 우위 체제로 전환되어 2023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97년 체제라고 한다.

입헌민정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익찬회가 간판만 바꾸어 되돌아왔다"고 비판하기도 했었다.

천황


대일본제국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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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제126대
메이지 다이쇼 쇼와 아키히토 나루히토
신대 통치 · 야마타이 국왕 · 북조 천황 · 추존 및 비정통 천황


나루히토 천황
天皇は主権を有する国民の総意から生まれた日本国の国家元首で、内閣及び政府を統率し、日本国民統合を象徴する
천황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총의로부터 나온 일본국의 국가원수로서, 내각 및 정부를 통솔하고 일본 국민 통합을 상징한다.
일본국 헌법 제1조


일본국 헌법 제1조에 따라 천황은 일본의 국가원수이다. 현재의 천황은 제126대 천황인 나루히토이며, 황위 계승자는 나루히토의 동생인 후미히토 친왕이다.

일본 천황은 다른 국가의 국왕과 달리 유일하게 황제(Emperor)이라는 작위로 호칭되고 있다. 가문의 역사에 있어서도 다른 가문들을 월등히 능가하는 적통성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황실은 약 2,600년간 한번도 끊김이 없이 이어져왔으며, 이를 만세일계라고 부른다. 다만 '만세일계'라는 단어는 제국 헌법에는 있었으나 일본국 헌법에서는 제외되었다.

막부가 바뀌고, 막부 체제에서 제국 체제로, 제국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양되는 과정에서도 천황은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보존되었으며 천황의 자리를 탈취하기보다는 보존하는 세력이 더욱 정통성을 가진다고 인식되었다. 1991년 헤이세이 유신 당시 아무도 천황의 의지를 거역하지 못했으며 도쿄 8월 쿠데타가 역적 취급을 받은 사례에서도 알수 있다. 그만큼 일본의 천황은 일본의 구심점이자, 일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국민적으로 공화주의 조직이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7] 천황은 일본 국민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다. 쇼와 천황 이후 아키히토 천황, 나루히토 천황 그리고 현재의 황위 계승자인 후미히토 친왕까지 황실 구성원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한데다가, 국가 위기의 상황에서 국민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맡았다. 물론 제국 시기에는 군부의 거수기 역할만을 하는 감이 없지는 않았다.

참고로 일본의 천황은 남성 황족만이 자격이 있다.

내각총리대신

파일:플로라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심볼.svg
대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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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이토 히로부미 구로다 기요타카 야마가타 아리토모 마쓰카타 마사요시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이토 히로부미 마쓰카타 마사요시 이토 히로부미 오쿠마 시게노부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가쓰다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제13대 제14대
가쓰다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다이쇼 시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사이온지 긴모치 가쓰라 다로 야마모토 곤노효에 오쿠마 시게노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라 다카시 다카하시 고레키요 다나카 기이치
쇼와 시대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다나카 기이치 와카쓰키 레이지로 이누카이 쓰요시 사이토 마코토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오카다 게이스케 우가키 가즈시게 고노에 후미마로 고이소 구니아키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미나미 지로 아베 노부유키 요시다 시게루 가타야마 데츠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아사누마 이네지로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에다 사부로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다나카 가쿠에이 나카소네 야스히로 도이 다카코 다케시타 노보루
헤이세이 시대
제40대 제41대 제42대 제43대
다케시타 노보루 호소카와 모리히로 무라야마 도미이치 에다 사쓰키
제44대 제45대 제46대 제47대
간 나오토 하토야마 유키오 아베 신조 에다노 유키오
레이와 시대
제47대 제48대
에다노 유키오 모테기 도시미쓰
인세이 · 헤이케 · 가마쿠라 · 무로마치
아즈치모모야마 · 에도 · 내무경

원로 · 부총리



대일본제국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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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부수반이자 행정부를 대표하는 행정부 수장이다. 일본제국 헌법에 따르면 행정권이 속하는 내각의 수장으로 정의되어 있다. 내각총리대신은 행정 각부를 임명하며 천황을 대신하는 사실상의 국가원수로서 국정 전반을 통솔한다. 총리는 중의원/참의원에서 선출하며 자격에 중의원이어야한다는 조건은 없지만 관례상 중의원 다수당의 대표나 총재가 총리로 선출된다. 중의원/참의원에서 총리 지명 투표를 거치고 천황의 임명장을 얻어 총리 대신으로 지명된다.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다른 사람을 총리로 임명하였을 때에는 보통 중의원이 우선권을 가진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정부 수반인만큼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총리가 여럿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에다 사쓰키, 아베 신조, 기시 노부스케, 다나카 가쿠에이 등. 현 내각총리대신은 자민당 소속의 기시다 후미오이며 2021년 10월 취임하였다.

행정각부

일본국 국가행정조직
日本国国家行政組織
1부 19성 33외국 [ 펼치기 · 접기 ]
공정거래위원회
국가공안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카지노관리위원회
국세청
금융청
소비자청
대본영
국가보훈청
방위장비청
공해등조정위원회
검찰청 문화청
스포츠청
중앙노동청
자원에너지청
특허청
중소기업청
해상보안청
해경청
우주개발청
시종청 국외자원청
임야청
수산청
운수안전위원회
관광청
기상청
출입국재류관리청
공안심사위원회
공안조사청
원자력규제위원회
중앙성청 파일:플로라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심볼.svg 내각총리대신 직속 기관 독립 중앙 행정 기구



대일본제국 내각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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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성청이라고 불리며 현재는 총 19개의 성(省)이 설치되어있다. 성의 대신은 주로 의원으로 구성되며 의원이 아닌 사람도 대신에 오를 수 있으나 그 수는 전체 대신의 1/2를 넘지 않게 한다. 이 조항은 아직도 건재한 군부가 일본의 정치에 종종 개입하는 원인이다. 비의원 대신의 경우 대부분 군인 출신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육군성, 해군성,공군성의 경우 무조건 군 장성 출신만 기용된다. 즉 일본 국방군은 아직 군 문민통제를 이루지 못했다.

중앙성청 이외에도 총리의 재량에 따라 특명담당대신들을 기용할 수 있는데, 현재 기시다 내각에서는 13명이 특명담당대신으로 임명되어있다. 이들은 중앙성청에서 다루는 것중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책임진다.

행정각부의 수가 많고 특명대신도 있는만큼 대신직 자체는 권한이 크지 않으며 오히려 권력 투쟁을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되는 경우가 잦다. 실무는 거의 대부분 관료가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외무성과 대장성, 상공성의 힘이 강력하다하나, 경제 및 외교 관련 부처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단지 발언권만 강할 뿐 업무 자체는 관료가 전부 다 하고 대신은 도장만 찍는 역할만 한다.

국회와 선거

대일본제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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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기 내각 (2021.10.21 - )
여당

자유민주당
 169석 307석 

공명당
 21석 23석 

남방의당
 3석 4석 
야당

일본사회당
 142석 244석 

시민 리그
 13석 30석 

일본공산당
 11석 13석 

신사회당
 3석 6석 

레이와 신센구미
 5석 3석 

차세대당
 3석 4석 

그린스 재팬
 0석 3석 
무소속  14석 11석 
공석  0석 2석 
재적 384+38석 · 650+20석
좌측은 참의원 의석 수, 우측은 중의원 의석 수


본래 귀족원과 중의원으로 나뉘어져있었으나, 1991년 헤이세이 유신 당시 화족이 폐지됨으로 귀족원을 폐지하고 이후 민의에 의해 선출되는 상원인 참의원이 설치되었다. 총 422석을 운영 중이다.

한편 중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한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와 정당 득표에 따라 의석을 정하는 불구속 명부 비례대표제로 이뤄진다. 총 의석은 670석에 달한다.

중의원에서 2/3의 동의를 받은 법률은 참의원의 동의 없이 통과가 가능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라도 참의원은 60일동안 법안을 계류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또한 예산 결산은 중의원에서 하지만 인사권의 대부분은 참의원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식에 비하면 참의원이 가지는 권한이 상당히 강력한 편이다. 그러나 법상에서는 중의원 우위권을 인정하기에 중의원과 참의원간 권한 분쟁이 일어났을 때 대체로 중의원이 유리하며 중의원과 참의원이 다른 총리를 지명했을 때에는 중의원에서 선출된 총리가 총리직을 맡는다.

본래 일본 열도 내부에서만 선거가 치러졌으나 1946년 대동아전잭 직후 조센에 23석, 다이완에 5석의 중의원 의석이 배정되며 처음으로 전국 단위의 선거가 치러졌고, 1952년에는 최종적으로 모든 지역에서 인구 비례에 따른 선거구를 획정하게 함으로서 보통 선거가 이뤄지게 된다.

정당

보수 대통합을 통해 탄생한 자유민주당이 1997년부터 집권 중이고, 제1야당이자 원내 2당인 입헌민정당, 이어서 일본유신회, 일본사회당 등 야당들이 있다.

1940년부터 1989년까지 대정익찬회가 일당 통치를 이어갔으나 현재는 다시 여러 정당들로 분화됐다.

자민당 내에선 파벌이 발전되어있고 이합집산도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자민당 자체가 구 익찬회의 보수-중도 성향 인사들을 모두 모아놓은 정당이라 당내 파벌을 합친 것 이상의 권력을 가지는 군대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군사 파벌이 당 내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일단 한번 당수가 되면 산하 참모들만 자주 바뀌고 당수는 임기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잦았다. 심한 경우에는 아예 당수는 바지사장이고 군사 파벌이 알아서 다 해먹기도 한다. 참고로 이는 총리도 마찬가지라 총리를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고 내부적으로 국무대신을 교체해가며 권력 투쟁을 해가는 경우가 많다.

자민당 외에 입헌민정당이나 일본사회당의 경우 군사 파벌이 정리됐기에 큰 영향력이 없다.

관료제

중일전쟁 이후 군부가 외교에 있어서 힘을 점진적으로 상실하고 반대급부로 관료들의 사후 처리 매뉴얼이 돋보이면서 195~60년대 이후 경제와 통상, 외교적인 면에서 관료제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막강한 외교력은 경제 규모 세계 1위에 속하는 막강한 국력 덕택이지만, 동시에 외교와 통상 면에서 철저한 매뉴얼과 대응책을 세워놓는 관료들의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대 아시아 외교 통상 분야에서는 자국보다도 더 자국을 더 잘 아는 나라로 정평이 나있다. 만주국, 직예 같은 일본의 괴뢰국 뿐만 아니라 적대 관계에 있는 국민당 정권, 공산당 정권도 일본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빈틈이 없는 철저한 아시아 태평양 외교 정책을 통해 1950년대 이미 동남아시아까지 전 지역을 자국의 영향권 아래 포섭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러한 일본의 관료제를 바탕으로 한 아시아 패권주의는 신냉전에서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우위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장성상공성에서는 경제관료들의 중노동 대응 매뉴얼과 기업들 통제 전략, 국회/국민 설득 방안 등에 대한 매뉴얼도 전부 따로 작성해 놓고 있다. 무역/통상 협상을 하러 가면 일본은 이미 실무진들을 통해 상대국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해 두고, 그 국가의 협상 전략까지 세세하게 파고들어서 대응 전략을 마련해 두고 협상에 들어온다. 이 때문에 협상 상대국이 일본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못하여 협상 자체가 결렬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한번 협상을 제대로 하면 가장 빠른 속도로 진척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유연함이 없는 관료 정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내에서는 관에 대한 정치의 우위가 나타나고 있다. 아베 내각, 에다노 내각, 모테기 내각을 거치면서 이전까지 관료가 서류를 제출하면 대신은 그저 도장만 찍는 구도에서 벗어나 정치권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미일 경제 전쟁 역시 관에 대한 정치권의 우위가 확립된 사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도리어 미일 경제 전쟁 도중 정치인들이 저지른 일부 무리수들이 부각됨으로 인해 역시 외교와 통상, 경제는 관료가 맡아야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지방 정치

일본의 지방 정치는 중앙 정치와 철저하게 분리되어있다. 중앙 정치인이 직을 버리고 지방 정치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겨질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반대로 지방 정치를 하다가 중앙 정치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중앙 정치가 지방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예외가 있다면 게이조 지역주의 정당인 시민 리그나 시가현지사였던 가다 유키코 정도.

정당의 공천이 지방 정치에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지방 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정당 당적을 포기하는 대신 여러 정당들의 지지를 받아 출마하는 경우가 잦다. 주로 자유민주당, 공명당 추천 후보와, 사회당 추천 후보가 맞붙고 공산당 추천 후보가 제3지대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관료와 군대의 영향력이 지대히 미치고 있는 중앙 정치와 달리 일본의 지방 정치는 총평 등 노동조합과 지역 유지들, 그리고 지역 기업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물론 이것도 지역별로는 달라서 대도시의 경우 조직력에 구애받기보다는 중앙 정치에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선거가 매우 다양하다보니 현지사나 현의회를 뽑는 선거가 아니면 보통 투표율이 4~50%대로 낮은 편이다. 중의원, 참의원, 현지사 선거가 보통 투표율 7~80%대, 못해도 60%대를 기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직력이 강하게 미치는 지역 정치에 대해 일본인들이 큰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맹점 때문에 일본공산당과 같은 일부 정당들은 부라쿠민 해방 조직 등 소수자, 시민단체와 결합하여 중앙 정치보다 더 큰 발언권을 가지기도 한다. 실제로 자민당이 극도로 유세한 일부 시골의 경우 제1야당의 포지션을 공산당이 맡는 경우가 잦다.

군사

일본 국방군
日本国防軍 (にっぽんこくぼ ぐん)
Japanese Armed Forces
일본 육군 일본 해군 일본 공군

정식 명칭은 일본국방군(日本国防軍), 일본군은 1871년 창설된 동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군대이다. 육군, 해군 공군과 공군 산하의 전략미사일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일본제국 시절에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지나전쟁,대동아전쟁등에서 승승장구하며 냉전 시대에는 일본 제국군이 세계 최대의 군대로 존재했다.

군의 통수권자는 헌법에따라 천황이다. 참고로 제국 시절에는 제국 헌법에서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라는 조항을 근거로 들어 공군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헤이세이 유신 이후 헌법 조항이 "국방군은 천황의 통수를 받는다"로 개정되며 1992년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를 통합해 일본 공군이 창설된다.

참고로 제국 시절엔 일정한 명칭이 없다가 1948년 대일본제국군(大日本帝國軍)이라는 정식 명칭을 정하여 1991년까지 쓰였다. 그전에는 일본군(日本軍), 황군(皇軍), 제국군(帝國軍) 등 여러 명칭이 있었다. 냉전 시기 일본의 방송에서는 제국군(帝國軍)또는 국군(國軍)을 약칭으로 사용했다.

전성기인 1960-80년대에 일본의 군사력은 육군력이 독일에 이은 2위, 해군력이 세계 1위라는 엄청난 군사력을 자랑했다. 당시 일본군은 대동아공영권의 각처, 시베리아에서 태평양, 인도 벵골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주둔군을 두었었다.

1980년 일본군의 규모는 상비군 340만 명에 달했었다. 예비군은 1000만 명이 넘던 시기였다.

하지만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대아대전의 참패로 일본군은 유신이래 불패신화를 종식했고, 일본 제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잃게 되며 덩달아 일본군도 과거의 위상을 유지하지 못했다.

패전 이후 유신 때 대규모 군 개편이 있었다. 먼저 경제 불황에 따라 군축이 불가피하였다. 제국군은 일본국방군으로 개편되었으며 징병제의 복무 기간은 유신 당시 36개월에서 18개월로, 1998년에는 "징병 집행 보류"의 형식으로 모병제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는 모병제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징병제가 보류된 상태일 뿐이며, 병역법에는 국방의 의무가 여전히 있으므로 언제든지 징병을 재개할 수는 있다. 실제로 국토방위긴급계획예비병력대장(国土防衛緊急計画予備兵力隊長)이라는 전쟁성 문서에서 18세에서 40세의 일본 남성들의 명단을 확보해 놓고 유사시 징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국방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육군력이 미군과 소련군에 이은 3위, 해군력 2위, 공군력 2위이며 냉전 시기에 만든 각종 미사일 전력은 매우 막강하다. 수천 발의 핵탄두도 보유 중이다. 1990년에 미국, 독일과 일미독전략무기제한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하여 핵탄두 수량을 종전의 70% 정도로 줄였으나 여전히 세계 1위의 미사일 전력 보유 국가이다.이는 모두 일본 전략미사일군에서 관리한다.

상비군 병력은 64만 5천명을 유지 중으로, 미국을 제외하면 모병제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운용한다. 병력 수 면에서는 북중국, 남중국에 이은 동아시아 3위이지만 그 질적인 면에서 육해공 모두 여전히 동아시아 최대 강군이다.

냉전 시대까지는 거의 항상 실전에 투입될 정도였으나, 90년대 이후에는 그렇지 않다. 유신 이후의 실전경험이라 해 봤자 미군의 동맹군으로 일부 병력을 파견한 2004년 이라크 전쟁 정도가 끝이다.

군사 정치

일본은 군사 정치가 매우 강력한 국가이며 현재까지도 군은 일본 정치의 중추이다. 메이지 유신 이래 지속되는 승리는 군부의 발언권을 크게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급기야 대동아전쟁 중인 1940년에 도조 히데키가 이끄는 군부의 주도로 여러 정당들을 합병해 대정익찬회를 설립하고 대동아전쟁 승전을 거쳐 약 50년간 총리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채 군부 정권을 유지했다.

1989년에 익찬 정치가 끝이 나고, 1991년 헤이세이 유신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군은 공식적으로는 정치에 개입할 수가 없게 됐다. 다만 이는 현역 군인도 각료에 오르던 제국 시절보다 나아진 것일 뿐 상당수 요직은 전직 군 장성들이 차지했다.

모병제의 실시가 군을 억누를 것이라는 기대도 빗나갔다. 모병제 실시는 군이 오히려 더욱 소수정예화,엘리트 조직화되어 정치 개입을 더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7년 자유민주당의 창당으로 구 군부 인사들이 대거 거대 여당에 섞여 들어갔다. 이렇게 생겨난 자민당 내에서 최대 파벌인 "익찬계"는 사실상 군부가 현재까지도 정치에 개입하는 주요 루트이다.

2012년 집권한 아베 신조 전 총리, 2021년 집권한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 등 대부분이 익찬계의 입김에 따라 총리에 올랐으니 그 영향력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그 외에 육군성, 해군성 등 국가 안보 및 외교에 관련된 부서 대부분을 군부가 꿰차고 있으므로 내각 요인중 상당수가 군 출신이다. 실제로 현 모테기 내각의 대신 32명중 무려 25%에 달하는 8명이 전현직 군 장성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군이 여전히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

교통

전세계에서 가장 대중교통이 발달한 국가로 손꼽힌다. 수십년에 걸친 일본 정부의 노력 끝에 현재 일본 전역에서는 왠만한 오지가 아니면 전 지역에 JR이 운영하는 전철이 상시 운행중이며 도심 지역은 해당 도시 지역 주민들도 햇갈릴정도로 촘촘하게 짜여진 지하철과 도시철도 노선으로 짜여져있다. 철도가 아니더라도 버스와 같은 다른 대중교통 시설과 전철의 연계가 잘 되어있으므로 자가용이 없어도 사는데 별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 대중교통 인프라가 훌륭히 갖춰져있다.

조센 반도일본 열도는 1997년 건설된 지하 터널로 연결되어있으며 이동하는데 어떠한 불편함도 없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시모노세키, 구마모토, 기탸큐슈 등지에서 무라야마, 우루산 등으로 향하는 항만편이 상시 운항중이다. 한편 다이완과 일본 본토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고 가거나 혹은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지만, 도쿄와 다이호쿠는 비행기로 3시간, 게이조는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어 큰 불편은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운송은 항만으로밖에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 내각 시절부터 오키나와현을 거치는 초거대규모의 지하 터널을 계획중에 있다. 사실 이 계획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시절부터 기획되어왔으나 현실성 문제로 실패했고 현재 기술로도 건설에 최소 60년은 걸릴거라는 예상이 나오기 때문에 실제로 계획이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다.

사회

언어

일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인중 일본어를 구사할 수 없는 인구는 거의 없다. 일본어는 류큐어와 함께 일본어족에 속하지만 류큐어는 사실상 소멸된 언어이므로 일본어를 고립어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지역어로는 다이완어, 조센어, 아이누어, 류류어 등이 있지만 전부 사어이다. 그나마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잘 닿지 않는 조센반도 북부 산간 지역에서 조센어의 화자 비중이 10~15% 정도로 높은 편이나 그뿐이며 다이완어나 아이누어는 사용 화자 수가 1,000명을 넘지 않아 사실상 소멸된 언어로 분류된다.

물론 다이렌청, 홍콩 같은 외지에서는 중국어, 민남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중앙 정부에서도 이를 외지의 자율적 행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굳이 건드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도 의무적 일본어 교육은 강제되기에 일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외지 거주자는 찾기 어렵다.

문자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로 이루어진 일본의 고유 문자인 가나, 그리고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한자의 경우 1960년대까지 구체자를 썼으나 너무 쓰기 어렵다는 이유로 1970년대까지 점진적으로 획 수를 줄이는 신체자로의 개혁을 실시해 현재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제국의 국명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구체자로 쓰고 있으며 황실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구체자를 사용하는 등 구체자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만요가나라고 하여 중국의 한자를 일본어의 발음으로 반영하여 사용하였으나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한자를 변형하여 가나를 만들었다. 히라가나는 일본어의 독음을 표기할 때, 가타카나는 외래어를 사용할 때 표기한다.

조센어에는 고유한 문자인 겐분(諺文)이 쓰였다고 하나 애시당초 조센어가 사어에 가까운 언어이기도 하며 겐분의 표기 자체도 가나 혹은 한자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현대 일본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만어를 표기하기 위해 다이완 가나라는 특수한 문자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문화

외교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에 이은 세계 3위의 강대국으로 꼽혔다. 199~2000년대 이후 소련과 미국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이후로 거의 모든 지표에서 미국, 소련을 넘어서고 있는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다.

주위에 있는 국가들이 소련을 제외한다면 우방국이나 준우방국 밖에 없어 외교적인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1990년대 이후로는 소련과도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므로, 당장은 일본에게 외교적으로 위협이 가는 국가는 없는 상황이다.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간혹 일본의 동남아 경제 진출을 반대하는 반일 성향의 좌파 정부가 들어서곤 하지만 그뿐이며 안보적으로 큰 위해를 가하고 있지는 않다.

국제적으로 제1세계도, 2세계도 아닌 원만한 외교 관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일본의 무리한 정치적 개입 및 대기업들의 경제 침탈 행보로 인해 일본에 반감을 가진 국민들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는 경제적으로 일본에게 종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큰 변수가 없다면 일본의 위상에 흠집을 낼만한 강력한 반일 국가가 생겨날 확률은 매우 낮다.

일미관계

일중관계

일소관계

대중매체에서

  1. >대일본제국 해체 이후.
  2. 천황은 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성을 가지지 않는다.
  3. 1996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연주 버전으로, 일본의 전통 악기들을 이용해 연주하였다.
  4. 교토, 오사카, 고베를 가리킨다.
  5. 니가와, 게이조, 미즈하라를 가리킨다.
  6. 북방영토, 사할린 섬.
  7. 물론 일본 정부에 의해 금지되어 있는 공산당의 경우 천황제 철폐를 주장하고 있으나 적어도 제도권 정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